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가지로 울타리 세우니..죽었던 '몽골 초원'이 살아났다

정란치(네이멍구) | 배문규 기자 2016. 7. 2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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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네이멍구 사막화 막는 ‘생태 병풍’

환경단체 에코피스아시아와 현대자동차그룹 해피무브 봉사단이 중국 네이멍구자치구 정란치의 보샤오떼노르에 나뭇가지를 세워 모래장벽을 만드는 사장 작업(위)을 벌인 결과, 감봉 씨앗이 나뭇가지에 걸려 뿌리를 내리고 군락을 이뤘다. 정란치 | 사진작가 이한구 제공

많은 사람들이 황사의 발원지를 사막으로 생각하지만, 초원의 ‘사막화’ 역시 황사의 큰 원인이다.

사막은 이미 가벼운 표토층이 사라진 지역이다. 바람에 움직여도 입자가 커서 멀리 이동할 수는 없다. 문제는 지표면의 토지가 ‘퇴화’하는 사막화다. 자원 개발, 삼림 벌목, 토지 개간 등 인간의 활동으로 ‘사막처럼’ 변해가는 것이다. 풀들이 땅을 붙들지 못하고 벗겨진 지표면의 흙먼지가 바람에 날리면 봄철 한국까지 오게 된다. 결국 황사의 주요 발원지는 사막이 아니라 새로 확장되는 사막의 주변부나 초원이 사라지는 지역이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중국 베이징 북쪽에 있는 네이멍구(內蒙古)다.

1949년 수백만명에 불과하던 네이멍구자치구 인구는 2010년 2400만명을 넘어섰다. 물은 그대로인데 사람과 가축만 늘었다. 농경문화가 유입되면서 개간 면적은 확대되고, 초원의 90%가 사막화됐다. 환경단체 에코피스아시아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지원을 받아 2008년부터 한반도 면적의 5배인 네이멍구에 황사를 막는 ‘생태 병풍’을 치고 있다. 지난 3일부터 8일까지 에코피스아시아가 사막화 방지사업을 벌이는 네이멍구 정란치에 현대차그룹 ‘해피무브’ 봉사단 80여명과 동행했다. 이 사업은 지난해 중국 사회과학원의 ‘기업사회책임지수’에서 4위에 올랐다.

■사막의 꽃꽂이 ‘사장 작업’

4일 오전 7시 해가 달궈지기 전 차량에 몸을 실었다. 아침 바람에 실려오는 풀 냄새를 맡는 것도 잠시, 여름 초원에선 오전 11시만 돼도 기온이 40도에 육박한다. 내비게이션에는 텅 빈 화면에 차량이 둥둥 떠가는 모습만 보였다. 초원에선 바퀴가 지나는 자리가 길이다. 유목민들은 이제 말 대신 사륜구동차를 타고 초원을 달린다. 시대의 변화를 아직 체감 못했을까. 풀을 뜯던 소와 말들은 차량이 와도 비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키보드로 ‘Ctrl C+V’를 한 듯 한결같은 모습의 초지를 한 시간 정도 달리자 누런 땅바닥을 드러낸 황무지가 보였다. ‘문턱(보샤오떼)의 호수(노르)’, 보샤오떼노르다. 현재 에코피스아시아의 중점 복원지역은 정란치의 보샤오떼노르, 하기노르 두 곳이다. 이들 지역은 인도대륙과 아시아대륙의 충돌 과정에서 몽골고원이 솟아오르며 내륙에 생긴 염분 호수로 알려졌다. 호수는 주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큰 초원의 젖줄이다. 하지만 물이 마르고 알칼리성 토양이 드러나 염분이 담긴 흙먼지가 날리면서 주변 식물의 생장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네이멍구의 연평균 강수량은 400㎜ 미만. 보샤오떼노르는 수위가 얕고 물이 없을 때가 많다. 호수가 바닥을 드러내면 약 3000만㎡(여의도 면적의 9배)의 모래땅이 된다. 에코피스아시아는 마른 호수에 현지 토종식물을 심고 있다. 하지만 무작정 나무를 심는 것은 아니다. 강수량이 적고 염분이 높은 데다 일교차까지 큰 네이멍구 초원에서 웬만한 식물은 버틸 수 없다. 외래종은 생태계를 교란시킬 수도 있다. 이 지역에서 살 수 있는 자생종은 감봉과 감모초, 관목으로는 위성류와 소과백자 등 4종이 확인됐다. 이 중 감봉은 PH 농도 9~11의 강알칼리 토양에서 성장한다. 선봉 식물인 감봉이 뿌리내리면 흙모래가 날리는 것을 막고, 토양질에 변화를 가져와 다른 식물들도 번식할 수 있도록 한다. 이어 알칼리 농도가 떨어지면 자연 소멸한다. 하지만 감봉도 물이 없는 토양에서 흙에 덮이면 속수무책이다. 해피무브 봉사단은 이를 막기 위해 모래장벽을 치는 사장 작업을 실시했다.

앙상한 나뭇가지를 세운 울타리가 초원을 복원시킬 수 있을까. 사장 작업은 나뭇가지를 촘촘하게 세워 모래가 넘지 못하도록 막고, 날아온 야생 감봉 씨앗이 장벽에 걸려 자라도록 한다. 오류라는 관목을 40㎝ 크기로 잘라 땅에 10㎝ 정도를 밀어넣는다. 10명이 한 조가 돼 하루에 한 줄씩 80m를 나아간다. 2014년 호수 동북쪽에서 진행한 사장은 첫째 줄부터 넷째 줄까지 모래가 쌓이는 효과가 뚜렷했다. 실제 육안으로도 첫 줄에 10~20㎝ 정도 모래가 쌓여 있고, 뒤로 갈수록 높이가 낮아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뭇가지 주변에선 짙푸른 감봉이 낮은 포복으로 군락을 넓히고 있었다. 봉사단의 서은비씨(22)는 “처음에는 사막에 묘목을 심을 줄 알았는데 나뭇가지로 꽃꽂이 같은 작업을 하고 있다”면서 “풀이 자라나게 돕는 생명의 그물을 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목축민의 꿈

에코피스아시아에선 5~6월에는 감봉을 파종한다. 2014년부터 5년 동안 호수 전체 900만평을 덮는 것이 목표다. 올해까지 300만평을 덮고 나면 회복력을 찾은 생태계가 빠르게 확장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지난 6일 찾은 2015년 파종지 100만평은 트랙터가 지난 길을 따라 격자 모양으로 푸르게 메워져 있었다. 감봉이 자라는 곳만 보면 이미 초원 복원이 끝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이 감봉들은 수년 내 ‘전멸’할 수도 있다. 단일 품종만 심으면 필요한 양분만 흡수해 3년차가 지나면 땅이 힘을 잃는 것이다. 그래서 4년차에는 가축을 들여서 풀을 솎아내고, 배설물이 양분이 되도록 할 계획이다. 주기적으로 목축지를 옮기는 유목민들의 생활이 자연으로부터 배운 지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동행한 서형민 경북대 산림환경자원학과 교수는 주변 식생을 한참 조사하더니 풀 한 포기를 조심스레 뽑았다. ‘잡초’를 어디에 쓰려고 하느냐는 물음에 서 교수는 “흔히 잡초라는 말을 쓰지만 식물학자들은 ‘쓸모를 아직 찾지 못한 풀’이라고 부른다”면서 “한국에선 논밭에 인접해 나는 풀이 이곳에선 귀한 자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쓸모를 찾은 풀들은 양묘장으로 옮겨간다. 여러 풀들을 심어 생태계를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지난 5월 조성한 양묘장은 하기노르 주변 물이 풍부한 곳에 있다. 가로 6m, 세로 20m 길이의 비닐하우스 6동에선 오류, 기류, 황류 등 관목들이 자라고 있다. 감봉과 함께 심을 감모초도 물에 적셔 파종을 준비하고 있었다. 최근 복원팀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억센 생명력을 가진 다년초 갈대다. 박상호 에코피스아시아 중국사무소 소장은 “2년여 전 낙타를 100마리 키우는 원주민을 통해 과거 호수 주변에 낙타가 몸을 숨길 정도로 갈대가 무성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1959년 늑대를 사냥하기 위해 갈대숲에 몰아넣어 불을 지르면서 소멸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실제로 호수 동북쪽에는 갈대가 일부 남아 있었다. 박 소장은 “생태 안정의 핵심은 유전적 다양성인데 이를 위해선 다년생식물들이 버텨줘야 한다”면서 “80㎝당 하나씩 꽂으면 3년 만에 빽빽하게 메워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묘장 원주인 우른침거(52)는 아무도 사막화에 관심이 없던 1980년대 처음 양묘장을 시작했다. 하지만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해 양묘장을 버려뒀다. 그는 자신의 30년 노력이 현재 복원사업을 위한 준비였던 것 같다고 했다. 우른침거는 “풀과 나무가 촘촘히 자라서 어떠한 날씨에도 생명이 살아가고 바람이 불어도 날리는 먼지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면서 “우리 부부만이 아니라 모든 목축민의 꿈”이라고 말했다.

<정란치(네이멍구) |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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