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시그널' 김은희 작가, "장르물의 시조새가 될 때까지 쭉.."

2016. 3. 18. 12:0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김은희 작가의 작업실에는 고양이 두 마리가 산다. 하얀 털을 가진 나나와 니나. “딸이 지은 이름”이다. 토닥여주면 애교를 부리고, 문 열고 들어오면 ‘개처럼 뛰어온다’. 강아지처럼 살가워 “개냥이”라고 한다. ‘작가의 고양이’답게 노트북을 좋아한다. “IT전문가라고…(웃음) 작업실을 비우고 나가면 ㅋㅋㅋㅋ를 네 페이지를 쳐놔요.” 한국형 수사드라마만 줄창 써오던 김 작가는 고양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소녀 같은 앳된 미소를 지었다. “얘네들 없었으면 어떻게 작업했나 싶어요. 머리 쥐어뜯고 있는데 그나마 와서 비벼주고 그러니…”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햇살 좋은 날을 싫어하고”,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그래서 “남편도 뱀파이어냐”고 할 정도다. 노출 없이 지내던 그는 ‘장르물’만 써오던 작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툭툭 던지는 한 마디에 ‘유머감’이 넘친다.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무한도전’이다. “같이 일하시는 분들이 많이 그래요. 너처럼 가볍고 얇은 애가 어떻게 장르물을 쓰니?(웃음)”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한 오피스텔, 김은희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다행히 김 작가가 좋아한다는 바람이 스산한 날이었다.

▶ “‘시그널’,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이 위로”= 김은희 작가의 ‘시그널’은 tvN 최초로 금토드라마에 편성된 장르물이었다. 평균 10%대의 시청률, tvN 드라마 사상 역대 2위 수준이다.

사실 우여곡절이 많은 드라마였다. 2014년 6월, ‘쓰리데이즈’(SBS) 종영 이후 딱 두 달을 쉬고 ‘시그널’의 집필을 시작했다. 편성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SBS는 끝내 편성을 고사했다. “지상파 미니시리즈는 일 년에 6~7개잖아요. 거절당하고 거절받는게 직업이라 어쩔 수 없지 않나 생각했죠.”

“자료조사, 취재력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허술해지는” 수사드라마 특성상 김은희 작가가 드라마 한 편을 쓰는데에 들이는 공은 상당하다. ‘시그널’의 준비기간은 무려 2년이었다. “장르물은 머리가 좋아야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질문에 “노력형 작가”라고 말한다. 김 작가는 강력계 형사와 프로파일러를 만나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굵직한 사건들에 접근했다. 극중 형사와 프로파일러의 성격 분석이 직접 마주한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완성됐다. ”이름 난 강력계 여형사를 만난 뒤 김혜수 선배의 캐릭터를 설정“했다고 한다. ”윽박지르거나 터프하지 않은 큰 언니 같은 형사“였다. 


소재는 미제사건. 김 작가가 미제사건에 접근한 것은 ‘치유’를 위해서였다. “미제라는 건 힘든 사건을 겪었는데 전말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거죠. 남겨진 사람들, 그 사람들의 아픔이 너무나도 클 거라 생각했어요. 최근 영남제분 사건 피해자의 어머나가 돌아가신 것도 너무나 안타까웠어요. 남겨진 사람들의 아픔을 보여주자고 생각했어요.”

경기 남부 연쇄살인사건, 대도사건, 한영대교 붕괴사건, 김유정 유괴 사건, 진양 신도시 개발 비리, 인주 여고생 사건 등이 드라마에 등장했다. 실제 사건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2차 피해는 없도록 주의를 기울였던 설정”이었다.

드라마가 다룬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는 매개는‘무전기’였다. 현실의 사건 사고를 모티프로 한 드라마에서 난데없이 등장한 비논리적인 영역이다. 김 작가 스스로도 “허황된 설정이긴 했지만, 무전기를 통해 과거 형사의 시선으로 사건 자체를 복합적으로 보여줄 수 있고, 희망으로 쓰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한다. “희망이 들어가면 아픔도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죠.” 거기에 카타르시스가 더해졌다. “많은 분들이 사건 기사를 보면서 느끼는 공분이 있어요. 저 역시 똑같은 심정이죠. 수사물은 권선징악이 분명해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악인, 범인에 대한 처단이 있어야 재발을 막을 수 있고, 통쾌함이 오지 않을까요.” 그래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은희 작가가 ‘시그널’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재한(조진웅)과 해영(이제훈)의 대사에서 나왔다. “20년 후는 어떻습니까? 거기는 달라졌죠?”, “달라지게 만들 겁니다.”

▶ “장르물의 시조새가 될 때까지 계속…”=김은희 작가의 첫 작품은 이병헌 수애 주연의 영화 ‘그해 여름’(2006)의 시나리오였다.

어린시절부터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좋아했다. “아마 작가들은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거예요.” 중학교 시절의 김 작가는 처음으로 사랑이야기를 썼다. “중학생들의 유치한 사랑이죠.” 옆자리 친구를 보여줬다가 다른 반으로 돌고, 국어선생님까지 보게 되니 “너, 글 좀 써도 되겠다”는 칭찬을 들었다. “책을 보다가 성에 안 찰 때가 있잖아요. 이 주인공으로 다른 이야기를 써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요. 그러다 글을 쓰게 된 거예요.”

심지어 고교시절엔 ‘날라리’였고, 학력고사에서 수학 3점을 맞은 ’수포자(수학포기자)‘였다. “자존심이 있어서 한 번호로 찍진 않았거든요. 그래도 주관식을 맞춘 거죠.(웃음)”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가졌으니 ‘꿈’을 이룬 셈이다. 시나리오 작업에선 작가로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의 한계를 느껴 드라마를 시작했다. tvN ‘위기일발 풍년빌라’(2010)는 남편 장항준 감독과 공동집필한, 김은희 작가의 첫 드라마였다. “그 때를 생각하면 내가 참 멋 모르고 깝죽거렸구나. (남편) 장항준은 창작에 굉장히 엄격한 사람이에요. 연출을 맡았던 조현탁 감독님도 그렇고요. 그 때 온갖 구박과 개무시를 당했죠. 내가 글을 써도 되는 사람인가 생각도 하고, 마음고생도 많았어요. 12부쯤 썼을 때 두 사람이 그러더라고요. '이 대본은 고칠게 없네'.”

당시의 경험이 없었다면 ‘싸인’(2011)도, ‘유령’(2012)도, ‘시그널’도 나오지 않았을 거라고 김 작가는 이야기한다. 이제 김은희 작가는 ‘장르물의 대모’로까지 불린다. “하하. 꾸준히 이것만 해와서 그렇게 봐주시는 거겠죠. 장르물의 시조새가 될 때까지 계속 쓸게요.”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사실 김 작가는 ‘태양의 후예’(KBS2)를 종종 보지만, ‘로맨틱 코미디’를 쓸 자신이 없다고 한다. “남녀간의 영원한 사랑? 그런 판타지가 없어요. 판타지가 없는데 판타지를 그린다는게 좀…. 제가 로맨스를 쓴다면 현실적인 사랑이지 않을까. 그것도 잘 못할 것 같아요. ‘시그널’에서 재한과 수현이 포옹하는 신을 쓸 때도 오글거려 죽는 줄 알았죠. 결혼생활이요? 굉장히 많은 부분을 이해해주는 친구죠.”

드라마 작업을 마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인과의 약속들이 밀려있다. 국내 여행도 계획 중이다. 많은 걸 쏟아부는 작업 뒤에 다시 채워넣는 과정이다. 때론 머리를 쥐어뜯고, 하루에 한 시간도 못 잔 채 “탈탈 털어낸 이야기”가 ‘시그널’이었다. “아직 못 다한 이야기요? 다 쥐어짜서… 그렇게 쟁여놓을 수 있는게 있다면 좋겠어요.(웃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제 이야기를 한 시간 남짓 들려드리는 건 굉장히 기쁜 일이죠. 재밌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슬프건, 기쁘건, 어떤 식으로건. ‘시그널’ 시즌2는 잘 쓸 수 있는 자신이 생길 때, 그 때 해야죠.”

shee@heraldcorp.com

-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우리아이 영어글쓰기, 어떻게 교육하나요]
2016 레이싱모델 1위 송가람, 등장 순간 모두 ‘깜놀’
GS건설이 분양하는 “마포자이3차”... 입주 때는 “분양가가 전세가
[취재X파일]차세대 전투기 F-35 가격의 불편한 진실
[영상] 기상캐스터 생방송중 가슴노출 ‘민망’
김종인에 응답한 진영…내일 더민주 입당 발표

'발연기 논란' 연기자 "이민에 자살생각까지"
박나래 맞아?…몸무게 44kg·허리 23인치 과거사진 공개
김무성 고립ㆍ유승민 고사…청와대는 ‘미래권력’을 허하지 않는다
GS건설이 분양하는 “마포자이3차”... 입주 때는 “분양가가 전세가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