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테라피-맛의 심리학(18)] 소금 바가지를 해외 화물로 부친 사연
서양 요리에는 늘 샐러드salad가 나온다. 샐러드가 원래 싱싱한 채소에 소금을 뿌린 것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어원을 살펴보니 라틴어의 ‘살(sal)’이 흥미롭게도 ‘소금’이다. 우리 밥상에는 채소로 만든 나물이 나온다. 나물은 간장, 참기름, 깨소금 등을 넣고 무쳐서 먹는데 그 과정이 좀 복잡하다. 샐러드와 나물 모두 채소를 먹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건강식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나물은 대부분 데쳐 먹고 샐러드는 생으로 먹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최근 들어서야 인터넷의 영향으로 음식을 만드는 과정인 레시피라는 게 점점 대중화되고 있지만 그동안 조리법은 주로 입으로 전해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한식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게 되면서 재료를 몇 그램 단위로, 저울이 없다면 적어도 찻숟갈로 몇 개 넣을 것인지, 언제 넣을 것인지를 따지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할머니 세대에서 어머니 세대로, 어머니 세대에서 딸 세대로 전해지는 ‘손맛’의 전수였다.
우리 집도 엄마가 무친 맛있는 나물을 어떻게 만드셨는지 여쭤보면 늘 돌아오는 답은 “그냥 갖은 양념을 해서 버무리면 된다”였다. 파, 마늘, 고춧가루가 얼만큼 들어갔다는 설명이 아니고 그저 ‘갖은 양념’으로 뭉뚱그려 대답하실 뿐이니 따라 할 수가 없어 난감할 따름이다.

매년 여름 어머니는 오이지를 담그신다. 솜씨는 달인의 경지. 제철에 나오는 조선오이, 물, 소금이 재료이고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지만 내가 막상 해보면 정말 어렵다. 소금을 조금 더 넣어도 오이가 무르고, 조금 적게 넣으면 허연 곰팡이가 핀다.
언니가 국제전화로 오이지 담그는 법을 물어왔다. 엄마의 대답은 늘 그렇듯이 ‘오이 한 접에 소금 한 바가지’가 전부였다. 어떤 소금을 쓰고, 바가지 크기는 얼마이고, 물은 몇 리터를 써야 하고, 만들고 나서 얼마 후에 먹을 수 있는지 등 언니가 쏟아내는 질문들에 답하기에 엄마의 조리법은 너무 간단했다. 우리는 엄마가 쓰시던 소금 바가지를 부쳐서 언니의 입을 막았다.
오이지와 비슷한 것으로 서양에는 피클이 있다. 피클은 식품 저장이 어려웠던 시대에 비타민의 공급원이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수십 종이 넘는 피클이 유통되고 있다. 오이지와 피클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곰팡이 번식을 막기 위해 오이지는 소금을 쓰고, 피클은 식초에 절인다.
젊은 세대에게는 나물보다 샐러드가, 오이지보다 피클이 더 친숙할지도 모른다. 식문화가 점점 서구화되면서 나물과 오이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된다.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 음식 맛의 원천인 ‘갖은 양념’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간장, 다진 마늘, 깨소금, 참기름, 고춧가루가 들어가는 양념이 문자 그대로 ‘갖은 양념’이지만 배워서 실천하기에는 난감하다. 양념의 분량과 비율 역시 어머니의 대답은 ‘적당량’이다. 숫자에 민감한 교육을 받은 젊은 세대는 그런 대답에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나물과 오이지가 샐러드나 피클에 비해 깊은 맛을 내지만 조리 과정이 너무 복잡하면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음식은 정성’이라는 개념만으로 우리 것을 지킬 수는 없다. 음식은 소통이라고도 하는데 이제는 ‘손맛’보다는 ‘저울 맛’이 필요하지 않을까.

고재선 아트 디렉터 (jskoh@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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