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차별 넘어..모든 '앵무새 죽이기'에 맞선 작가 하퍼 리
빈자, 노인, 장애인 편견에 의문 던져
(서울=연합뉴스) 한혜원 기자 = "언젠가 아빠는 내게 형용사를 몽땅 빼 버리고 나면 사실만 남게 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앵무새 죽이기' 중에서)
18일(현지시간) 향년 89세로 별세한 미국 소설가 하퍼 리는 명작 '앵무새 죽이기' 한 편으로 인간의 모든 편견에 맞선 작가였다.
'앵무새 죽이기'는 흑인 차별이 팽배한 미국의 한 마을에 흑인 청년이 백인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누명을 쓴 상황에서, 편견 없는 백인 변호사 애티커스가 주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그를 변호하는 것이 큰 줄거리다.
하지만 흑인 인권 문제는 표면적 주제일 뿐, 하퍼 리가 이 작품에서 근본적으로 파고드는 것은 인간 모두에 팽배한 '편견'이다.
작품 속 가상의 도시 메이콤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물들이 산다. 마을 어른들은 이 사람들을 두고 온갖 뒷이야기와 소문을 만들지만 여섯 살짜리 주인공 '스카웃'은 때묻지 않은 눈으로 모두를 공평하게 바라본다.
스카웃과 어린 아이들의 직접 체험은 어른들이 가진 비뚤어진 시선을 깨닫게 한다.
스카웃과 오빠 '젬'의 친구인 이혼가정 자녀 '딜', 가난한 집에서 자란 친구 '월터 커닝햄'은 여느 아이와 다를 것 없이 착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철없던 오빠 젬은 성격이 고약한 것으로 소문난 '듀보스' 할머니와 대화를 통해 성장하며, 정신질환자 '부 래들리'는 위험에 처한 아이들을 구해준다.
여기에 "다수결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라고 강조하는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의 올곧음은 독자에게 정의와 양심, 용기와 신념이 무엇인지 묻는다.
하퍼 리는 이렇게 장애인, 독신자, 노인, 빈민층, 이혼가정 등 편견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순수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모든 인간이 서로 열린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인간에게 아무 해를 끼치지 않았지만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사냥감이 되는 '앵무새'가 우리 주변에 있지 않은지 물으면서도 작품에서는 유머와 따뜻함을 잃지 않았다.
읽기 쉬운 문장, 인류 보편에 던지는 따뜻한 메시지, 그리고 감동적인 서사가 한데 어우러져 남녀노소가 감동을 받으며 읽을 수 있는 이 작품은 미국 문학 평론계에서는 '대중문학과 순수문학 사이에 다리를 놓아준 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앵무새 죽이기'는 1960년 정식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으며 세계적으로 4천만 부 이상이 팔렸다. 미국 고등학교 과정에서는 이 책이 졸업 전 필독서이며, 1991년에는 미국 국회 도서관이 선정한 '성경 다음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책' 1위에 뽑혔다.
하퍼 리는 애초 스카웃을 20대로 설정한 '파수꾼'을 리핀코트 출판사에 보냈지만, 출판사 편집자 테이 호호프의 권유로 스카웃을 여섯 살 아이로 바꿔 작품을 다시 썼다. 결과적으로 호호프의 제안은 '신의 한 수'가 됐다.
이어 55년 만에 세상에 나온 '파수꾼'은 또 한 번 반향을 일으켰다. 가족이 위협당하면서도 흑인 청년을 변호한 인물로 그려져 미국인 사이에 정의로운 남성상으로 자리 잡은 애티커스 핀치가 '파수꾼'에서는 백인우월주의 단체 쿠클럭스클랜(KKK)의 회합에 참석한 적 있는 인종차별주의자로 묘사된 것이다.
영문학자인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은 "하퍼 리는 작품을 통해 인간사가 복합적이라는 것, 어떤 한 가지로만 사람을 평가하기 어렵고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시각을 보여준다"며 "'앵무새 죽이기'에서 완벽한 사람으로 보인 애티커스가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파수꾼'을 통해 또 한 번 보여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원장은 이어 "'앵무새 죽이기'의 배경인 1930년대 미국은 경제적으로 어렵고 빈부격차가 컸기에 흑인과 외부인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다. 그래서 모든 이에게 편견 없이 다가가야 한다는 이 작품의 의미는 더욱 컸다"며 "인종, 빈부, 종교에 관한 비뚤어진 시선이 팽배한 오늘날 한국에도 그의 메시지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hye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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