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파 & 유로 유랑기 6편] 유로 2016 1~3 일 차 풍경

양정훈 2016. 6. 14.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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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파 & 유로 유랑기 6편] 유로 2016 1~3 일 차 풍경



(베스트 일레븐=파리)

Day8 – 2016년 6월 10일

지난 6월 10일, 유로 참관을 앞두고 인천발 파리행 에어 프랑스 267편에 몸을 실었다. 평소 지연 운항이 잦기로 소문난 항공사여서 조금 걱정됐다. 하지만 현지 시간 개막전 당일 오후 2시 조금 넘은 시각 도착 예정 스케줄을 고맙게도 앞당겨 줘, 프랑스로 향하는 발길은 한결 가벼워졌다. 같은 비행기에는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축구 팬 한 가족 세 명과 대전 시티즌 여성 서포터 한 명이 동승했다. 이들은 지난 여러 번의 월드컵도 직·관을 실천했을 만큼 축구광으로, 이번엔 유로 첫 경험에 나서는 길이었다.

1992 스웨덴 대회부터 <스포츠 서울>이 시작한 한국 언론의 유로 현장 취재는 최근까지도 꾸준히 이어졌다. 우리 축구 팬들에게 열띤 현장 소식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의미 있는 통로가 돼 왔다. 온라인보다 신문 매체가 더 친숙한 많은 사람들에게 본고장 유럽 축구의 묘미를 제대로 전하는 구실을 해 온 것이다. 축구가 더욱 널리 사랑받길 원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이번 유로에 관한 기사들이 반갑고 즐겁게 기다려진다.

파리 샤를 드 골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마치고 도착 로비로 나섰다. 생각과는 다르게 유로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지는 않았다. 곧 홈 팀 프랑스와 루마니아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유로가 시작되는 곳임을 알아차릴 수 있는 간단한 표식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작년 겨울 참담하고 비극적이었던 테러와 근래 터진 홍수 등 잔치가 벌어져도 마냥 즐거워할 수 없는 개최지 분위기를 반영하는 듯했다. 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축구 팬들도 그리 많진 읺아 보였다. 오후 9시에 열릴 경기까지 6시간 정도가 남아 직접 관전 예정인 팬들, 특히 루마니아 서포터들이 이곳에 닿기엔 조금 늦은 시간대기는 했다.


공항에서 파리 시내로 향하는 RER B열차를 타고 경기장 이름이 담긴 역에 내리자, 유로 2016 엠블럼으로 한껏 치장한 생드니의 스타드 드 프랑스가 위용을 드러냈다. 티켓을 갖지 못한 팬들도 경기장 둘레에 늘어선 가판에서 맥주와 간식을 즐기며 유로 개막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경기장 주변에선 여느 대회와 마찬가지로 달아오른 축구 열기를 뜨겁게 느낄 수 있었다. 개막전 참관을 위해 간단한 수속을 밟고, 걸어서 30분 거리의 호텔에 체크인했다. 킥오프는 9시지만 10여 분 정도의 간략한 식전 행사가 예정돼 있어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 8시 반 입장을 목표로 걷기 시작했다. 아까 봐 둔 가장 가까운 입구에 여유 있게 도착했지만, 경기장 안전 요원들이 줄선 팬들을 뒤로 물리기 시작했다. 안전상 문제라고만 밝혔지 구체적 이유는 대지 않으면서, 경기장을 거의 반 바퀴 돌아 다른 문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열심히 뛰어 자리에 앉자 다행히 식전 행사 말미였다. 물론 경기는 온전히 참관할 수 있었다.

두 팀 모두 첫 경기고 전체 개막전이란 타이틀이 붙어서인지 초반엔 조심스럽게 전술을 운영했다. 루마니아가 스스로 의도한 수비 태세를 맞아, 프랑스는 적극적 공격 의사를 내비쳤다. 전열이 채 가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애서 웅크리고 있던 루마니아의 일발 역습에 거의 골이나 다른없는 슈팅 찬스를 내준 건 전반 4분 무렵이었다. 이후엔 프랑스가 6:4 정도의 점유율 우위를 가져가며 전체 흐름을 주도했지만, 골의 향기를 짙게 풍기는 양질의 슈팅이 반드시 점유율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재차 상기시키는 플레이가 한동안 이어졌다. 파예는 풍부한 활동량, 허를 찌르는 패스, 정확한 크로스를 선보이며 1골 1어시스트로 팀 승리에 결정적으로 공헌했다.

루마니아도 선제골 실점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얻은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따라붙었으나, 종료 직전 파예에게 중거리 결승포를 허용하며 아쉽게 패하고 말았다. 이번 대회는 총 참가 팀 수가 지난 대회까지의 16개에서 24개로 늘어 6개 조 3위 중 상위 4개 팀이 16강에 합류한다. 루마니아가 프랑스와 벌인 대결에서 보인 선전을 나머지 스위스전과 알바니아전에서도 이어 간다면, 16강 가능성은 열려 있다.


Day9 – 2016년 6월 11일

새벽 5시에 기상해 개막전 관전평 원고를 완성하니 7시였다. 호텔 인터넷망으로는 기사 등록 사이트 접속이 되질 않아 모바일 메신저로 송고했다. 오후 3시에 벌어질 대회 두번째 경기 스위스-알바니아전 참관 채비를 하고 북역으로 향했다. 주말의 이른 아침에도 구수한 향기로 유혹하는 빵들은 걷고 있는 거리 곳곳에 마치 우리의 김밥집처럼 늘어선 가게에서 구워지는 대로 즉시 팔려 나가고 있었다. 현지인들처럼 노상의 테이블에 앉아 소세지를 얹은 바게트빵과 레몬맛 탄산수를 맛보며 파리의 아침을 즐겼다.

KTX의 어머니뻘로, 똑닮은 TGV의 출발 플랫폼이 결정되자, 축구 팬들로 보이는 무리들이 몰려들었다. 열차 신호 관계로 철로 위에서 대기한 10여 분을 포함해 한 시간 남짓 좌우가 들판인 한적한 길을 달려 목적지인 랑스에 닿았다. 역 앞에서 팬 존까지 이어진 상점가엔, 이미 빨간 저지 차림의 팬들로 넘쳐났다. 스위스와 루마니아 모두 빨간색이 팀의 상징이라 얼핏 봐서는 구분할 수 없었다. 잘 살펴보니 미색의 둥그스런 전통 모자(Qeleshe)를 쓴 사람들이 속한 그룹이 알바니아 출신이었다.

오랜만에 유로 무대로 복귀한 알바니아의 수많은 팬들에 경기장을 메웠다. 3만 8000명을 수용하는 랑스 경기장에, 프랑스 현지인 등 중립 관중을 제외하면 스위스 팬들보다 많아 보였다. 약 1만 5,000명 정도로, 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다른 팀들이 동원할 수 있는 관중 수와 비교해도 분명 손색없는 열기였다.

이에 호응할 만큼 좋은 경기력을 보이지 못한 알바니아는 부족한 큰 대회 경험을 드러내며 0-1로 스위스에 패했다. 넘치는 의욕만큼 전술의 준비나 이해도가 따라 주지 못했다. 큰 무대가 주는 긴장감도 더해진 탓일까? 볼을 받기 위한 질주는 효율성이 떨어져 무위로 돌아갔고, 골문에 근접한 위치에서 터진 슈팅은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기 일쑤였다. 불필요한 퇴장은 이런 경험 부족과 의욕 과잉을 집약해 보여 주는 듯했다.


반면 노련한 스위스는 공수의 콤팩트한 간격 유지라든지 미드필드를 거치든 거치지 않든 후방에서 슈팅까지 이어 가는 조직적 연계 플레이 숙련도가 알바니아의 수준을 상회했다. 다만 공격 시 완급 조절 문제는 조금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강하고 빠르게 폭발하는 동시다발적 움직임이 골에 근접한 슈팅 찬스를 만들어 낼 확룰을 높이는 건 맞다. 그래도 상대방 수비가 대형을 잘 구축하고 있거나, 아군의 공격 진행 속도가 일시 같은 방향의 이미지로 동기화되기 전엔 패싱을 통한 포제션 플레이로 잠시 진정시키는 순간이 요구된다.

잠시 수비가 흐트러진 틈을 찔려 골키퍼와 1대1 찬스도 허용한 스위스지만 노련하게 한 골 차 리드를 지키며 승점 3을 확득했다. 이번 대회부터는 6개 각조 3위 중 상위 4개 팀이 16강에 진출하기 때문에, 초반에 획득한 승점은 더 큰 가치를 지닌다.

경기가 끝난 후, 랑스역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파리뿐만 아니라 북동쪽으로 멀지 않은 릴과 릴에서 멀지 떨어지지 않은 벨기에 브뤼셀에서부터 모인 팬들이 각자의 목적지로 향하는 열차에 하나둘 올라탔다. 파리로 출발한 오후 6시 36분 TGV가 갑자기 아라스역에 멈춰 서더니, 모든 승객에게 내리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같은 객차의 스위스 팬들이 승무원과 불어로 소통한 내용을 영어로 전해 줬다. 의심스러운 박스가 발견됐는데, 조사를 통해 폭발물 가능성을 배제하기 전까지는 운행 재개를 못한다고 했다. 테러 위협의 영향인지 대회를 맞아 개최 도시나 경기장 외에도 프랑스 전역에서 경계를 더욱 강화한 인상이다. 승객들의 큰 동요 없이 30분 만에 열차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리 남부의 차이나타운에서 약속된 지인들과 식사 모임에 늦지 않고 참석해 몇 끼니 만에 비로소 쌀로 탄수화물을 보충했다.


Day10 – 2016년 6월 12일

새벽에 일어나 어제 랑스에서 참관한 스위스-알바니아전 리포트를 마무리하니 어느덧 8시였다. 파리 파르크 데 프린스 경기장의 보안 검색이 유난히 엄격하고 까다로울 거란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일찌감치 호텔을 나섰다. 지인의 차를 신세 져 4호선 생드니-스트라스부르역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환승 없이 20정거장을 지나 목적지에 도착하니, 30분 정도가 흘렀다. 확실히 파리 지하철의 역 사이 거리는 서울보다 짧다. 자원 봉사자의 안내를 받아 이른 관계자 입구에는 이미 30여 명이 줄을 서서 엑스레이 짐 검색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어 목에 매단 신분증 사진과 얼굴을 여러 번 유심히 살펴보다가, 역시 신분증에 새겨진 바코드를 읽어 기계에 녹색 불이 켜지자 게이트 통과를 허락해 줬다. 작업 공간 입구에서 다시 한번 확인했고, 이곳에서 경기장 스탠드로 난 길의 초입에 또 한 번의 검문이 도사라고 있었다.

어렵사리 참관 좌석을 확보한 후 킥오프까지 남은 시간 브런치 약속이 잡힌 시내로 이동하려고 경기장을 나서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섭씨 23도, 딱 맞으며 기분 좋게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내리는 비는 대회 기간만큼은 축구 도시가 된, ‘원래’는 문화와 예술의 도시 파리에 운치 있는 배경을 더해 줬다. 비는 축구와 상충되지 않는다. 기후, 환경, 날씨의 불확실성과 축구가 병립 가능한 건 불규칙한 잔디 위에서 둥근 공을 발로 차 슈팅으로 연결하고 골이란 결과를 묵묵히 기다려야 하는 축구의 불확실성이란 속성이 자연 현상과 맥락을 통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관광객들을 찾아볼 수 없는 이름나지 않은 거리에선, 잠시 축구가 자취를 감췄다. 평범한 일요일의 일상인 듯 가족 단위로 낮 시간의 외식을 만끽하는 현지인들의 모습은 즐거워 보였다. 킥오프 한 시간 반을 앞두고 4호선을 이용해 다시 경기장으로 향했다. 4만 8,000여 석 티켓이 모두 팔려 나갔단 얘길 들었지만, 지하철 역과 교통이 좋은 경기장 주변이 혼잡을 빚지는 않았다. 경기장 밖에선 암표를 사려는 이와 팔려는 이가 뒤섞여 있었다. 저렴한 가격의 카테고리 3(55유로)과 4(25유로)는 물량이 거의 없었고, 카테고리1(145유로)와 2(105유로)는 모두 200유로 정도에 거래가 됐다. 킥오프가 임박하자, 스탠드는 오늘 경기를 갖는 터키와 크로아티아 팬들로 가득 찼다.


터키는 포지셔닝의 밸런스가 잘 갖춰진 팀이었다. 수비 시에도 필드를 넓게 사용하며 크로아티아 공격의 행동 범위를 축소시켰다. 벌어질 수 있는 최종 수비 라인 사이사이 공간이나 라인 간격도 균형이 잘 갖춰진 움직임으로 커버했다. 팀 전체가 짜임새 있게 조직된, 잘 준비된 터키였다. 그런데 축구의 창의성이라든지 공격의 최종 목표인 슈팅과 그 결과로 나타나는 골은 이런 계획하고 의도한 과정(조직 플레이)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정해지고 고착된 틀을 창조적으로 파괴함으로써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결정적 골을 예감케 하는 공격 장면을 기대하기엔, 터키의 모습은 시스템에 갇힌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크로아티아는 중원의 모드리치가 엮어 가는 공격 전개를 중심으로, 측면 풀백의 오버래핑에 이은 골라인 부근의 크로스, 얼리 크로스, 미들 슈팅, 침투 패스등 다양한 공격 루트를 시도해 터키를 공략했다. 하지만 상대의 밸런스 좋고 폭넓게 커버하는 수비 조직을 상대로 좀처럼 틈을 벌리지 못했다.

결승골이 터진 장면은 계획된 상황이 아니었다. 골문 앞 혼전 중에 페널티 아크 쪽으로 흘러나온 볼을 모드리치가 직접 슈팅으로 연결했고, 골키퍼 손 앞에서 지면에 바운드되며 그물을 갈랐다. 크로아티아 팬들조차 일제히 일어서 놀라움을 표시할 만큼 두드려도 열리지 않던 문을 깨부순 깜짝포였다. 골 장면은 지면 위에서 무딘 발로 공을 차 슈팅이란 목적을 달성하고 골이 되길 바라야 하는 축구란 스포츠의 의외성을 함축적으로 보여 주는 예시가 될 수 있다.

경기 후 이스탄불로 돌아간다며 샤를 드 골 공항행 콜택시를 불러 놓고 기다리던 터키의 남녀 축구팬 한 쌍은 "상당히 지루한 경기였다. 양팀 모두의 책임이다"라고 아쉽고 불만 섞인 경기 관전 소회를 털어놨다. 같은 경기를 보고도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고, 다양한 방향으로 의견을 개진해도 이상치 않은 게 또 축구의 한 매력이다. 그렇지만 만약 지루함(?)이 이 경기 문제였다면, 그 책임은 크로아티아가 아니라 터키 쪽 책임일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았다.

글·사진=양정훈(derutan@officelf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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