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랙뤼미에르의 영화 뒤집기 '사일런트 하트'..삶과 죽음 그 경계를 스스로 넘다

2015. 11. 25.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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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해 가장 완벽하게, 그리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예언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이다. 인간이 생전에 유일하게 경험해보지 못하는 것도 ‘죽음’이다. 그래서 인간의 죽음에 대한 시각은 애써 외면하고 싶은 두려움의 덩어리다. 하지만 영화는 ‘죽음을 스스로 선택한 자’와 그 주변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살아있는 지금의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정복자 펠레>, <최선의 의도>로 두 번이나 칸 대상을 수상한 빌 어거스트 감독. 그의 영화는 한결같이 모두 인간이 소재다. 그는 냉정하고도 관조적인 시선의 카메라에 따뜻한 인간애의 필터를 장착해 사람 간의 관계를 조명했다. 이제 70세를 눈앞에 둔 거장에게 죽음이라는 ‘시간의 결과론’이 실제적으로 다가왔나 보다. 영화 <사일런트 하트>는 엄마의 죽음을 앞두고 남편, 두 딸 그리고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 사위 등의 생각을 들려주고 있다.

뉴스는 매번 많은 죽음을 알린다. 우리는 그 죽음을 귀로 듣고, 눈으로 보며 밥을 먹기도 하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무심한 것이다. 나와 가족이라는 규정에서 벗어난 죽음에 우리는 어느덧 ‘하나의 뉴스’ 이상의 심장 파동이 일지 않는다. 어쩌면 죽음은 우리 삶의 스마트폰에 깔린 수많은 앱 중에서 한 번도 사용하지 않지만 지울 수도, 휴지통에 버릴 수도 없는 앱인 셈이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에스더(기타 노르비)와 마지막 주말을 보내기 위해 가족들이 모인다. 큰 딸 하이디(파프리카 스틴)와 둘째 딸 산느(다니카 쿠르시크). 두 딸은 루게릭병으로 점점 몸이 마비되어가는 엄마의 선택,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것에 당황한다. 하이디는 의젓하게 엄마의 선택을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말하지만 산느는 “난 아직도 엄마에게 배울 것이 많다”며 반대한다. 의사인 아빠 폴(모르텐 그룬위드)은 아내의 선택에 최선의 방법이 무엇일까를 찾는다. 이 가족 모임에 참석한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 리즈베스. 하이디는 우연히 아빠와 리즈베스의 관계에서 묘한 연인의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엄마의 죽음 선택에 찬성’한 아빠에게 다른 목적이 있지 않을까 의심하게 된다. 이렇게 가족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엄마와 한나절을 보낸다.

영화는 자연스럽게 존엄사의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삶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에게 주어진 천부의 권리이지 않을까. 중환자실에서 온갖 생명유지장치를 몸에 치렁치렁 두른 채 생물학적 생명만을 연장하는 것이 더 괜찮은 것인가…. 누구나 한번쯤 고민했을 문제이다. 그렇지만 내 생명을, 내가 언제 마무리하겠다는 의지 또한 격려 받고 박수 받을 일인가, 라는 아쉬운 의문도 숨길 수가 없다. 여기서 이야기는 균형감을 잃지 않고 결론으로 치닫는다. 바로 죽음이 나의 일로, 내 가족의 문제로 닥쳤을 때 인간이 얼마나 솔직하게 자신의 민낯과 대면할 수 있을까, 이다. 죽음의 이야기를 다룬다고 섣불리 영화가 우울하고 황량할 것이라는 예단은 말자. 의외의 유머와 따뜻함이 곳곳에서 숨을 쉬며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에 작은 미소를 보인다. 영화지 <할리우드 리포터>가 ‘비극보다 희극에 가깝다’고 쓴 기사가 맞아떨어지는 영화이다.

[글 블랙뤼미에르(필름스토커) 사진 영화 <사일런트 하트>]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505호 (15.12.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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