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나의 집' 향해 무한질주한 우리, 이젠 어디로

2016. 1. 15.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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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옥에서 초고층 아파트까지
쉽고 흥미로운 한국 집의 역사

집 내부 쓰임새와 형태·풍경
사회 현상으로서 ‘집’ 탐구

건축학자 전남일 단독 저서
“집은 자산 겸 사회 공공재”

집이 곧 단독주택이라는 등식이 1990년대 중반에 무너졌고, 집과 집 사이를 잇던 골목길도 점점 사라져갔다. 1997년 외환위기 뒤 경기부양을 목적으로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들이 장려되었다. <집>의 그림들은 모두 지은이가 직접 손으로 그린 것이다. 돌베개 제공


- 집의 공간과 풍경은 어떻게
달라져 왔을까
전남일 글·그림/돌베개·2만원

한국 근현대사는 폭주 기관차 같았다. 개화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과 압축적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열차 안의 승객들은 뒤돌아볼 틈이 없었다. 차창 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풍경처럼 삶의 터전도 정신없이 바뀌었다.

<집: 집의 공간과 풍경은 어떻게 달라져 왔을까>는 근대화 이후 집의 변화와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집요하게 추적한 책이다. 인기리에 방영중인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연상하면 쉽다. 여자 주인공 덕선이네는 반지하와 윗층으로 이뤄진 ‘미니 2층집’에 세들어 사는 ‘지하 주거자’였고, 식구들이 안방에서 보던 드라마는 다가구주택을 배경으로 한 <한지붕 세가족>이었다. 그 집, 그 골목, 그 가족들은 지금 어떻게 변했을까?

건축학자인 지은이 전남일 가톨릭대 교수(소비자주거학)는 주거의 인문사회학을 본격 전개한 ‘한국 근·현대 주거의 역사’ 시리즈를 주도했다. 이 중 <한국 주거의 공간사>(2010)를 단독 집필했고, <한국 주거의 사회사>(2008) <한국 주거의 미시사>(2009)의 공저자로 참여한 바 있다. 집이 삶의 터전이라기보다 “정치와 경제의 논리가 만들어낸 기형적인 결과물의 한 단면”이라고 밝힌 당시 공동 연구의 견해는 이 책에서도 유지된다.

<집>은 일상에서 출발해 바깥으로 시야를 확장한다. 안방, 사랑방, 마루, 변소 같은 집 구석구석의 변화를 면밀히 관찰한 뒤 한옥에서 양옥으로,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아파트에서 전원주택이나 ‘땅콩집’으로, 쪽방에서 고시원이나 오피스텔 원룸으로 주거 문화가 변화하는 과정을 추적하는 식이다.

예전 전통 한옥은 여성들의 안방과 남성들의 사랑방이 따로 있었다. 고정된 가구가 적은 방에서 밥 먹고, 세수 하고, 일하고, 손님을 맞았고, 요강에 볼일도 보았다. 근대적 핵가족의 증가와 더불어 여성은 집안에서 가사노동과 돌봄, 교육을 맡고 남성은 집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공사영역의 분리가 이뤄졌다. 구한말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전통 주택은 낙후된 것으로 여겨져 개선과 계몽의 대상이 되었다. ‘집안’을 담당한 주부들의 변화 요구도 컸다. 여성의 공간은 남존여비 관념에 따라 위계상 남성 공간보다 아래에 있었고, 실내외를 넘나들며 고된 가사노동을 하던 여성들이 부엌 ‘개량’을 염원한 건 자연스러웠다. 지식인들도 위생관념 강화를 통한 신생활을 부르짖었다. ‘목욕집’(공중탕), ‘공립 뒷간’(공중변소)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독립신문>에 실리곤 했다.

서양식 ‘모던 생활’에 대한 동경은 점점 강해졌다. ‘단란한 핵가족’ ‘홈 스위트 홈’ ‘즐거운 나의 집’을 상징하는 거실은 날로 화려하고 넓게 변했다. 방과 방 사이 ‘대청’은 거실이나 응접실로 명칭부터 바뀌고 ‘가신’을 모시던 신성한 공간에서 과시의 공간으로 위상이 추락했다. 숙고 없이 고유한 주거 문화를 잃은 건 “한국의 근대 주거사에서 가장 뼈아픈 경험”(<한국 주거의 사회사>)이었다.

지금의 빽빽하고 답답한 도시 주거 환경은 ‘삶의 질’보다 ‘주택 물량 확보’에 전력해온 정부의 탓도 크다. 한국 전쟁 뒤 공영주택은 대량 건설, 대량 보급을 목적으로 관에서 주도했다. 1970년대 ‘그림 같은 집’에 대한 대중의 로망을 읽어낸 ‘집장수’들은 통속적인 양옥을 지어팔았다. 도시 단독주택은 1980~90년대 다세대·다가구로 변질되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기활성화의 목적으로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가 정책적으로 장려되었다. 여러 세대에 걸쳐 차근차근 진행된 법적 규제 완화는 단독주택 소유주들에게 임대수익을 보장했다. 2000년대 이후 ‘집’은 ‘수익형 부동산’, 철저한 경제적 수익 수단이 되었다. 서로 오가며 공유하던 ‘마을’의 땅은 더 좁아졌다.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을 매개하고 심리적 완충지대가 되었던 골목과 보행로가 사라진 것이다. 그 탓에 개인이 차지하는 평균 집면적은 갈수록 넓어졌지만 갑갑함은 더 커졌다.

특히 ‘민족 대이동’이랄 수 있는 아파트로 향한 한국인들의 열망은 독특한 주거현상이다. 서구에서 노동자 집합주택이었던 아파트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진보적인 중산층의 주거 이동 경향”을 대변했으며 “이상적 주거 형식”이라는 인식을 형성했다. ‘아파트 러시’는 주택의 상품화, 정책적 지원, 중산층에 대한 강한 귀속의식 등 사회적 요인이 밀접하게 상호작용한 결과였다. 개별 세대 내부 공간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치열하게 경쟁했고, 단지 내 시설은 개인들의 비용으로 얻게 된 것이라며 외부와 울타리를 쳤다.

삶의 질과 무관하게 진행되어온 주거 환경의 변화는 정부 정책이나 사회격변의 탓만은 아니었다. 이 땅, 그 집에서 살던 개인들의 욕망 또한 투영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지은이는 “개인의 선택은 집단의 힘이 되어 사는 환경을 이룬다”고 못박는다. 오늘날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주거문화는 곧 ‘우리’ 전체의 삶이자 역사라는 것이다. ‘정주민’이라기보다 ‘유목민’으로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집에서 편안히 세상을 떠날 권리조차 없어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다수가 생을 마감한다. 영원한 안식이 찾아오는 날까지 쉼 없이 이동해야만 하는 지금, 마지막 ‘우리 집’은 과연 어디일까.

지은이는 집이 분명 재화이자 개인의 자산이지만 사회와 문화를 함께 형성하며 “‘사는 세상’을 이루는 공공재”라는 점을 힘주어 말한다. 집은 “산업화 과정에서 있었던 극단적인 불평등 구조”를 드러낸다는 점도 잊지 않는다. “일상과 문화가 모두 상업화의 우산 아래” 있기에 그 옛날 골목길과 이웃사촌의 추억은 복원할 수 없겠지만 지금이라도 과거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설득한다.

<집>은 충실한 자료를 바탕으로 벽돌 쌓듯 탄탄하게 구축한 한국 집의 역사이자 우리 삶의 역사다. 지은이는 2011년부터 4년에 걸쳐 이 책을 썼을 뿐만 아니라 평면도, 집의 외관, 주방용품과 마당의 풀 한포기까지 직접 손으로 그려넣었다. 삽화는 따뜻하고, 글은 기름기를 쏙 빼 담박하다. 또 한명의 ‘전문 저자’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책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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