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게 포장된 저렴해진 '쾌락'..五感을 중독시키다

18세기 살인자의 심연에 설득당하는 까닭은, 인간은 그루누이처럼 쾌락을 추구하는 동물이어서다. 인간은 '아름다운 것은 영원하지 못하다'는 명제를 배반해왔고, 그루누이는 그 상징이다.
그루누이처럼 쾌락을 추종하는 현대인을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하여'라는 책에서는 욕망의 동물로 바라본다. 제목의 핵심어는 '중독'이지만 책의 주제어는 '쾌락'이다. 원제마저 '포장된 쾌락(Packaged Pleasures)'이다.
자본주의는 대중에게 가장 우아한 방식으로 쾌락을 포장해 건넸다. 그루누이에게 향수가 악취의 반작용이었던 것처럼 무미(無味)의 반작용으로 단맛의 스니커즈가, 망각의 반작용으로 DSLR 카메라가, 소음의 반작용으로 아이팟이 탄생했다.
포장된 쾌락은 먼저 혀를 겨냥했다. '튜브(tube)'는 쾌락의 요물이다. 무수히 많은 용기(容器)에 먹거리가 담기면서 미각적 쾌락은 국경을 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과일이나 고기를 끓여 코르크로 밀봉하는 병조림법을 1809년 고안한 니콜라스 아페르에겐 프랑스 정부의 상금 1만2000프랑보다 '통조림의 아버지'란 명성이 더 값졌다. 그 뒤 진공기법, 냉장, 깡통따개 등의 기술이 결합돼 '맛의 소비'는 결국 '맛의 중독'으로 이어졌다. 왜일까.
래칫 효과(rachet effect)란 단어는 한 번 상승한 수준이 여간해서 하락하지 않을 때 쓴다. 단맛은 쾌락중추를 희롱했다. 식탁에 설탕이 부어지는 걸 거부한 문화권은 없었다. 찻잔에서, 커피잔에서, 빵에 바르는 잼에 설탕이 추가됐다. 단맛은 허쉬초콜릿, 구구클러스터, 스니커즈, 코카콜라, 펩시란 상표를 달고 인간의 침샘을 자극했다. 목울대로 삼킨 당(糖)은 곧 쾌락을 삼키는 일이었다. 미각으로의 전율은 가속페달을 밟으며 단맛의 래칫 효과를 끝없이 부채질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포장된 쾌락은 눈에 멈췄다. 1920년쯤 사진과 영화는 값이 내려 접근성이 높아졌다. 포장된 광경은 본 것을 보존하고 갈 수 없는 곳으로 눈을 확장했다. 사진과 영화는 '지적 숙고'보다 '관찰적 숙고'를 촉진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열광하는 시각적 쾌락은 '생각할 틈'을 대체했다. 렌즈와 스크린 앞에 선 시간이 늘어날수록 태양의 일몰, 바람 부는 숲, 비 내리는 창을 쳐다볼 시간은 줄었다. 휴대폰 액정에서 그 광경을 볼지는 몰라도.

바야흐로 포장된 쾌락 가운데 담배보다 치명적인 쾌락은 없다. 악마적인 타르는 폐부를, 전율하는 니코틴은 뇌신경까지 탐했다. 1866년 잎을 부수는 기계가 발명되자 담배 제조는 기계화됐고, 이제 중독적 소비로 이어졌다. 일종의 사회적 의례로 가끔 피우던 담배가 포장된 상품으로 등장하자 담배는 '식후땡'과 '모닝담배'라는 이름을 달고 강박과 중독의 사물로 변질됐다. 술은 누군가에게만 중독이지만, 담배는 누구에게나 중독이라고 저자는 꼬집는다.
인간의 역사를 두고 '감각 저장의 역사'라고 규정한들, 오감의 쾌락이 상품화된 시대를 산다고 경고한들 무엇이 달라질까. 쉽게 말해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질문에 펜실베이니아대와 스탠퍼드대 교수인 두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첫째, 새 만족의 원천을 찾아 보세요. 둘째, 감각을 재훈련시키세요. 셋째, 쾌락의 문명 이전에 인간은 자연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쾌락만 좇는 '21세기판 그루누이'들에게 책의 울림은 크다. 잠시 소설 '향수'로 돌아간다면 이 대목을 떠올리는 게 불가피하다.
그루누이는 향기의 절정을 추구할지언정, 자신의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아무런 냄새도 없었다. 기이한 일이었다."
혀, 눈, 귀, 신경의 쾌락을 찾는 우리들이 각자의 심연을 보지 못하면 포장된 쾌락들은 한갓 무의미한 일일 터. 결국 책은 중독되어야 할 대상은 콜라나 담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고 말한다.
[김유태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한국인 메이저리거 '호호호' 모두 안타
- '빅보이' 이대호도 뛸 때는 뜁니다
- 이변으로 시작한 US오픈
- 커리 퇴장·르브론 41점..NBA 우승은 7차전에서
- 너한텐 절대 안져..역사 속 악연 국가들 치열한 대결
- 강경준, 상간남 피소…사랑꾼 이미지 타격 [MK픽] - 스타투데이
- AI가 실시간으로 가격도 바꾼다…아마존·우버 성공 뒤엔 ‘다이내믹 프라이싱’- 매경ECONOMY
- 서예지, 12월 29일 데뷔 11년 만에 첫 단독 팬미팅 개최 [공식] - MK스포츠
- 이찬원, 이태원 참사에 "노래 못해요" 했다가 봉변 당했다 - 스타투데이
- 양희은·양희경 자매, 오늘(4일) 모친상 - 스타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