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숭생숭~ 봄 타는 여자들, 금빛열차를 타자

정유미 기자 2016. 4. 6.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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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언니’들끼리 당일치기도 좋은 그곳… 군산

남성보다 여성이 봄을 더 탄다. 날씨에 따른 감수성의 차이 때문이다. 봄은 일조량이 많은 계절이다. 햇볕 양이 늘면 뇌와 호르몬에 영향을 미쳐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게 된다. 그래서 자칫 우울해질 수도 있다. 이럴 때 ‘여자 셋’이 모여 어디론가 훌쩍 떠나보면 어떨까. 돈 많이 들이지 않아도 기다리는 관광 전용열차가 있다. 날짜와 거리도 상관없다. 주말만 피하면 된다. 1인당 3만3300원만 내면 왕복 기차를 탈 수 있다. 여고 동창도 좋고 가족도 좋다. 꼭 남편과 같이 가야 한다면 따로 티켓 한 장 끊으면 된다. 요즘 핫하다는 전북 군산으로 떠나는 서해금빛열차를 타봤다. 열차는 칸마다 유쾌한 수다방이었다.

■열차 타고 수다 떨며 군산으로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 틀렸다. 여자 셋이 모이면 초저가로 전국을 누빌 수 있다. “오랜만에 당일치기로 봄나들이 안 갈래?”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전화를 걸자.

목적지는 군산이다. 최근 부쩍 관심이 높아진 곳이기도 하지만 들여다볼수록 매력적인 도시가 군산이다. 서울 용산역에서 오전 8시27분 따뜻한 커피 한잔을 사들고 샛노란 열차에 올랐다. 3호차에 들어서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탁 트인 전망에 족욕을 할 수 있는 좌석이 따로 마련돼 있었다. 5호차는 더 흥미로웠다. 찜질방에 온 듯하다. 4~5평 공간에 황토, 옥돌 바닥재로 만든 방들이 객실 안에 일렬로 늘어서 있다. 방 1개를 6명이 이용할 수 있는데 3만원만 추가하면 된다.

“어쩌면 좋니. 요즘은 계란을 삶아오지 않아도 되나봐.” “그러게. 귤 꾸러미 안 싸들고 오길 잘했네.” 중년의 여자 셋이 30~40년 전 고교시절로 돌아간 듯 다른 사람들 신경도 안 쓰고 깔깔댔다. 간간이 퇴직을 앞둔 남편과 대학에 들어가지 못해 재수를 하는 자식 걱정도 들렸다.

서울 용산~전북 익산을 왕복하는 관광전용 서해금빛열차. 여자 셋 이상만 모이면 요금을 할인해주는 ‘미즈레일’ 상품을 이용할 수 있다. 원내는 서해금빛열차의 족욕 칸.

열차가 천안역에 도착하자 60대로 보이는 여성이 “어머나, 충청도인데 풍경이 서울하고 똑같네”라고 말했다. 아파트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수도권 지하철이 천안에 정차하는 게 의외라는 눈치다. 앞에 있던 친구가 “천안 삼거리면 호두과자를 사먹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응수했다. 배낭을 메고 혼자 여행을 하는 듯한 중년 남성이 옆에서 빙긋 웃는다.

5호차에서는 아이 둘을 데리고 온 부부가 황토방에서 쉬고 있었다. 젖먹이를 누인 30대 아내가 “이거 진짜 등따시고 배부른 여행이네”라며 남편을 보고 환하게 웃는다. 내복 차림의 여섯 살 꼬마는 양말도 벗어젖힌 채 차창에 연신 볼을 비비며 신이 났다. 그렇게 행복을 싣고 달리던 서해금빛열차는 낮 12시쯤 군산에 닿았다. 서해금빛열차는 용산~익산의 장항선을 왕복한다.

■아픈 역사의 현장, 근대 골목 맛보기

군산은 1899년 강제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의 뼈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도시다. 1933년 우리나라 총 쌀 생산량이 1630t이던 때 절반이 넘는 870t(53.4%)이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빠져나갔다. 조그마한 어촌 마을에 갑자기 들어선 2~3층 건물들, 은행과 요정, 청요릿집, 넘치는 인력거꾼들…. 채만식의 소설 <탁류(濁流)>는 당대의 세태와 식민지 수탈을 잘 보여준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배경이 되었던 ‘초원사진관’.

군산역에 있는 안내센터를 찾았다. 군산시 문화관광해설사 원봉연씨(65)가 당일 코스로 즐길 만한 관광지를 추천했다. 근대역사박물관은 옛 서울역, 한국은행 건물과 함께 고전양식의 3대 건축물로 꼽힌다. 조선총독부 금융기관이었던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항일 역사유물을 전시하는 조선근대건축관으로 쓰이고 있다. 조금 더 가면 1908년 독일 건축가가 세운 옛 군산세관이 우뚝하다. 일본 상인이 세운 나가사키은행도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근대역사박물관을 지나 길을 건너면 ‘초원사진관’이 나온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심은하와 한석규가 담담하게 그려낸 수채화 같은 사랑이 어렴풋하다. 가족과 연인들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포즈를 취하고 열심히 기념사진을 찍었다. 삼삼오오 열차에서 본 얼굴들이 반갑다.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져 있는 일본식 사찰 ‘동국사’.

천천히 10분쯤 걸어가자 정원과 온실을 갖춘 2층집 ‘히로쓰 가옥’이 나왔다. 히로쓰는 고리대금으로 농지를 빼앗고 소작을 부려 일본으로 곡식을 실어나르며 부를 축적한 일본인이다. 집 내부를 통제하고 있어 들여다볼 수 없었지만 유리문과 창살, 마당 정원을 보면 일본 오사카의 여느 고저택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국내 유일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로 향했다. 일본 야스쿠니신사처럼 검고 가파른 사찰 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동국사는 일본 승려 우치다가 1909년 외국인 거주지역에 세운 포교소다. 원래 이름은 금강선사(금강사)였는데 나중에 ‘우리나라(海東國) 절’이라는 뜻에서 ‘동국사’로 바뀌었다. 사찰 안을 둘러보다 한참 멍하니 서 있었다. ‘해안가에 서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조국을 향해 처연하고 간절하게 바라보고 있는’ 평화의 소녀상 때문이다. 부모 형제가 얼마나 눈에 밟혔을까. 소녀의 시선을 따라가다보니 가슴이 저렸다.

여행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이성당’.

■‘다음’을 도모하는 귀경 열차

돌아오는 기차는 군산에서 오후 4시42분 출발했다. 열차에 오르니 모두들 노란 봉투 1개씩을 들고 있다. 국내 빵집 중 가장 오래된 ‘이성당’에서 한 시간씩 줄을 서서 산 앙금빵과 채소빵을 담은 봉투다. 그 안에는 필시 단팥이 터질 듯 가득 담긴 앙금빵, 양배추를 썰어 마요네즈에 버무린 채소빵이 들었을 것이다.

서울에서 떠날 때 1만원짜리 특별상품을 주문했는데 정말 잘했다. 족욕(4000원)+커피(3000원)+산채비빔밥 도시락(8000원) 1만5000원짜리를 5000원이나 싸게 즐길 수 있으니 ‘만원의 행복’이 따로 없다. 족욕을 하면서 1000원을 추가하면 어깨팩을 올려준다. 열을 쬐는 건식 족욕은 20분에 4000원, 물을 끓이는 습식은 8000원이다. 족욕을 하면서 재잘대는 여인들의 군산 여행기를 엿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봄바람을 쐬고 온 여자 셋은 다음 여행을 도모하고 있었다.

■열차여행 정보 - 그녀들만 누리는 ‘3만3000원의 행복’

여성이 셋 이상 모이면 요금을 할인해주는 ‘미즈레일’은 비무장지대(DMZ)를 제외한 5대 벨트 관광열차(O·V·S·A·G-train)를 편도 2회(왕복) 이용할 수 있는 패스다. 만 30세 이상 65세 미만 여성이면 열차 내 커피 50% 할인, 도시락 구입 시 무료 커피 제공, G-train 온돌마루 무료 체험(5인 이상) 등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1만원에 열차 내 족욕과 커피 1잔, 도시락을 세트로 판다. 3인권은 9만9900원, 4인권 13만3200원, 5인권은 16만6500원이다. O-트레인을 탈 경우 편도 4만3400원(왕복 8만6800원)이지만 미즈레일을 사면 1인당 3만3300원에 다녀올 수 있다. 5만5000원을 절약하는 셈이다.

남성들은 가격 혜택이 큰 ‘나드리 패스’를 기억하자. 관광전용열차는 물론 새마을, 누리로, 무궁화 등 일반열차(KTX·서울∼천안 구간 제외)를 싸게 이용하는 알뜰여행 상품이다. 좌석 지정과 자유입석 2가지로 2일권과 3일권이 있다. 2일권은 편도 4회, 3일권은 편도 6회까지 좌석을 지정받을 수 있다. 가격은 성인 7만원, 어린이 5만원부터. 잔여석이 없는 경우 자유석 및 입석을 이용할 수 있다. 성인 5만원이다.

코레일 관광전용열차는 O-트레인(중부내륙), V-트레인(백두대간협곡), S-트레인(남도해양), DMZ-트레인, 정선아리랑열차, 서해금빛열차 등이 있다. 관광열차가 생긴 2013년부터 지금까지 158만7000여명이 이를 이용해 전국을 누볐다. 열차 이용률은 온돌 마루실과 족욕 카페로 인기를 끄는 서해금빛열차가 93%로 가장 높다.

관광열차마다 난타와 아리랑 공연, 퀴즈와 미술 게임 등 재미있고 다양한 즐길거리가 있다. 서해금빛열차의 경우 아산~홍성 구간에서 개그맨 공연(매주 금요일), 홍성~장항(매주 목요일) 구간에서 국립생태원 강의가 열린다.

■군산 짬뽕 원포인트 정리

군산에 가면 줄을 1시간 이상 서야 하는 짬뽕집들이 여럿 있다. 해산물이 듬뿍 들어간 짬뽕의 원조 ‘쌍용반점’과 돼지고기를 얹은 ‘복성루’ 등 다섯 곳을 찾아가 봤다.

개인 취향이겠지만 ‘쌍용반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일단 인테리어가 깔끔하고 주방이 깨끗하다. 1인분을 시키면 둘이 먹어도 배부를 만큼 해산물이 넉넉하다. 군산 앞바다에서 잡은 싱싱한 홍합은 물론 동조개, 꼬막, 바지락 등 5가지 종류의 국산 해산물이 한가득 나온다. 국물 맛은 얼큰하면서 진하다. 35년 짬뽕을 전문으로 해온 고영수 사장이 지켜온 맛이다. 군산시 내항2길 121번지. (063)443-1259.

‘복성루’는 전국적으로 알려진 집이다. 겉으로 보기엔 허름한 중국음식점인데 1시간 이상 줄을 서는 게 기본이다. 맛은? 흔히 먹던 맛은 아니다. 돼지고기를 얹어내는데 볶은 것이라 특유의 잡내가 나지 않는다. 시간이 나면 한번쯤 들러볼 만하다. 군산시 풍문안1길 28번지. (063)445-8412.

‘지린성’은 요즘 블로거 맛집을 보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평일 오후 4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관광객 10여명이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좌석이 10여개뿐이다. 고추짜장면과 고추짬뽕이 유명한데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겨 나온다. 군산시 미원로 93-1번지. (063)467-2905.

군산상고 앞에 있는 ‘왕산’은 1박2일에 나오면서 매운 짬뽕으로 유명해진 집이다. 큰 도로변에 있는데 근대골목이나 유명 관광명소와 다소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군산시 대학로 209번지. (063)467-1318.

‘영화원’도 군산에서 유명한 집이다. 고기로 육수를 낸 얼큰한 짬뽕 국물 맛이 그만이다. 오후 3~4시에는 준비시간이라 손님을 받지 않는다. 군산시 구영5길 112번지. (063)445-4938.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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