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동성결혼, 누군가 혜택을 볼지언정 누구도 손해를 입지 않는다"

심진용 기자 2016. 3. 18.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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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미국의 성 소수자 인권운동가 리 배지트의
ㆍ‘동성결혼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가’

한 여자가 여행가방 두 개에 짐을 싸서 열려 있는 문 쪽으로 향한다. 그리고 깜짝 놀라며 당황하는 남편에게 자신이 왜 떠나는지를 설명한다. “우리 결혼에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동성결혼의 공포로 결혼 제도는 완전히 끝장났어요.”

2004년 7월 미국 ‘뉴요커’에 실린 만화 내용이다. 만화 게재 8개월 전인 2003년 11월 미국 매사추세츠주 대법원은 주 내의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금지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 격렬히 반응했다. 동성결혼 개방이 이성 커플의 결혼 욕구를 감소시키고, 자녀 양육에 대한 부모의 헌신과 관심을 감퇴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성결혼 옹호자들은 다른 커플들에게 결혼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어째서 결혼을 훼손한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고, 종종 농담으로 대응했다. ‘뉴요커’ 만화가 그 사례 중 하나다.

<동성결혼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가>(민음사)는 인권운동가이자 동성애자인 리 배지트(사진)가 ‘농담 이상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쓴 책이다. “한쪽에서는 문명의 종말을 걱정하고, 다른 쪽에서는 어리둥절해하며 농담을 던지는” 상황에서 생산적인 토론이 이뤄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경제학자이기도 한 저자는 동성결혼과 관련된 각종 데이터와 도표, 수치들을 파고들어 정밀하게 분석해낸다.

덴마크와 스웨덴,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 미국보다 앞서 동성결혼이나 동성결합 같은 제도를 도입한 유럽 8개 국가에서 동성결혼 허용으로 해당 사회에 실제 어떤 변화들이 있는지, 그 사회 변화 추이를 살핀 것이다.

실제 현실은 보수주의자들의 우려와 달랐다. 1980년대 초 최저 결혼율을 기록한 덴마크는 파트너십 등록제를 시작한 1989년, 오히려 결혼율 상승세를 경험했다. 1990년대 초의 결혼이 1980년대에 비해 오히려 안정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이혼율 역시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 동성결혼이나 결합이 이성애자의 결혼에 해를 끼친다는 증거를 적어도 학술적으로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스칸디나비아 국가나 네덜란드에서도 이혼율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반면 동성 커플은 결혼을 통해 이성 결혼과 거의 동일한 수준에서 배우자로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결혼이 주는 낭만을 동성 커플도 경험하게 된 것이다. 결혼은 “두 살짜리도 이해하는 문화적 맥락”이기에 게이나 레즈비언도 소수자라는 사실을 일시적이나마 잊을 수 있었다. 저자는 동성결혼이 “누군가 혜택을 볼지언정 누구도 손해를 입지 않는다”는 ‘파레토 개선’에 부합함을 입증했다.

지난해 6월 미국 모든 주에서 동성결혼이 법제화됐다. 저자의 신중한 태도를 따르자면 미국의 결혼문화에 어떤 변화가 생길 것인지 좀 더 시간을 두고 살펴야 하겠지만 아직까지 ‘하늘이 무너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저자는 최근 그의 ‘아내’와 함께 한국을 방문해 책을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강연에서 “책을 통해 ‘한국에서 동성결혼이 실제로 가능하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인 예측과 논의가 진행되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3년 국내 최초로 동성결혼식을 올린 영화감독 김조광수씨가 이 강연 사회를 맡았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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