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풀리자 '리비아-이탈리아 루트'로 몰려든 난민들

인현우 2016. 5. 2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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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난민은 위험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위험에 처해 있다"

발칸반도를 통해 유럽으로 향하는 길이 막힌 가운데 ‘리비아-이탈리아 루트’가 난민의 유럽 진입에 핵심 경로로 떠오르고 있다. 더구나 날씨가 풀리면서 유럽행 보트에 몸을 싣는 난민들이 급증하고 있어 유럽 각국에 비상이 걸렸다. 게다가 지중해를 건너는 유일한 수단인 낡은 보트나 선박은 거친 파도에 뒤집히기 일쑤여서 지중해는 또다시 난민들의 무덤이 되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28일(현지시간) 아일랜드 군함이 12m짜리 고무보트에서 난민 123명을 구조하고 시신 1구를 수습한 것을 포함해 이탈리아와 독일 함선들이 시칠리아섬 남쪽 지중해에서 난민 668명을 구조했다. 이탈리아 해안 경비대에 따르면 23일부터 29일까지 약 일주일간 무려 1만3,000여명의 난민이 유럽연합(EU)의 해상 순찰 함정에 구출됐다. 한 이탈리아 군함은 25일 난민을 태운 어선 1척이 뒤집히는 모습을 현장에서 목격해 562명을 극적으로 구출했다.

난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파도에 휘말려 바다를 건너지 못한 희생자도 수백명 발생했을 것으로 보인다. 페데리코 포시 유엔난민기구(UNHCR) 대변인은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확실하진 않지만 이번 주 발생한 세 건의 난파사고로 700명에 달하는 난민들이 익사했을 것으로 우려된다"고 밝혔다.

겨울에는 소강 상태였던 리비아와 시칠리아 사이 난민 이동은 계절이 바뀌면서 급증하고 있다. 유엔 난민기구에 따르면 이탈리아에 도착하는 난민은 1월 5,000여명에서 5월 1만2,000여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때문에 이탈리아 해군 함정 한 척이 27일 구조한 난민 135명과 45구의 시체를 싣고 이탈리아 본토 남부 레조 칼라브리아로 향하는 등 시칠리아의 난민 수용소도 수용 한계를 넘었다.

EU당국은 ‘발칸 루트’의 폐쇄와 북아프리카의 정정불안이 이탈리아 유입 난민의 급증으로 이어졌다고 우려했다. 실제 그리스와 국경을 맞댄 마케도니아를 비롯한 발칸 국가들이 국경을 선별적으로 통제하기 시작했고 마케도니아-그리스 접경 이도메니의 난민촌은 완전 폐쇄됐다. 나이지리아와 세네갈, 감비아 등의 내전 및 리비아의 정정불안도 난민 이동을 부추긴다. 리비아는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의 붕괴 이후 서부 트리폴리와 동부 토브룩에 각각 의회가 세워진 데다 극단주의 세력 이슬람 국가(IS)마저 개입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도날트 투스크 EU정상회의 상임의장은 “리비아의 혼란으로 터키처럼 난민 송환 협정을 맺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유럽에서는 반난민 정서도 확산되고 있어 유럽 각국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EU는 난민들이 최초로 도착한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부담을 나눠 지자는 취지로 각국에 수만명의 난민을 분산 배치하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헝가리ㆍ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의 반발로 실제 실행은 극히 일부에 그쳤다. 발칸 루트의 봉쇄를 주도했던 오스트리아는 물론 스위스와 프랑스도 유럽내 통행자유를 규정한 솅겐 조약 적용을 중지하고 이탈리아와 접한 국경 부분 통제에 돌입했다.

그러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나서 난민을 외면하는 유럽 분위기에 우려를 표했다. 교황은 28일 난민 고아를 포함한 어린이 400명과 만난 자리에서 “난민은 위험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위험에 처해 있다”며 난민 문제를 숫자가 아닌 인도주의적인 관점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지난달 16일 난민들이 모인 그리스 레스보스섬을 방문해 난민 12명을 바티칸으로 데려오기도 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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