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뉴스]날씨의 맛

홍진수 기자 2016. 4. 15.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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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 target=_blank>

알랭 코르뱅은 ‘감각과 감수성 역사 연구의 선구자’로 알려진 프랑스의 역사학자입니다. 그가 감각·감수성 역사의 대상으로 삼은 것 중 하나는 ‘날씨’입니다. 지리·기상·사회·문학 분야 전문가 10명과 함께 날씨에 대한 사람들의 감수성 변화상을 살핍니다. 여러 문학작품과 문헌을 뒤져 낸 결과물이 <날씨의 맛>(책세상)입니다. 경향신문 서평과 책세상 제공 발췌 자료로 비·햇빛·바람에 스며든 ‘날씨의 맛’을 느껴보겠습니다.

#빗속에서

현대의 비는 감미로움이나 해갈, 때로는 우울의 정서를 전합니다. 르네상스와 근대 예술가들이 묘사한 비는 모든 것을 휩쓸어버리고 공포에 떨게 하는, 한밤중의 악몽처럼 격렬하게 퍼붓는 존재입니다. 17세기에 비는 물질적인 불편을 주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17세기 중반 프랑스 작가 드 세비녜 후작부인은 딸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서한집’에서 “비와 바람, 추위로 몹시 불쾌한 날씨”라고 썼습니다. 비는 몸과 마음을 축축하게 만들죠. 마차를 타고 가는 데도 불편합니다. 비는 주로 우울한 기분이나 지독한 슬픔, 눈물과 연결해 언급했습니다. 당시 비에 젖는다는 것은 수세기 동안 위생을 유지해준 ‘건조함’을 방해하는 일이기도 했죠.

비를 찬양한 이들도 나타납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그랬죠. 그는 빗방울 속에서 “무한한 만큼 인간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자비심을 인지했다” “그것이 식물에 좋다면 나에게도 좋은 것이다”고 썼죠.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은 유명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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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누구인가? 감미롭게 쏟아져 내리는 비에게 물었더니

신기하게도 이렇게 대답했네. 그것을 여기에 옮겨보자면

나는 대지의 시라고, 빗소리는 말했네, (…)

나는 지구의 메마름과 미물들, 그리고 먼지를 적시러 내려온다오

18세기 후반이 되면 비는 감상의 대상이 됩니다. 프랑스 작가·식물학자인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는 <자연에 관한 연구>(1784)에서 “비가 오는 광경을 보면 내게 비를 피할 보금자리가 있다는 사실과 바람이 불 때 따뜻한 침대 속에 있다는 사실을 통해 나 자신의 인간적 비루함이 가라앉음을 느낀다. 소극적인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화가 피에르 앙리 드 발렌시엔도 “비는 이 풍경들에 음울한 기품을 부여한다. 강에서 멀리 떨어진 제방 위에 어둠의 베일을 드리우며 비는 이따금 즐거운 거리두기 같은 뭔가를 만들어냈다”고 적었습니다.

귀스타브 카유보트, (1877)

회화쪽에 나타난 비는 어떨까요? 19세기 서양 예술가들은 허공에 줄을 그어 비를 표현하는 일이 매우 드물었다고 합니다.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비 오는 날, 파리의 거리>(1877)는 우산의 물결과 젖은 포석을 통해, 비가 내리는 듯한 기상 상황을 암시할 뿐이죠. 동양은 달랐죠. 일본 안도 히로시게 <오하시와 아타케 다리에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1857)는 비의 강렬한 존재감을 부각하는 작품이죠.

안도 히로시게, (1857)

책은 비 때문에 생긴 고통이 매운 끔찍했던 시기도 살핍니다. 전쟁 때죠. 프랑스 디종 227 보병연대가 발행한 신문 ‘철모’는 1916년 작전 개시일의 비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배낭에서 배낭으로 튀며 참호 앞에 쌓아놓은 흉토를 따라 흐르다가 연락 참호의 바닥에 괴었다. 때로는 엄폐호의 입구를 넘어 바닥 밑으로 슬쩍 흘러 병사들의 마지막 은신처인 이부자리까지 적시기도 했다”. 또 다른 신문 <지평선>엔 “(비라는) 이 단어는 출정 중인 병사들에게 모든 공포를 의미한다”. 끈끈하게 흐르며 때로는 깊고 위험한 진창을 떠올리면 될 겁니다. 물과 진흙에 처박힌 채 흙탕물에 떠내려오는 전우의 시신을 봐야 하는 고통은 어느 정도였을까요?

1917년 웅덩이 옆 참호에 대기 중인 캐나다 병사들. 출처 : www.worldwar1.com

#햇빛, 또는 평온한 날씨의 맛

햇빛에 대한 감수성은 1750년에서 1960년 사이 약 200년 동안 완전히 뒤바뀝니다. 18세기까지만 해도 햇빛을 지나치게 쬐면 몸에 해롭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죠. 무더위와 가뭄 같은 재난은 태양에 대한 증오와 두려움을 부채질했습니다. 사인 조세프 퓌스테는 “햇빛에 노출된 (…)사람과 짐승은 질식사했고 야채와 과일은 햇빛에 시들거나 벌레가 먹었다. 땀이 비오듯 쏟아져 몸은 땀으로 줄곧 목욕을 하는 것처럼 불쾌했다”(1793년)고 썼습니다.

19세기 햇빛의 살균효과 같은 발견이 이뤄지면서 긍정적 측면이 부각됩니다. 책은 “적의에 가득 찬 혐오로부터 최고로 찬양을 받는 희열로 뒤바뀐” 변화를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공기, 빛, 태양을 이용한 요법들이 의학 분야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러나 태양이 위생학자들의 세계에서 보다 굳건히 자리를 잡게 된 것은 물론 세기말 파스퇴르(Louis Pasteur)의 작업 덕분이었다. 학교, 빈민굴, 중산층의 아파트를 비롯한 도처의 공기, 물, 먼지 속에서 화학자들이 그 존재를 발견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액상의 세균은, 태양의 정화력과 치유력에 대한 예찬론에 활기를 부여했으며, 프랑스 공화국은 일찌감치 초창기부터 이를 공공 위생의 중추로 삼았다. 태양은 혈액순환, 호흡, 소화, 성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데, 보나르(Adolphe Bonnard) 박사는 “의사들에게는 태양이 조수보다 더 나은 것이, 치료사와도 같기 때문”이라고 요약했다. 야외 활동을 통한 보건 예찬론자들은 이 새로운 진리를 하나의 의식(儀式)으로 받들었다. 결핵에는 햇빛, 집 안을 오염시키는 병균에도 햇빛이었다. 도시의 가난한 어린이들을 질병에서 구하려면 그것도 햇빛이었다.“

프란츠 폰 렌바흐, (1860)

유럽에서 일광욕, 산책 열풍이 대대적으로 일었죠. 1920년대부터는 부르주아 계층이 휴가를 중시하면서 태양은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던 풍미와 욕망으로 장식됩니다. 햇빛은 ‘행복’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됩니다. 1860년 렌바흐가 그린 햇빛 아래에서 낮잠 자는 어린 목동은 햇빛에 매혹된 19세기 사람들의 모습을 잘 드러냅니다.

모리스 로로,

20세기 들어 햇빛은 명실상부한 현대성의 분위기를 띠게 됩니다. 햇빛은 성공적인 휴가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였죠. 햇빛은 쾌락주의와도 이어집니다. 더위 속의 노출과 선탠은 관능적 즐거움을 약속하고, 허용하는 것이었죠. 완전히 맑은 날씨에 집착이 커지면서 “계절에 맞는 날씨”라는 강박도 커집니다. 이 강박은 비에 대한 혐오를 전례 없이 강렬하게 만들었다고 책은 적습니다.

1990년대부터는 피부암 등 때문에 일광욕 예찬이 사그라들기도 했죠.

#이야기 따라 바람 따라

모든 기상 요소가 그렇듯이 바람, 그 보이지 않는 공기의 움직임은 상반되는 두 얼굴을 지니고 있습니다. 폭풍우는 파괴적 재난이지만, 바람의 동력은 생산적 혜택이죠. 설화와 문학, 회화는 양면성 중 파괴에 초점을 둡니다. 인간은 늘 대기 현상의 변화를 염려했죠. 거센 폭풍, 천둥과 뇌우, 모든 것을 휩쓸어가는 비바람은 사람들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대홍수에 대한 공포는 수세기 이어집니다. 책은 옛 이야기에서 현재 이상기후와 지구온난화에 대한 두려움을 조망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바다는 대기 현상이 극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입니다. 폭풍이 선호하는 공간입니다. 바다는 바람이 불면 공포의 대상이 됩니다. 폭풍 장면은 전능한 존재의 분노 표출, 신의 섭리 표현, 경고, 징벌을 나타냅니다. 파랑은 인생의 어려움을 상징하죠. 책은 여러 설화와 문학의 폭풍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클로드 조제프 베르네, (1754년경)

“<오디세이아>에서 폭풍은 현실에 있음직한 기상 현상으로 보일 뿐이지만 바다의 동요는, 용기나 자기 초월이 관건이 되는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시련을 가져다준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神統記)>는 모든 주요 해양 신화의 근원으로 삼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밀려드는 높이 수 미터에 달하는 파도들은 명백히 입문적 기능을 지니고 있었고, 그것의 상징적 원인인 폭풍은 신들이 인간들에게, 특히 영웅들에게 부과하는 시련의 구성 요소다. 폭풍은 징벌이고, 속죄하라는 무시무시한 경고이며, 특히 목적지가 가까워질 때 개입하는 운명의 장난이다. 영웅은 자신의 능력보다는 신의 가호로 목숨을 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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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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