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자엔 得, 지하상가엔 毒.. 또 횡단보도 딜레마

최윤아 기자 2016. 2. 19.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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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 5가·남대문시장 등 도심에 설치할지 고민] 市 '걷는 도시 프로젝트'로 추진 노약자·장애인 위해 필요하지만 상인들은 "地下 통행 줄어" 반발 다른 상권들과 갈등 빚는 경우도

"노약자와 장애인을 비롯한 시민의 보행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횡단보도는 필수적이다."

"횡단보도가 생기면 지하상가는 상인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서울시가 올해 '걷는 도시, 서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도심 주요 지점에 횡단보도 설치를 추진하자 지하상가 상인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횡단보도가 생기면 지하상가 유동 인구가 줄고, 매출 타격으로 이어져 생계를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가 올해 횡단보도를 설치하려는 곳은 종로5가 보령약국 앞과 회현사거리 우리은행 앞, 남대문시장 입구, 종각 YMCA 앞이다.시는 지난해 말 한국갈등해결연구원에 횡단보도 4곳 설치를 둘러싼 갈등 해결을 위한 용역을 의뢰해 다각도로 분석에 나섰지만 해결책을 못 찾고 있다.

◇"횡단보도 생기면 지하상가 무덤 된다"

"상인들이 휠체어 리프트까지 새것으로 바꿨어요. 이 정도면 보행권을 위해 할 만큼 한 것 아닌가요?"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종오지하쇼핑센터. 지하철 1호선 종로5가역과 연결된 이 지하상가에서 36년째 옷 장사를 해온 배승호(63)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배씨를 비롯한 상인 66명은 2014년에 6억4000만원을 모아 지하상가 서쪽 끝 출구에 있던 장애인용 휠체어 리프트를 신형으로 바꿨다. 상인들은 노인과 장애인들이 서울시에 "통행이 불편하니 지하상가 위에 횡단보도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자 각자 970만원쯤을 부담해 이런 대안을 마련했다. 서울시는 보령약국 앞쪽(위 지도)에 횡단보도를 놓기로 결정한 상태지만 상인들의 반발을 의식해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지하상가에 225개 점포가 있는 회현사거리 우리은행 앞도 비슷한 상황이다. 2009년 회현고가차도가 철거된 이후 인근 주민들이 이곳에 횡단보도를 설치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시는 지하상가 상인들의 반대에 직면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장애인이나 노인이 지하도를 건널 때 소모하는 에너지는 횡단보도의 4배나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횡단보도 설치를 위해 상인들을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상권 상인끼리 갈등 빚기도

남대문시장 입구도 2010년부터 "북창동에서 시장을 쉽게 오가려면 횡단보도가 있어야 한다"는 민원이 많은 곳이다. 하지만 남대문지하도상가상인연합 소속 97개 점포는 서명운동을 벌이며 반대했다.

서울시가 내년 말까지 중앙버스전용차로 신설을 추진 중인 점도 이 지역 상인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버스전용차로가 신설되면 횡단보도가 추가로 생기게 되기 때문이다. 남대문로 명동·소공동·회현·남대문 구간에는 총 4개 지하상가에 200여개 점포가 있다. 명동지하상가에서 안경점을 운영하는 양윤석씨는 "지하철 역을 끼고 있지도 않은데 횡단보도까지 생기면 누가 지하상가에 오려고 하겠나"라며 "지하상가 상인들이 망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했다.

반면 남대문시장 상인이나 인근 주민들은 설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백승학 남대문시장 기획부장은 "남대문·북창동·명동 일대는 관광특구여서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관광객도 많은데 횡단보도 하나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시민 보행권·상인 생존권 절충해야

서울 도심 자치구들은 횡단보도 신설 때마다 지하상가 상인들과 갈등을 빚어왔다. 중구청은 2009년 지하철 4호선 명동역 4·5번 출구 부근을 연결하는 횡단보도를 놓으려고 했다. 그러나 지하쇼핑센터 상인들의 반대에 부딪혀 3년 만인 2012년에 지하상가에서 떨어진 곳에 횡단보도를 설치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지하상가 상인들은 3·7번 출구에 총 36억원을 들여 에스컬레이터를 만들었다. 한국갈등해결연구원 측은 "서울시가 지하상가의 피해를 줄이는 방안으로 명동·남대문·회현 지하상가를 연결해 걸어서 지날 수 있게 하는 사업을 검토할 만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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