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사건, 시그널을 찾아라](36) '예비 간호사' 목포여대생 살해사건

배명재 기자 2016. 6. 30.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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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그림|김상민 화백

ㄱ씨(당시 22세)가 ‘백의 천사’의 꿈을 키우며 자란 집 터는 폐허가 돼 있었다. 전남 목포시 용해동 이로초등학교 뒤편 언덕배기 한 골목을 따라 맨끝에 자리한 그의 집. 슬레이트 지붕은 내려 앉고, 담장도 허물어져 있었다. 녹슨 채 잠긴 대문 너머로 드러난 집터 180여㎡엔 방초만 푸르렀다. 유난히 크게 들리는 풀벌레 소리가 담을 넘어왔다.

바로 그때 옆집 대문이 열렸다. ㄱ씨의 작은 어머니(46)라고 했다. 그는 “조카가 변을 당한 뒤 가족들이 바로 저기 건너편 아파트로 이사해 살았는데, 지난 4월 초 끝내 가족 모두가 서울로 떠났다”고 말했다. 그는 “내내 고통스러워 했다”고 덧붙였다.

골목에서 만난 김모 할머니(76)는 “저 집엔 유난히 꽃나무와 화분이 많았어. 지금쯤 마당이 울긋불긋 훤했을 건디. 정말 선한 사람들이었는데…”라며 그때의 악몽을 떠올렸다.

ㄱ씨는 간호사의 꿈을 야무지게 다졌다. 어김없이 그토록 고대하던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한 그는 4학년 마지막 학기 들어 서울의 대형병원에 취업도 확정됐다. 80여일 후 간호사 국가고시만 통과하면 되는 일이었다. 가정 형편 때문에 자신에게 ‘대학생 자리’를 양보한 언니(24)에게 진빚을 갚고, 고교생(18)이던 남동생 대학 뒷바라지도 하겠다던 야무진 둘째딸이었다.

하지만 그의 이런 소박한 바람은 안타깝게도 허망하게 스러지고 말았다.

사건 현장도

■‘알바’ 마치고 집으로 가던 밤길

2010년 10월15일 오후 11시11분 ㄱ씨는 목포시 상동 한 극장 안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집까지는 1.5㎞, 쉼없이 가면 30여분 정도 걸리는 귀가 길이었다. 간호사 고시가 얼마 남지 않아 그동안 해오던 아르바이트를 끊고 공부에 열중하던 때였다. 하필 그날 가끔 일하러 나가던 패스트푸드점에서 ‘대타’를 해달라는 요청이 와서 나갔다.

피해자가 ‘백의천사’의 꿈을 키우며 드나들던 목포시 용해동 집 골목. 시신이 발견된 곳과 630m 거리다. 배명재 기자

ㄱ씨는 극장을 나오면서 외출중인 언니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언니야 집?”(오후 11시14분). 대로를 따라 50여m를 걸어갈 즈음, 언니로부터 답변이 왔다.

“아니 삼호광장, 우리(친구들과)만나고 있음”/“아~나 이제 끝나고 집에 걸어가는 길”/“왜 걸어오냐 늦은 밤에”/“공원길 타면 별로 안걸리니깐 집에서 봐”/“응, 그런데 왜 알바하냐?”/“대타”/“응...하지마 웬만하면 암튼 조심히 와”(오후 11시21분)

자매 사이의 다정한 대화는 8분간 이어졌다. 다시 한참을 걷던 ㄱ씨는 같은 초등학교를 다닌 동네 남자친구(서울 거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후 11시26분이었다. “고향에서 한 번 모이자”는 말과 함께 어릴 때부터 사이좋게 지내온 동네 오빠(28·경남 거제 거주)의 안부를 물었다. 이때 ㄱ씨는 서울친구로부터 “거제에 사는 형이 곧 결혼한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곧바로 전화를 끊은 ㄱ씨는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같은 사실을 알리며 펑펑 울기 시작했다. 오후 11시41분 ㄱ씨가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나눈 전화통화였다.

“울지말고 집에 빨리 집에 들어가라. 언니에게 말하면 좋아질거야.” 친구로부터 온갖 위로의 말을 듣고도 ‘첫사랑’인 동네오빠의 결혼소식은 더욱 아리기만 했다. 900여m 거리의 집을 향해 직선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가며 ㄱ씨의 서러운 울음은 더욱 커져갔다. 자연스레 발걸음도 가다서다 더뎌졌다. 이런 모습은 자정 가까운 시간 산책에 나섰던 한 부부에 목격됐다. 하지만 집 방향으로 가던 ㄱ씨는 이날 밤 귀가하지 않았다.

■ “꿈속의 동생 시신이 현실로”

자정쯤 귀가한 언니는 한참을 기다렸다. 하지만 동생이 들어오는 대문소리는 끝내 들리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곧바로 파출소에 신고를 했다. 피곤에 지쳐 잠시 선잠이 들었다. 언니는 꿈에서도 동생을 찾았다. 먼저 동네 골목골목을 뒤졌다. 그리곤 동생이 평소 걸어오던 산책로 방향으로 달려 가던 중, 풀밭 배수로 아래에 움직이지 않은채 엎드려있는 동생을 봤다. 흉몽에 몸서리를 치며 일어나려할 때, 경찰로부터 “산책로 아래 호박 덩굴에서 동생을 찾았다. 마음 단단히 먹고 오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꿈에 본 바로 거기였다. 집에서 불과 630여m 떨어진 배수로였다. 오전 4시30분이었다.

단숨에 달려가 본 동생은 배수로 큰 돌 틈에 머리를 박은채 꿈쩍않고 있었다. 청바지는 벗겨지고, 얼굴 곳곳과 턱 등 온몸에 무차별적으로 폭행을 당한 흔적이 나타났다. 엄지로 깊숙이 목을 조른 자국도 확인됐다.

사건발생 사흘 후 ㄱ씨의 없어진 소지품도 시신이 발견된 곳으로부터 2.1㎞ 떨어진 바닷가에서 발견됐다. ㄱ씨의 가방 안에서 청바지와 신발, 신분증이 들어있는 지갑도 그대로 있었다. 경찰은 누군가가 ㄱ씨를 성폭행하려다 강하게 반항하자 폭행한 후 목 졸라 숨지게 한 것으로 판단했다.

■ 5년간 6000여명 쫓았으나 실마리 못찾아

불행중 다행으로 ㄱ씨의 손톱 밑에서 남성의 DNA가 검출됐다. 범인을 금방 잡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목포 일대 성범죄 관련자 200여명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폈다. ㄱ씨의 초·중·고 시절 알고 지내던 친구, 대학동아리 선·후배도 조사 대상이 됐다. 경찰조사를 받은 이만 6000명이 넘었다. DNA 대조를 위해 구강상피세포를 채취한 사람만 해도 2015명에 이른다. 특히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DNA분석 결과 ‘특정 성씨를 가진 사람’으로까지 용의자가 좁혀지자 한층 기대감이 높아졌다. 하지만 확보한 DNA와 같은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피해자의 시신이 발견된 목포시 용해동 소방도로 풀밭 배수로 바로 옆을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다. 배명재 기자

수사가 광범위하게 펼쳐지자 “너무 많은 시민들이 의심받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경찰은 “미제 사건이 되면 지역에 불명예 딱지가 붙게 된다”며 시민들을 설득하기도 했다.

성범죄 전과자가 아닌 초범의 우발적인 범행이거나 비행청소년들이 저지른 범죄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살폈다. 목포항에 드나드는 선원들도 조사했다. 사건 발생 전후로 두달간 입·출항 선원 명단을 해경으로부터 받아 대조했으나 역시 범인의 흔적은 찾지못했다.

하지만 수사과정에서 사건 당시 그 주변을 배회하던 한 남성이 있었다는 목격자들이 속속 나타났다.

■“범인은 모자 눌러쓴 호리호리한 20대 청년”

목격자 모두는 오후 11시30분에서 자정 사이로 그때를 기억해냈다. 사건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20대 김모씨는 “자정 가까운 시간에 근처에서 ‘아~악’하는 외마디 비명소리를 들었다. 쌀쌀한 날씨여서 창문을 닫고 있는데도 소리가 들렸는데, 몸이 피곤해 무심코 넘겼다”면서 “아침에 일어나보니 비명소리가 났던 배수로 근처에서 사단이 났던 것”이라고 경찰에 제보했다.

범인으로 추정되는 청년이 범행시간 1시간 전부터 서성거렸다는 제보가 들어온 산책로 입구. 시신이 발견된 곳에서 60m 떨어져 있다. 배명재기자

같은 시간대 배수로 위쪽 산책로를 뛰던 강모씨의 진술은 더욱 구체적이다. “여자 비명소리가 나서 아래쪽을 보니 배수로 바로 옆에 짙은 선팅을 한 검은 색 차량이 있었어요. 순간 차량 뒷문이 닫히면서 여성 다리 한쪽이 보였어요.”

문제의 차량 옆 소방도로를 달리는 영업용 택시기사의 진술도 최근 더해졌다. 이 택시 기사는 “배수로 옆에 검은책 차량 뒤편 트렁크에 나비모양의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차량 번호판 숫자 2개도 기억해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사건 1시간여전 인근 체육공원에서 운동기구로 체력단련을 하던 50대 남자의 목격담이 가장 사실적이다. “밤 10시 20분에 운동을 나왔는데, 사건현장에서 체육공원 사이 60여m 공간을 왔다갔다 하던 20대 중·후반, 키 170㎝ 가량의 청년을 발견했다. 모자를 깊이 눌러 써서 얼굴을 보지못했지만 턱이 갸름하고, 호리호리한 체형이었다. 운동화를 신고 있었고, 회색면바지 차림이었다. 전혀 보지못한 사람이었다.”

전남지방경찰청 청사 모습. 배명재 기자

경찰은 목격자들의 진술로 미뤄 이 청년이 사건 현장에 머무르며 범행대상을 고르다 정신없이 울고 집으로 가는 ㄱ씨를 협박, 차량으로 끌고온 후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초동수사 때 미처 확인하지 못한 지역 우범자 10여명의 행방도 쫓고 있다. 전국적으로 비슷한 수법의 전과자 모두에 대해 당시의 행적과 주거지 이동상황 등을 살피고 새로 잡히는 전과자의 인상착의도 빼놓지 않고 본다.

전남지방경찰청 미제사건팀 남설민 형사는 “이 사건은 사전에 계획하거나 전과자의 범행이 아닌, 초범의 우발적인 범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면서 “반드시 찾아내겠다”고 말했다. 제보는 전남지방경찰청 미제사건수사팀(061-289-2472). 다음은 ‘제주 어린이집 보육교사 피살사건’입니다.

▶[미제사건 시그널을 찾아라](35) 인천 십정동 부부살해 사건

<배명재 기자 ninapl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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