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대란 종전 선언문 '지옥철에서 벗어날 것을 선포합니다'

이승연 2015. 11. 25.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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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지하철에 몸을 싣는 직장인들에게 이 짧은 순간조차도 영겁의 시간이다. 아직까지 지하철이란 콩나물 시루에 싹도 안 난 에디터는 결국 출근대란에서 패전을 선언했다. 이 기사는 출근길 지옥철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혹은 명확한 해결책은 아니다. 단지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출근 시간이 나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가이드가 되고자 한다.

▶대한민국 직장인들 ‘오늘도 출근합니다’

9호선이 2단계 구간 개통을 알린 지 8개월. 기존에도 ‘지옥철’로 불리던 9호선은 그야말로 승객들의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9호선 염창역~당산역은 출근시간 최고 혼잡도가 233%를 넘어서며(2015.10, 서울시·새청치민주연합 김상희 의원) ‘최악의 지옥철 구간’으로 선정됐다는 얘기에 기찬 헛웃음만 흘러 나온다. 평소 4호선을 이용하는 내겐 비교적 위안이 되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일은 터지고 말았다. 수능 전날인 11월11일. 4호선 혜화역에서 전동차 출입문 고장으로 인해 연착, 열차는 지연 운행됐다. 갑작스런 지하철 고장 소식에 불안한 것은 온전히 직장인과 학생들의 몫(수능날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고장 소식이 담긴 기사를 인쇄해 빨간 빼빼로 박스에 수줍게 붙여 편집장님 책상 위에 올릴까도 생각했지만(다행히 지각은 면했다) 결국 그날 오후 내 체력은 제로가 됐다. 지하철 <디워>를 한번 찍고 나자 ‘콩나물 시루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Q지하철을 타기 싫을 때? 나는 지옥철 출근대란을 피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봤다

A “지옥철이 싫어서 버스 타고 다닌 지 1년째다. 1년 전 지하철을 탔을 때 점퍼 단추가 뜯겨져 나갈 정도로 붐비는 현상을 겪기도 했고, 사람이 많다는 핑계로 불쾌한 신체접촉을 겪은 뒤엔 더더욱 싫어졌다. 할 수 없이 지하철을 타야 할 때는 10분 먼저 나오는 편이다.” - 직장인 K씨(28세)

A “직장은 집에서 지하철로 다섯 정거장 거리다. 하지만 다섯 정거장 동안 내 몸은 찌부러진 호떡을 연상시켰다. 이후 1시간30분 정도 일찍 나와서 걸어 다녀봤다. 얼마 안 있어 과한 워킹으로 몸에 무리가 온 뒤엔 자발적으로 찌부러진 호떡이 되는 것을 선택하긴 했지만.” - 직장인 L씨(30세)

자료: 자체설문

에디터의 지옥철 종전 선언 6일

▶D+1 첫째 날 ‘이론이 가장 쉬웠어요’

지하철역에 들어서기 전, 심호흡을 크게 내쉬었다. 안내 스크린을 보니 열차는 전역과, 전 전역에 각각 한대씩 있었다. 집에서 충무로 회사까지는 대략 30분.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한차례 대규모로 승하차가 이뤄지면, 그 다음 7할은 충무로역, 2할은 명동역, 나머지 1할은 그 이후 역에 내릴 터…. 내 두뇌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회전했다. 선택지가 좁혀졌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2호선으로, 서울역에서 1호선으로 환승할 수 있는 10-3, 10-4은 그야말로 ‘헬 구간’. 무조건적으로 배제했다. 그리고 충무로에서 3호선으로 갈 수 있는 7-1과 하차 구간 5-3, 명동역 에스컬레이터가 이어지는 1-1. 이 자리는 무조건 피해야 할 코스였다. 그렇게 내가 선택한 3칸은 다른 곳의 대기선보다 짧은 모습이 육안으로도 보였다. 결과 역시 나쁘지 않았다. 여유 있게 오전 뉴스 기사를 보며 출근했고, 역에서 내려서도 혼자 느긋하게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빈 열차 공간은 운에 기대는 것보단 결국엔 승률 싸움일 뿐이었다.

Good△ 사람들 사이에서 빈 곳을 찾는 노력을 덜 수 있다.

Bad▽ 대체로 사람수가 적지만 너무 붐비는 시간엔 결국 어느 칸이든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D+3 셋째 날 ‘오늘 아침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모닝콜은 평소보다 한 시간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늦은 가을 새벽 하늘은 아직까지 한밤중이었고, 덩달아 잠을 설친 느낌이 역력하다. 기껏해야 어제보다 1시간 이른 시간에 조금은 여유로움을 느끼며 집을 나섰다. 회사까지 가장 빠른 버스는 140번 노선. 수유-길음-혜화-청계-충무로 코스로, 약 44분이 걸린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빈 자리가 혹시나 있을까 두리번거렸지만, 버스 출근엔 하수였던 나는 금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적당하게 비어있는 좌석 앞에 서서 ‘이렇게만 가면 버스 출근도 좋겠다’ 생각이 들었지만, 섣부른 판단은 금물. 길음뉴타운 정거장을 시작으로 사람들이 점차 늘기 시작했다.

Good△ 삭막한 회색 칸 안과 달리 창문 밖의 아침 풍경을 보기 좋다.

Bad▽ 이른 출근에 졸음이 올 수 있다. 차가 막힐 때마다 눈알을 굴리는 건 나 혼자 뿐일까. 눈이나 비가 오는 날은 피하고 싶다.

▶D+5 다섯째 날 ‘종로/ 출근길’

기사를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고려한 부분이다. 지옥철을 피하기 위해 빠른 기상과 이른 출근은 뻔한 답일 뿐이다. 다양한 방법을 찾아보던 중, 산문집 <약수동/ 출근길>(백승우 저/ 호박 펴냄)이 하나의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아침마다 걸어서 출근하는 저자는 길에서 만난 풍경을 사진을 찍었고, 일기처럼 옮겨 적었다. 나도 ‘아침 출근길을 한번 걸어보자’는 생각에 먼저 카메라부터 챙겼다. 새벽의 어두움을 걷는 것을 피하기 위해, 혜화(대학로)역까진 지하철을 이용했다. 이후 대학로-광장시장-을지로-충무로 방향으로 걸어가니 지하철을 타고 다닐 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역사 안의 작은 전시장, 모닝 커피를 파는 카페들, 아침을 여는 시장 상인들, 횡단보도 앞의 토스트 가게 등등. 저마다 아침을 준비하는 모습. 출근 시간을 10분 남겨두고 택시를 타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카메라를 넣고 나도 그들 사이에 섞여 분주하게 걸음을 옮겼다.

Good△ 지연, 차 막힘은 있을 수 없다. 내 걸음 속도에 좌지우지 될 뿐.

Bad▽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다는 말처럼 눈은 부지런히 카페와 토스트로 향한다.

[글과 사진 이승연 기자 일러스트 포토파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505호 (15.12.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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