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상의 입시 속 의미 찾기] 서울대 지원자들이 데미안을 많이 읽은 이유는?

조선에듀 2016. 5. 23.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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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진상입니다. 서울대 웹진 아로리는 얼마 전 ‘2016 학년도 서울대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이라는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지난 2014년 기사에 이은 두 번째 독서 관련 기사였죠. 이번 아로리 기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의미 있는 통계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해 서울대 지원자 18,950명 중에서 자소서 4번 독서 활동에 적힌 권수는 모두 4만4천48건입니다. 한 학생이 3권을 적을 수 있기에 실제 책의 종류는 1만4천41권입니다. 4800명은 2단계에서 자소서를 제출하는 미대 지원자들이었겠죠. 이 중에서 지원자 중 오로지 자신만 읽은 책의 제목도 9,471권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2명 이상 거론한 책보다 자신만이 거론한 자신만의 책이 두 배 가까이 많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숫자는 2015학년도 9,011건, 2014년 8,700건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서울대는 지원자들이 지닌 독서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는 해석을 달고 있습니다. 서울대 지원자들의 자소서를 볼 때 교수님들은 2권은 항상 새로운 책을 보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위의 표는 1만4천여권의 책 중에서 서울대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도서 베스트 20을 추린 겁니다.

1위부터 19위까지 모두 외국 작가라는 점, 지난해 베스트셀러였던 ‘미움 받을 용기’가 10위 안에 들었다는 사실(올해는 2를 쓰는 학생들이 늘겠죠?), 그리고 같은 작가의 작품이 2권이 올라와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그 작가는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문호 헤르만 해세입니다. 오늘은 헤르만 해세의 데미안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표에서 헤르만 해세의 이름을 발견하고 무척 놀랐습니다. 예전에는 참 많이 읽었는데 요즘 학생들은 잘 안 읽는, 아니 ‘안 읽히는’이 맞겠네요, 작가가 해세거든요. 하지만 제가 서평 수업의 텍스트로 가장 많이 활용한 작가와 책이 바로 해세였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황야의 이리(히피들의 교과서로 불리는 작품인지라 청소년들에게 권하기가 어렵더군요)를 제외한 데미안 수레 바퀴 아래서 싯다르타 지와 사랑을 갖고 골고루 수업을 해보았는데 난해하다거나 지루하다거나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물론 읽고 나서 감동을 받았다거나 힐링이 되었다, 깨달음을 얻었다, 자아를 찾는 계기가 되었다는 반응도 있었습니다만 소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실제 서울대 자소서에서 해세의 유명세에 비해 생각보다 많이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데미안의 경우, 2000년대 후반까지는 자주 보았지만 2010년도 이후에는 확실하게 빈도수가 줄어들었습니다. 실제 서울대 발표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014년도에는 20위 밖에 있던 책이었거든요. 그러다가 2015년에 9위로 점프, 드디어 2016년도에는 4위까지 치고 올라온 것이지요. 문학 작품 중에서는 1위네요. 최근 들어 데미안이 갑자기 주목 받게 된 이유, 아니 서울대 지원자들의 자소서에서 많이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2015학년도부터 학종이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학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전공적합성이고 전공적합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전 단계로서 자아정체성에 대해 알아야한다는 인식도 덩달아 늘었습니다. 즉 자신을 알아야(자아정체성)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잘 할 수 있는 것(전공적합성)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걸 학부모와 학생들도 깨닫게 된 것이지요. 자아 정체성을 찾는 데 데미안 이상의 책이 없다는 사실은 서울대 교수님은 물론 학부모와 학생들도 잘 알고 있죠. 그래서 데미안을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권하고 자녀들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스스로 찾아 열심히 읽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공대 의대 인문대 사과대 미대 등 전공이나 계열에 관계 없이 폭넓게 인용되는 작가가 해세라는 사실입니다. 해세의 책이 독어독문과나 독어교육학과 지원자들의 자소서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는 게 아니거든요. 해세의 책을 상징하는 키워드는 저는 양가성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의 책에는 동양과 서양 기독교와 불교 기술문명과 정신문명 등이 모순되지 않게 공존하고 있거든요. 마치 데미안에게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는 것처럼요. 그래서 폭이 넓습니다. 어떤 전공에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그리고 어떤 성향에서든 데미안을 갖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습니다. 서평보다 자소서에 쓰기 딱 좋은 텍스트가 데미안이라고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이지요.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실제 서울대 합격생들은 데미안을 자소서에 어떻게 썼을까 궁금하시죠. 다음의 몇 가지 사례를 통해 학생들이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활용하는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사례 1)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저는 꿈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그냥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판사나 변호사, 공무원을 꿈으로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 ‘과연 행정공무원이 내가 원하는 일일까?‘ 라는 등 제 꿈에 대해 의심이 들었고 때 마침 중학교 때 읽었던 데미안이란 책이 떠올라 다시 찾아 읽었습니다. (중략)

사례 2)

이 책은 여러 번 읽을 때마다 제 나름의 의미가 만들어지는 책입니다. 중학교 때 처음 읽었을 때는 무얼 말하는지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고 1 때 한 번 더 읽은 후에는 중간에 나오는 가장 유명한 명언에 사로잡혔습니다. 바쁜 3학년 때에는…(중략)

사례 3)

(생략)

무언가 알 수 없는 불안과 걱정이 저와 같은 청소년기에는 있습니다. 이 책은 제가 선택한 길이 정말 제가 원하는 길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생각을 하게 한 후 결정을 하게 하는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세 편의 자소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데미안은 여러 번 읽은 학생들이 많습니다. ‘중학교 때 읽었다가 고등학교 때 읽어 보니 이렇더라’라는 접근이 많습니다. 책을 톨해서 자신이 발전하고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기에 ‘딱’이라는 이야기지요. 책이 자신에 미친 의미, 자신에게 미친 영향 혹은 변화를 기대하고 있기에 ‘데미안’은 평가받기에 아주 매력적인 책이란 이야기입니다. 세 학생은 공대부터 사범대까지 전공은 모두 다르지만 이 책을 읽고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가 긍정적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사례 1의 학생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삶의 추구 방식은 누구나 다를 수 있다는 사실, 사례 2의 학생은 기술 혁신 속에서 심리적 불안감을 극복하고 제 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자세를 갖게 되었음을, 사례 3의 학생은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그 길에 대한 확신을 깨닫게 해주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해세의 ‘데미안’은 인성, 자아성숙도, 사고의 깊이 등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이라는 이야기죠. 200명이 데미안을 갖고 써도 200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사족 하나 덧붙이자면 저도 수업을 위해 데미안을 다시 읽었는데 저는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테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라는 문구보다 다음 구절이 흔들더군요. 책을 읽고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베아트리체>;

나의 내면은 이랬다. 사방을 헤매 다니며 세상을 얕잡아 본 자여! 왜곡된 정신으로 데미안의 사상에 기대던 자여! 쓸모 없는 인간으로, 추잡하게 술에 취해 더럽고 구역질 나는 저급하게 거칠어진 짐승이여, 악한 충동의 노예가 되어 버리는 것 말고는 달리 도리가 없겠지! 온갖 청순함 그리고 빛과 사랑스런 마음에 가득 차 있던 정원에서 자란 나. 바흐의 음악과 시를 사랑했던 나, 이런 내가 그런 모습이 될 수 있다니! 술에 잔뜩 취해 자제력을 상실한 채 충동적이고도 바보처럼 낄낄거리던 내 자신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들려오는 듯해 나는 심한 구역질과 분노를 느꼈다.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

해세는 정말 대단한 작가입니다. 해세의 데미안을 읽고 나면 싱클레어나 데미안, 피스토리우스, 프란츠 크로마가 아닌 독자 자신의 얼굴(영혼의 민낯이라 부르고 싶군요)을 발견하게 되니 말이지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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