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후죽순' 사후면세점..교통체증·관광객 추태에 주민 뿔났다

윤경환 기자 2016. 7. 11.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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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스쿨존까지 침범한 사후면세점], 3년간 서울 시내에만 4배↑, 즉시환급제 도입 후 급증세, 저가 브랜드 취급하는 곳 많아, 지역 이미지 제고 도움 안되고, 흡연·소음 등에 불만 폭발, 단순민원 넘어 단체행동 불사, 지자체·정부는 책임회피 급급, 개점요건 등 규제 필요성 커져
11일 서울 마포구 사후면세점 공사현장에서 염리초등학교 학부모들과 주민들이 학생들의 안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박윤선기자

11일 오전 10시께 서울 마포구의 한적한 주택가. 성난 주민들과 학부모 200여 명이 ‘사후면세점’을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속속 모여들었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유커)을 실은 관광버스로 인한 안전문제와 교통혼잡을 우려하는 내용이었다. 면세점이 들어서는 곳은 왕복 1차선 도로를 가운데 두고 아파트 단지 입구와 마주 보고 있었다. 면세점 한 블록 옆에는 염리초등학교가, 반대편에는 서울여자고등학교와 서울디자인고등학교, 동도중학교가 위치하고 있어 오전부터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위험한 공사현장 앞을 끊임없이 오갔다. 전수아 염리초 학부모회 운영위원장은 “지난해에 사후면세점을 짓는다고 해서 주민과 학부모가 반발하자 해당 업체에서 건축 규모를 축소하고 대형 상업시설을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며 “그런데 막상 완공 시점이 되자 사후면세점을 안 하겠다고 한 건 아니라며 영업을 강행하고 있다”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최근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사후면세점이 우후죽순식으로 증가, 주택가 골목골목과 스쿨존까지 침범하면서 주민들과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특히 단체 관광객을 몰고 와 진을 치는 관광버스로 인해 주민들의 터전이 한 순간 주차장이 됨은 물론 유커들의 흡연, 소음, 노상방뇨 등으로 주변이 아수라장으로 변모하자 주민들이 단체행동에 나설 조짐까지 보이는 데도 해당 정부기관과 지자체는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1215A18 사후면세점개요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의 사후면세점 수는 총 1만2,077개로 이중 5,756개가 서울에 몰려 있다. 사후면세점 수 집계를 시작한 2012년만 해도 전국 3,303개, 서울 1,684개에 불과했지만 3년 만에 무려 전국 3배, 서울 4배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정부가 올해부터 즉시환급제를 도입한 이후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중이다.

이같은 사후면세점 인기는 공항·시내의 사전면세점과 달리 특허제가 아닌 신고제로 운영되는 만큼 외국인을 대상으로 손쉽게 장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가가가치세·개별소비세·관세 등을 이미 면한 상태에서 물건을 파는 사전면세점과 비교하면 관세를 면제받지 못하는 데다 제품 가격의 2%가량을 환급수수료로 지불해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접근성 측면에서는 훨씬 더 유리하다. 더욱이 올해부터 매장에서 즉시환급제가 실시되면서 시내에서 물건을 산 뒤 출국 직전 공항에서 세금 환급을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없어져 사후면세점은 그야말로 날개를 단 형국이 됐다.

그러나 사후면세점 수가 너무 늘면서 주택가와 스쿨존의 교통체증을 유발하고 관광객 추태가 비일비재하자 지역 주민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특히 외국인들이 인천국제공항으로 출국하기 직전 지나치는 곳 중에 가장 큰 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마포구·서대문구 일대는 사후면세점 급증으로 인한 혼란과 이에 따른 민원으로 아비규환 상태다. 단순 민원을 넘어 곳곳에서 단체행동까지 벌어진다. 마포구를 지역구로 둔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실의 허준영 비서관은 “교통체증은 물론 관광객들의 흡연, 노상방뇨 등으로 민원이 폭발하는 상태”라며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과태료를 매기는 것뿐인데 사후면세점에서 10~20만원에 불과한 과태료쯤은 모두 부담해주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1215A18 사후면세점수

이렇게 주민 생활을 침범하고 있는데도 지역 경제에는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 점도 ‘밉상’으로 눈도장을 찍힌 주요 이유다. 허가제인 사전면세점과 달리 유커들이 선호하는 국내 유명 화장품 브랜드보다 국내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중소기업의 저급 브랜드를 취급하는 곳도 많아 지역 이미지 제고에도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이다. 신촌 인근 면세점을 찾은 한 20대 중국인은 “사려고 했던 브랜드와 제품 이름을 적어왔는데 원하는 제품은 없고 다른 것만 권했다”며 “다음 지역에서 구입하려고 같이 온 사람들 대부분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후면세점을 둘러싼 갈등이 극으로 치닫자 전문가들은 이를 통제·규제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관련 당국은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한 태도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현행 법령상 결격 사유가 없을 시 모두 등록을 해주게 돼 있으니 주민과의 갈등 문제는 지자체에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시 관계자는 “신축 건물에 대해 규제가 시행되더라도 현 문제는 모두 기존 건물 사업자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상위 기관이 상위 법을 고쳐주지 않으면 지자체는 힘이 없다”고 답답해했다.

/윤경환·김희원·박윤선기자 ykh22@sedaily.com

8일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한 사후면세점 앞에서 중국인들이 쇼핑을 마치고 관광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물건을 구입한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김희원기자
11일 서울시 마포구 사후면세점 공사현장에서 염리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생들의 안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인근 학교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다. /박윤선기자
사후면세점 반대 현수막을 내건 마포 염리초등학교 인근 아파트 전경. /박윤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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