<올림픽> 中 탁구 '영원한 은메달리스트'를 아시나요

2016. 7. 30.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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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오, 올림픽 남자단식 결승에 세 번 올라 모두 패배
런던 올림픽 당시 왕하오 모습.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왕하오, 올림픽 남자단식 결승에 세 번 올라 모두 패배

(리우데자네이루=연합뉴스) 김태종 기자 = 올림픽 종목 가운데 한국은 양궁에서 독보적이다. 4개가 걸린 금메달 중 매 대회 절반 이상을 획득한다.

그러나 한국에 있어 양궁보다 중국에 더 효자종목이 있다. 바로 탁구다.

올림픽에 참가하는 다른 나라에 탁구 금메달이란 그야말로 '만리장성'이다. 금메달은 아예 꿈도 꾸지 않는다. 중국이 있기 때문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그동안 탁구에서는 총 28개의 금메달이 나왔다. 이 중 중국이 무려 24개를 독식했다.

7번의 올림픽 중 4번의 대회에서 중국은 금메달 4개를 싹쓸이했다.

2000년 시드니 대회부터 2012년 런던 올림픽까지는 16개 중 15개를 가져갔다.

이 기간 다른 나라가 금메달을 딴 것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유승민의 남자 단식 우승이 전부다.

그런 중국이지만, 올림픽에서만큼은 불운했던 한 선수가 있다.

'영원한 은메달리스트' 왕하오(33)다.

왕하오는 중국식 펜홀더의 장점을 극대화한 '이면타법'의 완성자로 불리며 세계 일인자로 군림해온 중국의 에이스였다.

1998년 15살의 나이에 중국 국가대표에 이름을 올린 왕하오는 잘 생긴 외모에 출중한 실력과 침착함까지 겸비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선수 기간 메이저 대회(올림픽·세계선수권 등)에서 12번의 개인 단식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는 개인으로 역대 최다다.

2007년 10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무려 27개월 동안 세계랭킹 1위를 지냈다.

독보적인 세계 탁구의 일인자로 오랫동안 군림했지만, 정작 올림픽 금메달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는 처음 올림픽에 출전했던 2004년 아테네 대회에서부터 결승에 올랐다.

우승까지는 단 한 걸음. 그러나 왕하오는 이전까지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던 유승민에 2-4로 패하면서 은메달에 그쳤다.

전성기를 구가했던 2008년 그는 런던 올림픽에서 다시 개인 단식 결승에 진출했다. 당시 그의 금메달을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왕하오는 팀 동료 마린에게 1-4로 패하면서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리고는 왕하오는 8년간 절치부심하며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다시 금메달을 눈앞에 뒀다.

이번에는 같은 중국의 장지커에게 1-4로 져 발목이 잡혔다.

왕하오는 2014년 12월 전격 은퇴를 선언하면서 끝내 올림픽 단식 금메달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한 번 올라가기도 어려운 올림픽 결승전에 3번이나 오른 그였지만, 모두 은메달을 따내는 진기록을 남겼다.

그가 '영원한 은메달리스트'가 된 이유다.

taejong7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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