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주 '배째라'면 근로감독관 '아몰랑'..왜 그럴까?

CBS노컷뉴스 김광일·김민재 기자·강혜인 수습기자 2016. 2. 24.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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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동개악 저지 전국 노동자 대회‘ 에 참가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황진환기자
최근 부당해고나 임금체불을 당한 노동자가 고용노동청을 방문할 때 만나게 되는 '근로감독관'이 사건 처리를 소홀히 한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노동개혁안을 둘러싼 갈등이 개별 사업장으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러한 염려와 불만의 목소리는 더욱 구체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관련기사 : 2월 23일 자 CBS노컷뉴스 - "이리 오래 걸릴 일인가…", '대충대충' 근로감독관에 분통)

◇ 하루 3~4건 처리…'살인 근무'에 두손 든 근로감독관

노동청과 근로감독관들은 사건 처리의 가장 큰 걸림돌로 하나같이 '과중한 업무량'을 지적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1100여명에 불과한 근로감독관들은 그 수가 부족해 한 사람당 한 해 평균 350건의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

주말과 연휴 등을 제외하면 하루 3~4건씩 해결해야 밀리지 않고 일을 마칠 수 있다.

이에 따라 감독관들은 업주와 노동자 등 관련 당사자를 전부 소환하거나 서류를 꼼꼼히 분석하기는커녕 대부분 속전속결로 사건을 처리할 수밖에 없는 현실.

서울의 한 고용노동지청에서 근무하는 근로감독관 박모씨는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일하다 보니 감독관들이 속병에 걸려 쓰러지는 등 사건 사고가 정말 많다"며 "근무 시간에는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을 정도로 죽을 만큼 힘들다"고 털어놨다.

◇ 빈약한 '조사권'…결국 처리기한 넘기기도

개별 근로감독관들에게 주어진 조사 권한이 빈약하다는 내부 불만도 터져 나온다.

현행법상 사업주가 근로계약에 관한 자료를 '보존'하지 않으면 3차례에 걸쳐 최대 53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지만, '제출'하지 않은 경우에는 처벌규정이 없다.

또 피진정인이 이유 없이 출석 조사를 2번까지 거부하더라도 감독관은 아무런 제재를 취할 수 없다.

이에 반해 근로감독관에게 주어진 진정사건의 처리기한은 단 25일.

사유서를 작성해 기간을 연장해도 추가로 25일 안에 마쳐야 하기에 자칫 진정 당사자 소환조차 하지 못한 채 최장 50일의 처리기한이 지나버리기도 한다는 게 일선 감독관들의 하소연이다.

◇ 노무사 시험 3년 vs 근로감독관 교육 4주

근로감독관은 고용노동부 내 순환보직이라 노동 문제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기 쉽지 않다는 문제점도 있다.

6년 차 근로감독관 김모씨는 "노동부에 근무하면 센터도 가고 관리팀도 가고 근로감독관으로도 간다"며 "교육도 단순히 불충분한 수준을 넘어 다양한 사례에 적용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 직렬 공무원 임용 시에도 국어, 한국사, 경제 등 일반 공무원과 똑같은 과목으로 시험을 치를 뿐 정작 노동과 관련된 과목은 단 한 개도 없다.

근로감독관 임명을 앞두고는 단 4주간의 연수만 마치면 신고사건을 처리할 자격이 주어지고, 임명 후에는 1주일 이내에 현장 집무교육(OJT)을 받지만 대개 선배 근로감독관의 업무 내용을 어깨 너머로 배우는 수준이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최진수 노무사는 "노무사 시험만 해도 대부분 3년 이상 공부하고 치른다" 며 "단순히 임금체불만 고려하면 근로기준법만 떠올리기 쉽지만 복잡한 파견노동 등 특별한 사안까지 다루자면 파견법, 산재법 등 10여가지 노동 관련 법률을 모두 공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천대 무역학과 옥우석 교수는 "프랑스 등 유럽 선진국은 우리나라의 노동청과 같은 기구를 노동부 산하가 아닌 별도 기구로 꾸려 운영한다"며 "평생 근로감독에 매진하며 교육받기 때문에 전문성도 높을 뿐 아니라 정부의 노동정책 방침이 바뀌어도 독립성을 유지해 객관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악덕 업주의 '배째라식' 엄포에 노동자들은 두 손을 들 수밖에 없고, 이를 감독할 근로감독관마저 과도한 업무 속에 체계적인 교육이나 전문성을 갖추지 못하면서 노동자들의 권리구제를 위한 제도 자체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CBS노컷뉴스 김광일·김민재 기자·강혜인 수습기자] ogeerap@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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