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숨결을 남기고 싶다"

2016. 6. 2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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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미국 군무원의 일본 여성 살해 사건 계기로 거리에 나선 오키나와 주민들… 수십 년간의 전쟁 요새화, 잔혹한 미군 범죄, 새 미군기지 건설로 분노 폭발

“분노가 한계를 넘었다.” 6월19일 일본 오키나와 오노야마공원 육상 경기장에 주민 6만5천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지난 4월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에 근무하는 미국 해병 군무원이 20살 일본 여성을 살해한 것과 관련해 ‘미군기지 철수’를 주장하며 대규모 ‘현민대회’를 열었다. REUTERS 연합뉴스

지난 6월19일 일본 오키나와 나하에 있는 오노야마공원 육상 경기장. 기온 32℃의 무더운 날씨였다. 그러나 이곳에 모인 이들의 가슴에는 격렬한 분노와 슬픔이 더 뜨겁게 들끓었다. 이날 미국 해병 군무원의 만행을 규탄하는 ‘오키나와 현민대회’에 무려 6만5천 명의 시민이 찾았다. 이들은 지난 4월28일 미군에게 살해된 20살 여성 피해자를 추모하고 미 해병대의 철수를 요구했다.

미군기지 74%가 밀집된 0.6%의 섬

“하늘로부터 은혜를 받아/ 이 지구에 태어난 우리 아이/ 기도를 담아 자라라/ 태양의 빛을 받아/ 튼튼하게 자라라/ …어머니의 기도를 담아/ 영원한 꽃을 피우자/ 하늘의 빛을 받아/ 하늘 높이 자라라.”

집회에서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가수 고자 미사코가 <와라비가미>(童神)를 불렀다. 갓 태어난 아이에 대한 사랑과 감동을 담은 자장가였다. 노래를 듣는 이들 사이로 부드러운 오키나와의 바닷바람이 불었다. 따가운 여름 햇살도 순간 부드럽게 다가왔다. 그러나 아이에 대한 소중함을 담은 노래가 가슴을 울리자, 미군의 만행으로 살해된 피해자를 생각하는 마음은 더 강해졌다.

오키나와에선 지금까지 몇 차례 대규모 현민대회가 열렸다. 그때마다 거듭된 미군에 의한 사건·사고가 있었다. 1995년 소녀 성폭행 사건, 2013년 미 공군 특수 전용 항공기 오스프리 배치 논란 때도 그랬다. 이번에는 오키나와현 가데나 기지에서 근무하던 미 군무원이 일본인 여성을 살해한 뒤 주검을 유기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이전부터 전쟁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 오키나와는 제2차 세계대전 뒤, 한때 미국의 점유지였다. 당시 지상전이 벌어졌지만 일본 군대는 주민을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전쟁이 끝날 무렵 ‘주민 집단 강제 죽음’이라는 끔찍한 지옥을 만들었다. 아픈 전쟁에 대한 기억과 당시 사람들의 증언이 젊은이들을 무관심에서 눈뜨게 했다. 이들의 분노와 슬픔이 폭발하면서 불의한 일이 생기면 일어설 용기도 주었다.

오키나와는 영토를 회복한 지금도 일본에 주둔한 전체 미군기지의 74%가 이곳에 자리잡은 요새 같은 섬이 됐다. 오키나와 면적은 일본 전체 영토의 0.6%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오키나와는 새 미군기지 건설 논란에 휩싸여 있다. 정부가 오키나와에 있는 후텐마 기지를 현내에서 자리만 옮기는 ‘헤노코 지역 이전’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뒤 ‘전쟁을 전제로 한 분쟁 해결’을 포기한 것처럼 보였지만, 전쟁을 전제로 하는 미군의 새 ‘오키나와 기지’ 건설을 고수하고 있다. 새 기지 건설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적으로부터 나라와 생명을 지키려면 미군기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앞선 오키나와의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일까?

미군 철수를 요구한 이번 대회에 대해서도 일부에서 “피해자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라든가, “피해자를 추모하는 것으로 그쳐야 한다”는 등의 의견이 나왔다. 여당 의원 등 몇몇 의원이 현민대회에 불참한 구실이기도 하다.

미국에 오키나와를 바쳤던 일왕

일본 오키나와 주민 거주 시설 사이로 후텐마 미군 비행장이 보인다. 미군 항공기는 초등학교 위를 저공비행하기도 한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미군기지가 없어도 오키나와에서 사건·사고는 발생한다. 사고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군기지가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참혹한 사건들이 있다. 오키나와에서 미군이 벌이는 사건은 ‘미-일 행정협정’에 따라 사과도 보상도 없이 어둠 속에 묻히고 만다. 더 억울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의 피해 여성 아버지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다시는 내 딸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미군기지에 반대한다”라고. 이런 바람을 실현하는 것만으로 이번 대회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평범하고 당연히 누리는 일상생활을 하는 데 미군기지는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미군의 사건·사고는 수없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 그때마다 일본과 미국 정부는 공허한 반성을 반복한다.

‘오키나와에 대한 미-일 특별행동위원회’(SACO)에서 후텐마 기지 이전을 합의했지만, 새로 가는 곳이 오키나와 현내의 헤노코 지역이다. 2003년 도널드 럼즈펠드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 발언한 대로 “후텐마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기지”이다. 오키나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미군기지의 즉각 철수다. 새 미군기지는 필요 없다.

후텐마 기지 주변에 ‘후텐마 제2초등학교’가 있다. 교정 바로 위를 미군 항공기가 날아다닌다. 착륙 태세를 갖춘 채 학교 위를 저공비행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소음과 위험 속에 생활한다. 오키나와 주민과 아이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위험이다.

전쟁이 끝난 뒤 오키나와 주민들은 원래 생활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고향 땅은 모두 불태워졌고, 그 자리는 미군기지 용도로 접수되고 있었다. 미국 정부는 전쟁 여파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갈팡질팡하는 오키나와 주민들을 수용소로 거둬들였다. 여기서 옷과 먹을 것을 주었고, 수용소 주민들에게서 오키나와 기지를 짓기 위해 필요한 땅을 하나씩 접수했다.

‘주민들이 보상금 받을 목적으로 위험한 기지 주변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모르고 하는 말이다. 돈 없는 사람들을 고향으로 불러들인 건 그곳이 그들의 조상, 즉 오키나와 사람들의 할머니·할아버지가 살아오고 그들이 지켜온 곳이었기 때문이다. 오키나와 사람들이 조상을 모시는 마음 자체가 후텐마로 돌아온 이유였다. 그리고 그곳이 원래 자신들이 살아온 터전이었다.

그렇다면 미군기지는 왜 하필 오키나와 주변에 있을까?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군은 일본 본토에서 총력전을 벌이기 위한 ‘시간벌기용’으로 오키나와를 쓰려고 했다. 오키나와 지상전에서 오키나와 주둔 32군(총병력 8만6400명)의 우시지마 미쓰루 총사령관은 “마지막 한 사람까지 싸우라”는 말을 남기고 자결했다. 이후 주민들의 희생이 계속됐다.

그러나 결국 미국이 전쟁에서 승리했고, 오키나와는 ‘전시국제법’을 근거로 미국에 의한 ‘필요에 따른 점유’ 상태에 놓였다. 사실상 미국의 전리품이 됐다. 일본은 미국에 오키나와를 내밀었다. 전쟁이 끝나고 1년 뒤인 1949년 9월, 일본 천황은 미국에 ‘25년부터 50년 그 이상’ 오키나와를 ‘빌려주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듬해 한국전쟁이 터지자, 오키나와 기지는 중요한 구실을 하게 됐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대가 되면서 지형적으로도 오키나와가 요새 구실을 해줄 필요성이 커졌다. 베트남 전쟁 때도 오키나와가 요새가 되어주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오키나와를 ‘악마의 섬’으로 부른다. 한국도 베트남 전쟁에서 자신들이 무엇을 했는지 물어야 한다.

더 이상 물러서지 않는 ‘모든 오키나와인’

미국은 동북아 안보를 위해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전쟁’에 동참하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일본 평화헌법 제9조는 일본의 전쟁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아베 신조 정부는 평화헌법을 무력화하고, 헌법 개정조차 없이 ‘전쟁 가능한 나라’로 만들었다.

안보 논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일본에서 미군기지도 없어지지 않는다. 일본이 중국과의 영토 분쟁에 미국을 끌어들이기 때문에 ‘미국식 안보 논리’도 내버릴 수 없는 것이다. 이 문제에서 중국과 함께 항상 거론되는 게 북한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 뒤, 사람들은 일본 정부가 발표하는 북한의 위협을 간단히 믿게 됐다. 이 때문에 “일본을 지키기 위해서 군사력이 필요하다”는 안보 논리가 먹힌다.

오나가 다케시 오키나와 지사 역시 안보를 긍정하는 보수 인사 가운데 한 명이다. 그럼에도 그는 오키나와가 미군기지와 관련한 부담을 너무 많이 지고 있다며 들고일어섰다. 그는 “나는 보수적 인물이다. 오키나와의 보수로서, 민족의 자존심을 걸고 싸우겠다”며 2년 전 선거에 나섰다. 그 말에 주민들이 움직였다. 당시 그는 10만 표 차이로 당선됐다. ‘모든 오키나와인’이란 기치를 세운 지사가 탄생한 것이다.

오키나와에선 기존 후텐마 미군기지 문제가 ‘새 기지 건설 문제’로 바뀐 듯하다. 이제는 새 기지 건설 예정지인 헤노코에서 연일 반대 농성이 이어지고 있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주민들의 모습이 거기에 있다.

한국과의 연대도 이뤄지고 있다. 제주 강정은 오키나와와 함께 ‘군 기지 건설 반대’를 화두로, 서로 격려하고 연대해왔다. 강정이 해군기지 건설 뒤 평화를 구축할 방법을 찾는 것은 이제껏 미군기지와 함께 살아온 오키나와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반도는 여전히 휴전 상태로 남아 있다. 다시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의 공포가 안보를 용인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강정이 평화 구축을 모색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시점이다. 군 기지를 무력화하기 위한 조직화, 분쟁 해결에 절대 전쟁을 전제로 하지 않기, 전쟁무기에 의지하지 않기 같은 것들이다.

인간에게는 말이 있다. 제주에서 강정 기지 건설 반대에 앞장섰던 한 여성의 말을 잊을 수 없다. “군 기지가 있는 곳에서 살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불쌍하다.” 그의 얼굴에는 눈물이 흘렀다. 안타까움, 미안함이 뒤섞인 눈물이었을까?

강정을 꼭 닮은 오키나와

오키나와에는 ‘생명이 보배’라는 말이 있다. 전쟁에 저항하는 마음을 지지하는 말이다. 태곳적부터 내려오는 넘칠 듯한 생명의 숨결을 전하는 오키나와의 바다. 그 바다를 메우고 새 기지를 만드는 것 자체가 미래를 갉아먹는 일이다. 아름다운 바다를 그대로 아이들에게 건네고 싶다. 이처럼 단순명료하고 정당한 주장을 정부는 왜 받아들이지 않을까? 오키나와를 얕본 것이 틀림없다. 오키나와는 알고 있다. 새 기지 건설 반대 투쟁은 단순히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묻는 싸움을 하고 있다.

유영자 오키나와 거주 반전운동가·재일동포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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