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인터뷰/문화예술계 이끄는 '불꽃 40대']700석 꽉차게 하는 명창 염경애 "소리는 음높이 갖고 노는 게 아니여~"
[머니투데이 신혜선 문화부장] [편집자주] 영화의 ‘신 스틸러’는 모두 40대이고, 대중음악 공연의 진가는 40대 뮤지션에게서 나온다. 문화예술계의 40대는 퇴색하는 보조가 아닌, 이제 콘텐츠 생성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위’의 장점을 베어물고, ‘아래’의 경쟁에 자극받는 이 시대 40대 예술인의 삶을 통해 ‘불혹’이 ‘불꽃’으로 이동하는 현장의 세계를 담았다.
[③ 판소리 5바탕 중 4바탕 소화 +'완창' 8번 + 신혼여행 '판소리 버스킹'…목표를 향한 지독한 도전]
“아버지 듣조시요. 자로난 효인으로 백리의 부미허고 순요딸 재영이난 낙양옥으 갇힌 아비 몸을 팔아 속죄허고~~~”(판소리 '심청가' 중)
구슬프고 나지막한 소리가 밤꽃 냄새를 타고 초록빛의 국립국악원 마당을 가만히 채운다. 고수를 옆에 뒀지만, 늘 혼자서는 무대 아닌가. 마당 한가운데 혼자 섰다고 어색할 것도 없겠다 싶은데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을 연신 만지고, 소리할 때 짓던 양미간의 주름이 펴질 길이 없어 보인다.
“좀 웃어보세요. 무대에서처럼 해볼까요?” “예? 아, 예.” 그렇게 시작한 소리. 카메라를 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오는 손동작과 먼 시선. 그제야 지난 무대에서 만난 명창 염경애(43)의 모습이 보였다. (최근 그는 25대 1 경쟁을 뚫고 국립국악원 단원이 됐다.)
늘 입던 화려한 혹은 흰색 한복 대신 까만 셔츠를 입고, 멋진 비녀로 쪽진 대신 자연스럽게 웨이브로 넘어가는 커트 단발머리의 그는 시쳇말로 ‘까도녀’(까칠한 도시녀)다. 만약 본인을 ‘뮤지션’으로 소개한다면, 판소리를 떠올리기보다 ‘밴드 보컬 아닐까’하는 생각이 먼저 들 만하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턱선이 뚜렷한 시원한 얼굴. 두 딸의 엄마인 그의 직업은 소리꾼이다. 올 3월, 국립국장에서 연 판소리 심청전 완창(4시간 30분) 무대. 좌석이 매진해 평소에는 팔지 않는 양쪽 좌석까지 공개해야 했다. 700석 만석이었다.
“좌악~ 멋진 시작 반주 놓고, 오케스트라 연주 놓고 안 하고 싶을까요. 우리는 북 하나 놓고 관객과 호흡하고 소통해야 하는디. 진짜 퍽퍽하고 되다(힘들다)는 것이지요. 근디, 그렇게 (좋은 연주 맞춰서) 하고도 노래를 지대로 못하면 그게 가순가. 하하하.” 어릴 적 고향 얘기, 판소리 이야기로 가니 구수한 전라도 말이 서울말을 비집고 나온다.
"퍽퍽한 북 하나 놓고 하는 소리의 매력, 멋진 반주 노래랑 어디 비교"
초등학교 6학년, 순천에서 고모가 운영하는 판소리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것부터 시작하면 올해 31년. 기록이 대단하다. 2001년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졸업 연주로 ‘수궁가’를 처음 완창한 후 2002년 열린 28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명창대회에 출전해 대통령상을 받았다. 그의 나이 만 28세. 전주대사습놀이 사상 최연소, 첫 20대 수상이었다. 만 서른도 안돼 전주대사습놀이 대회에 나간 건 ‘의도한’ 건 아니다. 대학생 때 ‘경주신라문화제’ 일반부에 나갔는데 1등을 ‘해버렸다’. “최종 목표가 아닌데 1등(문화부 장관상)을 해버리고 나니 그 담에 도전할 수밖에 없고….” 쟁쟁한 선배를 제치니 난감 그 자체다. 결국 대회 출전 자격 기준이 바뀌었다. 이십 대의 '힘'을 핑계로 ‘만 30세’ 이상으로 바꾼 것.
그는 2003년 7월, 국립극장 초청 ‘춘향가’를 완창했다. 장작 6시간 30분이다. 그는 이번 3월 심청전 완청 공연까지 총 8번을 완창했다. 이 정도면 명창 앞에 ‘지독한’이 어울린다.
- 3월 공연 잘 봤어요. 심청이 아버지 두고 떠나며 혼자 하직 인사하는 대목서 저도 그만 울었네요. ▶ 저도 울었잖아요. 연습할 때도 그 대목에서 항상 울어요. 특히 청이 대목에선 우리 아버지 생각도 나고(염 명창의 아버지도 앞이 안 보이신다. 현대의학으로는 못 고친다.) 심청가에 나오는 아버지 위해서 죽음 각오하는 심청이의 마음과 떠나가는 심정. 저도 자식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니 울컥하죠. 음악적인 짜임도 훌륭하거니와 감정이입이 굉장히 잘 되는 대목이라고 생각해요.
- 일반인이야 엄두를 못 내지만, 경력 31년 명창이라 해도 판소리 8회 완창은 흔한 일은 아니죠. ▶아마, 제 나잇대에는 거의 없을 거예요. 뭐, 한두 바탕 해도 평생 먹고 살 수는 있고. 여자 명창 중 5바탕 하는 이도 거의 없는 걸로 압니다. 저는 흥보가 빼고 4바탕을 완수했고, 완창은 총 8번 했네요. (판소리 5바탕은 춘향가·심청가·적벽가·수궁가·흥보가다.) 완창은 달리기로 하면 장거리잖아요. 쉽지 않아요. 제일 짧은 게 3시간, 강산제 춘양가는 6시간, 전주지역 동초 김연수 선생님은 8시간까지 하셨죠. 계보, 유파별로 다 다르고요.
'지독한' 거 맞다. 한예종 전문사 졸업 연주는 통상 1시간~1시간 30분이다. “좀 욕심내서 우면당 잡아놓고 ‘선생님(명창 조상현) 저 완창해야 허니까 소리 가르쳐 주세요.’ 졸랐어요. 날짜 먼저 떡 잡아놓고 한 거죠. 한예종 졸업연주로 완창한 사람도 처음 아닌가 하네요. 하하하.”
- 소리꾼 집안으로 들었어요. 목청이 좋으니 동요를 잘 불러서 칭찬받으면 가수가 되고 싶지 않았나요? 가요나 팝송이 더 좋을 법도 한데요. ▶ 초등학교 때 육상선수였어요. 단거리를 하두 잘해서. ‘제2의 임춘애’ 선수가 될 뻔했죠. 하하하. (순천으로) 이사 안 왔으면, 운동선수가 돼 있지 않았을까. (음, 진짜인지, 혼자 고개를 주억거리는 염 명창)
음악으로는 팝송이나 일반 가요에 노출되지 않았던 덕도 있었다고 봐요. 고향이 ‘깡촌’이었어요. TV도 4학년 때 들어왔나? 학교 가기 전부터도 나무하러 다니고 버섯 따고 그랬는데. 그렇게 가난한 와중에 아버지가 국악 음반(LP판)을 항상 틀어주셨어요. 형편이 어려워 소 대신 염소를 키웠는데 그 ‘염소막’ 천장에 LP판이 가득했죠. 제가 제일 재미있어하고 즐겁게 자주 듣던 곡이 장화홍련전인데, 장쇠가 쥐 배를 갈랐는데 거기서 “쥐똥이다!” 소리 지르는 장면이었죠. 장화홍련전부터 수궁가, 심청가…. 그때부터 들었죠. 아버지는 진짜 소리를 사랑했어요. 재주도 뛰어나시고. 아버지는 당신이 (소리를) 제대로 학습 못 하고 주저앉은 격이라 소리에 대한 한이 있으세요.
염명창의 윗대 중 조선 8명창 후기 중에 중고제 명창이라는 ‘염계달’ 명창이 있다. “1800년 경, 중고제 완성하신 판소리 하시는 분 중에 한 분도 계신 데 정확히 나오진 않는다고 하네요.” 고조할아버지는 ‘대방’(마을 음악을 통솔했던 조직의 반장격)을 하셨다고 들었단다. 염 명창의 첫 스승은 고 염금향 선생이다. 염 명창의 친 고모(판소리 학원 운영, 당시 순천 판소리 지부장)와 또 다른 고모님들은 박초월 선생 등과 같이 공연도 했단다. 큰아버지도 소리를 배우진 않았지만 풍류를 즐겨 하셨던 분이라고 염 명창은 기억한다. 그야말로 소리꾼 집안이다.
아버지 이야기를 하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염 명창의 아버지는 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무대에 처음 설 때 아부지, 나 너무 떨리오, 어떡하지, 하니깐요, ‘느그들은(관객들) 개돼지다 생각하고 해라’ 하시는 거예요. 하하하. 염려마세요. 절대 관객을 하찮게 보는 게 아니고요. 딸을 위로해주고 싶은 표현이 너무 순수하지 않나요? ‘니들은 아무것도 아니여. (내 딸) 자랑해 볼랑께 들어봐라.’ 이런 거죠. 소리를 너무 잘 하셨고, 무척 하고 싶어 하셨는데 막내아들이라 집에서 안 시킨 걸로 들었어요.”
- 다른 음악 하고 싶은 유혹 없었나요? ▶ 서양음악에 관심이 없던 게 아니었어요, 탱고 음악에도 빠지고. 결혼하지 않았으면 제 3세계 음악으로 빠졌을지도 몰라요.
그는 불문학을 전공하고 다시 진학해 소리를 배운 선배와 결혼했다. (남편은 국립극장 단원이다.) 덕(?)을 톡톡히 본 건 신혼여행. 파리를 택한 15박 16일 신혼여행은 둘 만의 오붓함 따윈 없다. 악기 연주자 '일당'이 동행했다. 파리서 판소리 버스킹을 한 일화는 유명하다. 남편이 불어가 능통하니 현지 음악 기획자를 만나 제대로 공연했다. “사설도 4.3, 4.4 한자성어 투성인 소리를 그들이 이해하겠어요? 그런데도 다 듣고 슬픈 곡이죠? 라고 묻더라고요.”
"공연 한 달 전엔 지리산…소리의 색깔을 찾는 과정 "
- 영화 보면 소리꾼들 산속, 계곡에서 혹독하게 훈련하잖아요. 왜들 산으로 가시는지, 선생님도 그러세요? ▶ 하하하, 예. 옛날엔 그냥 짧으면 100일, 3년, 길면 10년 공부 산에 가서 했죠. 저도 산에 가서 해보니까 왜 산에서 했는지 알 것 같더라고요. 산 기운이 있어요. 저는 거의 한 달 정도 살죠. 종일 밥 먹고 자는 시간 외에는 공부만 해요, 실제 소리를 내면서. 저는 지리산하고 잘 맞아요. (올 3월 공연 전에도 한 달 정도 지리산에 파묻혔다.) 판소리는 특히 완창은 긴 사설이 있고, 원체 분량이 많아서 완전 음악에 몰입해서 연습량 늘리지 않으면 실제 무대에서 버텨나는 힘이 없어요. 계속 내공을 쌓아놓는 거죠. 신기하게도, 소진할 것 같은데 산에 가서 하면 기운이 돌아요. 그런데 요즘엔 일상도 많잖아요. 국악인이라 해도 학교도 다녀야 하고 엄마로서 역할 있고 여러 가지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어렵죠).
- 왜 우리는 ‘소리’라고 할까요? ▶ 그쵸? 노래라는 표현도 있는데. 인간이 목소리로 가장 자연을 닮은, 자연의 소리를 표현한다고 해서 소리라고 하는 것 같지 않나요? 소리 자체가 궁극적인 목표인. 제 스승님도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네요. 음정과 박자에만 맞춰 가는 게 아니다. 한 음정에도 다른 색깔이 있고. 빨간색이 불그죽죽한 색, 다홍색 등등 있죠. 그냥 딱 빨간색이라고 하지 않지요. 우리 소리는 다른 색깔, 다양성을 찾아가려는 게 있어요. 노력해서 찾아내려고 하다보면요, 풍성한 음악에 빠져들 수밖에 없어요. ‘바람은 우르르르르~~~, 징은 뎅~~~~데엥….’ 이렇게 소리를 표현하죠. 어느 명창께서 ‘새 타령’할 때 진짜 새소린 줄 알고 새가 날아와서 놀았다는 전설도 있죠?
- 완창할 때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그건 사람마다 음악적 기량이나 노력에 달라질 수 있겠죠. 제 기준으로 봐선 심청가를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선생님께 다시 닦는데, 5년 걸렸어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또 다른 내가 몰랐던 것이 더 얹혀지고 씌워지고 느껴지는 것들이 많았죠. (올 3월 완창 심청가도 세 번째다.)
- 졸업작품 완창도 그렇고, 8번 완창도 그렇고. 욕심? 좀 과하다? 그런 평을 받을 수도 있겠어요. ▶한예종 졸업작품으로 '수궁가' 하고 다들 ‘푹~삶아서 농익어서 이골났을 때, 이제 좀 꺼내놓을 만하다, 할 때 완창하는 거다’ 했죠. 근데 저는 목표를 세웠어요. 목표를 만들어두고 향해서 계속 가면 스스로 의미를 두고 달려가는 힘과 박진감이 생긴다고 생각했죠. 예, 앞으로의 먼 미래에 나의 완성된 음악을 생각하면 지금 조금 부족해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나 키우는 밑거름으로 생각하자. 그렇게 하다 보니 수궁가, 심청전 완창 모두 세 번씩 했어요. 세 번째에나 감이 오더라고요. 그걸 미루고 안 했으면 그걸 그렇게 했을까 싶은 것이. 미흡해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내 소리의 달라짐을 스스로 느낄 수 있어요.
- 세 번 한 심청가 판소리 완창의 느낌이 이렇게 다르다, 설명이 가능한가요? ▶ 첫 번째는 앞뒤 안 가리고 좌우 살펴볼 여유 없었어요. 그냥 해내야 한다. 끝내야 한다. 가사 틀리지 않게 음정 틀리지 않고 일단 실수만 안 하고 완성 하자가 목표죠. 두 번째는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갖는 기대감이라는 게 있잖아요. 더 위축됐어요. 아, 진짜 무대에서 진퇴양난이었어요, ‘아’~도 안 되는데 내려올 수도 없고. 정말 벼랑 끝에 선 기분이었죠. 조상현 선생님이 제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젤 앞으로 나오셔서 ‘그래’, ‘그렇지’ 추임새를 해주시는 거예요. 신기하게도 그거 추임새 받아먹으니 기운이 생기더라고요. 우리 소리는 추임새 먹고 소리하면 초월적인 힘이 나와요. 진짜로. 추켜세워준다고 해서 추임새인데 이 칭찬은 정말 대단한 거예요.
세 번째 한 게 올봄이죠. ‘강산제’는 통으로 우겨내는 소리도 있고 몸서리치는 느낌도 나오고, 웅장하면서도 고졸한, 담백한 느낌이 있죠, 남자 명창들이 주로 하니 여자 명창에겐 어려운 점도 있고. 이번에는 연습량도 연습량이지만 세월이 지나왔으니 놓게 되더라고요. 잘해야겠다 말고 즐기면서 해보자. 내가 좋아하는 소리를 하면서도 못 놀리고 긴장하고, 경직되고. 편한 마음이 들고 잘 풀리더라고요. 관객과의 호흡도 좋았고. (당시 현장에 있던 기자 눈에도 관객의 호응이 대단했다.)
'전주대사습놀이' 참가기준을 바꾼 그녀…'소리 속의 소리'를 찾는다
- 20대, 대회 기준도 바꿀 정도의 소리였어요. 40대 소리는 그 이전과 뭐가 달라졌나요. 지금의 ‘소리’가 어떻게 달라졌다, 말할 수 있나요?
▶아우, 어렵고 조심스러라. 제소리를 객관화한다는 건 힘든 일이에요. 내가 어떤 소리로 어떻게 왔지, 되돌아보지 못했어요. 너무 부끄럽고 무섭기도 하고.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소리는 단시일에 되는 것이 아니고, 굉장한 자신의 시간과 노력으로 숙성되는 것이죠. 40대에는 음악적으로도 그렇고 인생의 경험이나 느낌이 쌓여서 음악에 고스란히 묻어나는 것이니 소리는 40대부터 진짜다? 맞는 말이에요.
사실 재주 있고 목이 좋으니까 잘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조상현 선생님께서 ‘소리가 다 소리가 아니라 소리 속의 소리가 있다’ 하셨어요. 소리는 이면에 대한 표현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설하고도 부합이 되는 감정을 표현해야 하고, 음향법, 색깔의 다양한 면을 적재적소에 잘 써줘야 하고. 결국은 자연의 소리를 표현하는 데 천변만화한 소리를 그려낼 줄 알아야 한다는 거 아닐까요. ‘소리는 음정놀음이 아니다. 높고 낮고 장단 가지고 노는 게 아니라 사색하면서 소리의 색깔 적재적소에 잘 표현하는, 이면에 대한 표현이 중요하다. 사실적인 음악이 돼야 한다.’ 그게 선생님의 가장 큰 가르침인 거 같아요.
- 소리의 원형을 추구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 아 이것도 어렵고 조심스러워서. 판소리 정신은 시대를 담아내고 변화하는 대중의 정서를 잘 표현하는, 간접적인 위로와 격려와 질타를 하는 거라 생각해요. 원형을 배워서 나의 소리, 내 세계의 정신이 녹아있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게 그게 소리를 가져가는 원형 아닐까요. 아이고, 이걸 자칫 어른들이 들으면 ‘싸가지 읎는, 배운 거나 정확하게 하제, 그럼 니가 계보 만들겠다는 거시여?’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어서 조심스럽죠. 선생님 목소리와 사설과 가사 틀린 거까지 똑같이 하는 게 원형이 아니라 선생님부터 올곧게 받은 소리를 정말 자기 세계에 결부시켜서 소리화하는 작업, 그런 소리의 정신이 있어야 할 거 같아요. 그걸 찾아가는 모습이 원형이라고 생각해요. 새 유파 없이 조선 시대 때부터 하는 거 ‘방창’만 하고 있잖아요. 제가 고민하는 지점이고 제 궁극적인 화두기도 합니다.
- 50대 염 명창은 어떤 모습일까요. 무르익기도 하지만, 힘이 필요한 소리니 나이 들면 기운이 빠지지 않을까요? ▶ 하하하. 내일도 준비 못 하는데 50대라니. 아직은 올라가야죠. 이제 시작이에요. 진짜로요. 20, 30대는 젊음과 패기가 있었죠. 부족하지만 열정과 뜨거운 피가 있고, 부족했지만 당당하고 도전정신이 있어요. 이제는 깊이죠. 인생을 경험하고 쌓아온 것도 있을테니까. 그게 다 음악에 녹아나지 않을까요. 그때 가서 말해줄게요. “소리는 이런 것이야”라고.
염 명창은 “‘귀 명창’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잘 들을 줄 아는 귀 명창은 소리꾼을 단련시키는 큰 힘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소리꾼과 관객이) 열려있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국에 피아노 학원이 한 블록 건너 하나씩 있듯이 우리 소리나 국악도 일상에서 편안하게 아무 때나 듣고 부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내가 몰랐구나’ 가 아니라 ‘어머 이런 게 있었구나.’ 이러면서요.”
그는 아직도 색안경 끼고 우리 소리는 촌스럽고, ‘급’ 떨어지는 음악이란 고정관념이 박혀있는 현실이 서운하다. 소리는 처음에 듣기가 어렵지만 들으면 아 괜찮네, 직접 해보면 더 괜찮네…. 그런 매력이 있는데 말이다. 기자도 동의한다. 3월 공연, 염 명창의 판소리 완창을 처음 들은 후 든 생각은 '생각보다 훨씬 재밌고, 좋다'이다. 인터뷰 후 소리~하고 내뱉어 보니 그 소리가 새삼스럽게 예쁘다. 규정되지 않은 비어있는 무엇. 되게 정직하게 들린다.
신혜선 문화부장 shinh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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