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결혼 인정해도 세상은 끝나지않아요. 혜택이 늘어날 뿐"

박다해 기자 2016. 3. 14.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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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결혼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가' 저자 리 배지트 교수 내한..동성결혼 경제학적 관점서 연구

[머니투데이 박다해 기자] ['동성결혼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가' 저자 리 배지트 교수 내한…동성결혼 경제학적 관점서 연구]

'동성결혼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가' 저자 리 배지트 메사추세츠대학교 경제학 교수는 12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저자 강연회에서 다양한 동성결혼 사례를 소개했다. /사진제공=민음사

"동성결혼이 가능해지면 세상이 끝나고, 문명이 붕괴하고, 이성애자들은 더는 결혼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 미국 주요 논객들의 논리였습니다. 기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미국) 메사추세츠 주, 네덜란드, 덴마크 등에서 동성결혼이 인정됐을 때 세상은 끝나지 않았고 사회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이죠"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 분야를 연구하는 경제학자로 '동성결혼'의 의미를 처음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들여다본 리 배지트 메사추세츠대학교 경제학 교수가 갓 번역 출간된 그의 저서 '동성결혼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가' 저자강연회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실버도 동행했다.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 컨퍼런스홀은 그의 강연을 듣고자 하는 수십여 명의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의자가 모자라 복도나 계단에까지 앉은 이들은 배지트 교수의 농담에 웃음을 터트리면서도 그가 소개하는 사례에 집중했다.

이번 저서는 배지트 교수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보냈던 안식년 동안 착수했던 연구결과다. 미국에선 2010년에 출간됐다. 그는 덴마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벨기에, 프랑스, 독일, 캐나다 등 미국보다 먼저 동성결혼을 받아들인 국가의 사회적, 문화적 변화 양상을 들여다봤다. 미국에서도 일부 주에만 동성결혼이 법제화됐을 때다. 선례를 들여다봐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경제학자답게 각종 데이터와 도표, 수치들로 빼곡히 채워 "동성결혼을 통해 누군가 혜택을 볼지언정 누구도 손해를 입지 않는다"는 '파레토 개선 법칙'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것이 이성커플의 결혼 욕구를 감소시키고 자녀양육에 대한 부모의 헌신과 관심을 감퇴시킨다는 일부 반대론자들의 주장에 실증적인 사례와 객관적인 수치로 반박한 것이다.

배지트 교수는 "동성결혼을 인정하면 그들이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접근권을 (누구나) 동등하게 지니고 있다는 인식이 생길 뿐"이라며 "그걸로 다른 자가 피해를 받거나 하는 일은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1980년대 초 최저 혼인율을 기록한 덴마크는 동성커플을 위한 '파트너십등록제'를 시행한 뒤 상승했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도 마찬가지다.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것이 결혼 제도 자체를 바꾸느냐고요? '아니다'라고 답할 수 있죠. 동성결혼이나 이성결혼이나 놀라울 정도로 유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또 동성커플도, 이성커플도 모두 서로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약속하기 위해 결혼을 원한다는 조사결과를 소개했다. 동성결혼이 '틀린 것'이 아니며 그들은 '사랑하는 연인'일 뿐 이성커플과도 다를 바 없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결혼의 권리를 확대, 개방한다고 해서 결혼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결혼의 의미를 새롭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배지트 교수는 책에서 △동성애자의 결혼이 기존 결혼제도를 바꿀 것인가 △결혼제도가 동성애자들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왜 '파트너십 등록제'와 같은 다른 제도가 아닌 '결혼'을 이어야 하는가 라는 세 가지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제시한다.

그의 질문은 여전히 성소수자에 대한 반감이 큰 한국사회에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김조광수 감독과 김승환 레인보우팩토리 대표는 2013년 9월 국내 최초 동성결혼식을 올렸지만, 서대문구청은 그들의 혼인신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국회에서 열린 기독교 단체 기도회 행사에서 "차별금지법, 동성애법, 인권관련법을 반대한다"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서강대학교의 한 교수는 지난 10일 학내 성소수자 모임의 신입생 환영 현수막을 무단으로 훼손, 철거해 총학생회 등으로부터 재물손괴혐의로 고소되기도 했다.

그의 강의를 듣고 있던 캐나다 출신의 참석자가 "한국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많은 승리를 일궈냈지만, 여전히 보수 기독교의 정치권 로비가 강해 법적인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문화적인 논의가 우선이냐, 법적·제도적인 논의가 우선이냐"고 물었다.

배지트 교수는 이에 대해 "한국의 (문화, 사회적인) 맥락에 대한 제 이해가 제한적이라 정확한 대답을 드리긴 어렵다"면서도 "문화적인 논의가 진행돼있지 않은 상태에선 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둘 모두) 할 수 있는 운동을 하면서 변화를 측정해 나가야 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배지트 교수는 또 "LGBT를 연구한 경제학자 첫 세대로 제가 이 분야를 연구하겠다고 했을 때 위험에 빠질까봐 걱정한 지도교수님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균형의 추가 많이 옮겨온 것 같다. 이제는 상당히 많은 경제학자가 성소수자 가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다"며 "(제 책을 통해) 한국에서 결혼평등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그 과정에서 '실제로 동성결혼이 가능하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인 예측과 논의가 진행되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동성결혼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가=리 배지트 지음. 김현경·한빛나 옮김. 류민희 감수. 민음사 펴냄. 452쪽/2만2000원

박다해 기자 doal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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