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2015년 묵은 해를 보내는 2015번 버스 여행기

이승연 2015. 12. 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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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2015번 버스냐고? 2015년이 끝나가서? 사실 큰 이유는 없다. 우연히 2015번 버스를 발견한 직후 ‘이 버스는 어디로 향하는지 궁금해서’ 였다. 한 여행 전문서적이 한 노선만을 타고 떠난 버스여행에서 얻은 소소한 재미를 조명해 흥미가 생긴 차였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스마트폰과 카메라, 버스카드를 들고 길을 나섰다. 중랑공영차고지부터 동대문역사문화공원까지 서울 속속들이 떠나는 2015번 버스를 타고 만난 세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버스의 매력을 몇 가지 꼽아보자. 세상을 구경할 수도 있고, 사람들이 적을 땐 승객 모두가 좌석에 앉아 정면을 보고 가니 나만의 시간을 즐기기에 좋다는 장점이 있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이 버스를 타고 생각에 빠진 모습은 또 어찌나 예뻐 보이는지…. 좋아하는 노래의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창 밖을 바라보고, 어딘가 낯선 곳으로 데려다 주는 버스는 그야말로 킬링타임에 제격이다. 버스를 타고 떠나는 시간은 누군가에겐 가족들을 위한 음식을 만들기 위해 시장을 가는 어머니의 길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미래의 꿈을 향해 달려가기 위한 길일 수도 있다.

기자에게 2015번 노선은 한 해의 마지막을 앞두고, 지난 날을 정리하고 머릿속에 복잡함을 잊고자 하는 여행길이었다. 일상 속 작은 것에 한번쯤 의미를 둬보는 것만으로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그렇게 시작한 혼자 가는 여행에 빠질 수 없는 음악으로 2015년 1월부터 10월까지 매월 1위~3위의 곡을 리스트업 했다. 버스 투어를 시작하기 전 간단하게 이번 여행을 알차게 즐기기 위해 내게 맞는 몇 가지의 규칙을 정한 뒤 곧바로 길을 나섰다.

▶어디로 떠나나요, 2015번 아저씨

2015번 버스의 경우 중랑공영차고지에서 시작해 중랑구와 망우역을 지나, 동대문구-왕십리-동대문역사문화공원-청계7가로 빠지는 노선이다. 즉흥여행이 콘셉트였지만, 사전에 노선 속 가보고 싶었던 장소를 골라봤다. 상봉역과 마장동 축산물시장,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 체크하고, 나머진(기사의 완성까지도) 그저 운에 맡기기로 했다. 2015번이 시작하는 정거장 중랑공영차고지까지 버스를 이용했다. 버스여행을 위해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는 것이 조금은 어불성설이지만 뭐 어떤가. 나름 설렘을 가라앉히고 여행 목적을 정리한 시간은 됐으니 말이다.

중랑 아트 갤러리 상봉역

문화공간 중랑 아트 갤러리 vs 여행욕구를 느끼는 상봉역

망우역을 지나는 도중 중랑 아트 갤러리 간판을 볼 수 있었다. 여행을 하며 우연히 만나는 예술작품 또한 나름 여행이 주는 묘미 중 하나다. 중랑 아트 갤러리는 지난 2014년 개관 이후, 중랑구 주민들에게 다양한 전시행사를 선보이고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때마침 <대한민국 기로미술대전>(2015년 11월23일~11월30일)이 열리고 있었다. 여기서 ‘기로’는 연로하고 덕이 높은 ‘60~70살의 어르신들ʼ을 이르는 말로, 여행 당시엔 수묵화와 서예작품에 해당하는 말로 오인하고 있었다. 벽을 가득 채운, 열정 충만한 사람들의 작품을 보며 다시금 길을 나섰다.

중랑 아트 갤러리에서 한 역 거리에 위치한 상봉역까진 도보로 움직였다. 상봉역 위에 걸린 경춘선 안내 표시와, 자전거 출입 시간 공지 현수막을 보자 서울 도심에서 그것도 주택이 밀집된 곳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얼마든지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당연하지만 잊고 지냈던 사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장안교

자전거 연습에 최적화된 동대문구 공원

12시40분 경, 장안교를 지나며 다리 아래 자전거 길을 발견하고 하차벨을 눌렀다. 조금은 매서워진 바람에 외투 앞을 단단히 여미고 강길로 내려갔지만, 장안교 일부는 보수 공사 중이고 갑작스런 추위 때문에 빠른 후회가 찾아왔다. 그러던 중 눈에 띈 것이 바로 중랑천 자전거 교통안전 체험 학습장. 코스 구간, 오르내리막, 경사길 등 다양한 실외교육장이 만들어져 있어(운전연습장을 떠올리게 했다), 자전거 라이더를 위한 연습 공간으로 최적화된 곳이었다. 추위에 언 몸을 녹일 겸 인근 카페 티그라운드에서 크로크 무슈와 따뜻한 아메리카노 세트로 점심을 해결했다. 프라이빗한 칸막이 테이블이 나처럼 혼자 온 손님들을 위한 맘 편한 공간이 되었다.

마장동

보이는 건 소고기와 돼지고기뿐 마장축산물시장

마장동 골목은 입구에서부터 고기 손질을 하는 상인들의 모습을 바로 볼 수 있다. 1층엔 축산물 도소매 판매처가 있고 2층엔 ‘고기 익는 마을ʼ이 있어, 손님들이 고기를 사면 매장 안에 들어가 바로 구워먹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골목 끝에서 꺾으면 40년 역사를 자랑하는 마장동 먹자골목이 나온다. 저렴하고 맛있는 정육식당들이 양쪽으로 줄지어있다. 갈매기살, 치맛살, 양곱창, 족발 등 상상만으로 먹음직스러운 메뉴판에서 눈을 뗄 수 없었지만 대낮에, 그것도 혼자서 고기를 구워먹을 자신감은 없었기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먹자골목을 빠져 나왔다.

DDP 전시

매력적인 전시를 만나는 기회 동대문운동장 DDP

마지막으로 찾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정거장 앞에서 2015번 버스 여행을 마쳤다. DDP에 도착해보니 오픈 큐레이팅 프로그램 <Curiousity Cabinet: 음식으로 바꾸는 세상>展(2015년 11월6일~11월29일)이 열리고 있었다. 음식과 예술이 만나는 다양한 창의적인 실험을 선보이기 위해 디자이너와 예술가, 그리고 셰프가 함께 모인 전시였다. 음식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소개하며 단순한 일상적 요소로 여겨왔던 ‘음식’이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경험을 선사한다. 미래의 식량부터 색다른 시선에서 바라본 음식의 의미가 재미를 더했다. DDP를 나서며 이번 전시가 마치 우리에게 가까운 ‘버스’라는 일상에서 재미를 찾은 이번 여행과도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이승연 기자 사진 이승연, 포토파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506호 (15.12.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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