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의달인]⑨ 변호사 안기순, 법률정보포털 매각하고 '문비서' 창업

노자운 기자 2016. 6. 21.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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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컴퓨터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던 1983년, 광주광역시에 살던 중학교 2학년 안기순은 동생을 데리고 시내 컴퓨터 판매점에 놀러 다녔다. 당시 가게에는 ‘애플2’ 컴퓨터가 있었다. 애플2에 푹 빠진 안기순은 컴퓨터 가게에서 살다시피 했다. 영어로 된 서적을 번역해 기초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러나 컴퓨터 가게 사장은 애플2를 사지는 않고 공짜로 이용하는 소년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안기순은 얼마 못 가 가게에 발길을 끊었다.

안기순 텍스트팩토리 대표이사 /노자운 기자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그만 둔 것은 안기순에게 ‘한’으로 남았다. 12년 뒤 그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사법연수원에 들어가기 직전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486컴퓨터 한 대를 샀다. 그리고 연수원에 다니면서 국내 최초로 윈도용 판례 검색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번에도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워 완성했다. 법조인 1000여명이 그가 만든 판례 검색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해 사용했다.

판례 검색 프로그램을 개발한 안기순은 변호사가 아닌 ‘IT 회사 CEO’의 길을 걷게 됐다. 법무법인 태평양 자회사인 종합 법률 포털 업체 ‘로앤비’의 창립 멤버로 합류해 7년 간 대표이사를 지냈다. 로앤비를 글로벌 미디어 그룹 톰슨로이터에 매각한 뒤에는 벤처 기업 ‘텍스트팩토리’를 창업, 문자메시지를 이용한 개인 비서 서비스 ‘문비서’를 만들었다.

지난 17일, 서울 서초동 텍스트팩토리 본사에서 안 대표(48)를 만났다. 그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했고 검은 뿔테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빛은 날카로웠다. 그러나 손으로 엉성하게 넘겨 헝클어진 머리와 인터뷰 도중 커피를 쏟는 허술한 모습에서 인간적인 매력도 느껴졌다.

-안 대표의 학창시절이 궁금합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늘 전교 1등을 도맡아 했어요. 모의고사에서는 전국 100등 안에 든 적도 있습니다.”

-고등학교때부터 법대 진학을 희망했나요. “그렇지 않았어요. 중학교에 다닐 때는 과학고등학교에 가고 싶었어요. 광주에 전남과학고(현 광주과학고)가 개교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거든요. 수학·과학경시대회에서 여러 번 상을 받은 뒤, 친구와 같이 과학고에 입학 원서를 냈습니다. 그런데 당시 대학에 다니던 제 큰 형이 강하게 반대하더군요. 신생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건 위험한 일이라는 주장이었죠. 결국 저는 과학고 진학을 포기했고, 친구는 과학고를 나와 지금 구글에 다니고 있어요.”

큰형의 의견대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안 대표는 고민에 빠졌다. 적성대로라면 이과(理科)를 택해야 했지만, 이과생이 된다면 가족 등 주변 사람들이 수학·과학이나 공학 대신 의대에 진학하길 강요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의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안 대표는 고민 끝에 문과를 택해 법대에 진학하기로 했다. 법학이 논리적이어서 이과 성향을 가진 자신에게 맞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학교 공부는 잘 맞았나요. “사실 대학에 다닐 때는 공부를 별로 안 했어요. 대신 학생 운동에 참여했어요.

1988년은 제5공화국이 끝나고 노태우 정권이 들어선 때였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의 민주 헌법이 만들어졌지만, 권위주의 정부에 항거하는 학생운동은 계속되고 있었다. 서울대 88학번인 안 대표도 학업보다 학생 운동에 열중하며 4년을 보냈다고 한다.

안기순 텍스트팩토리 대표이사는 변호사답게 단어 한 마디도 매우 신중하게 고민한 끝에 말했다. 그는 “사업에 대해 말하는 건 쉬운데 그동안 살아온 얘길 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노자운 기자

-학생 운동은 언제까지 했나요. “1992년까지 했어요. 학생 운동을 정리하고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가 사법시험을 준비했죠.”

-고시 준비로 진로를 바꾼 이유가 있었나요. “대학 입학 후 4년 간 학생운동권이 제 준거집단이었다면, 또 다른 준거집단은 서울대 법대 선후배와 동기들이었어요. 주변 사람 중 상당수가 법조인이 됐기 때문에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진로였죠. 학생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법조인이 돼 사회를 바꿔보겠다든가 하는 ‘대의’는 거의 없었어요. 그리고 고시 공부는 돈이 많이 들지 않는 일이잖아요. 책 살 돈만 있으면 됐으니까요.”

안 대표는 약 3년 간 공부한 끝에 1995년 사법 시험에 합격했다. 합격 후 경기도 의정부와 파주에서 3년 동안 군 법무관으로 복무했다.

-법무관으로 복무하며 프로그램을 만들었죠. “당시 강봉수 전 서울지방법원장이 만든 도스용 판례 검색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제가 사법연수원에서 윈도용 프로그램을 처음 만들었습니다. 약 1000명의 법조인들이 이용했어요. 그 때부터 IT 공부도 본격적으로 했고, 산업 동향도 열심히 조사했죠. 필요한 기술도 적극적으로 익혔습니다.”

-어떻게 로앤비 창업 멤버로 참여하게 됐습니까. “당시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법률 포털 업체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제가 판례 검색 프로그램을 개발했다는 걸 알고 먼저 합류를 제안했어요. 2001년 군 법무관을 마치고 로앤비 창업 멤버로 합류했습니다.”

로앤비는 법률에 관한 종합 정보를 제공하는 포털 업체다. 법령과 판례, 법조인과 법조계 동향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로앤비에서는 주로 어떤 일을 했습니까. “포털 사이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사용자 환경(UI)을 만들었습니다. 초기 멤버들 상당수가 태평양에서 온 변호사들이었는데, 이들 중 일부는 얼마 안 돼 태평양으로 다시 복귀했죠. 저는 2007년부터 대표이사를 맡았습니다.”

로앤비는 2012년 캐나다의 금융 정보·미디어 그룹 톰슨로이터에 매각됐다. 매각 금액 등 세부 사항은 공개되지 않았다. 안 대표는 2014년까지 대표이사직을 맡다 퇴사했다.

안 대표는 2014년 로앤비를 퇴사한 후 미국과 영국을 한 달씩 여행하며 IT 기반의 법률 스타트업에 대해 연구했다. 사진은 미 캘리포니아의 구글 본사를 방문했을 때 모습./안기순 대표 제공

-톰슨로이터에 경영권을 넘긴 뒤 무슨 일을 했나요. “톰슨로이터가 다국적 기업이기 때문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 제 직속 상관이 독일인이었고, 그의 직속 상관은 호주인이었으며 그 위에는 아르헨티나인이, 그 위에는 미국인 회장이 있었죠. 인수된 후 약 1년 간 매주 그들과 영어로 컨퍼런스콜을 했어요. 영어 공부도 할 수 있었고 글로벌 기업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엿볼 수 있었죠.

-그런데 왜 퇴사했습니까. “로앤비가 태평양 자회사일 때에는 거의 간섭 받지 않고 자유롭게 경영했어요. 그런데 톰슨로이터의 자회사가 된 후에는 독립된 회사라기보다 거대한 글로벌 회사의 하위 조직이 된 느낌이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회사를 경영하기 어려웠고, 그러다보니 재미가 없더군요. 2014년 초에 제 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그 해 6월 퇴사했죠.”

-로앤비를 퇴사한 뒤에는 무슨 일을 했습니까. “당시 미국과 영국에서 IT 기반의 법률 분야 스타트업이 하나 둘 생기고 있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할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한 달 간 영국에 다녀왔죠. 여름방학을 맞은 둘째 아들과 같이 미국에도 다녀왔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꼭 법률 관련 사업만 해야 하는지’ 회의가 들더군요. 사업 아이템을 좀 더 폭넓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안 대표는 2015년 초까지 여러 사업을 고민했다. 사물인터넷 사업에 대해 알아보다 비콘(저전력 블루투스를 이용한 스마트폰 근거리 통신 기술) 관련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다.

-‘문비서’라는 사업 모델은 어떻게 구상했나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들을 골고루 살펴봤는데, 대부분의 앱이 목적에 맞게 특성화돼있더군요. 예를 들어 기차 표를 예매하려면 ‘코레일톡’을 설치해야 하고, 고속버스 표를 예매하려면 버스 예매 전용 앱을 설치해야 했죠. 여러 기능을 포괄할 수 있는 앱은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문자메시지를 이용해 다양한 목적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문자메시지는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잖아요.”

안 대표가 만든 ‘문비서’는 ‘문자 비서’의 줄임말이다. 사용자가 문자 메시지로 간단한 업무를 의뢰하면 텍스트팩토리의 직원들이 직접 응대하고 처리해준다. 꽃배달, 세차 의뢰, 경조화환 주문 등 비서들이 흔히 하는 업무를 대행해주고 적당한 회식 장소도 추천해준다.

-텍스트팩토리는 혼자서 창업했나요. “처음에는 혼자 설립했고, 2015년 4월 법인 설립 단계에서 김민기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영입했어요. 김 이사와는 로앤비에 있을 때 만났습니다. 로앤비가 기업 법무 솔루션을 김 이사가 근무하던 회사에 매각했거든요. 당시 김 이사가 인수 업무를 깔끔하게 처리하는 걸 눈여겨 봤었죠. 김 이사에게 연락해 텍스트팩토리에 합류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묻자, 그가 일주일만에 부인의 동의를 얻어 합류했습니다. 실행력이 굉장히 뛰어난 분이에요.”

-김 이사는 안 대표와 비슷한 성향인가요. “많이 달라요. 그래서 상호 보완적이에요. 저는 기획·개발하고 사업의 본질과 방향을 많이 고민하는 반면 김 이사는 그 생각을 바로 현실로 옮기죠.”

개인 비서 서비스 ‘문비서’의 용례. 텍스트팩토리 직원들이 일대 일로 문자 메시지로 응대, 업무를 처리한다. /텍스트팩토리 제공

문비서는 지난해 6월 말 베타 서비스를 시작했고 올해 4월부터 정식 서비스를 하고 있다. 현재까지 1만3000명이 서비스를 이용했다.

-베타 테스트를 꽤 길게 했네요. “개인 비서 서비스가 생소한 서비스여서 충분히 알려야 했어요. 이용자들이 주로 어떤 요청을 하며 그들과 어떻게 하면 원만하게 소통할 수 있을 지 테스트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현재 이용자의 요청에 대응하는 직원은 몇명입니까. “회사 내부에서는 그들을 ‘텍스트 에이전트’ 라고 불러요. 현재 총 10명이 있습니다.”

-10명이 그 많은 요청을 모두 처리할 수 있나요. “텍스트 에이전트들이 보통 10~15분에 한 건의 요청을 처리하고 있어요. 서비스 출시 초기와 비교해 속도가 많이 빨라졌어요. 직원이 많지는 않지만, 문자 메시지로 대응하기 때문에 동시에 여러 개 업무를 처리할 수 있어요. 전화로 응대하면 그 시간 동안 다른 업무는 전혀 할 수 없지만, 문자 메시지는 멀티 태스킹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강점을 가져요.”

-황당한 요청을 받아본 적도 있나요. “서비스 출시 초창기에 어떤 고객이 ‘우리 회사 매출이 100억원, 영업이익은 30억원인데 인수 제의를 받았다’며 ‘우리 회사 기업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평가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어요. 이런 요청은 문비서 서비스의 본질과 맞지 않죠. 문비서는 비서를 대신하는 서비스입니다. 대표이사가 풀어야 할 중요한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지는 않죠.”

텍스트팩토리는 지난해 10월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 카카오 자회사 케이큐브벤처스로부터 3억2000만원을 투자 받았다. 최근에는 개인 투자자로부터 약 3억원을 투자 받았으며, 다음 단계 투자 유치를 추진 중이다.

-텍스트팩토리의 향후 계획은 무엇입니까. “현재 문비서는 수동적인 서비스를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인공지능(AI) 기반의 자동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AI 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회사와 인수 합병하는 방안도 고려 중입니다. 또 문비서에 로봇 기술을 적용한다면, ‘비서 로봇’을 만들 수도 있겠죠.”

-변호사 출신으로 두 개 회사를 창업한 연쇄 창업가가 됐습니다. 안 대표에게 원래부터 사업가 기질이 있었던 걸까요. “사업가 기질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제가 뭔가 만드는 일을 정말 좋아한다는 거에요. 사업이라는 것이 쉽게 말하면 무언가를 만들어 파는 일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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