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게 포장된 저렴해진 '쾌락'..五感을 중독시키다

김유태 2016. 6. 17. 15:48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하여 / 게리 크로스·로버트 프록터 지음 / 김승진 옮김 / 동녘 펴냄통조림·초콜릿·MP3 등 자본주의 상품화의 폐해현대인들 중독적인 소비..말초적 만족 벗어날 필요
영화화된 소설 '향수'(1985)의 살해 장면. 주인공 그루누이는 여인의 향(香)을 탐했다. "그가 사랑하는 것은 오직 그녀의 향기뿐이었다. 다른 어느 것도 아닌 그 향기." 욕망의 종착역은 쾌락이고, 쾌락은 오감과 맞닿았는데, 그루누이는 후각에 빠져든 셈이다.

18세기 살인자의 심연에 설득당하는 까닭은, 인간은 그루누이처럼 쾌락을 추구하는 동물이어서다. 인간은 '아름다운 것은 영원하지 못하다'는 명제를 배반해왔고, 그루누이는 그 상징이다.

그루누이처럼 쾌락을 추종하는 현대인을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하여'라는 책에서는 욕망의 동물로 바라본다. 제목의 핵심어는 '중독'이지만 책의 주제어는 '쾌락'이다. 원제마저 '포장된 쾌락(Packaged Pleasures)'이다.

자본주의는 대중에게 가장 우아한 방식으로 쾌락을 포장해 건넸다. 그루누이에게 향수가 악취의 반작용이었던 것처럼 무미(無味)의 반작용으로 단맛의 스니커즈가, 망각의 반작용으로 DSLR 카메라가, 소음의 반작용으로 아이팟이 탄생했다.

포장된 쾌락은 먼저 혀를 겨냥했다. '튜브(tube)'는 쾌락의 요물이다. 무수히 많은 용기(容器)에 먹거리가 담기면서 미각적 쾌락은 국경을 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과일이나 고기를 끓여 코르크로 밀봉하는 병조림법을 1809년 고안한 니콜라스 아페르에겐 프랑스 정부의 상금 1만2000프랑보다 '통조림의 아버지'란 명성이 더 값졌다. 그 뒤 진공기법, 냉장, 깡통따개 등의 기술이 결합돼 '맛의 소비'는 결국 '맛의 중독'으로 이어졌다. 왜일까.

래칫 효과(rachet effect)란 단어는 한 번 상승한 수준이 여간해서 하락하지 않을 때 쓴다. 단맛은 쾌락중추를 희롱했다. 식탁에 설탕이 부어지는 걸 거부한 문화권은 없었다. 찻잔에서, 커피잔에서, 빵에 바르는 잼에 설탕이 추가됐다. 단맛은 허쉬초콜릿, 구구클러스터, 스니커즈, 코카콜라, 펩시란 상표를 달고 인간의 침샘을 자극했다. 목울대로 삼킨 당(糖)은 곧 쾌락을 삼키는 일이었다. 미각으로의 전율은 가속페달을 밟으며 단맛의 래칫 효과를 끝없이 부채질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포장된 쾌락은 눈에 멈췄다. 1920년쯤 사진과 영화는 값이 내려 접근성이 높아졌다. 포장된 광경은 본 것을 보존하고 갈 수 없는 곳으로 눈을 확장했다. 사진과 영화는 '지적 숙고'보다 '관찰적 숙고'를 촉진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열광하는 시각적 쾌락은 '생각할 틈'을 대체했다. 렌즈와 스크린 앞에 선 시간이 늘어날수록 태양의 일몰, 바람 부는 숲, 비 내리는 창을 쳐다볼 시간은 줄었다. 휴대폰 액정에서 그 광경을 볼지는 몰라도.

쾌락의 다음 정거장은 귀였다. 고(高)칼로리로 꽉 찬 초코바와 탄산수처럼 치명적 영향은 아닐지라도, 카세트테이프와 CD와 MP3에 이어 아이팟은 청취를 개인화했다. 콘서트홀에서의 '떼창'은 흔적일 뿐이며 한데 모여 노래를 부르던 음악적 전통도 사라졌다. 가정은 기업 생산품이 파고든 대중문화 현장으로 탈바꿈했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사유할 틈마저 청각적 쾌락으로 채워 넣었다. 헤드폰에 이어 등장한 이어폰은 '모든 공간의 BGM화'를 이끌었다.

바야흐로 포장된 쾌락 가운데 담배보다 치명적인 쾌락은 없다. 악마적인 타르는 폐부를, 전율하는 니코틴은 뇌신경까지 탐했다. 1866년 잎을 부수는 기계가 발명되자 담배 제조는 기계화됐고, 이제 중독적 소비로 이어졌다. 일종의 사회적 의례로 가끔 피우던 담배가 포장된 상품으로 등장하자 담배는 '식후땡'과 '모닝담배'라는 이름을 달고 강박과 중독의 사물로 변질됐다. 술은 누군가에게만 중독이지만, 담배는 누구에게나 중독이라고 저자는 꼬집는다.

인간의 역사를 두고 '감각 저장의 역사'라고 규정한들, 오감의 쾌락이 상품화된 시대를 산다고 경고한들 무엇이 달라질까. 쉽게 말해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질문에 펜실베이니아대와 스탠퍼드대 교수인 두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첫째, 새 만족의 원천을 찾아 보세요. 둘째, 감각을 재훈련시키세요. 셋째, 쾌락의 문명 이전에 인간은 자연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쾌락만 좇는 '21세기판 그루누이'들에게 책의 울림은 크다. 잠시 소설 '향수'로 돌아간다면 이 대목을 떠올리는 게 불가피하다.

그루누이는 향기의 절정을 추구할지언정, 자신의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아무런 냄새도 없었다. 기이한 일이었다."

혀, 눈, 귀, 신경의 쾌락을 찾는 우리들이 각자의 심연을 보지 못하면 포장된 쾌락들은 한갓 무의미한 일일 터. 결국 책은 중독되어야 할 대상은 콜라나 담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고 말한다.

[김유태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