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면서 즐기는 와인 한 잔의 여유

2016. 5. 9. 11: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와인기행 - 7]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마라톤 축제가 9월 13일 오전(현지시간) 프랑스 메도크 마을에서 시작됐다. 올해로 30회째를 맞은 '메도크 마라톤(Marathon du Médoc)'은 샤토 무통 로트칠드나 샤토 라투르 등 보르도 최고 명성의 샤토 50여 곳과 잘 익은 포도가 탐스럽게 열린 포도밭을 지나는 코스로 돼 있다.

우리에게는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에 소개되면서 유명해진 이 대회의 가장 큰 특징은 42.195㎞ 구간을 와인을 마시며 달린다는 것이다. '와인을 마시며 마라톤을? 말도 안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사실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와인을 마시며 풀코스를 완주한다. 비록 6시간 동안 걸어서 올지라도.

참가자들은 힘차게 달리다가 샤토 라피트 로트칠드 등 23곳의 샤토에서 와인으로 에너지를 충전한다. 보르도 최고급 와인을 2㎞마다 한 번씩 맛볼 수 있으니 와인 애호가에게 이보다 매력적인 대회가 또 있을까? 하지만 다음 와인을 맛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계속 뛰거나 걷는 것이다. 차나 자전거를 타는 것은 금지다. 아! 세상에 쉬운 게 없다.

이 대회의 모토가 '와인, 스포츠, 축제 그리고 건강(Vin, Sport, Fête et Santé)'인 이유가 있다. 평소에 몸 관리를 꾸준히 해야만 이 축제와 와인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참가자들은 매해 새로운 주제에 맞는 복장을 준비한다. 물론 의무는 아니다. 하지만 축제를 더 재미있게 즐기는 방법인 것은 확실하다. 올해의 주제는 '세계 각 나라와 그들의 축제(Les Pays du Monde et leurs Carnavals)'다. 그래서 참가자들은 자신의 나라와 지방, 그리고 축제를 상징하는 복장을 하고 달렸다. 재미있는 복장이 많았는데,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영화 '아스테릭스(Astérix)'의 주인공 모습을 한 팀이었다. 그들이 "골루아(Gaulois·프랑스인의 조상)"라고 소리치자 구경하는 모든 프랑스인이 크게 따라 외쳤고 분위기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역시 노래는 '떼창', 쇼는 '떼쑈(?)'가 진리!

선두 그룹은 올림픽 시합처럼 아주 진지하다. 복장도 그냥 운동복에 와인도 안 마시고 계속 달리기만 한다. 재미없다. 반면 중간 그룹부터는 축제다. 특히 출발 2시간 정도 지나 반환점인 20㎞ 지점이 되면 훨씬 재미있어진다. 슬슬 다리에 힘이 풀리고, 술기운도 올라오는 모습이 역력하다. 하지만 계속 먹고 마시고, 친구들과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사진도 찍으며 축제를 즐긴다. 혼자 참여하지 말고 여럿이서 함께하길 강력히 권한다.

마라톤은 오전 9시 반에 출발해 대략 오후 2~3시에 결승점에 도착한다. 그럼 점심은 어떻게 하나? 걱정하지 말라. 메도크 마라톤에 참가하면 프랑스 남서부 지방 특산 요리를 정통 코스로 맛볼 수 있다. 프랑스, 그것도 풍성한 식탁으로 유명한 보르도에서 축제에 참가한 사람을 굶길 수는 없지 않나?

마라톤 코스의 중간을 지나면 유럽 최대 굴 산지인 아르카숑산 굴이 화이트와인과 함께 놓인 스탠드가 나타난다. 전식으로 굴을 먹고 조금 더 뛰어가서 본식을 먹자. 프랑스에서 쇠고기로 가장 유명한 지역 중 하나인 바자(Bazas)산 쇠고기 등심구이를 준비해놨다. 물론 배부르게 먹을 양은 아니지만, 보르도의 레드와인과 찰떡궁합이다. 40㎞ 구간에 이르러 치즈도 한 조각 먹자. 그러고 더운 날씨에 안성맞춤인 아이스크림 디저트로 마무리한다. 마라톤을 해도 전식, 본식, 치즈, 후식 그리고 와인은 기본이다. 각종 비스킷과 과일은 지천으로 깔렸다. 이곳은 프랑스 보르도다.

올해에는 약 5만명의 참가 신청자 중 1만명만 참가할 수 있었다. 필자도 참가하지 못한 4만여 명 중 한 명이다. 83유로라는 적지 않은 참가비와 프랑스 전역, 유럽, 심지어 아시아에서 와야 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경쟁률이 치열하다. 어떤 이는 "무슨 돈을 10만원 넘게 주고 힘들게 고생하려 하나? 그 돈으로 와인을 사 마시겠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직접 가서 보니 그 인기의 이유를 알 것 같다. 당장 카메라와 수첩을 집어던지고 그들과 함께 달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사진 한 장의 추억은 평생을 함께할 것이다. 2015년 9월 메도크에서 많은 한국인 참가자들과 이 멋진 축제를 함께 즐기길 기대해본다.

[보르도=박우리나라·와인칼럼니스트]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