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의 수도가 자카르타란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이 도시를 여행지로 선택해 떠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발리에 가려 알려지지 않은 인도네시아의 수많은 도시와 지역들, 현지인 친구를 따라 수도인 자카르타와 그 인근을 돌아보았다. 2500만명이 오가는 메트로시티 자카르타는 서울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현대적이다. 이 도시인들은 대체 주말을 어디서 보낼까? 현지인들의 주말 여행지를 따라가 보았다.
▶자바의 파리, 반둥 | 아르데코풍의 건물들을 유산으로 지닌 고원 휴양도시
현지인의 주말 여행지 첫 번째 후보는 반둥이다. 자바섬은 동자바, 서바자, 중앙자바 등 크게 세 조각으로 나누는데 그 중 서자바West Java 지역의 수도가 반둥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자카르타, 수라바야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도시로 수도인 자카르타에서 남동쪽으로 185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이곳을 사랑하는 이유는 연중 22℃를 유지하는 날씨 덕분이다. 해발 760m의 시원한 고원지대에 위치하고 사방은 화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라는 점도 한 몫 한다. 날씨가 좋고 토양이 비옥해 수 백 년에 걸쳐 유럽인들이 드나들며 자신들의 땅인 양 개발했다.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가 인도네시아에 설립된 것이 1602년, 그 이후 19세기엔 차, 커피 농장, 과수원, 야채밭을 소유한 부유한 농장주들이 거주했고, 식민지 시대의 절정이었던 20세기 초부터는 네덜란드인들의 별장지, 휴양지로 본격 개발되었다. 당시 유럽은 아르데코 시대였다. 반둥은 ‘자바의 파리’라 불릴 만큼 유럽 문화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반둥을 네덜란드어로는 ‘파리스 반 자바Paris Van Java’라 한다. 더치(네덜란드)문화의 유산들과 활화산, 노상 온천 등 신비한 자연 환경, 쇼핑과 미식 등의 여러가지 요소들이 어우러져 오늘날 반둥은 인도네시아인들이 좋아하는 대표적인 관광도시가 됐다. ‘자바의 파리’란 별명도 멋지지만 ‘꽃의 도시Kota Kembang’란 설명에 도시에 대한 기대감이 더 상승된다.
자카르타인들의 주말여행지
자카르타는 정말 복잡했다. 자카르타 사람들도 그렇다. 매일 교통체증에 시달리고, 바쁜 업무를 반복하는 그들은 아름다운 자연, 쇼핑과 미식을 할 수 있는 반둥에서의 주말휴가를 꿈꾼다. 자카르타에서 반둥까지 여정이 쉽진 않았다. 예전에는 푼칵 패스를 타고 4시간은 가야 했지만, 길이 막히면 일곱 시간도 보통이었다고 한다. 그나마 유료 도로가 만들어진 이후엔 2시간대에 갈 수 있지만 그래도 주말 차량 흐름을 감안할때 넉넉잡아 3 시간은 잡아야 한다고 친구는 출발하기 전 엄포를 놓았다.
여유를 가지고 사람과 풍경을 구경하자. 보채지 않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겠다. 도로 어디선가 섰다, 천천히 갔다를 반복하며 차는 반둥으로 향했다. 자카르타에서 오전 9시가 넘어 출발했는데 12시 즈음 도착했으니, 워낙 쫄았던 탓인지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싶다. 만약 외국에서 오는 관광객이라면 싱가포르나 KL, 발리,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를 탈 수도 있다. 반둥을 오가는 수많은 항공사들과 저가항공사들의 노선까지 합치면 시간대가 꽤 다양하다. 식사 시간에 딱 맞게 도착한 우리는 점심 식사부터 하고 호텔에 짐을 풀었다. 반둥엔 생각보다 좋은 호텔들이 많았다. 글로벌 체인호텔부터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고급 부티크 호텔까지, 숙박의 선택이 다양한 것을 보니 이 곳의 규모가 생각보다 크구나 느껴졌다. 주말이면 자카르타에서 온 사람들로 도시가 꽉 찬다고 하더니, 과연 도로와 북적대는 시내 거리를 보니 이들의 말이 천천히 실감나기 시작했다.
반둥은 쇼퍼들의 천국
도시인들이 반둥에서 하고 싶어 하는 1순위는 미식과 쇼핑이다. 반둥 시내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인 ‘브라가 스트리트Braga Street’로 가면 세련된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즐비하다. 네덜란드식 건축물들과 어우러져 스타벅스와 현대식 쇼핑몰들이 대비를 이룬다. 유명 레스토랑들은 주말엔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도시인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자바커피를 본격적으로 음미할 수 있는 세련된 인테리어의 커피숍들도 브라가 스트리트엔 많았다. 교육의 도시라더니, 외국인 학생들도 많은 것 같았다. 거리엔 생맥주를 파는 라이브 펍들이 성황이었다. 가장 놀란 것은 반둥의 쇼핑 인프라였다. 세티아부티Setiabudi, 찌암밸라스Cihampelas, 다고Dago, 리아우Riau 지역에 산재한 수많은 팩토리 아울렛들에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었다. 찌바두윳 슈즈 인더스트리 센터까지 포함해 반둥은 저렴한 가격에 명품과 브랜드 제품을 구할 수 있는 ‘쇼퍼스 파라다이스’다. 섬유공장이 많은 반둥은 인도네시아 대부분의 섬유를 생산하고 있다. 브랜드 제품들의 OEM공장들이 밀집해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공장형 아울렛들이 생겨났다. 한두 개가 아닌 아울렛 쇼핑 천국이다. 이러니 주말이면 자카르타 멋쟁이들이 반둥의 아울렛을 뒤지고 다니는 것이 당연했다. 이 아울렛들을 다 둘러보겠다는 기대는 그 자체가 미친 짓이다. 우린 리아우 지역에 머무르며 두 군데 정도의 아울렛만 둘러보았는데도 시간이 꽤 소요됐다. 덕분에 버버리 점퍼를 100달러도 안 되는 가격에 건진 친구는 싱글벙글했다. 파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의 옷들은 너무나 저렴하다는 것! 리아우 지역에선 시크릿과 헤리티지 아울렛, 루마모드를 추천한다.
렘방으로 GO GO! 화산과 온천 탐험하기
반둥 시내에서 북쪽으로 30분 정도를 달리면 웅장한 산과 계곡이 펼쳐지는 우림을 만날 수 있다. 목적지는 렘방Lembang. 이 곳으로 진입하자 지대가 높아지며 호흡이 청명해졌다. 차창 밖으로 네덜란드식 예쁜 빌라들과 아름다운 휴양 호텔들이 보였다. ‘별장지로 좋겠군….’ 혼자 중얼거리니 현지인이 즉각 반응한다. ‘땅 값이 비싸’. 렘방에 온 이유는 ‘탕쿠반뿌라후Tankuban Perahu’ 화산을 보기 위해서다. 반둥 근처의 화산관광지는 북쪽의 탕쿠반뿌라후 화산과 남쪽의 ‘까와뿌띠Kawah Putih 화구호火口湖’, 두 곳이 대표적이다. 사실 인도네시아에는 화산이 400여 개나 된다. 활화산만 해도 80여 개가 넘으니 화산이 쌔고 쌘 이 나라에서 신기할 것은 없다. 하지만 탕쿠반뿌라후 화산(2100m)이 조금 특별한 것은 자동차로 분화구 근처, 1830m 지점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분화구 근처까지 차량으로 갈 수 있는 곳은 흔하지 않다. 이 산은 1826년에 처음 분화한 이래 15번의 크고 작은 분출이 계속 있었다. 최근 분출이 2013년이었다고 하는 말을 들으니 살짝 겁도 났지만, 현지인들은 화산 분출 정보에 익숙한 듯 걱정 말고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최근 분출한 화산이라고 해도 용암이 흘러내리고, 뿌옇게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면을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전망대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 보면 아지랑이와 같은 연기가 보이는 듯 착시 현상이 일어나고 실제로 유황 냄새도 콧구멍을 자극하기도 한다. 분화구 가까운 곳에는 관광객을 겨냥한 상가도 들어서 있다. 상인들은 여행자들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기념품과 딸기, 머루들을 내밀며 따라 다닌다. 가격이 싸진 않았지만 충분히 흥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일단은 지갑을 여미고, 분화구 아래 좁다란 길을 따라 촘촘히 펼쳐진 가게들을 먼저 구경했다. 아낙네들이 코바늘로 쉼 없이 가방과 모자를 뜨며 가게를 지키는 모습, 무늬가 특이한 목공예품을 만들어 내는 동네 장인 아저씨의 숍도 있었다. 물건은 비슷비슷했지만 물건 구경보다는 사람들 구경이 더 재미있다. 히잡을 쓴 여자들의 눈빛에 이끌렸다. 발리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광경이었다. 숯과 검은 돌을 벌겋게 달군 화로에서 구워낸 옥수수를 샀다. 서걱서걱, 한 알 한 알 톡톡 터져 나오는 옥수수의 식감이 특이하다. 버스에 오르기 전 딸기와 머루를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산을 내려오며 일행과 나누어 먹었는데 설탕인지 과일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달았다. 화산지대의 비옥한 토양에서 자란 과일답다. 화산투어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관광객들에게 입장료를 ‘30만 루피아’(약 2만6000원)나 받는다는 사실 정도다. 현지인들은 10분의 1 가격만 내면 된다.
산허리를 따라 내려오니 드넓게 펼쳐진 초록의 차밭이 눈에 잡혔다. 차밭은 너울너울 초록 융단을 깔아놓은 것처럼 춤을 추고 있었다. 차를 잠시 세우고 차 잎을 수확하는 농부를 지켜봤다. 서자바 지역 차 생산량은 인도네시아 전체의 70%에 이르며 이 중 40%가 넘는 양이 반둥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다. 농부는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여행자에게 찻 잎을 함께 따보겠냐며 권하기도 했다. 일정상 감사의 인사만 건네고 돌아섰다. 도로를 따라 딸기농장 간판이 보였다. 노상에는 파인애플과 과일 파는 가게들이 늘어져 있다. 이 지역엔 토마토, 브로콜리, 양배추 등이 잘 자란다. 꽃도 흔하디 흔하다. 담벼락을 넘어 잘 가꾸어진 꽃들이 만발한 정원과 집들을 보니 ‘꽃의 도시’란 말이 여기서 연유되지 않았나 싶다. 화산을 내려오는 길에 ‘찌아뜨르 온천지역Ciater Hotspa’에 들렀다. 찌아뜨르는 42도의 천연 유황 온천수가 흐르는 계곡에서 노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지역이다. 캠핑장도 있고 리조트도 있어 자연 속에서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사리 아뜨르 호텔 & 리조트Sari Ater Hotel & Resort’는 이 온천 지역 안에 있는 리조트다. 가족 여행객들은 온천뿐만 아니라 리조트를 에워싸고 있는 차밭 산책을 하거나 낚시, 골프, ATV, 승마, 오프로드 드라이빙 등 다양한 액티비티를 하며 주말을 즐길 수 있겠다. 현지인들로만 바글바글한 노천 온천을 둘러보다 보니 나도 왠지 오늘은 현지인이 된 기분이다. 옷을 입고 히잡을 쓰고 온천을 즐기고 있는 모습들이 내 눈엔 참 특이했다.
순다니스 음식과 전통문화체험
‘순다니스Sundanese’는 반둥을 중심으로 서부자바에 터를 잡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자바인들보다 피부가 조금 더 밝은 편이라 조상이 중국에서 왔다는 말도 있다. 환경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화산지역에서 삶의 터전을 일군 덕분에 낙천적이고 호방한 기질을 가졌다. 음식을 봐도 그렇다. 큰 상과 큰 접시에 푸짐하게 차려 놓고 그득히 먹고 마신다. 보기만 해도 상이 꽉 차고 풍요롭다. 아보카도를 통째로 갈아서 초코 시럽을 올려 큰 대롱을 꽂아 주는 아보카도 주스를 마시고 모두가 감동했다. 이게 단돈 2000원이다. 음식들이 대체로 너무나 싸고 달고 풍부했다. 콩 재배가 많아서 그런지 두부요리가 발달했고, 생선, 닭고기 등 각종 재료들을 바나나껍질에 싸서 찌거나 구워서 조리한다.
순다니즈 음식을 골고루 한자리에서 맛 보기 위해 플로팅 마켓으로 향했다. 작은 ‘보트’마다 다양한 음식을 차려 놓은 푸드코트 같은 구역이 있어 흥미로웠다. 입장료 2만 루피아를 내고 들어가, 이 안에서만 쓰이는 코인을 1만원어치 바꿔 먹고 싶은 것들을 이것 저것 주문해 담았다. 렘방식 두부요리(타후렘방)와 신선한 과일, 여러가지 디저트 등 다양한 순다니스 요리가 펼쳐지니 이 곳을 방문한다면 배고픈 상태에서 가는 것이 좋다. 현지인들과 어울려 그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식사를 하고 나서도 꽤 오랜 시간 머물러도 될만큼 흥미진진한 것들이 많았는데 특히 꿀이나 반둥차, 스낵 등을 구입할 수 있는 먹거리 숍이 볼 만했다. 순다니스의 전통문화에 대해 더 궁금하다면, ‘사웅 앙클룽 우조Saung Angklung Udjo’란 곳에 들러보는 것이 좋다. 대나무를 이용한 전통악기인 ‘앙클룽Angklung’ 오케스트라 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공연장이다. 본격적인 연주 전에 ‘와양골렉Wayang Golek’ 인형극이 먼저 무대에 오른다. 와양골렉은 나무로 만든 인형이고, 족자나 발리지역에서 볼 수 있는 가죽으로 만든 인형은 ‘와양쿨릿Wayang Kulit’이라고 부른다. 앙클룽 연주는 인도네시아 전통 음악부터 클래식, 보헤미안 랩소디까지 아우른다. 연주가 다 끝나고 관람객들도 앙클룽을 배워 볼 수도 있다. 이 장소는 1967년 ‘망 우조Mang Udjo’ 부부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단체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 곳이다.
다시 반둥 시내로 돌아왔다. 세계에서 가장 긴 아시아-아프리카 스트리트를 가보지 못한 것이 아쉬워서였다. 반둥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반둥회담’을 기리기 위해 도로, 그리고 박물관을 만들었으니 여행자로서 둘러볼 만한 곳이다. 반둥회담은 1955년 미국과 소련의 패권에 반동하여 수카르노, 저우언라이, 호찌민, 나세르 등 29명의 제3세계 수뇌들이 의기투합했던 역사적인 컨퍼런스의 이름이다. 어떤 이에게는 박물관의 전시 내용보다도 건축이 더 흥미로울지 모른다. 박물관은 반둥에서 가장 잘 보존된 아르데코 스타일 건축물로 세계의 건축가들로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명물이다. 근처엔 반둥의 랜드마크인 이슬람사원 ‘메스짓라야반둥Masjid Raya Bandung’도 있다. 사원 앞 인조잔디광장엔 가족들과 나들이 나온 현지인들이 가득했다. 이 광장은 주말이면 여가시간을 즐기는 반둥 시민들의 휴식처인 모양이다. 이제 반둥을 뒤로 하고 다시 자카르타로 돌아갈 시간, 괜히 다음 반둥 여행 일정을 머리 속에 그려본다. 혹시 반둥에 다시 온다면 쇼핑을 실컷 할지, 렘방 지역 어느 빌라에서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며 딸기농원이나 방문할지 고민이 된다. 야간 자동차 여행이 지루해질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것이다.
반둥 주요정보 날씨 평균온도 22도로 서늘한 기후, 일년 내내 방문하기 좋다. 9월부터 4월까지가 우기 시즌이다.
가는 법 가루다인도네시아 항공, 에어아시아, 말레이시아 항공 – 쿠알라룸푸르 – 국내선 – 반둥
현지 기차 자카르타 – 반둥 약 3시간. 첫차 새벽 5시30분, 막차는 오후 8시30분(일 오후 9시30분). www.kereta-api.co.id
버스와 승용차 기본 2~3시간
공항–호텔 택시 6달러(5만 루피아) 정도. 반둥의 호텔들은 보통 공항까지 교통편을 제공한다. 택시는 ‘블루버드 택시’ 추천.
현지 교통편 ‘앙꼿(미니버스)’은 현지에서 가장 흔한 교통수단이며 저렴하고, 아무데서나 타고 내릴 수 있다. 택시를 잡을 때처럼 ‘앙꼿’이라고 외치고 손을 흔들어 세우면 된다. 드라이버를 포함한 렌터카도 저렴하니 적극 활용하면 좋다. 택시들은 미터기를 사용하지만 미터기가 없는 택시를 탑승하게 되었다면 가격을 흥정한다. 블루버드가 가장 믿을 만하다. 기본요금은 5000 루피아로 1km마다 2500~3000 루피아 정도씩 가산된다.
[글과 사진 조은영 (여행작가, (주)어라운더월드대표) 사진협조 AVISIT INDONESIA TOURISM OFFICE(http://tourism-indonesi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