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건 못 참아, 색다른 소읍기행 '상주 함창' 금상첨화 아트로드

2016. 1. 6. 16:0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제목이 조금은 길게 느껴지는 이곳의 여행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곶감으로 유명한 상주시. 그 중에서도 함창읍이라는 곳이다. 기존의 낡은 마을에 조금 손을 댔는데, 그게 아기자기하고, 멋지고, 귀엽다는 소문을 들었다. 막상 찾아가보니, 기대했던 것 이상의 ‘무엇’이 있었고, 그 중심엔 함창의 ‘기록 예술’이 있었다.

▶금상첨화란 무엇일까?

생소한 도시 함창읍에 대한 기본 정보를 먼저 알아보자. 함창읍은 경상북도 상주시 북쪽 끝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함창은 무명 소읍이다. 바로 위에 문경시가 있다. 조그만 읍사무소가 있고 언덕 위에 예배당이 보이고, 고층빌딩 하나 없으며, 시외버스 터미널은 언제나 썰렁하다. 경부선 단선이 다니는 함창역 또한 역무원 한 사람 없는 무인역으로 하루에 왕복 여섯 번 새마을호가 서는 간이역 수준이다. 논 농사, 백련 농사, 감 농사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현대사에서 크게 주목 받은 적도 없다. 특출 난 관광지도 없으니 누가 일부러 찾아가지도 않는다. 그래서 함창은 우리 농촌의 전형적인 모습을 간직할 수 있었다. 이 사실에 안도해야 할 지 안타까워해야 할 지의 판단은 함창 사람들의 몫일 것이다. 단 다소 낡아 보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함창을 ‘소읍기행’의 최적지로 꼽는 여행 마니아들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더구나 그 시골마을에 예술의 조각보를 하나하나 붙여놓았다 하니 더욱 관심이 간다. 대대적인 개발이 아니라는 점에 가슴을 쓸며 말이다.

함창읍은 네 곳의 구역을 나눠, 지역 특성에 맞는 ‘예술의 옷’을 입히고 그 이름을 각각 ‘금’, ‘상’, ‘첨’, ‘화’로 지정했다. 예술의 옷을 입힌 사람들은 모두 지역과 관련 있는 작가들이다. 그들은 임의가 아닌, 주민들과의 충분한 대화와 이해의 결과물로 작품을 만들었다. ‘금’은 함창이 옛날부터 ‘누에–명주–비단’의 생산지였다는 것을 근거로 비단 금錦 자를 붙였다. ‘금’은 함창역 주변과 읍내 일부 지역을 말한다. ‘상’은 원래 금상첨화에서 쓰이는 윗 상上이 아닌 서로 상相 자를 썼다. 금상첨화 가운데 이곳의 주제는 오래된 시간과 마을, 그리고 사람들이다. ‘첨’은 함창읍 주민들이 먹고 사는 현장인 시장을 뜻한다. ‘화’는 꽃 화 대신 그림 화畵 자를 사용했다. 또한 ‘금–상–첨–화’는 일정한 동선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 이름을 ‘아트로드’로 명명했다.

이른 아침 서울에서 출발한 차는 두 시간여를 달려 함창역에 도착했다. 함창역은 ‘금’의 중심인데, 금상첨화 프로젝트의 시작과 끝을 기록한 아카이브 성격도 갖고 있다. 함창역 대합실이 그곳이다. 무인역인 함창역에는 표를 파는 곳도, 검사하는 곳도 없다. 플랫폼 역시 아무도 없다. 기차가 들어오면 ‘조심하라’는 자동 멘트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올 뿐이다. 자연스럽게 ‘금’의 중심인 ‘함창역 맞이실’(함창에서는 대합실을 ‘맞이방’이라고 표기한다)과 함께 역사, 플랫폼 자체가 볼거리가 된 느낌이다. 그곳에 서 있으니 부산이나 대구 등 경상도 지역 사람들은 경북선 열차를 타고 함창을 찾는 것도 낭만지겠다는 생각도 든다. 함창역 맞이실에 들어서자 금상첨화의 개요과 기록이 전시되어 있었다. 또한 함창읍의 근대사를 기억하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와, 이곳 출신 예술가들의 소회를 담은 영상이 반복적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커다란 우체통도 눈에 띈다. 이 우체통의 이름은 ‘느림의 편지통’. 이곳을 찾거나 지나는 누구나 편지를 쓸 수 있다. 받을 사람 주소가 기입된 봉투를 넣으면 선택에 따라 매년 6월30일, 12월31일에 함평우체국에서 수거해 주소지로 보내준다. 느림의 편지통 옆에는 커다란 칠판이 있는데, 아무 얘기든 적을 수 있도록 설치한 공개 낙서판이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백묵이 보이지 않았다.

천장을 올려다보는 일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곳에는 물레와 명주실을 형상화한 설치미술작품이 붙어있다. 지금은 누에가 동충하초 같은 건강식 원료로 사육되곤 하지만, 한때는 많은 농가에서, 지금은 일부 길드 형식의 전문농가에서 누에가 뿜어주는 명주실을 뽑아 비단을 만들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금’을 이야기하는 작품은 역 광장에도 설치되어 있다. 광장 누각 옆에 있는 육근병 작가의 <터>가 그것이다. <터>는 함창 지역에서 1936년에 발견된 누에저장고(냉동고)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다음 목적지인 ‘상’으로 가기 위해 지도를 펼 필요는 없다. 금상첨화 아트로드 길바닥에는 실제로 하얀색 선이 그어져 있다. 흰색은 ‘명주실’을 의미하고 그것은 아트로드의 안내 동선 역할도 해 준다. 군데군데 잘 보이지 않는 곳도 있지만 그 선을 놓치지 않고, 함창역에 비치되어 있는 약도를 보조 수단으로 잘 활용한다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흰색 선을 따라 마을을 구경했다. 겨울인데도 무성한 상록 가로수는 어쩐지 기운이 없어 보인다. 거리는 깔끔하기보다는 ‘낡음의 미학’이 느껴진다. 금상첨화를 알리기 위한 노력인지 도로 공사들도 이곳 저곳에서 한창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시외버스터미널 대합실에 들어가 보니 노인 대여섯 분이 TV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고 대합실 매표 직원은 따분한 표정으로 신문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터미널 건너편에는 ‘아트로드’ 개설을 계기로 문을 연 것으로 보이는 ‘버스정류장 북카페’와 ‘타로점 가게’가 있다.

오래된 사진을 통해 함창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창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주고 있는 ‘함창, 보이지 않는 이야기들’ 공간과 예전에 운영되었던 목공소를 작품으로 재건한 ‘함창목공소’의 모습도 포스 깊어 보였다. 바로 이웃에는 방앗간이 있다. 아주머니 한 분이 깨를 털어 갖고 왔을까? 참기름 냄새가 행인들의 시선을 강력하게 끌어당길 줄이야!

▶고령가야의 도읍지 함창

‘상’에는 마을 규모에 비해 엄청 큰 ‘왕릉’ 두 곳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다. 고대 한반도 남쪽 낙동강 유역에는 여섯 가야가 존재했는데, 그 중 함창, 문경, 가은 지방을 영역으로 하는 나라가 ‘고령가야’였다. 훗날 6가야 모두 신라와 통합했는데, 조선 선조25년에 이 지역의 커다란 무덤 앞에서 발견된 ‘비석’을 근거로 이곳이 고령가야왕릉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숙종 때 왕릉 꼴을 되찾고 근현대에 이르며 후손들에 의해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왕릉과 왕비릉 아래로는 고대부터 이어져 온 ‘징그래마을’이 납작하게 앉아있다. ‘동그람’에서 변형된 말로 추축되는 ‘징그래마을’은 소소하고, 조용하고, 평화롭고, 많이 낡은 풍경을 하고 있었다. ‘왕’을 주제로 하는 담벼락 작품들과 곳곳의 대문 기둥에 붙어있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체 분위기를 달콤하게 만들었다. 생전 처음 찾은 이 동네의 사람들이 무조건 좋아지는 심리 또한 소박하고 살뜰한 이런 작품 덕 아닐까?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는 정사각형 철판에 새겨진 그림과 글자로 표현했는데, 그 내용이 정겹고 사랑스러웠다.

<감나무>, <달분네, 언니 선녀네 집>, <된장 담그는 집>, <쌀농사 짓는 집>, <호박꽃 피는 집>, <선인장꽃 피는집>, <려금요어머니의 집>, <콩밭매는 이용성 할머님댁>, <개미와 베짱이네>, <국가유공자의 집> 등이 그것들이다.

곳곳의 담벼락에 붙어있는 시들도 함창의 아트로드를 찾은 여행자를 심쿵 모드로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다. ‘발소리 들린다 / 문소리 들린다 / 신발 벗는 소리 들린다 / 가만가만 다가오는 인기척 / 휙 고개 돌려 담 너머 바라보면 / 텅 빈 마당 / 웅크린 어둠이 나를 노려보고 있다’(권현옥 <빈집 느티나무> 전문), ‘꼼틀꼼틀 아기누에 / 어디로 갈까요 / 뽕잎 찾아 가지요. / 사각사각 뽕 먹는 소리 / 쌔근쌔근 잠 자는 소리 / 잘 먹고, 잘 자는 착한 누에 / 꿈틀꿈틀 엄마누에 / 어디로 갈까요 / 고치집 찾아 가지요. / 솔솔솔 실 뽑는 소리 / 스륵스륵 고치 짓는 소리 / 실 뽑고, 고치 짓는 착한 누에’(김숙자 <착한 누에> 전문)

‘상’에서 만나는 <가야마을공작소>에 들어가 보면 징그래마을의 주제가 왜 ‘상相’이 되었는지 또 한번 확인할 수 있다. 공작소 그곳에는 명주실의 고장 함창에서 태어나 살고 진 평범한 사람들의 생로병사가 전시되어 있다. 타이포 예술로 제작한 ‘자더라도 밥먹고 자라’, ‘은행나무 밑에서 자알 놀다 가네’ 등의 문구를 읽을 때는 당장 할머니가 눈 앞에 나타다 ‘퍼뜩 무그라!’며 재촉할 것 같은 웃음진 상황도 떠올랐다. 마을 사람들의 단체사진, 개개인들이 기부한 것으로 보이는 증명사진, 영정사진, 문갑, (군대)제대증, 수료증, 지갑, 아리랑성냥 등은 단순한 전시가 아닌, 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기록 예술’의 진수를 보여준다.

징그래마을 너머 도로를 건너면 이 지역의 오일장인 함창전통시장이 있다. 이곳에도 예술의 숨결은 여전히 살아있다. 초입과 시장 중앙벽에 그려진 ‘함창씨름도’와 ‘명주이야기’ 등을 보며 결코 녹록하지만은 않았을 그들의 삶을 엿보게 되고 그런 일상이 오늘날까지 순환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정신이 아득해지는 순간도 맛볼 수 있다.

1951년 한국전쟁 중에 처음 문을 연 함창오일장은 매월 1일과 6일이 붙은 날에 열리며 상주의 특산물인 명주, 쌀, 곶감 등 ‘삼백’과 농수산물, 생필품 등이 거래되는, 말 그대로 전통시장이다. 시장 여기 저기에는 오래된 상가건물을 개조해 만든 <협동장수띠>, <함창협동예술조합> 등 리모델링한, 그 자체가 예술 작품인 공간들이 존재한다. 이곳은 지나간 시간과 오늘, 그리고 내일의 함창을 이야기하고 있다.

▶금상첨화 아트로드의 절정 ‘미술관 세창주유소’

미술관과 주유소? 갸우뚱하게 되는 조합이다. 미술관 세창주유소는 1956년부터 2004년까지 막걸리 공장으로 돌아가던 ‘세창술도가’를 ‘미술관’으로 개조한 곳으로 ‘주유소 酒遊所’라는 다소 익살스러운 개념을 넣은 매력 공간이다. 세창술도가는 함창 지역의 막걸리공장 몇 곳이 공동으로 운영하던 곳으로 그 규모가 일반 술도가와 비교되지 않는다. 세창도가가 술공장으로 운영될 당시, 건물에는 사무실, 자제 창고, 쌀빻는 방, 막걸리공장, 숙성실, 직원 숙소 등이 있었다. 그곳들은 한 곳도 빠지지 않고 ‘라온섬유갤러리’, ‘아트카페 술도가’, ‘만화갤러리’, ‘시간, 술 갤러리’, ‘가야금 사운드 모션 공간’ 등으로 알뜰살뜰한 예술 창고로 재탄생했다.

그 어떤 것도 고대 가야부터 오늘을, 그리고 내일의 함창과 무관한 것은 없다. 미술관 관람의 클라이맥스는 막걸리 공장을 개조한 ‘시간, 술 갤러리’이다. 공장 시절, 이곳은 시멘트 구조물이었고, 바닥에는 묵직한 나무가 깔려있었으며, 나무 위에서는 막걸리를 만들기 위해 반죽된 원료들이 시큼한 냄새를 풍기곤 했다. 이제 그곳에는 붉고 흰 명주실이 차지하고 있고, 명주실로 이뤄진 일종의 발 안에 은은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발효 항아리와 방아기계만이 이곳의 지나간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다.

함창역에 도착했을 때의 시각은 오후 세 시. 열 시부터 걸었으니 밥 먹은 시간을 포함해서 다섯 시간의 여행인 셈이다. 짧다면 짧은 시간만에 가야 시대부터 기록된 함창읍의 면모를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이야기 나누고 그 결과물인 ‘예술의 옷’을 마을에 입힌 일련의 과정을 생각해보자. ‘공동체의 가치를 나누는 함창 사람들’을 다르게 보게 된다.

함창 먹거리 | 꽃들추어탕 어느 읍내든 마찬가지로 함창읍 역시 장터 근처에 음식점들이 밀집해 있다. 말이 밀집이지 그 숫자는 많은 편이 아니다. 꽃들추어탕은 ‘결정장애 여행자’가 여기 기웃, 저기 기웃 거리다 들어간 곳이다. 자연산 추어탕 전문점인 이 집은 ‘시골 식당에서 왜?’ 라는 선입견 돋는 의문을 일으키게 한 ‘직원들의 60도 인사’가 인상적인 곳이었다. 이렇게 깎듯이 인사를 하는 집은 도시에서도 보기 어려운 일이다. 메뉴는 오직 ‘자연산추어탕’ 한 가지 뿐이다. 간 추어를 된장, 배추, 파 등 야채와 함께 푹 끓여내는데, 맛이 깊고 부담이 없어 국물까지 싹싹 먹게 된다.

위치 경북 상주시 함창읍 함령길 31 문의 054-5410-7814

함창읍 교통편 승용차 중부내륙고속도로 점촌 함창 톨게이트 우회전–대조교차로 우회전–함창교차로 좌회전–함창지하차도–함창중앙로 우회전–상주함창우체국 우회전–함창역

버스 서울 동서울터미널 – 함창버스정류장 / 대구북부시외버스터미널 – 함창버스정류장 / 대전복합터미널 – 상주종합버스터미널 – 함창버스정류장

기차 경북선 부산역 – 상주역 – 함창역

[글과 사진 이영근(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511호 (16.01.12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티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