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곡동천ㅣ영주 죽계구곡 르포] "구곡의 끝은 '活人山' 소백산이라네"

글· 월간산 한필석 편집장 2016. 7. 29.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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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 취한대에서 초암사 위 중봉 합류지점까지 잇는 소백산자락길

‘구곡(九曲)’은 굽이굽이 흐르는 물줄기 가운데 경치가 아름답거나 깊은 뜻을 간직한 아홉 굽이를 의미한다. 시초는 중국 송나라 주자(朱子·1130~1200)가 그의 고향 산 무이산(복건성 건녕부 숭안현)에 은거하면서 조성한 무이구곡(武夷九曲)으로 전해진다.

[월간산]<순흥지>에 전하는 죽계구곡은 백운동서원과 소수서원의 수학생들의 심신수련을 위해 걷던 길이었다. 죽계천 물가에 고즈넉한 분위기로 자리한 취한대(翠寒臺). 구곡동천 제1곡이다.

경상북도에는 무이구곡에 견줄 만큼 아름다운 물줄기와 골짜기가 많다. 봉화 춘양구곡이 그중 하나요, 성주·김천의 무흘구곡과 성주 포천구곡 또한 풍광이 뛰어나다. 소백산 죽계구곡 역시 마찬가지. 일찍이 고려 후기 문장가 근재 안축(謹齋 安軸·1287~1348)이 그 아름다움을 극찬했고, 조선시대 성리학자이자 풍기군수를 지낸 신재 주세붕(愼齊 周世鵬·1495~1554)과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은 죽계계곡을 거슬러 오르며 자연을 탐닉했고, 그의 문하생들은 그곳에서 심신을 닦았다.

이렇듯 예부터 자연의 아름다움을 극찬해 온 죽계구곡에 관한 내용은 조선 영조(英祖, 재위 1724∼1776) 때 발간된 읍지인 <순흥지(順興誌)>에 소개돼 있다.

소백산국립공원 최고봉 비로봉(1,439.5m)과 2위 봉 국망봉(1,420.8m) 능선 남쪽으로 깊고 수려한 골짜기가 여러 가닥이다. 그중 비로봉 동쪽으로 흐르는 골짜기는 월전계곡(月田溪谷, 하가동계곡)이요, 국망봉 남쪽 석륜암 터 부근에서 발원한 물이 흘러내리는 골짜기가 석륜암골이다. 두 물줄기는 초암사 위쪽에서 합쳐져 죽계(竹溪)계곡을 이룬 뒤 죽계호(순흥지)로 스며들었다가 소수서원을 끼고 흘러내린 다음 영주를 지나 ‘서천’ 이름으로 낙동강 수계 중 하나인 내성천으로 흘러든다.

“이상하네요? 구곡은 배점에서 시작하는데….”

[월간산]선비촌의 초가집들. 선비촌에는 고택 숙박도 가능하고, 당나귀 타기 등 체험 거리도 많다.

소백산국립공원사무소 문화해설사 김향숙씨는 영주시 순흥면 소수서원 주차장에서 만난 취재팀이 1곡 취한대(翠寒臺) 먼저 들르자는 말에 의아스런 표정을 짓는다. 죽계구곡의 9개 지명에 관해 두 가지 설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세운 신재 주세붕이 명명했다는 설과, 풍기군수 부임 후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紹修書院)’에서 성리학을 꽃 피운 퇴계 이황이 지었다는 설이다. 그런데 1728년(영주 4) 순흥부사로 부임한 신필하(申弼夏)가 초암사 위 반석을 시작으로 배점마을 삼괴정(三塊亭) 앞 이화동에 이르기까지 3km 물줄기 일원에 구곡을 정하고 바위에 각자를 새겨놓으면서 혼란이 생긴 것이다.

소백산국립공원에서는 신필하의 구곡을 정설 삼아 안내판을 세워 놓았지만 사료를 바탕으로 조사한 구곡학자들은 소수서원을 끼고 흐르는 죽계천 변의 취한대를 1곡으로 삼고, 이후 금성대군을 기리는 성소인 2곡 금성단을 거쳐 죽계계곡을 거슬러 오르다가 초암사 위쪽 월전계곡과 석륜암골 합수지점을 9곡으로 확인하고, <경북구곡>(경상북도 2014년)을 펴낸 바 있다.

영주시에서는 죽계천과 죽계계곡, 월전계곡을 거쳐 달밭골로 이어지는 선비길(소수서원~배점리 소백산자락길 안내소 3.89km)과 구곡길(배점리 소백산자락길 안내소~초암사 3.3km), 달밭길(초암사~달밭재~삼가탐방지원센터 5.5km) 세 개 구간을 소백산자락길 제1구간으로 조성해 놓았다.

핏빛 역사 전하는 죽계천 거슬러 올라

[월간산]소수서원 학자수 숲에 자리한 당간지주. 소수서원이 예전 통일신라 때 고찰인 숙수사 터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문화재다. 보물 제59호.

제1곡 가는 길은 고즈넉하다. 정겹다. 솔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학자수(學者樹) 소나무 숲길을 따라 소수서원을 바라보며 죽계천으로 내려서자 맑은 물 잔잔하게 흐르는 개울 건너에 고풍스런 분위기의 취한대와 ‘백운동, 경(白雲洞, 敬)’자 바위가 보인다. ‘敬’자 바위는 주세붕이 직접 새겼다는 글씨다.

“소수서원 안에서는 여자, 술, 광대가 못 들어갔대요. 유흥이 금지된 곳이었던 셈이죠. 그래서 옛날 소수서원 선비들이 소수수원 앞, 가장 오래된 서원 정자라는 경렴정(景濂亭)에서 경전을 읽고, 취한대로 건너와 시를 읊고 풍류를 즐겼다는 얘기가 전해요.”

‘취한’이란 ‘푸른 연화산의 산 기운과 죽계의 맑은 물빛에 취해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긴다’는 뜻의 옛 시 ‘송취한계(松翠寒溪)’에서 따온 이름이라 전한다.

퇴계가 조성했다는 취한대 아래 죽계천은 맑은 물 위에 연잎이 두둥실 떠 있고, 물가에 숲을 이룬 수초가 수채화 분위기를 자아내는 개울이다. 하지만 죽계천은 핏물로 물들었던 슬픈 역사가 흐르는 곳이다. 1457년(세조 3) 10월, 수양대군(세조)이 단종을 쫓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그의 친동생인 금성대군은 반대하다가 순흥으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금성대군이 세조복위를 추진하다 관노에 의해 탄로 나자 이 고을 유생들과 주민들이 참화를 당하고 만다(丁丑之變). 그때 죽임 당한 주민들의 시체가 산을 이루듯 죽계천에 수장되었고, 그 핏물이 10여 리나 흘러내린 뒤 멎었다 한다. 지금도 피가 멎은 곳에 자리한 마을을 ‘피끝’ 마을이라 부르고 있다.

연잎과 수초에 가린 죽계천의 비극적인 역사를 아는지 검은등뻐꾸기는 구슬피 울어대 마음을 심란케 한다. 취한대에서 죽계천을 거슬러 오르는 사이 소수박물관, 선비촌이 발길을 붙잡는다. 2004년 9월 22일 개관한 소수박물관은 선사시대에서부터 유교문화, 서원과 향교 등 영주의 귀중한 유물과 유적을 전시해 놓은 공간이며, 선비촌은 영주 관내 여러 문중 중 대표 건물을 한  채씩 선별해 재현, 조선시대 선비와 상민의 삶을 체험할 수 있게 한 테마파크다. 윷놀이 제기차기 장작패기 등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가 열리며, 기와집과 초가집에서 숙박이 가능하다.

[월간산]신재 주세붕이 새겼다는 ‘白雲洞 敬’ 자바위. ‘경은 구차함의 반대이니 잠깐이라도 구차하면 이는 곧 불경’이란 선비 정신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고풍스런 분위기를 자아내는 선비촌을 벗어나 제월교(霽月橋) 건너자 마을길 양옆으로 갖가지 나무가 무성하다. 앵두는 빨간 열매를 맺고, 호두나무에도 연둣빛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곧 커다란 느티나무와 그 오른쪽으로 금성단(錦城壇)이 보인다.

금성대군(錦城大君)은 1456년(세조 2) 성삼문 등 사육신과 의기투합해 영월 청량포에 유배된 단종을 복위시키기 위해 순흥에서 의사들을 규합하던 중 몸종과 이보흠(李甫欽) 순흥부사의 부하들이 세조 측에 밀고함으로써 탄로나고 말았다. 그로 인해 관련자는 모두 학살당하고 순흥부는 폐읍되었다.

그로부터 127년이 지난 1683년(숙종 9) 순흥부가 복원되고 순절의사들이 신원(伸寃)되자 1719년(숙종 45)에 부사 이명희가 주창해 그 유허지에 금성단을 설치한 것이다. 금성대군 신단은 3단으로 조성돼 있다. 상단은 금성대군, 우단은 이보흠, 좌단은 모의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한 여러 의사들의 단소이며, 지금도 매년 봄과 가을에 제향을 지내고 있다. 하지만 제2곡 금성반석(金城盤石)의 위치는 명확하지 않다. 금성단 부근 순흥향교 앞 죽계천 바위나 금성단을 금성반석으로 추정하고 있을 따름이다.

금성단 문 앞 수령 1,200여 년의 압각수(鴨脚樹) 또한 정축지변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신목(神木)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향숙 해설사는 “모의가 발각됐을 때 순흥고을과 함께 불타 버렸는데, 나라가 안정을 되찾고 순흥부가 복원되자 다시 살아난 신목”이라 귀띔해 주었다.

“10리길인데…, 한여름에 아스팔트길을 걸으면 더위 먹고 쓰러져요.”

[월간산]금성단. 단종복위 모의가 발각되면서 처참한 최후를 맞은 금성대군을 기리기 위해 만든 신단이다.

금성단 답사에 앞서 소수서원 안내센터에서 만난 흰머리 해설사들은 금성단을 거쳐 배점마을까지 걸어가겠다는 일행에게 차로 이동하는 게 현명하다고 권했다. 하지만 일행은 낮은 눈높이에서 보는 아름다움이 더욱 감동적이리라는 생각에 걷기로 마음먹는다.

금성단을 지나 단종복위운동이 발각된 이후 금성대군이 갇혀 살았다는 ‘위리안치지(圍離安置地)’를 거쳐 아스팔트도로로 이어지는 소백산 자락길은 정겨운 걷기 길이었다. 토담집 앞마당 텃밭에는 싱싱한 채소가 익어가고, 길가에 심어진 나무에는 새카만 오디 열매나 빨간 산딸기가 매달려 초여름의 풍요로움을 즐기게 했다.

사과, 복숭아 과수원을 끼고 이어진 마을길은 배점마을로 향하는 도로로 이어진다. 주말이면 오고가는 차량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는 도로지만 평일 오전은 한갓지고, 도로를 향해 늘어뜨린 단풍나무 가지 그늘에 더운 줄 모르고 걷는다.

“여기 여우가 나오나요?”

도로 곳곳에 ‘여우 출현 주의’ 안내판이 보인다. 소백산은 여우 방사지역으로 점프력이 뛰어난 여우들이 방사장 울타리를 뛰어넘어 도로로 내려올 적도 있다고 한다.

[월간산]소백산자락길 안내팻말. 마을길을 따르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죽계별곡 시비’ 빗돌 옆으로 순흥저수지[竹溪湖]가 바라보인다. 제3곡 백자담(栢子潭)은 저 저수지물에 잠겨 버려, 하계 이가순(霞溪 李家淳·1768∼1844)의 ‘소백구곡시’ 송림곡(松林曲)을 통해 위치를 추정할 따름이다.

하평버스정류소를 지나자 소백산이 거대한 산세로 다가오고 죽계계곡이 한눈에 들어온다. 흐린 날, 자욱한 안개는 죽계계곡에 신비감을 불어넣는다. 길가 죽계천에서 흘러나오는 청랑한 물소리에 먼 산에서 지저귀는 검은등뻐꾸기 소리까지 들려와 분위기는 더욱 깊어진다.

신재와 퇴계의 후학들이 심신 닦던 골

죽계계곡 입구 널찍한 소백산자락안내센터 주차장(선비촌 3.6km, 초암사 3.2km)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다음 계곡을 거슬러 오른다.

[월간산]배점리 자락길 안내센터 이후 초암사까지 이어지는 9곡 명소. <순흥지> 구곡과 신필하의 구곡이 겹치는 곳이 많다. 글씨는 신필하가 표시한 것이다. / 1 9곡 이화동 / 2 8곡 관란대 / 3 7곡 탁영담 / 4 6곡 목욕담 / 5 5곡 청련동애 / 6 4곡 용추.

“이곳이 왜 배점마을인지 아세요? 퇴계 제자 중 유일한 천민인 배순이 대장간을 했던 마을이라 해서 지어졌대요.”

배점마을에서 대장간을 하던 배순(1548~1610, 행적기록이 있는 기간)은 퇴계 선생이 소수서원에서 후학을 양성할 때 강학당 밖에서 귀동냥으로 공부했다. 퇴계는 그렇게 학문에 정진한 배순의 모습에 감동해 제자로 거두었다. 퇴계의 제자 309명을 수록한 <급문제현록>에 배순의 이름이 올라 있다. 배순은 퇴계 선생이 돌아가시자 3년 상복을 입었고, 선조 임금 승하 때는 국망봉에 올라 도성을 향해 곡을 하고 이후 3년 동안 상복을 입고 지냈다고 전한다.

“‘배점’은 원래 평장동이라 불렸는데 배순의 학문과 충·효·덕행을 기리기 위해 주민들이 정려각을 세우면서 배순(裵純)의 ‘배’ 자와 점방(店房) ‘점’ 자를 따서 ‘배점’이라 부르게 됐다는 얘기예요.”

마을의 뒷산에 배순의 묘가 있으며, 이 마을주민들은 배순을 마을신[洞神]으로 모시고 매년 음력 정월 14일 밤 자시(子時, 23:00~01:00)에 삼괴정(三槐亭) 배순의 정려각에서 동제(洞祭)를 지내고 있다.

제4곡 이화동(梨花洞)은 소백산자락길 안내센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도로변 다리 아래에 있었다. <순흥지>에서는 4곡이지만 신필하는 이곳을 구곡의 마지막으로 삼았다. 신필하의 글씨를 음각한 ‘竹溪九曲’ 글씨가 아니라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는 곳이다. 하지만 바위 협곡 사이로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골똘히 쳐다보자 그럴 만한 곳이다 싶어진다. 이름을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보는 이의 마음자세도 달라지는가보다.

[월간산]3곡 척수대

초암사 진입로는 슬슬 고도를 높인다. 그래도 죽계계곡 따라 졸졸 흘러내리는 물소리와 산중 숲속에서 흘러나오는 새소리에 지루할 겨를 없다. 흥겹기까지 하다. 개울 건너 산사면 사과밭에서 일하는 모습도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지고, 산새들은 ‘나도 여기 있다’며 열심히 지저귄다. 산 안으로 들어서는 길은 이래서 즐겁다.

“저게 거북바위예요. 용왕이 아들을 뭍으로 보내면서 절대 인간에게 감동하지 말라 당부했는데, 용왕을 위해 징검다리를 놓는 모습에 감동받는 순간 굳어져 버리고 말았대요. 와~, 참조팝나무도 꽃을 피웠네요.”

기린 목처럼 곧추 세운 대 끝에 솜사탕 같은 연보랏빛 꽃을 피운 산부추 무성한 길가 너머로 바라보이는 죽계계곡은 이제 숲이 무성해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그러다가도 물줄기가 보이면 풍광이 뛰어지는 않더라도 기묘한 형상의 바위가 나타나 얘깃거리를 전해 주곤 한다.

길 양옆에 머루 덩굴 우거진 콘크리트길을 따르다가 ‘7, 8곡 입구’(배점주차장 1.4km, 초암사 2km)에서 죽계계곡으로 들어선다. 이제부터 진짜 구곡이다. 숲 우거진 골짜기, 거무튀튀한 바윗덩이, 그 사이로 흘러내리는 투명한 옥빛 물줄기는 모양과 소리를 바꿔가며 소수서원을 향해 흘러내리고 있다.

그러다 숲길로 들어서면 초록빛 세상이 펼쳐지고, 비취빛 옥수가 발아래 펼쳐지면 소나 담이 나타나 길손을 붙잡는다. 그 사이 신필하의 8곡 관란대(觀瀾臺)와 7곡 탁영담(濯纓潭)을 지나 6곡 목욕담(沐浴潭)에 닿는다. <순흥지>의 5곡이다. 물가의 바윗덩이는 개울을 향해 기어가는 형상처럼 느껴진다.

[월간산]2곡 청운대.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몸을 씻었다는 곳이에요. 백운동서원과 소수서원서 공부하던 수학생들이 머리 아프면 이 골짜기를 찾아들었을 거예요. 심신을 달래려고요. 얼마나 시원했겠어요. 이 맑고 차가운 물에 몸을 담갔을 테니. 그렇다고 물속에 들어가시면 안 돼요! 여긴 국립공원이니까요.”

잠시 도로로 나섰다가 다시 데크길로 들어서자 물줄기 한가운데 ‘五曲’ 흰색 글씨가 음각된 바윗덩이가 바라보인다. 신필하의 5곡 풍영담(楓泳潭)이요, <순흥지>의 6곡 청련동애(靑蓮東崖)다. 청련암 동쪽의 바위란 의미지만 청련암이 어디 있었는지에 대한 사료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저곳이 용추예요. 죽계계곡에서 수심이 가장 깊은 곳인데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대요. 가뭄이 들면 돼지의 목을 따 소로 던졌대요. 그러면 더러운 피를 씻어내려고 하늘에서 비를 내렸다 하고요. 참 재밌는 얘기죠?”

7곡 용추(龍湫·신필하의 4곡)는 어른 허리 이상 빠지지 않을 만큼 수심이 얕은 곳인데 주변 분위기가 깊디깊어 ‘용추’라는 이름을 얻게 되지 않았나 싶다.

용추를 지나 죽계2교를 건너기 전 오른쪽 숲길로 들어선다. 그러다 다시 도로로 나와 ‘온갖 근심을 씻어 낸다’는 의미의 이백의 시구에서 가져왔다는 척수대(滌愁臺, 신필하의 3곡)를 지나친 다음 죽계1교를 건너자 초암사가 모습을 드러내고, 청랑한 물소리에 발걸음이 멈춰진다. 김향숙 해설사는 “주세붕이 백운대로 이름 붙였는데 퇴계가 소백산을 오르다가 ‘이 근처에 백운동, 백운암 등 같은 이름이 여럿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헷갈릴 것을 염려해 청운대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얘기가 퇴계의 <유소백산록>에 나온다”고 알려 준다.

[월간산]1곡 금당반석.

초암사(草庵寺)는 크지는 않아도 반듯한 산사다. 원래는 초가집이었다. 의상대사가 부석사 터를 찾기 위해 이곳에 움막을 짓고 머물며 수도하던 임시거처였다고 전한다.

초암사를 지나 울창한 숲길, 진정한 소백산 안으로 들어선다. 200m쯤 들어서다가 산길 왼쪽 계곡 길로 내려서자 옥빛 물이 잔잔하게 흘러내리는 널찍한 반석이 펼쳐진다. 죽계계곡에서 가장 넓다는 금당반석(金堂盤石), 초암사 대웅전 가까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퇴계의 8곡이요 신필하의 1곡이다.

소 위쪽 폭포 우측 바위에 새겨진 ‘竹溪一曲’은 신필하의 글씨로 전한다. 건너편 반석에는 ‘水’ 자가 마모돼 잘 보이지 않는 ‘第一水石’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고, 바위벽에는 신필하의 이름을 포함해 세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신필하가 이렇게 금당반석을 제1곡으로 삼고 자신의 이름까지 새겨놓은 것을 보면 그가 죽계계곡 최고로 꼽은 절경지가 아닐까 싶다. 

[월간산]죽계구곡 최대 절경지로 꼽히는 금당반석. 초암사의 대웅전 가까이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전한다.

자연인 사는 무릉도원 찾아가는 길

숲 그늘 아래 호젓하고 풍광 아름다운 금당반석에 앉아 있노라니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하지만 달밭재를 넘고 달밭골을 거쳐 비로사까지 가려면 갈 길이 바쁘다. 금당반석 입구를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갈림목에 이른다. 곧장 뻗은 석륜암골로 들어서면 국망봉(4.1km)에 올라서고, 왼쪽 길을 따르면 월전계곡을 거슬러 오르다가 달밭재를 넘어 달밭골을 거쳐 비로사(3.1km)로 내려선다.

갈림목에서 왼쪽 길로 들어서자 잣나무가 하늘 높이 쭉쭉 자라고 있다. 산새들은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며 지저귄다. 그 분위기에 젖은 채 전망대 쉼터에 닿자 합수목이 내려다보인다. 비로봉과 국망봉 남사면에서 흘러드는 물이 모두 모여드는 9곡 중봉합류(中峰合流)다.

“이제부터 월전계곡을 따라 자락길이 이어져요. 월전계곡은 정말 자연미 넘치는 계곡이에요. 예부터 사람들이 살았을 만큼 아늑한 곳이고요. ‘달밭’은 화전민들이 달이 뜰 때까지 일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래요. ‘달밭’의 한자음이 월전(月田)이고요. 지금도 골짜기 안에 민가가 몇 채 있어요. 고개 너머 달밭동은 명품 펜션 마을로 변했어요.”

[월간산]순흥저수지가 보이는 도로변에 세워진 ‘죽계별곡’ 빗돌.

커다란 바윗덩이가 골 가득한 중봉합류를 보며 월전계곡으로 들어서자 원시의 숲길이 맞아 준다. 골짜기는 더욱 깊어지고 자연미도 넘친다. 일행 모두 말이 없어졌지만 표정은 맑고 밝아졌다. 백운동서원, 소수서원에서 공부하던 수학생들은 물론, 신재 주세붕도 퇴계 이황도 이 골짜기에 들어서는 순간 세상 근심걱정 모두 털어버리고 해맑은 자연인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진다.

죽계구곡은 사람을 살리는 ‘活人山’ 소백산 안으로 들어서는 길이요, 자연인이 사는 무릉도원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죽계구곡

[월간산]중봉합류. 석륜암골 물줄기와 월전계곡 물줄기가 합쳐지는 지점으로, 이곳부터 죽계계곡이 시작된다.

죽계구곡 찾아가기

<순흥지> 속이나 신필하가 명명했거나 죽계구곡은 배점마을 소백산 자락길 탐방안내센터에서 만나기 때문에 결국 한 가닥 길이나 다름없다.

<순흥지>의 죽계구곡은 소수서원 취한대를 제1곡으로 삼고, 금성단을 2곡, 그리고 배점마을 접근도로 상의 죽계지로 추측되는 백자담을 3곡으로 삼는다. 금성단 이후 배점마을까지는 마을 콘크리트포장길이나 아스팔트포장도로를 따라야 한다. 따라서 한여름에는 차량으로 순례하는 게 바람직하다. 특히 주말이나 피서철에는 배점마을 도로에 차량이 많이 다니기 때문에 사고 위험도 있다.

[월간산]

배점마을 입구 소백산 자락길 탐방안내센터에서 초암사까지는 콘크리트길이  잘 나 있으나, 구곡을 둘러보려면 중간 중간 물가로 이어지는 탐방로로 들어서야 한다.

초암사 위 금당반석을 지나 200m쯤 숲길을 따르면 월전계곡과 석륜암골이 갈라진다. 9곡 중봉합류를 보려면 왼쪽 길을 따라야 한다. 통제문 뒤로 곧장 뻗은 석륜암골 길은 국망봉으로 이어진다.

중봉합류에서 죽계구곡 길은 끝나지만 달밭골을 거쳐 비로사로 이어지는 소백산 자락길을 계속 따르는 것도 좋다. 원시의 계곡 길과 화전민 집을 볼 수 있다.

소수서원~배점리 소백산자락길 안내소(선비길) 3.9km, 안내소~초암사(구곡길) 3.3km, 초암사에서 달밭재를 거쳐 삼가탐방지원센터(달밭길) 5.5km 거리다. 금성단~안내센터 3km 구간을 차량으로 이동하고, 중봉합류에서 끝맺는다면 한나절로 답사가 가능하다.

[월간산]

교통

소수서원행 노선버스는 영주에서 출발한다. 고속버스터미널 버스정류소나 영주여객 시내버스종점에서 타야 한다. 문의 영주여객 054-633-0011.

53번 버스는 08:10 09:25 11:40 16:00 17:50 출발한다.

27번 버스(풍기역 경유)는 06:30, 06:50, 07:40, 08:50 10:00 11:20 12:20 13:10 14:20 14:50 15:50 17:00 18:10 19:20 출발한다.

[월간산]비로사

배점리행 53번 버스는 06:20 08:10 14:00 16:00 18:50 출발한다.

요금 좌석버스 1,700원, 일반버스 1,300원.

영주나 풍기는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중앙선 열차를 이용해 접근할 수도 있다. 06:40, 07:50, 08:25, 10:40, 12:38, 13:05, 15:10, 18:15, 19:07, 21:13 출발하는 중앙선 열차 이용. 2시간30분 안팎 소요, 무궁화 1만2,400원, 새마을 1만8,500원.

삼가동으로 하산할 경우 소수서원까지 택시로 이동해야 한다. 요금 3만~4만 원.

문의 풍기콜택시 054-636-2828.

[월간산]입각수

자가운전시 중앙고속도로 풍기 나들목→931번 지방도→순흥→소수서원 방향으로 진입한다.

숙식(지역번호 054)

소수서원 부근의 선비촌은 전통 고택에서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숙박시설이다. 2인실 4만9,500원, 4인실 7만7,000원. 식사는 저잣거리 식당을 이용해야 하는데 7월 말까지 공사 중이다. 문의 638-6444, www.sunbichon.net

소수서원에서 배점리로 이어지는 도로변에 민박·펜션이 여럿 있다. 선비촌호수펜션(632-7794, 010-3130-2915), 하얀집농원(민박 010-4049-7643), 소백산 순흥펜션(010-5360-5673), 호수펜션(633-6803, 010-9222-6803).

[월간산]한결청국장의 청국장정식.

금다래산장(634-5283)에서는 오리요리를 내놓으면서 민박도 친다. 오리훈제·탕 각 4만 원, 점심 6,000원. 전통테마마을(633-1211)에서는 향토집 민박도 치고, 매운탕·토종닭·오리 요리를 낸다.

순흥면소재지의 순흥묵집본가(637-5678), 풍기 먹거리한우(638-0094), 풍기역 앞 한결청국장(636-3224)은 지역을 대표하는 맛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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