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뉴스]5·18 트라우마 치유하는 꿈작업가 고혜경 "나쁜 꿈은 없다"
[경향신문]

하지만 인터뷰를 끝내고 머리에 맴도는 것은 몇 년 전 유행한 “아~ 좋은데, 참 좋은데,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네~.”라는 광고 카피였다. 대학에서 지질학을, 대학원에서 고생물학을 전공한 고혜경 교수는 미국에서 우연히 꿈에 대한 강의를 듣고 진로를 완전히 바꾸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고, 그 누구도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던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을 꿈을 통해 찾았다.
꿈에 대해 관심을 가진 지 20년, 한국에 와서 꿈작업을 한 지 10년. ‘나는 누구? 여긴 어디?’를 매일 외치면서 갈 길 몰라 헤매는 사람들에게 ‘꿈’이 그 길을 가르쳐준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사람들은 ‘어디서 약을 팔어?’ 같은 반응을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꿈이 ‘참 좋다’는 것을 설명할 방법을 찾느라 고민에 빠진다고 한다. 인터뷰 도중에도 꿈이 왜 좋은지, 왜 꿈꿔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이야기하다가 “이러니까 꼭 약장수 갖죠?”라며 쑥스럽게 되묻곤 해 박장대소하게 했다.
정말 꿈만 열심히 꾸면 내 자신이 누구인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을까? 과연 꿈은 내 슬픔과 절망과 염원을 알고 아무 조건 없이 응원해주는 ‘베프(베스트 프렌드)’가 될 수 있을까? 고혜경 교수는 자면서 꿈만 꾸면 되니까 손해 볼 일도 없으니 ‘약장수’에게 속는 셈치고 한번 믿어보라고 말한다.
“일단 꿈을 꾸고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됩니다. 나쁜 꿈은 없어요. 개꿈도 없어요. 꿈은 그것을 다룰 능력이 있을 때만 기억됩니다. 기억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좋은 소식이에요. 꿈을 잘 기억하기 위해 머리맡에 메모지와 펜을 두고 아침에 일어나면 꿈을 적는 것부터 시작해보세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거예요.”

Q 2012년 설립된 광주트라우마센터와 함께 작업하셨는데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2005년부터 꿈작업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광주 출신 사람들의 꿈을 다루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 ‘광주’(민주화운동)가 들어 있었어요.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위한 집단 트라우마 작업이 필요하다고 늘 이야기하고 다녔죠. 그러다가 광주트라우마센터 강용주 원장의 인터뷰를 신문에서 읽었어요. 가슴이 뭉클했어요. 어느 모임에서 만나게 돼 이야기를 하니 당장 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작업을 하려니까 엄두가 안 났어요. 한국에서 10여 년 동안 그룹투사 꿈작업을 해왔지만 트라우마를 가진 구성원만 모인 그룹은 처음이었거든요. 행여 그분들의 상처를 덧내지는 않을까 염려가 됐습니다. 하지만 꼭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두려움을 물리쳤어요. 2013년에 8주 동안 매주 광주로 내려갔습니다.
Q ‘그룹투사 꿈작업’이란 말이 좀 낯설게 느껴집니다.
세계적인 꿈 연구가이면서 제 스승이기도 한 미국의 제러미 테일러 박사가 창안한 것이에요. 1960년대 후반 인종차별 이슈를 주제로 꿈작업을 시작한 이래 수감자들과 노숙인, 베트남전·이라크전 참전용사들의 트라우마 치유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꿈을 활용한 ‘정의로운 공동체’를 모색해왔죠. 그룹투사 꿈작업은 상대의 꿈을 ‘내 꿈이라면’이라는 1인칭으로 접근하는 것이 핵심이에요.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는 것과 같은 행위죠. 투사는 답을 찾는 것도 아니고, 조언을 해주는 것도 아니에요. 가장 기본은 공감, 연민이거든요. 마음으로 듣고 가슴으로 만나면 기적이 일어나요.
Q ‘국가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국내 첫 작업’이라고 들었어요.
지금까지 5·18 트라우마 치유는 정치·사회적 이슈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어요.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함으로써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은 너무 중요하죠. 이와 병행해 상처를 입은 개인의 육체적, 정신적인 건강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그동안 이 부분이 간과됐던 거죠.
사건이 일어난 지 36년이 됐지만 아직도 피해자들은 그 후유증으로 악몽뿐 아니라 가위눌림, 야경증, 잠꼬대, 몽유병 등 수면장애 증상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역사적 비극이 개인에게 가한 내면적 고통에 철저히 무관심했다는 반증이죠. 2014년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국가적으로 크나큰 사건을 겪은 당사자들에 대한 심리적 지원 문제가 사회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지만,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는 등 아직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합니다. 이번 작업이 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 8주간의 꿈작업 후 참여자들의 증상은 많이 호전되었나요?
이번 꿈작업의 1차적인 목표는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수면장애 증상을 완화해주자는 것이었어요.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가위눌림이 줄고, 수면시간이 많이 늘어났죠. 무엇보다 큰 성과는 자신들이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고,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거예요. 트라우마 악몽은 잠을 자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속수무책으로 죽을 때까지 이런 고통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잠은 일종의 무기 형벌이나 다름없죠.
하지만 외부의 개입으로 트라우마 악몽은 완화되거나 중단될 수 있습니다. 우선 ‘나쁜 꿈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해요. 악몽을 꾸더라도 나를 힘들게 하려는 게 아니라 도와주려는 거라는 사실, 또 꿈에 시달리지 않도록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거죠. 이번 참여자 중에 심한 가위눌림으로 사지가 마비돼 이틀에 한 번 꼴로 응급실에 실려가는 분이 계셨어요. 이런 방법으로 스스로 눈을 뜨려고 한다거나, 몸을 조금 옆으로 움직여보는 노력을 통해서 증상을 완화할 수 있었습니다.
Q 트라우마 악몽은 일반적인 악몽과 어떻게 다른가요?
트라우마 악몽은 충격적인 사건의 장면이 마치 고장 난 영사기가 돌아가듯 밤마다 계속 꿈에 등장하는 겁니다. 일반적으로는 외부에서 충격이 주어질 때 꿈은 이를 완화하면서 몸이 스스로 다뤄낼 수 있도록 도와줘요. 그런데 트라우마는 강한 충격이 마음속에 각인된 채 한 지점에 멈춰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실제로 일어났던 끔찍한 일을 꿈속에서 계속 재경험하는 것이죠.
얼마 전 자살을 기도한 세월호 사고 생존학생 이야기를 들어보니, 배는 기울고 친구들은 객실에 있는데 자신은 시커먼 바다로 뛰어내려야 하는 상황이 매일 반복되는 꿈을 꾼다고 하더라고요. 5·18은 지나간 역사적 사실이고, 트라우마는 신경계에 있습니다. 5·18은 80년의 일인데, 이분들은 아직도 80년에 살고 있는 거예요. 치료란 5·18과 트라우마를 분리하는 겁니다. 그 방법이란 거창하고 심오한 게 아니라 당사자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면서 고장 난 레코드처럼 돌아가는 그날의 악몽을 멈추게 해주는 거죠.
“저는 우리 각자의 마음을 돌보고 상처를 치료하는 것도 ‘일’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흔히 ‘내면 작업’이라고도 하는데, 일 혹은 작업이라 말하는 이유는 성숙하고 건강하게 살려면 누구나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행히도 우리 사회는 이와 같은 내면의 일을 그 값어치만큼 강조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 <꿈에게 길을 묻다> 34쪽

Q 우리 삶에서 꿈은 어떤 의미를 갖는 건가요?
꿈은 말로 채 표현할 수 없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경험과 거기에서 비롯된 심리 상태들까지도 나름의 방식으로 표현해줍니다. 내 영혼을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할까요. 내 존재의 근원에서 꿈을 통해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건네옵니다.
그런데 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말을 듣는 통로가 차단돼 있어요. 눈에 보이는 실재와 근거를 중시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일 해결하느라 급급하고, 내면보다는 바깥 세상에 온갖 촉수가 뻗쳐 있어 무의식의 세계인 꿈 ‘따위’를 돌아볼 여력이 없는 거죠. 하지만 나 자신에게 귀 기울이는 이 길을 열어놓고 정리하고 살면 정말 어마어마한 채널이 생기는 거거든요. 꿈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참나’의 발견이에요. 꿈이 우리를 그곳으로 이끌어갑니다.
Q 현대인들이 꿈과 멀어지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현대의 표식이 스킨딥(skin deep), 즉 표층 아래로 돌아갈 수 없는 피상성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꿈은 저 깊은 무의식의 세계잖아요. 안에 들어가 보면 수많은 가능성이 있는데 딱 보이는 만큼에서 멈추는 거죠. 하지만 영혼에 대한 이슈는 그 안에 있거든요. 요즘 모두들 외롭다고 하는데 타인 때문이 아니라 내 뿌리로부터 내가 소외된 것이 일차적인 이유라고 생각해요. 나를 만나지 않기 위해서 나를 더 바쁘게 만들어요. 휴대폰과 습관적인 TV 시청은 모두 나를 안 만나기 위한 전략이에요.
모든 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건 나와의 관계입니다. 그 다음이 주변 사람과의 관계, 그 다음이 일과의 관계예요.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에너지 투자를 역순으로 하고 살잖아요. 그러다 보니 악순환이 반복돼요. 이젠 내 안을 보고 싶어도 어떻게 하는지 방법을 모르는 거예요. 종교, 명상, 철학, 인문학 등 여러 방법이 있죠. 그런데 어렵잖아요. 하지만 꿈은 어때요? 누구나 잠만 자면 꾸잖아요. 더구나 공짜고요. 이렇게 쉬운 방법이 있는데 왜들 관심이 없는지 모르겠어요.(웃음)
Q 책에는 꿈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는데요. 그 가운데 개꿈이나 나쁜 꿈은 없고 ‘어떤 꿈이든 좋은 꿈’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나쁜 꿈, 좋은 꿈이 있는 게 아니라 꿈꾸는 것 자체가 건강하고 좋은 거예요. 꿈은 삶에서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정보나 힘을 주고, 해야 할 과제도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나를 불행하게 하거나 불리하게 하는 꿈은 없어요. 그런 점에서 저는 꿈이야말로 부작용 없는 로또라고 생각해요. 감사로 가득한 마음의 부를 쌓게 해주기 때문이죠.
보통 악몽이나 가위눌림은 나쁜 꿈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악몽이란 시급한 메시지가 있다는 ‘119 삐뽀삐뽀 사이렌’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마음속에 시급한 문제가 있는데 쿨쿨 잠만 자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거죠. 일반적인 꿈보다 악몽이 훨씬 잘 기억되기 때문에 무의식은 악몽의 형태로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거예요. 그리고 꿈은 그것을 다룰 능력이 있을 때에만 기억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꿈을 아예 기억조차 못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악몽이든 길몽이든 꿈을 기억했다는 사실 자체가 좋은 소식이지요.
Q 꿈을 기억한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이라고 하셨는데, 좋은 방법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저는 20년 동안 ‘꿈일기’를 써오고 있어요. 머리맡에 꿈 공책과 펜을 놓아두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꿈을 기록해요. 기억이 잘 안 나는 날도 있고, 일정 기간 지속될 때도 있어요. 꿈기억률도 수많은 것들에 영향을 받거든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꿈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 무의식에 반영되어 이전보다 훨씬 더 기억이 잘 난다는 점이에요. 처음 상담하러 오시는 분들 중에는 꿈을 안 꾼다고 하기도 하고, 기억이 안 난다고도 하시는데, 나중엔 모두 꿈을 기억해내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아요. 잠에서 막 깼을 때는 생생했던 꿈도 대부분 연기처럼 쉽게 도망가버려요. 꿈이라는 소중한 정보가 사라지지 않도록 기록하는 습관을 가져보세요.
Q 마지막으로 꿈을 파는 ‘약장수’가 되실 기회를 한 번 더 드리겠습니다.(웃음)
몇 십 년 살아온 자신만의 방식이 있는데 누군가가 공부 좀 해서 좋다고 하면 그걸 바로 믿는 것도 말이 안 되겠죠. 그래도 시도는 한번 해볼 수 있을 거예요. 해봐서 맛있으면 계속 먹고, 내 취향이 아니면 멈추는 거죠. 저는 반상회 하듯이 사람들이 모여서 꿈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어요. 이게 좀 힘들면 가까운 친구나 부부 간이라도 꿈으로 자주 만나는 기회를 가졌으면 합니다. 아마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으로 서로를 이해하게 될 거예요. 꿈 공부를 하다 보니 인간관계에 유연성이 생겨요. 사람을 깊이 만날 수 있어요.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꿈작업을 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이 기사는 인터파크도서 북DB와의 콘텐츠 제휴를 통해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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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파크도서 북DB 이미회 객원기자 mimiba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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