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없는 아내' 음 읽으면 '시력 없는 남편' 건반 치고..

2016. 5. 1.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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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짬] ‘소록도 성당’ 오르간 연주자 한센인 정봉업씨

왼쪽부터 아내 이공순씨, 정봉업씨.

소록도 성당의 십자가는 붕대를 감고 있다. 붕대를 감은 십자가에서는 눈물이 난다. 눈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큰 눈물방울이 되어 바다에 펑펑 떨어진다. 한센인들의 고통과 아픔을 보여준다. 감아도 감아도 그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육체의 고통은 치유될 수 있어도 정신적 고통은 치유되기 어려웠다. 그래서 한센인들은 눈물을 흘린다. 전염의 가능성이 없는 상태가 되어도 사회적으로 단절됐다. 소록도 성당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에 그려진 십자가의 붕대는 한센인들의 아픔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소록도 성당의 전자오르간 반주자는 한센인이다. 놀라운 것은 그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톨릭 성가 580곡을 모두 외워서 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한센병 후유증으로 손가락이 자유롭지 못한데다, 실명인 상태에서 오르간을 뒤늦게 배웠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한센병과 실명을 준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의 마음으로 보답하기 위해 오르간을 배웠다. 그런 정봉업(71)씨 옆에는 손과 발이 되어주는 아내 이공순(74)씨가 있다. 한센인인 이씨는 손가락이 하나도 없다. 지난 26일 소록도 신생리 정씨 자택 앞에서 부부를 만났다.

한센병으로 29살부터 소록도 생활
수녀 중매로 아내 이공순씨와 결혼
이씨도 양손 뭉그러진 한센인



오르간 입문 14년만에 성당서 연주
연습으로 망가진 녹음기만 10여대
“내 연주가 한센인에게 용기 주길”

어린 시절 학교 다니며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할 만큼 평범하게 살다가 한센병이 발병한 정씨는 29살의 젊은 나이에 소록도에 왔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아야 하는 정신적 고통보다 한센병 증세로 온몸이 지독하게 아픈 것이 더 큰 고통이었다. 신경통 약을 달고 살았고, 정신과 치료도 받아야 했다. 한때는 암 증세를 의심해 서울의 큰 병원에 가서 암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고 실망했다고 했다. 진통이 심해서 차라리 암에 걸려 세상을 뜨기 바랐다고 한다.

소록도 성당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에 그려진 십자가의 붕대

고난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두 눈을 못 보게 된 것이다. 독한 진통제를 끊은 지 사흘 만에 눈에 염증이 생기기 시작했고, 전염 우려가 있는 양성 한센병을 앓는 도중이어서 안과 수술을 하지 못해 끝내 시력을 잃고 말았다.

세상은 암흑천지였다. 희망의 불씨를 찾아볼 수 없었다. 매일 자살을 생각했다. 그런 그를 도와준 이가 바로 오스트리아에서 와서 봉사 중인 수녀 마리안느 스퇴거였다. 수녀의 극진한 도움으로 32살 나이에 세례를 받고 새 인생을 시작했다. “사람 목숨은 하느님께 달려 있고, 제가 겪는 고통도 하느님의 섭리라고 받아들였어요. 무의미하게 살아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지요.” 당시 심한 허리디스크를 앓고 있던 마리안느 수녀는 진통제도 먹지 않고 버티며 봉사를 했다. 그런 수녀의 모습을 보면서 정씨는 세상을 위해 봉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성당에 오르간 반주자가 없었다. 전에 그는 어떤 악기도 배워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반주를 하고 싶었다.

소록도를 방문한 수녀에게서 우연히 아코디언을 선물받은 정씨는 학교 때 배운 음악 이론을 기초로 아코디언을 혼자 연습했다. 그때 눈이 되어준 이가 아내 이씨였다. 이씨는 이미 결혼해서 아들까지 있었다. 몇년 전 남편과 사별한 이씨는 자신의 아들에게 한센병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고, 그것을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마리안느 수녀가 중매를 섰다. 주변에서는 모두 이들의 결혼을 반대했다. “저에게 모두 미쳤냐고 이야기했어요. 앞도 보지 못하는 이와 왜 재혼을 하냐구요. 하지만 저는 하느님의 축복에 보답하는 길은 앞을 못 보는 그이의 눈이 돼 남은 인생을 봉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정씨는 아내에게 악보 읽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음악 이론을 모르는 아내에게 보이지 않는 눈으로 음표를 그려가며 가르쳤어요. 양손이 모두 뭉그러져 손가락이 없는 아내가 건반을 짚을 수 없어 입으로 ‘도, 미, 솔’ 음계를 읽어주면, 저는 건반을 짚어 한 음 한 음 녹음기에 녹음해 곡 전체의 멜로디를 익혔어요.”

수없이 되돌리기를 반복해 망가진 녹음기만 10대가 넘는다. 정씨는 38살 때부터 오르간을 배우기 시작했다. 한센병 후유증으로 엄지, 검지, 약지만 쓸 수 있어 화음을 넣기는커녕 멜로디마저 끊어지기 일쑤였다. 소록도 성당을 찾아온 방문객들을 만날 때마다 “오르간 연주를 하실 줄 아는 분이 있느냐”고 물어 그들에게 연주를 배웠다. 소록도를 잠시 방문한 신경숙 수녀에게 화음을 배웠다. 7년 동안 매일 전화로 배웠다. 작곡을 전공한 신 수녀는 매일 아침 전화를 걸어 연주법을 묻는 정씨에게 “이제 그만 전화해도 성가 반주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정씨는 오르간 연주를 익히는 것이 너무 힘들어 몇 달씩 아예 오르간을 쳐다보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아내 이씨는 남편에게 용기를 주었다. 새벽 4시부터 밤늦게까지 하루 15시간 이상 오르간에 매달린 정씨는 오르간 입문 14년 만에 처음으로 성당 반주자가 됐다. 그리고 이 연주는 2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가톨릭 성가곡 ‘자애로운 예수’를 특별히 좋아한다는 정씨는 “세상의 모든 고난과 장애 역시 하느님의 섭리이기에 결코 슬퍼하고 좌절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또 정씨는 “자신의 성가 반주가 소록도 주민에게 사랑과 용기를 심어주고 희망을 안겨줄 수 있다면 더없는 기쁨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소록도 성당 김연준 주임신부는 “이 부부의 사랑과 노력이 바로 하느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의 증표”라고 말한다. 정씨 부부가 키우는 강아지는 부부를 유난히 따른다. 이씨가 이야기한다. “강아지들은 인간에 대한 편견이 없어요. 그래서 한센인이라도 이렇게 좋아해요. 인간들보다 나아요.”

소록도/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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