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락했던 美 '러스트 벨트'.. 혁신 중심지로 부활 조짐

뉴욕=김덕한 특파원 2016. 3. 16.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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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코노미] 제조업 되살아나는 미국 - 100년간 美 산업의 심장부 자동차·철강산업 융성했다가 높은 제조단가 탓에 점차 몰락 - 부활 원동력은 美 에너지 혁명 셰일석유·가스 생산으로 경쟁국보다 에너지 비용 낮아져 - 新산업과 결합 효과 첨단 재료과학 등 기술 도입, 저렴한 공장·시설 이용해 생산
김덕한 특파원

미국 제조업의 고향인 러스트 벨트(Rust Belt)는 이름 그대로 과거 미국의 대표적 공업지대로 번창했다가 제조업 쇠퇴로 몰락한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일리노이, 인디애나 등 미국 중서부와 북동부 지역을 가리킨다. 자동차 산업 중심지인 디트로이트, 철강 산업이 번성했던 피츠버그, 기계·석탄·방직 산업이 발달했던 필라델피아, 볼티모어 등은 1870년대부터 100년간 제조업 호황기를 구가할 때 미국 산업의 심장부였다. 그러나 높은 제조 단가와 인건비, 강성 노조 탓에 1970년대 이후 이 지역 제조업체들은 문을 닫거나, 아니면 비용이 저렴하고 날씨도 좋은 남부와 서부, 이른바 선 벨트(Sun Belt) 지역으로 이전해 갔다. 러스트 벨트라는 말은 쇠락한 산업지역뿐 아니라 미국 제조업의 몰락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그런데 최근 이 러스트 벨트가 되살아나면서 새로이 주목받고 있다.

◇자동차 산업 중심지로 되살아난 디트로이트

우선 정치적으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각 당 후보들이 이 지역 민심을 잡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값싼 외국 상품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 위대함을 잃은 미국을 재건하겠다"며 이 지역 민심을 공략하고 있고,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주)은 TPP(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에 찬성했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전력(前歷)을 끄집어내 공격하면서 이 지역의 산업을 부흥시키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수사(修辭)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지역이 자생력을 바탕으로 부활하고 있다는 경제적 측면이다.

2013년 무려 180억달러(약 22조원) 빚을 짊어지고 파산 신청까지 했던 디트로이트가 다시 자동차 산업 중심지로서 위용을 되찾는 등 예전의 영화를 회복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디트로이트에 주력 공장을 가지고 있는 미국 자동차 '빅(big)3'인 GM, 포드, 크라이슬러의 북미 지역 생산량은 2014년 1023만대로 2011년에 비해 32% 늘었다. 디트로이트가 속한 미시간주의 실업률은 2010년 12.6%에서 지난해 완전고용에 근접한 5.1%까지 떨어졌다. 인근 오하이오주의 실업률도 같은 기간 11%에서 4.8%로 낮아졌다.

러스트 벨트가 부활한 데는 셰일석유·가스(퇴적암층에 매장돼 있는 석유와 가스)를 통한 미국판 에너지 혁명이 큰 힘이 됐다. 2012년 미국의 천연가스 가격이 2008년에 비해 4분의 1로 떨어지면서 독일·프랑스·일본 등 경쟁국에 비해 미국 기업들의 에너지 비용 부담이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는 분석도 있다. 이 새로운 에너지원을 바탕으로 가격 경쟁력을 회복했고 미국 본토 제조업의 중흥이 가능하게 됐다. 비료·에틸렌 등 화학업체나 유리 제조업, 발전소용 터빈 등 기계 생산업체, 금속업체 등 해외로 나가 있던 에너지 다소비 업종 기업들이 미국으로 유턴했다. 그러나 에너지 가격 부담을 덜게 됐다는 것만으로 러스트 벨트의 부활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

◇신산업을 접목한 혁신 벨트

러스트 벨트 부활의 밑바탕에는 기존 산업과 연관된 신산업 및 지식 산업을 개척하고, 저렴해진 건물 등 생산시설을 새로운 용도에 맞게 재활용하는 혁신이 자리 잡고 있다. '녹슬어버린 산업 지역'이 '뜨거운 혁신의 현장'으로 탈바꿈한 것이 러스트 벨트의 부흥을 이끄는 진짜 힘이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에서 미국 러스트 벨트 부활의 첫째 동력으로 예전에 영화를 누렸던 산업과 연관됐지만 완전히 새로운 기술을 도입한 재료과학의 혁신을 꼽았다. 예를 들어 타이어 산업의 메카 격인 오하이오주 애크런시는 미국 폴리머 산업의 중심지로 탈바꿈했다. 고분자 화합물인 폴리머는 금속 표면 가공, 전기전자, 나노 산업 등 고부가 가치 산업에 활용된다. 애크런대학의 폴리머트레이닝센터는 학자 120명과 대학원생 700명이 연구하면서 '애크런 폴리머시스템스' '애크런 표면기술(Surface Tehnologies) 같은 애크런시의 폴리머 기업을 뒷받침하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섬유 산업도 열과 화학약품에 견디는 첨단소재 산업으로 진화했다.

쇠락한 도시에서 값어치가 떨어진 공장이 이제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산업을 수용하기에 더 좋은 조건이 되고 있는 것도 러스트 벨트의 장점이다. 방위산업 도시였던 뉴욕주의 워터블리엣 시에서는 '클리블랜드 폴리머 테크놀로지'라는 회사가 예전 방위산업 공장을 활용하고 있다. 미시시피주 북동부 변두리의 소규모 제철공장들은 3억달러 규모 타이어 생산공장으로 재탄생했다.

예전의 기술과 시설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자본을 만나고 있는 것도 러스트 벨트를 살리는 긍정적인 힘이다. GE 같은 대기업이 싼값에 활용 가능한 넓은 공간과 숙련된 제조 기술을 가진 피츠버그나 디트로이트의 중소 회사에 생산공장과 시설, 종잣돈을 제공하면서 낡은 산업을 '제조업 르네상스'로 이끌어 가고 있다.

◇미국인들의 희망 실은 러스트 벨트

러스트 벨트의 부활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도 여전히 존재한다. 지난 수십년 동안 제조업이 자동화되면서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었고 지식 집약 산업은 일자리 제공 측면에선 예전의 '낡은 산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 창업되는 기업 역시 1980년대에 비하면 여전히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인들이 러스트 벨트에 거는 희망은 어느 때보다도 높다. 애틀랜틱 매거진은 이번 3월호 커버스토리로 '어떻게 미국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을 것인가'라는 기사를 싣고 새로운 기술산업뿐 아니라 산업의 재창조와 재정비의 기운이 미국을 바꿔놓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흥 시장(emerging markets)'이라는 용어를 창조한 안토인 밴 악트마엘과 네덜란드의 언론인 프레드 배커는 신간 '지구상에서 가장 똑똑한 곳(The Smartest Places on Earth)'에서 "선진국, 특히 미국의 러스트 벨트가 혁신이 가장 치열하게 벌어지는 곳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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