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억의 야생화 이야기(20)-마가목] 잎, 꽃, 열매의 아름다운 삼중주

2016. 3. 15. 09: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식물분류학자 유기억교수가 들려주는 야생화 이야기,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사진=홍정윤, 마가목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애를 할 때는 음식의 맛보다는 분위기 좋은 곳을 찾아다닌다. 그래서인지 맛과는 상관없이 그렇게 많은 식당들이 꾸준히 영업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이가 들면서는 분위기보다는 값이 싸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집을 선호하게 된다. 또 이런 성향과는 별도로 음식 맛자체를 즐기는 사람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중에는 전국의 맛집을 찾아다니며 음식을 즐기고 그 맛을 평가하여 글을 써서 인터넷에 올리거나 책으로 만든 사람도 여럿 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으는 맛집은 음식뿐만 아니라 후식도 특별하다. 후식은 입안을 개운하게 하고 속을 편안하게 하는 안정제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대부분의 식당은 커피나 녹차 정도여서 그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편안하고 한국적인 후식은 없을까? 언젠가 한정식으로 소문난 집에서 맛있게 식사를 하고 후식을 기다리는데 종업원이 다가와 물었다.‘ 우리 집에는 둥굴레와 마가목 차가 있는데, 어떤 것으로 하시겠습니까?’ 흔한 둥굴레 차 맛은 익히 알고 있겠지만, 마가목 차는 도대체 어떤 맛일까? 궁금해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손님 중에는 마가목이 나무인지 풀인지는 고사하고 식물인지 동물의 일부인지조차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테니 ‘마가목이 무엇이냐’고 되묻거나 편한 둥굴레 차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마가목 차는 약간 매운 듯하지만 맛이 좋고 입안에 감도는 은은한 향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차로,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인기있는 차 중의 하나다. 종업원의 질문에 대답 대신 내 머릿속을 스치는 기억이 하나 있었다. 예전에 오대산을 오르는데 산속 높은 곳에서 나 홀로 시위를 하고 있는 나무가 있었다. 줄기에 껍질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세찬 비바람을 맞으면서 말이다. 껍질 없는 나무라고 해야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의 고사목이 대부분인데, 그리 굵지도 않은 줄기에 껍질 하나 없이 외롭게 서 있으니 이상해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몸에 좋다면 가리지 않고 챙기는 사람들에 의해 안타깝게 죽어가는 마가목(Sorbus commixta)의 최후였던 것이다. 불현듯 떠오른 기억에 결국 나는 그날 마가목 차를 마시지 못했다. 불안한 생각에 식당을 나오며 마가목의 출처를 물었더니 중국산으로 시장에서 구입한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발고도가 높은 곳을 선호하는 마가목은, 백두산에서는 해발 1,000미터 정도의 넓은잎나무 숲에서 볼 수 있고 설악산이나 태백산에서는 해발 1,300미터 근처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개체 수가 많기로는 울릉도가 단연 으뜸이다.

속명 ‘Sorbus’는 라틴어의 ‘sorbus’ 또는 ‘sorbi’에서 온 말로 ‘service tree’라는 뜻으로 용도가 많다는 의미를 가진다. 종소명‘commixta’는‘혼합하다’, ‘복잡하다’는 뜻으로 여러 개의 꽃이 달려 있는 것을 나타낸 것 같다. 마가목이라는 우리 이름은‘조심’, ‘신중’이란 꽃말과는 어울리지 않게 이른 봄 새싹이 올라올 때의 모습이 말의 이빨처럼 힘차게 솟아난다고 해서 ‘마아목(馬牙木)’이라 한 데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지방에서는 ‘은빛마가목’이라고도 한다.

형태가 비슷한 종으로는 잎이나 겨울눈에 털이 있고 없고에 따라 잔털마가목, 왕털마가목, 녹마가목, 산마가목, 당마가목 등이 있으며, 세계적으로는 약 80종이나 되는 많은 종류들이 주로 북반구를 중심으로 분포한다.

마가목은 잔가지를 꺾으면 생강나무처럼 특이한 향이 나기 때문에 중북부 지방의 산사에서는 차로 다려 마시기도 하는데, 여름에 갈증을 없애고 더위를 잊게해 준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줄기의 껍질과 열매를 약으로 사용하는데, 폐결핵으로 인한 해수와 천식, 그리고 위염과 복통을 치료하는 데 쓴다. 비타민 A와 C의 결핍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줄기는 탄력이 좋고 단단하여 지팡이 재료가 되기도 한다.

요즘 들어 새로 조성된 화단이나 길가에 마가목이 심겨 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5∼6월에 피는 흰색 꽃은 싱그러움을 더해 주고, 9∼10월에 익는 붉은색 열매는 추수의 느낌처럼 풍성함이 느껴진다. 야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외래종인 플라타너스나 은행나무보다는 훨씬 더 자연성이 느껴져 좋다.

재래시장에 가면 암에 특효가 있는 화살나무, 강정제인 삼지구엽초, 간 기능을 회복시켜 준다는 헛개나무 같은 약재들이 흔하게 팔리고 있다. 마가목도 비슷한 경우로, 열매와 껍질이 몸에 좋다는 이유로 유명한 산의 들머리 좌판이나 선물가게, 심지어는 휴게소 약초 전시장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포장지에는 모두 국내산이라고 적혀 있지만, 볼 적마다 내심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약으로 쓰이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자생지에 선 나무의 밑동까지 잘라 내는 참혹한 일은 벌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중한 우리의 자원인 동시에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자연의 한자락이기 때문이다.

유기억 yooko@kangwon.ac.kr 강원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이며, 식물분류학이 전공인 필자는 늘 자연을 벗 삼아 생활하면서 숲 해설가, 사진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야생화를 주로 그리는 부인 홍정윤씨와 함께 책 집필 뿐 만 아니라 주기적인 전시회를 통해 우리나라 자생식물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는데 노력하고 있다.

Copyright © 전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