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이 뭐길래]9회 일하겠다. 돈, 욕, 매 앞에 평등을 허하라![정리뉴스]
경향신문 뉴스큐레이션사이트 ‘향이네’가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와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기획에 참여한 필자들은 “페미니즘이 남성과 여성 모두의 삶에 풍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학문이자 운동”이라고 말합니다. ‘페미니즘이 뭐길래’ 함께 읽어보시죠. 연재글 의견은 h2@khan.kr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일하겠다. 그러니 돈, 욕, 매 앞에 평등을 허하라!
I. 起(기)
멀고 깊은 우주의 한 귀퉁이에 지구라는 푸른 별이 있다. 그 별의 대장은 자신들이 죽는다는 사실을 깜빡깜빡 잊어버리는 인간족이다. 이들은 지구별을 점령한 대가로 차지한 영토와 재산을 핏줄로, 계급으로, 성별로, 피부색으로, 모시는 신의 종류로 나누기를 즐긴다. 그리고 이 기준으로 해야 할 일과 말아야 할 일을 나누는데, 매번 길게 설명하기도 귀찮으니 법이라는 것을 만들어 사용한다.
처음에는 이 법을 힘세거나 독한 인간이 마구 주물렀으나, 시간이 흘러 종족의 수도, 나눌 것도 많아지자 만인이 그 앞에 평등하다는 법을 제정했다. 물론 이 과정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니다. 제 몫을 끈질기게 요구하는 인간족들이 제 권리를 찾아가며 만들었다. 그러나 인간족 세상은 여전히 미개해 법은 법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세금 낼 평등, 벌 받을 평등은 턱 하니 주어진 데 비해, 세상을 나누어 가질 평등, 돈(가치), 욕(표현), 매(권력) 앞의 평등은 여전히 젬병이다. 그나마도 나라마다 성별마다 심한 차이가 난다.

세상이 캄캄한 시절에는 그럭저럭 유지되었는데, 온 세상일을 순간 알 수 있는 21세기의 환한 세상에는 유독 차이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니 여기저기서 ‘나는 왜?’ ‘우리는 왜?’ ‘우리나라는 왜?’ 하고 아우성이다. 여긴 2015년 12월 겨울 지구별의 동쪽 대한민국이다. 이젠 먹을 것도 제법 있는 나라에서 법과 현실의 차이가 너무 크니 여기도 곳곳에서 아우성이다. 분단의 갈등이 기본인 곳에 이념의 갈등, 빈부의 갈등, 서울과 지방의 갈등, 지역 갈등, 세대 갈등, 거기에 드디어 젠더 갈등도 추가되었다.
II. 承(승)
- 이곳은 대한민국, 젊은 여자사람(그중 형편이 그리 나쁘지 않은)의 삶이다.
태어났다. 성별이 확인되는 순간 핑크로 치장한다. 딸 가진 부모는 비행기 탄다고 주위의 위로부터 받는다. 옹알이하면서부터 ‘예쁜 짓!’ 구령 떨어지면 온갖 애교로 좌중을 즐겁게 한다. 중노동이다. 이렇게 커서 학교가 대부분 교육을 남자사람과 동일하게 받는다. 다만 동네 아저씨나 오빠들을 조심하라는 교육은 덤으로 받는다. 착한 아저씨와 나쁜 아저씨의 구별법을 배우면서 예쁜 짓 명령에 더는 복종하지 않는다.
꿈이 무어냐고 누가 물으면 누구도 할머니 때 모범답안인 현모양처라 답하진 않는다. 꿈이 우주비행사건, 특전사 용사건 부모는 수능시험까지는 무조건 그래라 한다. 엄마는 딸이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길 빌고, 아빠는 이 귀한 딸을 험한 세상에서 지킬 각오를 구국의 신념처럼 품는다. 그런데도 서서히 알게 된다. 자신이 이등 지구인임을. 그래서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것을. 매력 있기 위해 일찍부터 화장을 하고, 능력 있기 위해 죽자고 성적에 매달린다. 집요한 성적 신공을 인정받아 여자사람이 다니는 중·고등학교에 남자사람들이 입학하길 꺼린다.
수능을 치고 나면 여자로서 무난한 꿈으로 인생 항로를 변경한다. 이러고 대학에 들어간다. 당장 신입생 환영회 때부터 성별의 차이가 돈과 욕과 매 앞의 불평등을 낳는다는 속설이 사실임이 확인한다. 물리적 힘은 잽도 안 되고, 같이 술을 마셔도 귀갓길 두려움의 종류가 다르며, 같이 연애를 해도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가 다르며, 같이 공부를 해도 취업의 결과가 다르다. 세상은 자꾸 조심하라고, 그것이 현명하다고 가르친다. 젠더가 꿈의 실현에 걸림돌이 됨은 물론, 생명과 존엄에도 위협이 된다는 것을 두서너 번 체험한다. 사랑이든, 성공이든 조심만 하고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이 별로 없음에도 꿈을 대충 얌전하게 정리하고, 몸치장도 세상이 원하는 데로 해주며, 죽자고 학점에 매달린다. 부지런히 봉사도 하고 자격증도 딴다.
이런 타협에도 세상은 가상하게 보아주지 않는다. 교문 안에서는 세상의 지도자가 되라고 하더니 교문 밖으로 나오니 무수리인 줄 모르느냐고 타박이다. 입직의 문은 높지만 악착같이 넘었고, 일자리에서도 고분고분 찻잔까지 날라야 살아남는다. 사귀는 오빠를 아이 아빠로 승격시키는 과정에서 겪는 현실은 그야말로 대하드라마다. ‘돈 벌려고 애쓰지 마, 넌 나만 쳐다보면 돼’ 하는 왕자는 동화책 속에나 있다. 대부분 철저히 계산기를 두드린다.

결혼하고 직장도 다니고 집안일하고, 남편의 부모에게 자신의 부모에게도 하지 않던 효도를 한다. 일은 밀리고 아이는 울고, 출근을 제때 하려면 또 다른 여자(친정엄마) 노년을 잡도리한다. 일과 육아 사이 널뛰기하며 유리천장에 부딪히는 동안 세상의 경쟁에서 도태된다. 비혼의 경우도 곤혹하긴 매한가지다. ‘왜, 결혼 안 하세요?’하는 질문에 끝없이 시달리거나, 시시껄렁한 온갖 너절한 농담의 대상이 되고, 나이 좀 차면 유통기간 지난 식료품 취급당한다. 그렇게 애썼는데도 할머니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돈과 욕과 매 앞에 평등을 허하라!’. 억울하다.
- 이곳은 대한민국, 젊은 남자사람(그중 형편이 나쁘지 않은)의 삶이다.
태어났다. 성별이 확인되는 순간 파란색으로 치장한다. 대를 이은 귀한 몸이 되었다. 기다가 서면서 벌써 ‘모두 짐에게 복종하라!’를 누리게 되었다. 용감하고 씩씩해야 했다. 그런데 더 씩씩한 아이들이 도처에 있었다. 말도 느리고 손도 무뎌 같은 반 여자애보다 우월한 인간족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장래희망은 억지로 멋진 걸 골라야 했다. 만만한 무엇인가를 내밀면 ‘남자가 쩨쩨하게’란 핀잔이 돌아오기 일쑤다.
커가면서 도처에 더 센 녀석들이 힘겨루기를 신청했다. 매 순간이 전쟁이고 모든 것이 만만하지 않았다. 사춘기 되면서 남자가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영상물들에 영혼을 점령당했다. 여신에 대한 동경이 박살이 나고, 세상이 동물적 욕망으로만 보이는 내상을 입는다. 누구에게 의논하지도 못하고 인터넷 게임으로 불안을 잠재웠다. 게임 속의 적은 악당만이 아니다. 영상 속에서는 널려있지만, 현실에는 눈길 한번 줄 리 만무한 그 모든 그녀들이다.
입시는 지옥 같았지만, 대학에 가면 마음껏 살 수 있거니 믿고 참았다. 대학에 갔다. 변한 것은 없다. 더 많은 불안 속에 놓이게 된다. 자유가 있어도 돈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고, 눈에 들어오는 여자는 영락없이 더 센 녀석의 차지이다. 늦게 가면 어린 선임 모셔야 한다는 충고에 서둘러 군대 갔다. ‘남자면 당연히’라고 쉽게 말하지만 무서웠다. 총도 훈련도 기합도 나누어 공유하는 야한 것들도 다 무서웠다. 군대에서 장래를 결정하라고 하지만 하루하루는 고달프고, 무엇도 할 자신이 없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불쌍한 한국 남자’라는 제목으로 도는 글을 인용한 주간조선 2382호 [포커스]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살아남기.](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t1.daumcdn.net/news/201512/11/khan/20151211103405633pwdw.jpg)
제대하고 다들 하듯이 세상에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어느 것 하나 만만하지 않다. 연애도, 학점도, 영어도, 자격증도. 거기에 하수라고 믿고 싶던 여자사람들도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한다. 가만히 생각하니 억울하다. 저들은 군대도 가지 않고, 데이트 비용도 내지 않고, 여차하면 시집가면 된다. 그러고도 고마워하기는커녕 정색을 하고 또박또박 따진다. 필요할 때는 한없이 연약한 척하더니 각종 고시에는 척척 붙는다. 점점 마음이 불편해진다.
어렵게 입직하고 기를 쓰고 일한다. 한 푼 벌지만 흙수저 인생은 두 푼 쓸 곳이 생긴다. 결혼, 그 많은 방황으로부터의 탈출로이고, 다시 황제가 될 유일한 가능성이다. 그러나 결혼, 현실에서 이건 진정한 노예 생활, 돈 벌어 오는 기계 생활의 시작이다. 엄마 밥과 달리 아내의 밥은 목에 자꾸 걸린다. 회사에서 집에서 도처에 의무만 있다. 힘든 일을 다 하고도 여자 잡는 종족으로 국제적으로도 유명하고, 언론은 매일 성범죄로 도배되며,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몬다. ‘우리도 돈과 욕과 매 앞에 평등한 대접 받은 적 없다’. 억울하다.
III. 轉(전)
‘타인은 나의 지옥이다’라던 사르트르의 존재론을 들먹거리지 않아도 된다. 현재 대한민국 인터넷 공간에서 타 성별은 충분히 지옥이다. 젠더 간 갈등이 가장 비겁한 형태의 전쟁으로 터졌다. 전쟁의 외양은 이렇다. 한 무리의 남자사람들이 여성혐오를 뿌리고 나니, 다른 한 무리의 여자사람이 남성혐오를 뿌린다. 자신들의 오랜 영지를 조금씩 빼앗아가는 여성에 대한 분노와 그 앞에 점점 더 작아지는 자신에 대한 불안과 왜곡된 신념이 익명을 무기 삼아 짱돌을 던졌다. 선봉의 전사들에 설득된 나이 어린 소년이 IS 보다 더 싫다는 여자사람들도 출전의 결단하고, 짱돌에 화염병까지 추가해서 던졌다.

한쪽이 인간의 언어로 볼 수 없는 저열한 언어로 공격하자, 다른 쪽도 ‘우리는 수만 년 동안 욕 많이 먹었다. 그래 욕 앞에 평등하자. 너희도 이제 욕먹어봐라!’ 하고 오래 받아먹던 욕에 ‘트랜스젠더링’ 해 이자를 붙여 던진다. 수만 년 사용한 여성혐오의 스킬을 악착같이 따라잡아 남성혐오로 반사한다. 처음엔 ‘너흰 군대 안가잖아’ 하니, ‘너흰 출산 안 하잖아’ 하는 정도였으나, 점점 더 강도를 더해 오랜 금기의 언어를 동원해 상대의 아픈 곳을 집요하게 찌른다. 자신의 경험이나 상상을 무기로 인간의 가장 밑바닥을 뒤져서 잔인하게 발설하며 자신의 트라우마 속으로 전체를 끌어넣는다. 오늘도 키보드 전사들은 ‘나는 이렇게 아픈데 너희는 희희낙락이냐!’ 분노하며 자신을 가해한 세상에 대해 복수를 한다.
전쟁은 억울함을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장치이다. 그리고 강자가 쉽게 도발하는 특성이 있다. 누가 뭐래도 지구별 인간족은 남자사람이 강자다. 어느 나라 할 것이 없이 여자사람은 약자다. 전 세계 여성 세 명 중에 한 명이 일생 동안 한 번 이상 물리적 폭력이나 성범죄의 피해자가 된다. 여성이 약자라는 것은 경제적 측면에서 잘 드러난다. 여성은 남성보다 가난하고, 노동시장 참가율이 낮고, 저임금이며, 장시간 가사노동을 하고, 승진의 기회나 관리직으로의 가능성이 작다. 2015년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현재 세계 여성 노동은 남성 노동이 받은 10년 전 임금을 받고 있다. 지난 10년간 그렇게 난리 쳐도 격차를 겨우 3% 줄었다. 이런 추세이면 격차 해소에는 118년이 걸린다. 그나마도 형편이 좋아야 가능하지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이후 진전이 없다.


지구별 동쪽 대한민국에서는 더더욱 남성이 강자이다. 2015년 한국의 양성평등은 세계 145개국 중에 115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8개국 여성 관련 지수중에 나쁜 것은 대충 1등이다. 2014년만 해도 여학생 대학 진학률이 74.6%로 남학생 67.6%보다 높다. 그러나 고용률은 여성이 49.3%, 남성은 71.4%이다. 경제활동 참가율도 남성 73.%에 비해 여성 51.3%이고, 저임금 노동의 비율도 남성 17.0%에 비해 41.8%로 높다. 근로조건도 매우 열악해 2013년 현재 여성 노동의 비정규직 비율은 41%로 남성 27%에 비해 높다. 2015년 현재 남성이 평균 4만 달러 벌 때 여성은 2만2263달러밖에 못 번다. 이런 임금 격차는 145개국 중에 116위이고 OECD 국가 중에는 13년째 내리 금메달이다.(▶관련기사 경향신문 남녀 임금격차, 가장 큰 이유는 ‘그냥’)
저임금 비숙련 노동으로 여성 노동의 직종분리가 이루어져 2013년 여성 노동의 비율은 관리직(16.5%), 숙련직(3.8%), 기능조립직(16.1%)로 돈 되고 힘 되는 일은 거의 남자사람 차지다. 이처럼 여성 취업이 보건, 복지, 사회 서비스 등 저임금 돌봄 노동에 집중되어, 이를 대변하듯 2014년 유리천장 지수가 OECD 중에 꼴찌다. 고소득 직종이나 고위 직급은 유리천장이 쳐져 아예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 같은 노동을 해도 승진 확률이 남성의 절반이 안 되니 여성 관리자 비중 9.5%에 지나지 않는다.(2011년 기준)
격차의 원인에는 여성의 삶이 담겨있다. 20대에는 임금 격차가 나지 않다가 한창 일할 나이에 M자형 노동 패턴에 따라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2014년, 20.7%)을 한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외벌이론 살림이 어림없어서 노동 시장에 뛰어든다. 2011년 기준 여성 노동의 60%가 40세 이상이다. 당연 저임금 노동, 비정규직, 비숙련 노동이다. 게다가 임금 격차 중에 그냥 생산성의 차이가 아니라 성차별로 나는 격차가 20%가 넘는다.

이런 처지에 가사 노동까지 전담한다면 억울한 것이 여성임이 더 확실하다. 2015년 통계청의 일·가정 양립 지표로 보면 맞벌이 가구의 가사노동은 남자 40분, 여성 3시간 14분이다. 5년 전보다 남성 노동시간이 3분 늘었다. 비맞벌이 부부는 남자 47분, 여자 6시간 16분이다. OECD 국가 중에 한국 남성이 집에서 제일 편하다. 그러면서 아이 맡길 곳 없어 절절 메는 맞벌이 여성에게 일터에서는 집에 가서 아이나 키우지 하고 핀잔이고, 전업주부에게는 노는 여자 딱지를 붙인다. 저출산율은 당연한 결과이다.(▶관련기사 경향신문 한국 맞벌이 부부 하루 평균 가사노동…남편 40분 아내 194분)
여기에 자산 보유의 불평등을 합치면 대한민국은 여전히 중세 시대이다. 여성의 문제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당장의 경제성장은 물론 길게는 대한민국 존립 자체의 문제이다. 저평가된 유능한 여성을 채용하면 기업의 경쟁력이 살아난다는 것은 경제원론의 분명한 교훈이다.
IV. 結(결) 여성주의, 여성주의 경제학
전쟁의 승패는 단기적으로는 힘 차이로 결정되지만, 장기적으로는 명분이 결정한다. 단기적으로는 명분이 없이도 이길 수 있지만 그건 결국 이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누가 명분을 갖고 있는가? 더 억울한 쪽이다. 돈 없으면 살 수 없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 쓸 때는 평등한데 돈 벌 때는 불평등하다면, 한 쪽은 길을 걸을 때도 연애를 할 때도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한다면, 한 쪽은 생존의 문제인데 한 쪽은 예전 같지 않다고 투정한다면 명분이 있는 쪽은 여성이다.
인간족의 역사가 증명하듯 ‘일하마, 돈, 매, 욕 앞에 평등을 허하라!’는 명분으로 전쟁해 지구별은 점점 더 여럿이 살 만한 곳이 되었다. 그리고 현재도 지구별 곳곳에서 법 앞의 명목적 평등을 삶에서의 평등으로 실현시키려는 이들이 ‘우리도 일하겠다. 돈과 매와 욕 앞에 평등을 허하라’ 하고 요구하고 있다. 이들 중 가장 큰 집단이 여성들이다.

확 기운 인생의 경기장을 평평하게 하려는 노력이 여성주의면 이건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특히 대한민국의 여성주의면 더더욱 인정해야 한다. 여자 친구 폭행하는 소리가 방송으로 중계되어 국민 모두를 패대기치는 데도 가해자의 미래를 걱정해주는 곳이 대한민국이라면 이건 무어라 말해도 야만이다. 여성주의를 인정하지 않고는 휴머니즘은 없다. 이는 단지 여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성 자신 삶의 정당성을 위해서이다. 그러면 평화가 오고 남성들의 권익도 더 잘 지켜지며 여성주의도 저절로 없어진다. 다른 대안은 없다.
돈 앞에 양성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려는 것이 여성주의 경제학이라면, 기울어진 경제학을 반듯하게 만들고, 기운 세상을 반듯하게 펴는 경제정책의 지휘소가 여성주의 경제학이라면 인정해야 한다. 노동 시장에서의 여성 차별을 해소하려는 미시적 정책 개발과 성인지 예산이나 성인지적인 통계와 성인지 지수, 성별영향평가 같은 거시적 정책을 시행하면서, 한시적인 제도로 적극적 조치, 여성 할당제, 일과 가정 양립제도, 여성친화적 직장 문화를 만들기 위해 경제학에 성인지적 감수성을 장착시키려는 시도가 여성주의 경제학이라면 인정해야 한다. 지나친 남성성으로 경쟁과 이윤 극대화로 범벅되어 결국 공멸의 기운이 감도는 지구별에서 지속가능하고 인간·환경·가족친화적이며 공평무사한 경제 현실을 만들어가며 공존과 연대를 모색하는 경제의 유형이 여성주의 경제라면 이건 인정하고 장려해야 한다.
혐오도 애교처럼 중노동이다. 혐오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힘과 시간이 필요하다. 명분 없는 싸움으로 고생하지 말고 한걸음 물러나 넓게 보자. 그러면 ‘오포 시대’(연애·결혼·출산·인간관계·집)를 살아가는 흙수저의 시간을 성별 간의 전쟁으로 탕진시키는 구조가 드러난다. 전쟁이 불러일으키는 증오와 공포는 기존 사회 구조를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그 구조를 조정하는 또 다른 인간족에겐 성별이 없다. 원하는 것은 다 할 수 있는 계급이다. 이 젠더를 초월한 계급을 평등과 인권으로 통제하려면 분열된 그대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서로를 죽일 듯이 싸우는 현재, 자신들이 콜로세움의 검투사들 신세는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어쩌면 여전히 돈과 매와 욕을 독점하는 이들이 만든 콜로세움에서 죽자고 싸우는 한낱 검투사일 수 있다.
![경향신문 [新허기진 군상]미래 없는 청년들-2015 대한민국서 도전하거나, 포기하거나 기사에 소개된 정지민씨가 일하는 서울의 한 선글라스 매장에서 창밖을 보고 있다.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는 정씨는 2012년 대학에 입학한 뒤 쉬지 않고 10개가 넘는 알바를 해오고 있다. | 김창길 기자](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7/01/khan/20250701171801754peni.jpg)
■향이네 기획 ‘페미니즘이 뭐길래’ 목차
1회 메갈리아의 ‘거울’이 진짜로 비추는 것(윤보라 여성학 연구자)
2회 “여자도 군대 가라”?: 여군 예능으로 들여다본 군복무와 ‘성평등’의 복잡한 관계(조서연 인문학 연구자)
3회 데이트 성/폭력에 대한 소고: 누가 피해자가 되는가(김보화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4회 남성진보논객과 담론헤게모니: ‘청년진보논객’ 데이트폭력 폭로에 부쳐(김홍미리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5회 그럼에도, 페미니스트 정치(김은희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6회 나는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여자’(은하선 섹스칼럼니스트)
7회 “나는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입니다.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GP 네트워크 팀장)
8회 성노동 비범죄화! 한국사회에서는 안될 일인가?(박이은실 여성학자)
9회 그들의 외침: 일 하겠다. 그러니 돈, 욕, 매 앞에서 평등을 허하라!(홍태희 조선대 경제학과 교수)
10회 여성들은 왜 ‘속물’이 되어야 했나(엄혜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11회 ‘진짜 페미니즘’을 찾아서- 타령을 도태시키고 다시 논쟁을 시작할 때(손희정 영상문화를 연구하는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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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태희 | 조선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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