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방송국 화장실에나 울고있는 작가 한명 꼭 있다

차현아 기자 2015. 11. 18.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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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작가 프로젝트①] 방송작가 허울좋은 이름 뒤엔 ‘은폐된 차별’…“할줄아는게 없냐” 막말·폭언에도 하소연 할 곳도 없어

[미디어오늘 차현아 기자]

# 방송 제작의 보람은 크지만, 그때 뿐이다. 3년차 작가인 A씨(27)는 한 지상파 방송국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작가다. A씨는 3년차가 된 올해에야 온갖 뒤치다거리를 도맡아 하던 막내작가에서 갓 벗어났다. 직접 대본을 작성한 프로그램이 방송을 탔다는 뜻의 ‘입봉’을 했기 때문이다. 

‘한 계급’ 올라갔지만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밤샘근무에 기자와 PD등의 폭언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은 그대로다. 방송작가로서의 삶은 10년차부터라며, 메인작가 언니들이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길때까지 참자며 다독여도 위로는 그때뿐이다. 한때는 방송작가로서의 치열한 삶에 ‘로망’을 품기도 했다. 실제로도 보람이 없진 않다. 열심히 섭외요청한 인물이 요청에 응했을 때나, 밤새 방송을 제작한 뒤 TV 화면에서 결과물을 볼 때마다 심장이 터질 듯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때 뿐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PD의 폭언을 들을 때마다, 같은 방송을 만들어도 외부인 취급을 받을때마다 방송사 안에서 나는 한낱 방송제작 물품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절망한다. 

방송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 방송작가들의 삶은, 방송만큼 화려하지 않다. 시시각각 빠르게 돌아가는 방송국에서 사고 없이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송출하기 위해서, 라는 이유로 쉽게 끌어다 쓰는 대체인력이자, 보조업무를 수행하는 제작기기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작가가 그런 것도 못하냐?
방송작가들은 PD나 기자들이 하지 않는 거의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 한다고 말했다. 프로그램마다, 방송사마다 작가들의 역할은 조금씩 다르다. 예능 작가들의 경우 방송 기계를 조작하는 AD와 FD의 역할을 제외한 나머지 프로그램 제작 과정 중 내용을 채우는 일은 거의 방송작가들의 몫이다. 

외주제작사에 소속된 방송작가들의 경우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조연출 역할까지 맡는 상황도 생긴다. 열악한 환경의 외주제작사에는 PD와 작가 둘만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 나가서 촬영하는 것은 PD의 몫이고, 사무실 내부에서 작업할 수 있는 모든 업무가 작가의 몫이 되는 것이다. 

물론 지상파 방송사에서 직접 만드는 방송 프로그램 제작팀에 소속된 방송작가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지상파 프로그램의 한 특집프로그램에서 일해봤다는 한 작가는 “원래 작가들의 몫은 프로그램 촬영 전의 구성과 기획까지다. 그런데 특집프로그램이라 급하게 제작해야 해서 일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현장 진행까지 시켰다. 방송 기계 만질줄 모른다니까 ‘작가가 그런 것도 못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욕에 가까운 말을 하는 바람에 억지로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방송작가들에게 요구되는 업무 수준은 모순적이다. 평상시에는 기자와 PD 등 방송사 내의 정규직과는 다른 보조적 업무에 머물기를 바란다. 급하면 PD와 기자의 업무를 대체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대로 못하면 ‘그것 하나 못하냐’는 핀잔이 쏟아진다. 그것이 방송작가로서의 전문성이라는 논리다. 

특히 막내작가들에게는 ‘막내’라는 타이틀로 더 많은 업무를 요구한다. 막내라는 직군이 따로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교육이라는 이유로, 혹은 막내라는 이유로 일을 떠넘기는 일도 흔하다. 

방송작가들은 프로그램을 새로 맡을 때마다 ‘일 잘하는 PD 혹은 기자’와 일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물론 어느 직종이나 같이 일하는 파트너가 유능한 사람이기를 바라는 것은 같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방송작가 직군의 경우 PD와 기자가 ‘일 못하는’ 사람일 경우 그가 해야 할 업무마저 모두 대신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공적 업무와 상관 없는 잡다한 일도 방송작가의 몫으로 돌리는 경우도 있다. 김씨는 “기자 한 명이 급하게 엑셀 오름차순 정렬을 해달라며 일요일에 회사로 불렀다. 기자가 부르니까 거부할 수도 없어 가서 오름차순 정렬만 해주고 다시 퇴근했다”고 말했다. 또다른 한 방송사 방송작가는 “막내작가 시절 PD 딸의 숙제로 PPT 제작을 대신 해준 적도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 ⓒ iStock. 편집=이우림 기자.

‘을로서의 방송작가’
방송 콘텐츠의 창작자가 아닌 보조자이기 때문에 방송작가와 기자, PD 등은 상하관계를 이룬다. 정규직이고 전문직인 기자와 PD에 비해 보조자이며 비정규직인 방송작가들은 하위계급에 놓인다. 특히 업무에서의 상하관계는 갑과 을이라는 계급질서를 만든다. 계급질서 속 명령은 수직적이고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가끔 ‘하위계급’인 방송작가들이 PD나 기자들을 대상으로 문제를 지적하며 항의를 하는 경우들도 생긴다. 다만 그럴 경우 프로그램 제작팀에서 떠날 각오를 해야 한다. PD는 정규직이지만 작가는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다. 

“주변의 한 작가가 PD와 크게 한번 싸운 적이 있어요. 기본적으로 그 PD는 작가가 싫었던 모양이에요. 조사한 자료를 인쇄해서 자신의 책상에 올려놓지 않고 메일로 보냈다고 PD가 화를 내더라고요. 그 외에도 PD가 그 작가를 사사건건 무시하는 발언을 하다가 언젠가 한번은 ‘너는 내 밑’이라며 대놓고 깔아뭉겠어요. 안그래도 평소에 자기를 무시한다는 생각에 많이 쌓였는데 그 말에 작가도 폭발한거죠. 물리적 폭력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꽤나 언성이 높아졌어요. 결국 작가는 다른 프로그램 제작 팀으로 갔고요.”

명령과 반말은 일상이다. 특히 ‘마음에 안드는’ 작가를 대상으로 괴롭힘 비슷한 일도 발생한다. 한 방송사에서 일했던 한 작가는 “기본적으로 다 반말로 업무 지시가 내려온다. 심지어 기자들이 방송작가에게 본인 스케줄에 맞추지 않았다며 몹시 화를 내는 경우가 있다”며 “원하는 자료를 찾아놓고 퇴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프로정신이 없다는 등 욕을 퍼붓기도 했다”고 전했다. 또한 “마음에 들지 않는 방송작가에게 퇴근 후에도 밤낮으로 전화해 업무 지시를 내려서 괴롭히는 경우도 주변에서 종종 봤다”고 밝혔다. 

또다른 5년차 시사교양 프로그램 방송작가는 “방송국 내에 상습적으로 방송작가를 괴롭히는 PD 한 명이 있다. 그 PD가 자료를 내놓으라길래 갖다줬다. 그랬더니 자꾸만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고 다시 해오라고 시키더라. 본인은 나가서 취재하다가 밤 9시에 돌아와서는, 지금 당장 회의하자며 연락을 했다. 주말에도 갑자기 연락해서 나오라고 한 적도 있다. 만약 사정이 생겨 못 나가면 월요일에 난리가 난다. 일을 못한다느니, 열정이 없다느니 하면서 잔소리가 쏟아진다”고 털어놨다. 

인격적으로 무시당하는 일도 흔하게 벌어진다. 지난해 3개월 가량 방송작가로 활동했다는 B씨(27)는 “업무 얘기를 하면서 ‘너는 할 줄 아는게 없냐’고 PD가 나에게 마치 선생님이 학생을 혼내듯이 지적을 했다”고 밝혔다. 

프로그램 책임자에게 소위 ‘찍힌’ 작가는 쉽게 프로그램 제작 팀에서 퇴출되기도 한다. 한 지상파 다큐프로그램에서 일했던 한 3년 차 작가는 “개편 시기가 되니 프로그램 제작팀장이 PD들에게 전화를 돌리더니 ‘작가 마음에 안들면 바꿔주겠다’고 하는 얘길 들었다”며 “실제로 마음에 안 드는 작가 몇 명이 그런 식으로 교체되는 걸 봤다”고 밝혔다. 교체는 즉 해고다.  

‘갑을 관계’의 문제는 성 문제를 야기시키기도 한다. 방송작가의 특성 상 여성이 많은 구조에서 남자의 비중이 많은 PD와 기자 간 일을 해야 하는 상황도 이에 한 몫한다. EBS의 한 교양 프로그램에서 일한 경험이 있던 한 3년차 막내작가는 “외주제작사에서 소속 막내작가들에게 방송사 PD와 팀장 등에게 술을 따르라고 지시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특히 외주제작사의 경우 방송사 외주제작 프로그램 계약을 맺고 제작해 납품해야 하는 을의 입장이라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사는 갑, 외주제작사는 을, 방송작가는 병”고 말했다.

폭언으로 인한 피해는 개인이 책임져야 할 몫으로 돌아온다. 방송작가들 사이에서는 방송국 화장실마다 울고 있는 작가 한명씩은 꼭 있다는 웃지못할 농담도 나온다. 

“몇 년 전 한 지상파 방송사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막내작가 이야기가 작가들 사이에서 아직도 떠돌아요. 얼마나 프로그램과 그 방송사에 한이 맺혔으면 방송사에서 뛰어내렸을까, 하는 이야기죠. 방송사 마다 화장실로 울면서 뛰어들어가는 방송작가 한 명씩은 꼭 본다는 얘기도 있어요. 남자 방송작가들의 주된 업무 중 하나는 여자 방송작가들이 울 때 달래주는 일이라는 말도 나오고요.”

방송작가들이 함께 일하는 기자와 PD와의 관계에서 폭언 등 어려움에 처하게 되더라도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주는 해결사는 방송작가 중 가장 연차가 높은 ‘메인작가언니’다. ‘메인언니’가 나서서 PD나 기자, 팀장과 잘 해결을 해주기를 기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노조나 협의체 등은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일하는 방송작가들에게 기대할 수 조차 없다. 

폭언이나 폭행, 성적 농담 등을 피해가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과 함께 일하는 방법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한 예능 프로그램의 방송작가는 “사실 어디에서나 인성이 좋지 않은 사람들은 있다. 언어폭력을 당하는 일은 사실 다른 분야 직업군에서도 심심치않게 볼 수 있는 일인데다가 그 사람 인성이 나쁘기 때문”이라면서도 “다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친한 선배 언니에게 말씀드리고 그만두고 싶다 말하는 게 전부”라고 답했다. 

방송사에서 일하는 이들에게는 여러 이름들이 붙는다. ‘작가’라는 이름에는 창의성과 자율성, 등 고급인력으로서의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실제 이들에게는 이름이 갖는 이미지와 그들이 만드는 방송만큼의 거창한 현실은 주어지지 않는다. 

KBS 시사보도프로그램에서 7년 간 일했다는 한 서브작가는 “각각의 직군에는 그에 걸맞는 이름이 있다. 작가도 서브와 메인, 막내 등 각자의 역할에 따른 이름이 부여된다. 그런 이름들 뒤에는 차별이 내재돼있다. 막내라는 이름을 달면 조금 더 잡다하고 많은 일들을 감당해야 한다는 거다. 그럴싸한 이름을 주고 각각의 직군에게 주어지는 차별을 은폐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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