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여붐 명암]④ 돈 앞에선 가족愛란 없다..유류분 소송 10년만에 6배 늘어

송기영 기자 2016. 7. 29.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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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 사는 강모(58)씨는 4년 전부터 형제들과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지낸다. 2남 2녀 중 막내인 강씨는 “형, 누나라면 치가 떨린다”며 “형제가 없는 셈 치고 산다”고 했다.

그래픽=이진희 디자이너

강씨는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평생 모시고 살며 어머니 재산도 함께 관리했다. 어머니는 자신을 부양한 막내에게 거주하고 있던 단독 주택을 증여하기로 했다. 5년 전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형제들은 강씨가 증여받은 주택을 포함해 유산을 나누자고 요구했다. 강씨는 “어머니를 모시지 않은 형, 누나가 유산을 요구할 권리가 있냐”며 반발했다.

재산을 둘러싼 형제들의 다툼은 소송으로 이어졌다. 법정에서 고성을 주고받던 형제들은 법정 밖에서 멱살잡이까지 했다. 결국 강씨는 소송에서 패했고, 기여분을 제외한 나머지 유산을 형제들과 나눠야만 했다.

유류분(遺留分) 반환청구 소송은 ‘가족 전쟁’으로 불린다. 현행 민법은 부모의 상속재산에서 배우자, 자식 등 상속인들이 각각 일정 몫을 가질 수 있도록 유류분을 인정하고 있다.

부모의 뜻과는 상관없이 유류분을 인정하는 제도 때문에 형제 간 소송을 벌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해 증여 신고세액이 2조원을 넘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면서 유류분 반환청구 소송도 늘어나고 있다. 부유층만의 얘기가 아니다. 부모가 살던 집 한채를 놓고도 법적 소송이 벌어진다.

대법원에 따르면 법원에 접수된 유류분반환청구 소송 접수 건수는 2005년 158건에서 지난해 911건으로 10년만에 5.8배 늘었다. 지난해 접수된 유류분반환청구 소송 접수 건수는 2005~2008년까지 4년에 걸쳐 접수된 소송 건수(939건)와 비슷한 수준이다.

강치훈 변호사는 “유류분 반환 소송이 진행되면 가족 간의 묵은 감정이 폭발하기도 한다”며 “유류분 소송이 감정 싸움으로 번져 법정이 난장판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 출가외인은 옛말… 딸도 아들과 동등한 유류분 권리

유류분 제도는 1977년 상속법이 개정되면서 도입됐다. 상속법이 정한 상속지분은 배우자와 자녀가 1.5대 1이다. 자녀끼리는 1대 1이다. 장남, 차남, 아들, 딸 구별 없다.

상속법이 개정되면서 ‘장자 상속’이라는 과거 질서가 무너졌다. 유류분 상속 분쟁이 주로 ‘딸들의 반란’에서 시작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증받은 유언장도 유류분만큼은 절대 침범할 수 없다.

유류분 제도는 40년 전에 만들어졌지만, 최근 관련 소송이 급격히 증가한 건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는 여성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2010년 금강제화 남매의 상속 소송이 대표적이다. 금강제화의 창업자인 고(故) 김동신 명예회장은 1000억원대 재산의 대부분을 2남4녀 중 장남인 김성환 회장에게 물려주려고 했다.

그러자 다섯째 숙환씨와 여섯째 정환씨가 ‘유류분 중 일부인 15억원씩을 반환하라’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두 딸은 “김 회장에게 121억2100만원이 상속된 것을 세무서 상속세 통지문을 받고야 알았다”고 주장했다. 두 딸이 추산한 유류분은 각각 27억원씩이었지만, 이들은 우선 15억원만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소송은 법원의 조정 권고로 김 회장이 두 동생에게 각각 20억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조혜정 변호사는 “실제 상속 관련 소송은 재산 분배에서 소외된 딸이 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재산을 증여하거나 상속할 때 딸들도 유류분만큼 법적 상속권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 증여 시점보다 두배 뛴 재산… 유류분 산정은?

유류분 분쟁의 핵심 중 하나가 증여 재산의 가액을 산정하는 일이다. 가액을 어떻게 산정하느냐에 따라 나눠야할 재산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픽=이진희 디자이너

유류분은 부모가 사망한 이후 남아 있는 재산이 아니라 과거 상속인에게 증여한 재산까지 포함된다. 재산의 시가는 상속 개시 당시를 기준으로 한다. 10년 전 부모에게 증여받은 10억원 주택이 상속 개시 시점에서 20억원으로 뛰었다면, 20억원을 기준으로 유류분을 산정하는 것이다.

법원은 40년 전에 증여한 재산도 상속 개시 시점의 가액으로 유류분을 산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유류분은 또 원물 반환을 원칙으로 한다. 토지를 증여받았다면 그 토지로 줘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은 원물 반환 원칙을 엄격히 적용하는 편이다. 증여받은 주식을 처분했을 경우 그 주식을 다시 매수해 유류분을 돌려줘야 한다는 판례도 있다. 재취득이 어려운 재산은 재판이 끝난 시점의 가액을 기준으로 유류분을 돌려주도록 하고 있다.

김상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유류분은 증여 당시 상태를 기준으로 상속개시 시점의 가치를 계산하면 된다”며 “원물 반환이 어려워 가액 반환을 할 경우 가액은 상속 개시가 아니라 사실심 변론종결시를 기준으로 산정한다”고 말했다.

◆ 분쟁 피하려면 유류분대로 재산 나눠줘야

이같은 가족간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모든 자녀에게 유류분만큼의 재산을 나눠줘 분쟁을 피하거나, 기여분 제도를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기여분은 재산을 물려주는 사람의 재산 유지·증가 등에 특별히 기여한 사람이 있을 경우, 상속을 더 해주는 제도다. 자녀가 상당 기간 동거나 간호 등의 방법으로 부모를 부양했거나, 부모의 재산 유지·증가에 특별히 기여한 사람은 기여분을 주장할 수 있다.

상속인이 협의해 기여분을 인정한 경우 부모 사망 등으로 상속이 개시된 시점에 피상속인의 재산에서 기여분을 뺀 것을 상속재산으로 본다.

경태현 법무법인 천명 변호사는 “분쟁을 막으려면 자녀에게 유류분만큼 미리 증여를 하고 유언장에 ‘특정 자녀에게는 유류분 만큼은 준다’고 명시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40여년 전에 만들어진 유류분 제도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현 상황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김상용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요즘은 고령화로 인해 상속받는 사람이 어느 정도 경제적 능력을 갖춘 중·장년인 경우가 많아 유류분 도입의 취지가 퇴색했다”며 “사회 변화를 반영하고 노년 복지를 위해 더 이상 부양 필요가 없는 자녀의 상속분을 줄이고 배우자 상속분을 늘리는 쪽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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