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토크] 영원한 젊은 오빠, 가수 남진

남진 2015. 12. 11.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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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진, 가수

[앵커]
오늘 공감토크는 노래 인생 50년,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죠. 남진 씨를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인터뷰]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앵커]
선생님 노래인생이 50년인데요. 지금까지 발표한 노래들을 몇 곡인지 다 셀 수 없을 것 같은데 대략 몇 곡 정도 될까요?

[인터뷰]
글쎄요, 한 1000곡 정도 불렀던, 레코딩 한 숫자는.

[앵커]
1000곡 가까이 된다고 하면 노래가사도 다 외우기 힘드실 것 같은데요.

[인터뷰]
그렇죠. 불렀던 것 중에서 많이 알려진 노래, 대중들의 사랑을 받은 노래는 완벽하게 알고 그 외에는 세월이 가면 자꾸 잊어지더라고요.

[앵커]
선생님이 영원한 현역가수라고 불리는 이유가 때마다 신곡을 계속 발표하고 계십니다. 지난해에도 신곡을 발표하셨고요.

[인터뷰]
그렇죠, 파트너라고. 새로운 요즘 젊은 시대들에 흥겨운 리듬에 변화를 줬죠.

[앵커]
내년에 또 파격변신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랩도 하신다고요. 듣기는 들었지만 익숙치 않고 그래서 굉장히 당황했어요. 이 리듬이 익숙해지는 데 1년 걸리더라고요. 마스터해서 내년에 발표를 합니다.

[앵커]
노래가 처음부터 끝까지 랩은 아닐 테고 중간중간에 랩이 들어가나요?

[인터뷰]
가요랩이니까 예전에 서영춘 선생님의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없어도 고뿌 없이는 못 마십니다. 이렇게 재미있게 표현을 했듯이 간주를 그런 식으로. 그대와 나 우리 둘이함께 한다면, 이렇게 대중적인 가사죠. 젊은분, 나이드신 분들도 재미있게 부를 수 있는.

[앵커]
댄스도 함께 하시나요?

[인터뷰]
그렇죠. 익숙치 않으니까 당황스럽더라고요. 왜냐하면 내가 자신이 없으니까. 안 해 봤던 거. 좋아는 하는데 안 해 봤잖아요, 랩이라는 것은.

[앵커]
남진 선생님이 랩을 한다고 그러면 많은 분들이 깜짝 놀랄 것 같은데요. 새 앨범에서 어떤 모습 보여주실지 저희가 기대를 해 보겠습니다.

[인터뷰]
열심히 준비해서 아주 재미있게, 함께 즐길 수 있는 그런 곡을 꼭 만들어야죠. 불러야 되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앵커]
선생님께서 해마다 연말이면 팬들과 만나는 특별한 시간을 마련하시는데 올해도 크리스마스에 팬들과 만나시죠.

[인터뷰]
그렇죠. 사실 디너쇼라는 것이 물론 공연이지만 저한테 굉장히 의미가 있어요. 왜냐하면 옛날에는 극장에서 공연을 하니까 팬들과 가까이 하지만 추억이 담긴, 사랑받았던 그 노래들을 같이 불러볼 기회가 없죠.

그런데 이런 공연을 통해서는 제가 60년, 70년대 노래를 들으면 모습이 그분들이 10대, 20대로 돌아가요. 저도 그렇고. 정말 뜨겁고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죠. 그런 공연을 가끔씩 한번 갖는데 저에게는 굉장히 의미도 있고 행복한 시간입니다.

[앵커]
노래만 전하시는 게 아니라 그 노래를 통해서 그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소중한 시간이 된다고 설명을 해 주셨는데요.

[인터뷰]
그리움, 사랑 다 있죠, 그 안에.

[앵커]
디너쇼에서도 수십 곡 노래를 부르실 정도로 댄스에서 발라드까지 트로트, 다 망라해서 부르시는 건데 건강이 받쳐주지 않으면 힘들 것 같아요.

[인터뷰]
제가 바닷가에서 커서 어릴 때부터 수영도 많이 하고 바닷바람도 많이 쐬고 산에도 많이 다니고 외갓집 논두렁도 많이 다니고 그 덕택인 것 같아요. 그래서 건강을 정말 부모님한테 감사드리죠.

[앵커]
술, 담배도 안 하신다고요.

[인터뷰]
술은 안 한 지 오래됐고 담배는 일찍 피웠다가 끊은 지가 20년 넘었습니다. 제가 살면서 참 잘한 일이 있다면 담배 끊은 게 참 잘한 것 같아요.

가수로서. 지금까지 만약 피웠다면 아마 노래하기가 쉽지 않았을까, 소리가.

[앵커]
과거로 돌아가서 얘기를 해 볼까요. 예전에 남진 선생님의 전성기 하면 60년대, 70년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때 인기로 말한 것 같으면 공연장이 무너질 정도로 팬들이 찾아올 정도의 뜨거운 인기를 누리셨는데 그때를 회상하시면 지금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인터뷰]
사실 그때는 처음에는 좋았어요. 나도 인기가수가 됐구나, 인기가 있구나. 그런데 인간의 감성이라는 게 면역성이 생기잖아요. 하도 점점 그게 계속되니까 둔감해지는 거예요.

환호와 열정적인 게 당연한 것으로 느껴지고 세월이 다 지난 후에야 요즘 많은 팬들이 나와서 열정하는 걸 보면 맞아, 나도 저랬었는데. 그때가 팬들의 뜨거운 사랑이었구나, 지금 다시 한 번, 지금은 그때 시절은 아니지만 느낍니다, 그때 그 기분을.

[앵커]
영원한 라이벌이 나훈아 씨인데요. 그때 두 분 관계를 두고 신경전이 너무 심하다 보니까 사이가 좋지 않다, 이런 소문들이 많이 돌았잖아요.

[인터뷰]
아니에요, 전혀. 사회적으로, 대중적으로 라이벌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우리들의 전성기가 있었고 또 많은 팬들이 더 생겼고 더 뜨거운 열성적인 사랑을 받았던 것 같아요.

[앵커]
그때 워낙 라이벌이고 두 분을 비교하다 보니까 남진 선생님 입장에서도 나훈아 씨를 봤을 때 이런 점은 좀 부럽다. 내가 봐도 멋있다 했던 점이 있다면 어떤 점이 있을까요?

[인터뷰]
누구나 가수는 히트곡들이 있잖아요. 다 자기 색깔이 있어요. 그러나 나훈아 씨는 대중가요의 가장 중요한 트로트도 리듬의 독특한 맛을 가진 최고의 가수죠.

[앵커]
두 분이 언젠가 꼭 같이 공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그러니까요, 그렇게 해서 60년대, 70년대 많은 사랑을 받았던 팬들 앞에서 하는 게 우리가 도리가 아닌가 싶어요. 그분들하고 함께 추억을 꼭 갖고 싶습니다.

[앵커]
60년대 혜성처럼 등장하셔서 히트곡 제조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노래를 히트시키셨는데요. 큰 의미가 있는 곡은 어떤 곡입니까?

[인터뷰]
아무래도 국민가요라 할 수 있는 님과 함께. 부른 지가 벌써 45년 됐습니다마는 저의 대표곡이 될 수 있죠.

[앵커]
저는 개인적으로 둥지를 참 좋아합니다. 선생님 춤추시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요.

[인터뷰]
사실 또 공백이 있었죠. 그러나 꾸준할 수 없잖아요. 삶이라는 게, 노래도 마찬가지이고. 저는 큰 행운이 있었다면 좋은 작곡가, 작사가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게 저는 누구보다도 큰 행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둥지가 굉장히 히트곡이지만 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던 곡이었다고.

[인터뷰]
그럼요. 그건 생각도 안 했던 거예요. 발표하기 며칠 전에 녹음할 때 들어봤는데 딱 오는 거예요. 이거다 싶더라고요. 바로 그냥 했는데 그게 생각지도 않은 행운이었죠.

[앵커]
선생님께서 가수인생을 살아오셨지만 원래 꿈은 배우라고 들었습니다. 연극영화과 나오셨죠?

[인터뷰]
한양대.

[앵커]
하춘화 씨하고 영화도 찍으셨죠.

[인터뷰]
영화 한 편이 있었죠. 세노야 불렀는데. 같이 출연했어요.

[앵커]
얼마 전에 공감토크에 하춘화 씨가 출연을 하셨는데요. 남진 선생님 출연하신다고 하니까 인사말씀을 남겨주셨습니다. 보고 얘기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하춘화, 가수]
"안녕하셨어요? 오늘 초청손님으로 나오셨다고요. 정말 반갑습니다. 저는 먼저 했거든요. 예전에 같이 영화 찍을 때 정말 고마웠어요. 키스신을 잘 피해서 제가 당황해할까 봐 잘 리드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앵커]
선생님, 이게 무슨 얘기인가요? 키스신을 한 건가요?

[인터뷰]
그때 영화 검열이 까다로웠어요. 입술이 닿으면 컷이 되고. 요즘은 참 부럽더라고요. 요즘 막 갖다 시원하게 거시기하고 옛날은 힘들었어요.

[앵커]
일전에 예능 프로그램에서 배드신을 못 찍은 게 아쉬웠다고요.

[인터뷰]
그때는 러브신이 침대에 누워지면 카메라가 다른 곳으로 가버려요. 지금은 얼마나 리얼해요. 외국영화 같아.

[앵커]
당시 전성기 때 많은 영화에도 출연하셨지만 또 최근에 인기를 끌었던 국제시장에서 남진 선생님역을 맡은 배우가 있습니다. 유노윤호 씨가 그 역을 소화해내셨는데. 어떻게 보셨습니까?

[인터뷰]
사실 저는 영화를 안 나가는데 제가 연기된 영화라고 해서 갔어요. 제가 월남에 간 게 69년도에 갔다가 71년도에 귀국했거든요. 3년 있다가. 그런데 오래 됐잖아요, 벌써. 그 영화를 보니까 옛날 생각나더라고요.

옛날 군대 생활. 한창 인기 있고 데뷔해서 활동할 때 제가 69년도에 떠났으니까 하도 오래 돼서 잊어버렸었는데 옛날 생각이 나고 그때 전우들이 보고 싶고 그때 또 많이 다치고 죽은 친구도 많죠.

[앵커]
선생님도 죽을 고비를 그때 넘기셨다고요?

[인터뷰]
그렇죠. 그 영화에 보다시피 사고가 작전 나가서 몇 번 있었죠.

[앵커]
어떻게 보면 공백에 대한 두려움도 컸을 텐데요, 인기가수로서.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셨을까요?

[인터뷰]
3년의 공백이 있었니까, 가수로서의. 핸디캡이죠. 다시 컴백한다는 것도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다시. 그런데 지금 제일 잊어버리지 않는 무대가 지금 세종회관. 그때 시민회관이었어요, 광화문에. 우리나라3년 만에 우리나라의 첫, 그게 첫 리사이틀이었어요.

제대하고 6개월 만에 공연을 하는데 두렵죠. 손님이 올까 안 올까. 생전 처음 해 보는 건데. 그때는 예약이라는 게 없죠. 전부 현장에서 표를 살 때니까. 두 바뀌나 사람들이 있는 거. 그 감동. 그리고 첫 무대 3년 만에 서서 첫 곡이 뭐냐하면 내 노래가 아니고 전선야곡이라고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에, 이게 첫 스타트예요.

트럼펫으로 부르는데 막이 열리는데 떨리죠. 전주가 나오는데 막이 쫙 열리는데 1층, 2층, 3층 그냥 막 꽉 차고 그때부터 오빠라는 환호가 나오기 시작햐거예요, 그날부터. 그래서 저는 어디 가서도 사회자가 소개할 때 쓸데없는 소리 하는 거 싫고 가요계 오빠의 원조, 그 소리가 빠지면 섭섭합니다. 가장 자랑스럽고.

[앵커]
오빠부대의 원조.

[인터뷰]
가장 자부심을 갖는 말이죠.

[앵커]
오늘의 남진 선생님을 만든 분들이 바로 그 오빠부대인데요. 저희가 오빠부대를 한번 찾아가봤습니다. 선생님께 궁금한 점이 있다고 하는데요. 들어보시죠.

[인터뷰]
"젊음을 갖고 있는데 비결이 뭔지 알고 싶어요."

[인터뷰]
"저번에 리사이틀 갔는데 사모님도 소개해 주시고 따님이랑 소개해 주셨는데 너무 보기가 좋더라고요. 그렇게 가정을 화목하게 이끄는 비결은 뭐예요?"

[인터뷰]
"제가 어느 모 프로그램에 나오셔서 인터뷰를 하시는 걸 잠깐 봤어요. 거기에서 지금 50년이 지나셨는데 이제 와서 노래를 알겠다라고 말씀을 제가 들었거든요. 그게 과연 어떤 식으로 생각을 하셨는지 그게 궁금해요."

[앵커]
노래 50년에 이제야 노래를 알겠다, 그게 어떤 의미일까요?

[인터뷰]
똑같은 멜로디, 똑같은 가사인데도 30대, 40대, 50대 다 느낌이 달라요, 전혀 달라. 지금은 삶 속에 여러 가지, 20대 철없을 때하고 여러 가지 많은 경험과 삶 속에서 처음이라는 게 있잖아요.

느낌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제 그 느낌을 노래에 넣고 싶죠. 표현이라는 것이 마음이 있지만 방법도 여러 가지 있잖아요.

감동을 드려야 되는데 진정성도 필요하죠. 물론 테크닉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죠. 진정성을 아름답게 멋있게 만드는 게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고요. 모든 경험에서 이제 정말 한번 열심히 해 보고 싶어요.

[앵커]
아무래도 선생님하고 사는 아내분 입장에서는 오빠부대도 많고요, 질투도 많이 느끼시고 많이 힘드신 부분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 선생님 인생에 아내분은 어떤 의미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인터뷰]
그게 참 고마워요. 제가 그나마 이렇게 열심히 노래를 할 수 있게 해 주는 원동력이라고 하면 아내죠. 불만도 없고 섭섭한 것도 없었겠어요?

여러 가지 많았겠지만 잘 참아주고 이겨내주고 잘 가정을 지켜주고 그런 것이 저에게 가장 힘이 됐고 오늘 이렇게 열심히 일할 수 있고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은 아내의 덕이다. 저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알았어요.

옛날에는 당연한 걸로 알았는데 고맙다 하는 생각. 요즘 가끔가다 그런 얘기합니다. 고맙다 소리도. 옛날에는 잘 안 했는데.

[앵커]
영원한 젊은 오빠라서 고희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습니다.

[인터뷰]
저도 그러네요.

[앵커]
내년에 70돌 특별공연을 하신다고 하셨는데 몇 월부터 시작하시는 건가요요?

[인터뷰]
4월부터 시작하죠. 아무래도 전국 극장무대 시대잖아요. 70년도. 전국에 계시는 많은, 그때 소녀들 지금은 나이를 잡쉈지만 함께 옛 추억을 나누면서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그런 무대를 내년에도 갖고 싶습니다.

신곡과 함께, 가수는 새로운 곡 받으면 신인같은 기분이에요. 열심히 준비해서 뵙겠습니다.

[앵커]
선생님의 새 앨범도 나오고 그리고 70대 공연도 뼈쳐지는 내년을 더 기대해 보겠습니다.

[인터뷰]
열심히 하겠습니다.

[앵커]
지금까지 오빠부대의 원조 남진 씨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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