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트뤼도 이혼 소송
[기억할 오늘] 11월 16일
마거릿 트뤼도의 2010년 자서전 'Changing My Mind' 표지
1983년 11월 16일, 마거릿 트뤼도(Margaret Trudeau)가 이혼소송을 냈다. 피에르 트뤼도 전 캐나다 총리와 11년 8개월의 결혼 생활 중 6년여를 별거하던 끝이었고, 저스틴 등 세 아들을 사실상 혼자 키워야 했던 스트레스 등이 이혼사유였다. 84년 둘은 위자료 없이 이혼에 합의했고 자녀 양육권은 피에르가 가졌다.
둘은 67년 처음 만났다. 18세의 마거릿은 촉망 받는 모델이었고, 정치 입문 2년차인 48세 노총각 트뤼도는 법무장관이었다. 트뤼도는 이듬해 총리가 됐고, 71년 3월 둘은 부부가 됐다. 52세 총리 남편을 맞은 22세의 마거릿은 인터뷰에서 “나는 내 남편의 옷깃을 장식하는 장미꽃 이상의 존재가 되길 원한다”고 말했다.
당시 캐나다는 퀘벡 분리독립 문제로 시끄러웠다. 트뤼도는 69년 공용언어법(불어와 영어를 공식언어화)으로 수습에 나섰지만 퀘벡해방전선(FLQ) 등 급진조직의 테러 등으로 골머리를 썩여야 했다. 또 베트남전쟁 와중이었다. 그는 미국의 참전 요구를 거부하는 한편 중국과 수교하고 구 소련과 잇따른 회담을 갖는 등 독자노선을 개척하느라 분주했다. 피에르가 닉슨에게 보낸 편지가 공개되기도 했다. “대통령 각하, 캐나다는 미국과 다른 나라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캐나다는 평화를 사랑하고, 개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인정하는 나라입니다. 젊은이들의 선택에 귀를 기울이기 바랍니다(…)” 그의 인기는 지금 그의 아들의 인기 이상이었다. 다만 마거릿에게는 아니었다.
마거릿은 훗날 회고록에서 “미시즈 트뤼도가 된 그날부터 유리벽이 내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내가 마치 어떤 결정도 스스로 할 수 없는 정신병동 환자처럼 느껴졌다.” 결혼 첫 해 엄마가 된 그가 막내 마이클을 낳은 건 27세 때였다. 당시에는 그도 몰랐지만, 인기 총리의 아내이자 미래 총리의 어머니는 그 무렵 양극성장애(조울증) 환자였다.
20대의 마거릿 트뤼도. 자료사진
스캔들이 시작됐다. 총리 관저로 마약을 반입했다는 소식, 뉴욕의 유명 나이트클럽에서 “반라 차림으로” 춤을 즐겼다는 소식, 테드 케네디 미 상원의원과의 염문, 롤링스톤스 기타리스트 로니 우드, 믹 재거 등과의 공공연한 외도와 별거. 세계의 언론들은 그 ‘사실’들만 보도했다.
마거릿은 이혼 후 오타와의 부동산 재벌 프리드 켐퍼(Fried Kemper)와 재혼해서 아들과 딸을 낳고 조용히 살았다. 우울증이 다시 도진 건 98년 11월 피에르와 낳은 막내 마이클이 스키를 타던 중 눈사태로 실종된 직후였다. 그는 이듬해 다시 이혼했다.
그는 배우로, 작가로, 방송인으로 일하며 정신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활동가로, 저개발국 식수 봉사활동가로 살고 있다. 1년여 전 국민 여론조사에서 “150년 건국 역사상 최고의 인물”로 뽑힌 피에르는 2000년 전립선암으로 별세했고, 마거릿은 그를 임종했다. 마거릿은 “결혼이 끝났다고 사랑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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