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아의 에어 카페>뱅쇼 한 잔 · 카프카의 집.. 마음 속 겨울왕국 '프라하'

기자 2016. 2. 12.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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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설국(雪國)’의 배경 일본 니가타(新潟), ‘샤프카’ 털모자를 뒤집어쓰고 보드카 잔을 기울이며 북국의 밤을 보내야만 할 것 같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녹색·빨강·보라색의 환상적인 오로라를 감상할 수 있다는 캐나다의 ‘옐로나이프’까지. 겨울 하면 떠오르는 쟁쟁한 ‘겨울왕국’들이다.

하지만 나만의 ‘겨울왕국’은 따로 있다. 필스너우르켈 맥주를 사이에 두고 흥겨운 농담으로 가득했던 밤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수은주가 멈춰버릴 정도로 시리디 시렸던 날씨 덕분일까? 2008년 1월 다녀온 체코여행 이후로 내 마음속의 ‘겨울왕국’은 오직 프라하뿐이다.

날씨가 그 정도로 추울 줄은 몰랐다. 숙소 밖으로 나온 지 30분 만에 발끝을 눈밭에 담근 것처럼 시려 동동거리기 시작했다. 두툼한 귀마개도 소용없었다. 몇 번이나 장갑을 낀 손으로 귀를 비벼 보았다. 심지어는 끼고 있던 선글라스에도 얇게 살얼음이 끼는 듯싶었다. 몇 번이고 투어를 포기하고 싶었던 유혹을 이겨낸 것은 전적으로 상점마다 팔고 있던 김이 설설 오르는 뱅쇼(계피 등을 넣고 끓여 낸 레드와인 음료)의 힘이었다.

바츨라프 광장에서 시작된 여정은 프라하성을 지나 푸른빛 담벼락이 인상적인 프란츠 카프카의 집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카프카와 관련된 서적을 파는 서점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실제로 카프카가 1916년에서 1917년 사이 이곳에 머물면서 글을 썼다는 이 집은 그가 남긴 작품의 분위기를 그대로 닮아 있었다. 외롭고 고단한 삶을 살았다는 카프카의 우울함이 서려 있는 푸른 담벼락의 집. 추운 날씨 덕분인지 더욱 마음이 시렸다.

프라하에서는 까를교 주변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 밤이 되면 까를교 주위를 환하게 장식한 불빛들이 다리 아래로 흐르는 볼타바강을 황금빛으로 수놓는다. 해지기 시작할 무렵의 하늘은 시시각각 색채를 바꾸며 이국의 낭만을 덧입힌다. 까를교 너머로 보이던 밤하늘은 짙은 코발트블루 빛이었다. 한참을 올려다보자니, 밤하늘에 빠질 것처럼 현기증이 나기 시작했다.

까를교를 지키고 있는 30개의 성인상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얀 네포묵 신부상이다. 까를 4세 시절, 왕비는 어느 날 자신의 외도 사실을 신부에게 고해성사한다. 그러나 우연히 이를 엿들은 신하는 왕에게 이 사실을 폭로하고, 왕은 여러 차례 신부에게 고해 내용을 캐내려 하지만, 신부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비밀을 지킨다. 그 일로 결국 신부는 돌에 묶인 채 볼타바강에 던져진다. 며칠 후 강 위에 다섯 개의 별이 에워싸고 주교의 시신이 떠오르자 왕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주교는 성인으로 추앙받게 된다.

얼마 전 프라하에서 찍었던 사진을 다시 꺼내어 보았다. 프라하성에서 맞는 함박눈의 낭만과 필스너우르켈 맥주에 곁들이는 체코식 족발(꼴레뇨)의 맛을 알려줬던 8년 전의 프라하 여행. 지금도 이른 새벽 겨울 공기를 가르며 출근하는 날이면, 시리도록 아름다웠던 그 날의 프라하가 떠오른다.

대한항공 승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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