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불편함을 이해하면 길이 보인다" VMD 이랑주의 힘

박다해 기자 2016. 4. 22.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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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펴낸 한국 최초 VMD 박사 이랑주 "현장에 답이 있다"

[머니투데이 박다해 기자]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펴낸 한국 최초 VMD 박사 이랑주 "현장에 답이 있다"]

2016.04.15 '좋아보이는 것들의 비밀' 저자 이랑주 MD 인터뷰/사진=이동훈 기자

3개월을 백화점 출입구 앞에서 고객들의 동선만 관찰했다. 왼쪽으로 가는지 직진하는지 오른쪽으로 가는지, 어느 순간에 멈춰 어떤 상품을 집는지…고객의 눈과 발이 움직이는 방향, 보폭의 넓이와 속도를 적고 또 적었다. '스토커'로 오인받아 신고를 당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한국 최초의 비주얼머천다이징(VMD) 박사 이랑주의 이야기다. 비주얼머천다이징은 매장에 진열된 상품을 효과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상품을 잘 팔리게 하는 일이다. 단순히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매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색상과 빛, 고객의 동선, 제품의 간격까지 고려해 상품 콘셉트에 맞는 매장을 만들어 매출을 높인다. 디자인을 넘은 일종의 경영 전략이다.

◇ 백화점부터 시장 소상공인까지…현장에서 닦은 '이랑주식' 노하우

지금의 이랑주를 만든 것은 당시 백화점 문 앞에서 고객 한 명, 한 명의 발걸음을 분석하던 현장 경험이다. "처음에는 내가 전문대를 나와서 이런 일을 시키나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현장에 답이 있다"는 굳은 믿음이 생겼다.

그가 이랜드를 거쳐 현대백화점에 입사했을 때 한국은 'VMD 불모지'에 가까웠다.

"현대백화점 부산점 개점을 준비하는데 외국 화장품은 금방 제품 진열을 끝내고 가더라고요. 그런데 한국 상품은 '여기에 놔 봐, 아니다 저기에 놔 봐'하면서 밤을 새는 거에요. 외국은 아예 '매뉴얼'이 있더라고요. '립스틱 번호 몇 번은 몇 번째 칸에 둔다'는 식이죠."

백화점이 아닌 곳은 더했다. 제품이 좋아도 '잘 팔리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시장에 30년 동안 국밥만 팔던 분이 계셨어요. '국밥의 달인'이신거죠. 매출이 떨어졌다고 찾아오셨어요. 식당을 가보니 통일된 색도 없고 중구난방이더라고요. 정말 맛있는 빵을 만들어내는 빵집에 가도 칠이 벗겨진 매대가 있다 보니 잘 팔리질 않았죠"

그는 시장부터 백화점까지 곳곳을 돌아다니며 제품이 '좋아 보이게 하는' 자신만의 법칙을 만들어 나간다. 보는 순간 "사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본능을 치밀하게 분석했다. 소상공인에게 무료로 컨설팅을 해주고 대신 매출자료를 받았다.

변화는 사소한 것에서 시작됐다. 빨간 사과를 먹음직스럽게 보이기 위해 주변에 초록색 잎사귀를 놓았다. 보색 대비를 활용한 작은 변화만으로 순식간에 사과가 모두 팔렸다. 색상 대비, 빛의 각도와 조도, 제품의 간격 등을 고민하고 연구했다. 그렇게 나온 9개의 법칙을 엮어 펴낸 책이 바로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이다.

◇ 해결책 안보일 땐 무작정 도서관으로…남편과 '세계 쇼핑몰 여행' 통해 영감 얻기도

현장에서 막힐 때 그가 찾은 것은 책이다. 조개 음식점을 컨설팅할 때였다. 조개수족관을 만들어 신선해 보이도록 했지만 일부 조개가 100% 해감이 되지 않았다. 무작정 남산도서관으로 가서 '조개 해부도감'을 뒤졌다. 지역별로 바다의 염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내 염도계를 들고 가게를 다시 찾아 해감 문제를 해결했다. 덕분에 조개 음식점 매출은 200배 올랐다.

"책은 한 사람의 인생이고 생각이잖아요. 그 안에서 지혜를 배워요. 지난해에는 매주 수요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책 읽는 시간을 정해두고 남산도서관에 있는 디자인 서적을 다 읽는 것이 목표였어요. 여행서나 인문학, 음식 관련 책도 많이 읽었죠"

나이 마흔에 남편과 함께 떠난 1년간의 세계 일주도 그에겐 영감이 됐다. 핀란드 시장에서 마주친 블루베리 상인은 그에게 새로운 충격을 줬다.

"핀란드에 한 시장에서 만난 블루베리 가게 주인에게 '옆집에서 싸게 파니 가격을 좀 깎아달라'고 흥정을 했어요. 그랬더니 그 주인이 '옆집에서 얼마에 팔든 나는 상관없다'고 하더라고요. 옆집과 경쟁하지 않고 자신의 정직함과 경쟁한다고 설명하는 순간 깜짝 놀랐죠"

이후 그의 소신은 말 그대로 '좋은 제품'만 '좋아보이 게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좋지 않은 제품을 포장만 그럴싸하게 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사실 국내 대기업에서 일하면서는 그런 경우도 종종 있었다. 아니 너무 많아서 죄책감조차 갖지 못했다"며 "여행을 통해 세계 곳곳의 시장을 만난 뒤 생각이 바뀐 것"이라고 했다.

2016.04.15 '좋아보이는 것들의 비밀' 저자 이랑주 MD 인터뷰/사진=이동훈 기자

◇ "VMD는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답은 언제나 현장에 있다"

그는 VMD가 '세상을 이롭게 하는 마음을 고객의 눈에 보이게 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광화문 교보문고 리모델링이 대표적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컨설팅이기도 하다.

"차가운 통로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어린이들을 보는 순간 화가 나더라고요" 우연히 들른 교보문고에서 오지랖이 발동했다. 교보문고 기획실에 전화를 걸어 "책을 좀 더 잘 진열해서 매출을 올릴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교보문고 직원을 상대로 강연을 한 뒤 TF(태스크포스)팀을 꾸려 6개월을 연구했다. 그 결과 교보문고는 독서하기에 최적의 조도를 갖춘 조명, 편한 테이블과 소파 등을 갖춘 서점으로 다시 태어났다.

"교보문고는 책을 사랑하고 문화를 창조해내는 공간이지 단순히 많은 책을 파는 공간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거죠."

그는 장래 VMD를 꿈꾸는 이들에게도 "타인의 아픔과 불편함을 이해하라"고 조언한다.

"요즘 학생들은 상담을 해준다고 하면 '학원을 어디 가면 좋겠냐'고 물어봐요. 학원 다닐 필요 없어요. 그 돈으로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곳을 가서 바꿔보라고 하죠. VMD는 누군가의 아픔과 불편을 개선해주는 일이에요. 그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VMD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현장을 직접 가보세요"

그의 일은 현장에서 다시 시작된다. 이씨는 현재 한국VMD협동조합 이사장으로 '청년창업플러스센터'에서 청년 창업가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하고 있다.

박다해 기자 doal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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