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일요일의 문장] 움베르토 에코 "책은 불사(不死)를 위한 약간의 선금"

장석주 시인 2016. 2. 2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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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과 재치, 유머, 때로는 엉뚱함을 지식으로 버무릴 줄 아는 학자, 움베르트 에코가 지난 2월 19일 별세했다./사진 제공=열린 책들
그는 책이 삶을 연장시킨다고 믿고, ‘책의 우주'를 유영하며 살았다./사진 제공=열린 책들

“책은 생명 보험이며, 불사(不死)를 위한 약간의 선금이다.”-움베르토 에코(1932~2016)

2월 19일, 움베르토 에코가 밀라노 자택에서 죽었다는 뜻밖의 소식이 날아든다. 전 세계 언론들이 다투어 ‘장미의 이름’을 써낸 작가이자 대중적인 지식인, 기호학자이자 철학자, 중세 역사학자이자 미학자로 이름을 떨친 에코를 추모하고 애도하는 기사들을 쏟아낸다.

“‘백과사전적 지식의 창고’에서 이야기를 끌어내는 위대한 이야기꾼”이자, “역설과 재치, 유머, 때로는 엉뚱함을 지식으로 버무릴 줄 아는 학자”의 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나는 지식의 거인을 잃은 슬픔보다는 한 시대가 저물고 있고, 그걸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덧없음에 젖어 서가에 꽂힌 그의 책들을 꺼내 뒤적이며 한나절을 보냈다. 그게 나만의 애도 방식이었다.

◆고대에는 노인들이 기억을 대신, 지금은 책이 고대의 노인들을 대신한다

에코는 이탈리아 알레산드리아에서 태어난다. 아버지는 회계사, 할아버지는 인쇄업자였다. 그는 토리노 대학교에서 중세철학과 문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 밀라노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한다. 그는 이탈리아어는 물론이거니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라틴어, 그리스어, 러시아어를 자유자재로 쓰는 언어의 천재였다.

아울러 중세에 매혹된 학자로 언어학과 기호학을 가로지르며, 다양한 고전에서 현대의 기호학과 철학, 영화, 텔레비전, 추리소설, 만화 들을 아우르는 대중문화까지 종횡무진하며 날카로운 통찰과 재기발랄한 유머로 버무린 책들을 써낸다.

그는 ‘거대한 도서관’이라 할 만큼 박학다식한 지식들로 자신을 채운 사람이다. 35개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고, 또다른 한편으로 ‘푸코의 진자’라는 소설은 카톨릭교회로부터 “신성모독, 불온함, 저속한 익살과 쓰레기로 가득하고, 이 모든 것들이 오만과 냉소주의라는 접착제로 한데 묶여 있다”는 신랄한 비판을 받는다.

문자, 인쇄술, 전자 메모리칩의 발명으로 인류는 기억이라는 보상을 받는다. 고대에는 노인들이 집단의 기억이 되었다. 종족과 가족들은 노인의 기억에 의지해서만 제가 살지 못한 시간들을 돌아볼 수 있었다. 오늘날은 책이 고대의 노인들을 대신한다.

책은 인류의 다양한 기억 저장고 노릇을 한다. 인류 문명은 그 기억들을 기반으로 번창했지만, 보르헤스의 ‘기억왕 푸네스’에 나오는 ‘푸네스’처럼 모든 것을 다 기억할 필요는 없다. 책이 기억할 것과 그럴 필요가 없는 것들을 선별하고 여과하는 일을 대신한다. 달리보면 오늘의 문화란 “영원히 사라져 버린 책들과 물건들의 공동묘지”인 것이다.

◆인류가 책보다 더 나은 용도의 물건을 내놓는 일은 불가능하다

인터넷과 전자책 등등 새로운 매체들이 ‘종이책’들을 영원히 사라지게 만들까? 에코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플라스틱 물질, 전자공학, 핵융합, 우주 항해가 가능해진 고도의 테크놀러지 시대에도 수저, 망치, 지퍼 같은 도구들에 내장된 기초적인 기능과 구성을 바꿀 수는 없다. 인류는 고대에서 현재까지 기억을 저장하는 방법을 고안하고, 양피지나 파피루스에서 플로피디스크, 시디롬, 하드디스크, USB 메모리 등 시대에 따라 기억을 보존하는 도구들을 만들었지만, 책보다 더 나은 ‘반영구적 저장 매체’를 만들 수는 없다.

에코는 책이 그 효율성을 이미 증명했고, 같은 용도의 물건으로서 책보다 나은 것을 내놓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그런 까닭에 인터넷의 전성시대에도 ‘완벽한 도구로서 책의 본질’과 ‘구텐베르크의 우주’가 사라지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에코는 수많은 책들을 꾸역꾸역 읽는 독서광이자 구텐베르크 성서 초판본을 손에 넣는 게 꿈이었던 고서 수집가였다. 밀라노 자택 서재에 약 5만권 장서와 더불어 카발라, 연금술, 마법, 다양한 언어들에 대한 고서들이 있다. 그는 책이 삶을 연장시킨다고 믿고, ‘책의 우주’를 유영하며 살았다.

책은 불가능한 여러 겹의 삶을 가능하게 만든다. 특히 고전은 과거의 흔적과 기억을 되살려내 오늘의 우리가 역사적인 경험들, 그 안의 도식들과 원초적인 장면들을 생생하게 겪게 한다. 고전들은 저 아득한 선조들에서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까지 수많은 세대의 생각과 삶을 동시적으로 읽고 사유하도록 이끄는데, 그게 책의 위대한 힘이다.

그런 맥락에서 “책은 생명 보험이며, 불사(不死)를 위한 약간의 선금”이라는 문장은 곱씹어 볼만한 공감을 얻는다.

◆장석주는 스무살에 시인으로 등단하여 서른 해쯤 시인, 소설가, 문학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2000년 여름, 서울 살림을 접고 경기도 안성의 한 호숫가에 ‘수졸재’라는 집을 지어 살면서, ‘일요일의 인문학’ 등 다수의 저작물을 냈다. 최근 40년 시력을 모아 시집 ‘일요일과 나쁜 날씨’, 시인 박연준과 결혼 식 대신 쓴 책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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