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K푸드 열풍]② "한국 된장·고추장, 태국인 입맛에 녹아들었다"



“한국에서 먹던 맛과 같나요?”
친구와 식사를 하던 태국 여성 차이야폰(36)씨가 자신이 먹던 고추장 찌개를 한 수저 권하며 어리숙한 영어로 물었다. 초면이었지만, 기자가 방콕에서 파는 한국 음식들을 취재 중이라고 양해를 구하니 그는 ‘한번 맛을 보겠냐’며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거의 비슷합니다. 해산물이 조금 많이 들어간 점을 제외하면, 한국에서 팔아도 되겠네요.”
“맞아요. 저도 한국에 2번 가봤는데, 그 때 먹었던 음식이 기억에 남아 이곳을 찾기 시작했어요.”
차이야폰씨는 “태국 음식에 쓰이는 장(醬·paste)은 맵고 신 맛(hot and sour)이 두드러지는데, 한국 장은 덜 매우면서, 단 맛이 나 먹기 편하다”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차이야폰씨와 함께 식사를 하던 친구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연신 찌개를 자기 그릇으로 퍼 날랐다.
11월29일 오후 태국 수도 방콕 도심에 있는 한식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김주(Kimju)’. 김주는 태국에서 가장 큰 한식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이다. 방콕 등 태국 전역에 매장 30곳을 두고 있다.
‘김주’의 주인은 한국인이 아니다. 태국인 위치안 우돔삿폰씨가 2007년 한식 맛에 끌려 방콕에 1호점을 연 것이 시초다. 그는 한국 장맛에 반해 프랜차이즈를 시작했다. 비빔밥, 고추장찌개, 된장찌개, 부대찌개 등 전체 메뉴의 80%에 한국 전통 장류가 쓰인다.
주말 오후를 맞아 찾은 김주 방콕 센트럴프라자점은 120석 규모 매장에 빈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손님들은 테이블 한가운데 가스 그릴에 검은색 뚝배기나 넓직한 전골 냄비를 올려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익숙한 향이 매장 안에 가득했다. 고추장, 된장 등 한국 전통 장의 향기였다.
‘김주'에선 돼지고기가 들어간 고추장 찌개 2인분과 닭 강정 1인분, 한국식 공기 밥과 식혜 2잔이 포함된 ‘우리끼리’ 세트를 499바트(한화 1만6300원)에 판다. 태국 평균 2인 점심 식사비가 160바트(한화 5200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3배 이상 비싸다.
차이야폰씨는 “가격이 비싸 매번 찾긴 어렵다. 한국 음식이 먹고 싶을 때는 맥스밸류(태국의 대형마트)에서 한 달에 한 두번 정도 한국 고추장을 사다가 찌개를 끓여 먹곤 한다”이라며 “친구들이 ‘이런 음식을 해달라’며 인터넷에서 한국 음식 레시피를 구해준다”고 말했다.
◆ 태국, 한국 고추장 수입 4년 만에 4배로
‘한국의 대표 음식’ 고추장, 된장이 태국 외식 시장을 흔들고 있다. 한식을 즐기는 문화가 태국 20~40대 여성층을 중심으로 완전히 자리 잡으면서, 한국산 장류에 호기심을 느끼는 태국 소비자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2008년 3만3787kg이었던 태국의 한국산 고추장 수입은 2012년 16만9659kg으로 4년 만에 402% 증가했다(농수산유통공사). 2015년에는 30만kg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기간 한국산 된장 수입량도 2배 이상 늘었다. 한국산 장류(고추장·된장·간장) 수입 역시 2008년 11만 달러에서 2012년 33만 달러로 3배 늘었다. 농수산유통공사 관계자는 “2015년은 50만 달러가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태국은 동남아 지역에서도 입맛이 가장 보수적인 나라다. 한국에 고추장, 된장이 있듯 거의 모든 태국 음식에는 ‘피쉬 소스’가 들어간다. 오징어나 고등어 과의 생선에 소금을 넣어 발효시켜 만드는데, 생선 특유의 향이 적고 짠 맛이 강하다. 더운 나라의 특성상 음식을 상하지 않고 보관하기 위한 조리법이다.
반면 뭉근한 맛의 한국식 장류는 태국인 입맛을 공략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김주’도 2007년 매장을 연 이후 3년 간은 성장세가 둔했다. 고추장·된장이 들어가지 않은 고기구이류가 주로 팔렸다.
반전의 계기는 ‘한류 드라마’였다. 2010년부터 한국 드라마와 음악 등 한류 붐이 강하게 불기 시작했다. ‘진짜 한국 음식을 먹어보자’는 소비자가 늘었다.
김주 센트럴프라자점에서 일하는 수지트라 카오롭탐 매니저는 “처음 온 손님 중에선 ‘빨간 소스(고추장)를 올리지 말아달라’고 주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추장을 뺀 부대찌개를 먹다가 ‘피쉬소스’를 가져오라고 하던 사람도 있었다”며 “지금은 ‘이 소스를 한국에서 직접 가지고 왔느냐’를 따지는 손님이 생겼을 정도로 사정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 고추장 양념 닭갈비도 인기…음식점마다 ‘한국産’ 강조
2014년부터는 고추장을 듬뿍 넣은 한국식 닭갈비가 젊은 여성층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태국은 닭고기 소비 잠재력이 큰 국가다. 태국 전체 육류 소비량 가운데 90.5%가 닭고기라고 세계식량기구 통계는 말한다.
방콕 중심가를 걷다보면 영어로 ‘닭갈비(Dak Galbi)’라고 쓰여진 프랜차이즈 식당이 곳곳에 보인다. 뼈가 없는 닭고기에 매운 고추장 양념을 하고 떡·라면 사리· 양배추를 넣어 주걱으로 비벼 먹는 전형적인 한국식 ‘닭갈비’다. 태국인 입 맛에 맞춰 새우 등 해산물이 추가된 것만 빼면 서울에서 파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닭갈비 프랜차이즈를 연 사타폰씨는 젊은 태국인 사업가다. 이제 막 서른이 된 그는 우연히 한국에 놀러갔다가 춘천 닭갈비 맛에 빠져들었다. 6개월을 춘천에서 꼬박 살면서 닭갈비 조리법을 익힌 후, 2014년 태국에 1호 매장을 열었다.
체인은 2년 만에 방콕 핵심 상권에 매장 9개로 늘었다. 야채는 현지에서 조달하고, 양념은 한국에서 수입한 고추장을 충분히 사용하는 것이 사타폰씨의 성공 비결이다.
‘닭갈비’ 시암 스퀘어점에선 모든 태국어 메뉴 밑에 한국어로 메뉴 설명이 쓰여 있었다. 장류 원산지는 ‘한국산(産)’이라고 표기했다. 프랜차이즈 로고는 춘천에서 쓰던 커다란 닭갈비 팬(fan)을 본 따 만들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재료로 진짜 한식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국내에 120개 체인을 운영하는 닭갈비 프랜차이즈 ‘유가네’도 태국에서 성업 중이다. 매장 수가 아직 많지 않다. 하지만 인지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시암 매장은 미국의 유명 햄버거 프랜차이즈 ‘A&W’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코트라 방콕 무역관 관계자는 “달큰한 간장향이 강한 일본 음식을 주로 찾던 태국 소비자들이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맵고 얼큰한 한국 장을 사용한 음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자국 음식에서 나는 톡 쏘는 듯한 매운 맛보다 더 시원하고 얼얼한 한국식 매운 맛에 태국인들이 매력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 Copyrights ⓒ 조선비즈 & Chosun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비즈톡톡] “호황이면 뭐하나, 사람이 없는데”… K조선도 남 일 아닌 日의 추락
- 공직자윤리위, 쿠팡으로 가려던 금감원 직원들에게 ‘취업 제한’ 통보
- [Why] 대한항공·아시아나 이어 LCC도 ‘폭풍전야’… 조종사 서열 갈등, 왜
- 배 엔진이 AI 서버 돌린다, HD현대 AI 인프라 기업으로... 정기선號의 변신
- 압구정 5구역 수주전 판세는… “현대건설 우세 속 DL이앤씨 반전 도모”
- [단독] “KT·스카이라이프 고객 받으면 수수료 깎인다”… KT 내부 문건에 계열사 간 이동 제한
- [르포] 분당 1대 ‘트랙스’ 생산되는 이 공장… 美 소형 SUV 27% 차지한 비결은
- 李대통령 “수학여행 왜 안 가나”… 교사들 “책임부터 덜어달라”
- ‘2000원 버거·1000원 빵’ 가성비 경쟁에 소비자는 웃지만... 자영업자는 수익성 우려
- [비즈톡톡] ‘하GPT’ 이탈한 국가 AI 정책… “AI, 핵심 국정 과제 맞나” 의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