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환철의법률이야기] 법률용어 국민 눈높이에 맞춰라

2016. 2. 2.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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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에는 통정(通情)이란 단어를 '남녀가 정을 통한다'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고, 일반적으로도 그렇게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민법 제108조는 '통정'의 의미를 전혀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

민법 제108조는 '통정한 허위표시의 효력'이라는 제목하에 '1항 상대방과 통정한 허위의 의사표시는 무효로 한다. 2항 전항의 의사표시의 무효는 선의의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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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한자어에 뜻도 서로 달라 헷갈려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늦었지만 환영

국어사전에는 통정(通情)이란 단어를 ‘남녀가 정을 통한다’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고, 일반적으로도 그렇게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민법 제108조는 ‘통정’의 의미를 전혀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 민법 제108조는 ‘통정한 허위표시의 효력’이라는 제목하에 ‘1항 상대방과 통정한 허위의 의사표시는 무효로 한다. 2항 전항의 의사표시의 무효는 선의의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법학을 공부하면서 처음 이 조문을 대하고 정말 의아해했던 기억이 난다. ‘통정한 의사표시라면 정을 통한 남녀 사이의 의사표시인가. 그러면 무효가 되나. 그런데 그 의사표시는 선의의 제3자에게는 무효라니, 여기서 말하는 선의의 제3자는 정을 통하지 않은 남녀를 말하는가?’ 나중에 교수님의 강의와 교과서를 통해 ‘통정한 허위표시’는 ‘상대방과 짜고 거짓으로 한 의사의 표시’이고, ‘선의의 제3자’는 ‘그 의사의 표시가 통정한 허위표시인 것을 몰랐던 제3자’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지만 처음 법학을 공부한 이래 지금의 변호사까지 30년 이상 법을 전공했지만, 아직도 민법 제108조의 규정을 읽으면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들곤 한다.

앞서 말한 민법 규정의 뜻을 다음의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갑’이 자신에게 큰 채무를 지고도 변제를 하지 않는 ‘을’의 집에 강제집행을 하려고 한다. 이를 알게 된 ‘을’은 강제집행을 피하기 위해 친구인 ‘병’과 짜고 자신의 집을 ‘병’에게 매도하는 내용의 가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등기를 ‘병’에게 이전해 주었다. 그런데 ‘병’은 ‘을’의 믿음을 배반하고, ‘을’의 집이 자신의 이름으로 등기가 된 것을 악용해, 마치 자신이 집주인인 것처럼 행세를 하면서 그러한 사정을 모르는 ‘정’에게 집을 팔아 버렸다.

이와 관련, 민법 제108조의 규정을 적용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을’과 ‘병’의 행위는 서로 짜고 한 것이어서 ‘상대방과 통정한 허위의 표시’가 되고 이 규정에 따라 무효가 된다. 즉, ‘을’과 ‘병’사이에서 집의 소유자는 여전히 ‘을’이다. 등기가 ‘병’ 이름으로 돼 있어도 ‘병’은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을’이 ‘정’에게도 그 집이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정’은 ‘통정한 허위표시의 무효는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는 규정을 내세워 ‘을’의 주장을 배척할 수 있다. 즉 최종적으로 ‘선의의 제3자’인 ‘정’이 집의 소유권을 취득하게 된다. 이와 같은 내용을 알게 되자 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민법은 왜 쉽게 규정하지 않고 용어의 뜻도 다르게 사용하는가’였다.

이러한 예는 민법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여러 법령에는 아직도 일반적이지 않은 표현, 어려운 한자어, 일본식 표현, 어색한 표현 등이 많이 남아 있다. 일반인들이 법을 어렵다고 여기는 한 요인일 것이다. 법제처는 지난 1월 31일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차원에서 형사소송법과 민법에 남아 있는 어려운 표현을 정비한다고 밝혔다. 늦은 감이 있지만 크게 환영할 일이다.

법제처는 전문가들과 충분한 논의를 거쳐 일반인도 법을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법령을 더욱 더 정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변환철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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