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옥시가 유한회사로 바꾼 진짜 이유는?

문형구 기자 2016. 4. 22.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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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사건③] 인체 유해성 알고도 묵살했을 가능성… “살인범이 이름 바꾼다고 살인범 아닌가?”

[미디어오늘 문형구 기자]

정부의 1,2차 조사 대상(530)에 포함된 사망자 146명 중 103명은 옥시싹싹을 사용했다. 이 103명은 여러제품을 사용한 경우가 아니라 옥시싹싹만을 사용한 피해자들이었다. 그러나 옥시레킷벤키저는 2011년 8월 가습기살균제가 산모, 영유아의 집단 사망의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후에도 사과하지 않았다.

대신 옥시레킷벤키저는 증거인멸에 나섰다.

검찰은 옥시가 홈페이지의 고객상담 게시판에 올라온 수백건의 가습기 살균제 부작용 관련 후기를 검찰 수사 직전에 삭제했다고 밝혔다. 이들 게시글들은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가 2001년부터 올린 것으로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초기부터 알고 있었다는 중요한 정황이다.

▲ 지난해 8월 영국의 레킷벤키저그룹(RB) 앞에서 일인시위 중인 9살의 나래 양. 나래는 2011년 폐섬유화로 사망확률이 60%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꾸준한 치료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사진제공=환경보건시민센터
검찰은 옥시가 삭제한 게시판을 복원해, 그 내용이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이 알려진 2011년 이후 피해자들에게 나타난 증상과 상당한 유사성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즉 가슴통증과 호흡곤란, 기침 등 폐와 호흡기 질환 증상들이다. 옥시가 이 제품의 유해성을 인지하고도 판매를 계속했다면 이는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소비자 호소가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실제 소비자들에게 미친 유해성을 옥시측에 알린 것이라면, 그 성분이 ‘유해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는 이미 제조 판매가 이뤄지기 전에 인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옥시는 SK케미칼로부터 원료를 공급받아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했는데, 원료 공급업체인 SK케미칼이 원료에 대한 유해성 경고가 담긴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옥시에 전달했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해 화학 물질을 제조,수입,사용,운반,저장하는 사업주는 MSDS를 작성·비치하도록 돼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2년 옥시레킷벤키저 등을 허위·과장 광고로 징계를 의결하면서 옥시와 홈플러스, 롯데마트 3개 업체가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알고 있음에도 판매했다고 발표했다. PHMG 원료를 생산하는 SK케미칼과 중간도매상 및 제조업체, 옥시레킷벤키저·롯데마트·홈플러스 등에 물질안전보건자료(MSDS)가 모두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는 옥시에 대한 의결을 통해 “원료공급자인 주식회사 SK케미칼이 작성하여 피심인 회사 등에게 제공된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에 이 사건 제품의 주성분을 포함하고 있는 SKYBIO 1125를 유해물질로 분류하여 이 제품을 먹거나 마시거나 흡연하지 말도록 경고하고 있다”고 했다. SKYBIO 1125의 주성분이 바로 PHMG다.

SK케미칼은 2003년에도 호주 정부에 ‘PHMG는 흡입독성이 있으며 상온에서 분말 형태로 존재하는 PHMG가 비산돼 호흡기로 흡입될 경우를 대비해 노동자는 보호장비를 갖춰야한다’는 내용의 MSDS를 제출한 바 있다.

MSDS 이외에도 옥시가 유해성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증거들은 또 있다. <뉴시스>는 19일 유공(현 SK에너지)가 PHMG의 인체 위험성을 17년전 국내에 발명 출원할 당시에 이미 경고했던 사실이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검찰이 확보한 특허출원서엔 PHMG 혼합 물질을 사용할 때 “투입량이 1000ppm을 초과하면 작업자의 안전과 작업성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000ppm을 백분율로 환산하면 0.1%에 해당하는 농도 수치로 가습기 살균제 제품의 PHMG 함유량은 0.12~0.5% 수준이라고 뉴시스는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옥시가 2001년 PHMG를 성분으로 하는 ‘옥시싹싹뉴가습기당번’을 개발할 당시 내부적으로 ‘인체 유해성’ 문제를 논의한 회의록과 자료들을 검찰이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이 문건들은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의 성분의 인체 유해성을 알고도 묵살했을 가능성을 입증할 증거가 될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옥시, “안전하다”고 조작된 보고서 들이대며 피해자 회유

▲ “레킷벤키저가 내 아내를 죽였다”
애경이나 롯데, 홈플러스, 세퓨, 이마트PB도 1,2차 조사대상만 사망자가 공히 10명을 넘는 등 사태의 심각성은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옥시가 지탄을 받는 이유는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이 정부에 의해 확인된 2011년 이후 옥시가 보인 행태 때문이다.

그해 8월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 살균제가 중증 폐질환의 원인이라는 발표를 하자, 옥시는 소비자들에게 사과하는 대신 “(우려를)잘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회사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당사는 고객 여러분들께서 건강하고 안전하게 저희 제품을 사용하시는 것을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점을 거듭 말씀드린다”며 ““앞으로도” “정직하고 품질 좋은 제품만을 제공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수많은 사망자를 만들어내고도 반성하는 태도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면서 옥시는 복지부 발표에 대해 “가장 과학적이고 정확한 방법으로 심도 있는 추가 실험을 자체적으로 실시하고 있다”며, 서울대와 호서대에 동물실험과 노출경로 실험을 각각 의뢰했다. 옥시는 이 보고서를 조작했다. 검찰은 이들 실험이 옥시가 제공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이뤄졌으며 옥시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결과가 나오도록 조작됐다고 보고 있다. 서울대 A교수는 내부 반발을 무마하며 이 실험을 주도했는데, A교수의 개인계좌로 옥시가 수천만원을 송금한 것도 검찰에 의해 드러났다. 또다른 실험기관인 K사에선 옥시 측에 불리한 결과가 나왔는데 옥시는 이 보고서를 은폐한 것으로 전해졌다.

옥시는 이후 벌어질 자사 제품의 유해성에 대한 법정 공방에 대비하면서, 이들 조작된 보고서를 피해자들에게 들이대며 물밑에서 개별적인 합의를 진행해왔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옥시는 피해자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해‘가습기 제품과 관련한 민형사상 청구나 이의 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문구와 함께 ‘손해배상을 한다고 해서 옥시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조정문과 각서를 작성하고 있다. 수년 동안 기업도, 정부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가운데 지칠대로 지친 피해자들을 합의금으로 무마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합의는 검찰수사가 더 진행되기 전에 피해자들과 합의함으로써 이후 사태를 유리하게 이끌어가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 영국 버크셔 주 레킷벤키저 그룹(RB)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며 천막에서 지낸 나래. 사진제공=환경보건시민센터

무수한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갔지만 4년 반 동안 옥시는 한마디 사과도 없었다. 옥시는 한국에 있는 회사도, 영국의 본사에서도 피해자들의 면담 신청조차 일절 거절했다. 물론 롯데, 홈플러스, 세퓨, 이마트 등 다른 재벌기업들의 사과도 없었다. 이들 기업들은,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내고도 책임 회피를 위한 적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는 옥시의 뒤에 숨어있었다. 검찰 수사의 타겟이 옥시에 맞춰진 지금 시점에야 롯데와 홈플러스가 사과를 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정작 피해자들은 이들 기업으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이들의 사과가 ‘옥시’와 자신들을 분리시켜 법적 책임과 비난 여론을 최소화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옥시는 검찰의 소환조사와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이 시작된 이후인 21일에야 뒤늦게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는 입장을 기자들에게 이메일로 배포했다. 그러면서도 옥시는 “저희는 오랜동안 제품의 안전 관리수칙을 준수해온 바 이와 같은 상황에 직면한 적이 없었다” “상당 부분의 사안들이 법원 조정절차를 통해 합의에 이르러 종결되었음을 말씀드린다”는 등 여전히 고압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옥시의 사과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동안의 행보로 봤을 때, 이 뒤늦은 사과 역시 이후 법적인 책임을 둘러싼 공방에 대비하기 위한 차원으로 읽힌다. 유해성 실험조작과 증거인멸 그리고 피해자들에 대한 회유와 함께 옥시는 또 하나의 대비책을 마련해놨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전면화된 2011년 12월12일 옥시는 조직형태를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조직변경했다. 주주·사원, 재산, 상호는 그대로이지만 법적으로는 완전히 별개의 법인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인 법인이 존속하지 않을 때 공소기각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대법원도 2005년 조직 변경으로 기존 법인이 소멸했을 때 형사책임이 존속 법인에 승계되지 않는다는 판례를 남긴 바 있어 검찰이 옥시에 대해 공소권 없음 결정을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유한회사 변경은 단순한 꼼수가 아니다”라며 이후 옥시에 대한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살인범이 이름을 바꾼다고 살인범이 아니냐?”며 “법적인 허점을 이용하려는 것인데 끝까지 책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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