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소 증산이 부메랑..유가공식품은 수입산이 잠식

김소연 2015. 11. 14.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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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공급 함정 빠진 우유

구제역 파동 후 사육 독려 정책

저출산ㆍ경기 위축에 우유 소비는 내리막길

공급 넘쳐나도 가격 인하 못해

시장 논리 부분적 도입 필요

지난달 서울우유가 수익성 악화로 월급 일부를 유제품으로 지급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업계가 떠들썩했다. 반기 기준으로 사상 첫 적자를 기록한 국내 1위 업체의 ‘우유페이’논란도 논란이지만, 수년 째 누적되고 있는 우유 수급 불균형 문제가 본격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2014년 농업생산액 44조 9,168억원 중 우유 비중은 4.9%(2조 3,380억원), 품목별 생산액으로는 쌀, 돼지, 한우에 이어 4위를 차지할 정도로 낙농산업은 전체 농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만만치 않다. 낙농산업 위기는 단순히 한 산업의 추락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서 우유 과잉 현상을 먼 산 보듯 할 수 없다. 왜 남아돌게 됐을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우유재고

전국의 우유 재고 증가 속도는 가파르다. 2010년 1만 2,658톤에서 지난해 23만 2,572톤으로 늘었고, 올해는 9월 기준으로 26만 2,659톤에 달한다. 5년 만에 재고가 20배 이상 폭증했다. 남은 원유는 분유 형태로 보관되는데 분유 재고량으로 따지면 2만톤 이상이다. 원인은 명료하다. 생산은 많고 소비는 줄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량 증가는 2011년 구제역 이후 정부가 증산을 장려한 탓이 크다. 그 여파가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낙농업은 젖소가 송아지를 낳은 뒤부터 젖을 짤 수 있어 최소 2년 이상 준비 기간이 걸리고, 계속 젖을 짜내야 하기 때문에 인위적인 유량 조절도 어렵다. 그래서 2002년부터 농림부 산하 낙농진흥회 주도로 ‘잉여원유 차등 가격제’를 도입해 계획 생산을 도모하고 있다. 유업체별로 수요에 적합한 생산량(쿼터)을 낙농가에 주고, 계약된 생산량만 정상가로 사는 방식이다. 그런데 구제역 이후 원유 확보에 비상이 걸리자 유업체들은 쿼터 외에 자체적으로 생산량을 늘렸다. 최근 온화한 겨울날씨도 생산량 증가에 한몫을 했다.

하지만 우유 소비는 전형적인 내수산업인데다 경기 위축에 따른 소비 감소와 자체 가격과 대체재 가격의 차이, 인구와 기호 등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는다. 저출산으로 영유아와 초등학생 등 우유 주소비층이 준 반면 커피와 탄산, 과즙음료 시장이 급성장했다. 이에 따라 흰 우유 1인당 소비량은 2012년 33.6㎏에서 지난해 32.5㎏로 줄었다. 다만 같은 기간 흰 우유를 포함한 유제품 전체 1인당 소비량은 67.2㎏에서 72.4㎏로 늘었다.

우유 과잉 함정에 빠진 낙농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농가의 효자였던 젖소는 애물단지 신세가 돼 버렸다. 경산=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FTA로 가격경쟁력 뒤처져

그렇다면 소비 트렌드에 발맞춰 유가공제품 중심으로 구조를 개편하면 해결되지 않을까. 하지만 유가공제품은 수입산이 장악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원유로 환산한 유제품 수입물량은 2010년 113만 3,800톤에서 지난해 177만 4,758톤으로 늘었다. 미국, 유럽연합(EU)과 호주 등과 구축한 자유무역협정 네트워크에 따라 저율관세와 무관세로 들어오는 저율관세할당물량(TRQ)에 힘입은 바가 크다. 치즈 등 유가공제품 소비가 늘어도 가격경쟁력에서 유리한 수입산으로 채워져 국내 원유 재고량은 늘어만 가는 실정이다.

그러면 국내산 원유 가격을 낮춰 우리 유가공제품의 경쟁력을 키우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나온 게 원유가격 연동제에 대한 문제 제기다. 2013년 8월 도입된 원유가격 연동제는 전년도 원유가에 농가 생산비 증감분과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원유 거래 가격을 결정하는 제도다. 낙농가의 지속적 생산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협동조합 중심의 낙농 선진국과 달리 사기업이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거래 교섭력이 약한 농가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였다.

그렇지만 세계 경쟁이 펼쳐지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이길 수 없다. 더욱이 ‘우유가 남아도는데 왜 가격을 내리지 않느냐’는 소비자 비난이 늘면서 유가공업계를 중심으로 원유가격연동제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상도 유가공협회 전무는 “원유가격 연동제는 물가인상률을 반영하다 보니 가격을 내릴 수 없는 구조”라며 “시장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취약점을 지녔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업체와 낙농가 간 합의로 도입된 제도이기 때문에 당장 폐지는 어렵겠지만 ‘코리아블랙프라이데이’와 같은 국가 차원의 세일 기간에 원유 거래 가격을 일시 할인해 주는 등 탄력적 운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9일 경북 경산시 남산면 경리 한 목장에 버려져 있는 착유기. 목장 주인은 3개월 전 젖소에서 한우로 목축 품목을 바꾸면서 필요 없어진 착유기를 그대로 방치해 뒀다. 경산=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잘못된 정보 바로잡는 노력도

이처럼 우유 수급 불균형 문제는 복합적 요인에서 비롯돼 정부나 생산자, 유가공업계 어느 한 곳의 노력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박종수 충남대 명예교수는 “낙농가는 뼈를 깎는 심정으로 추가 감산을 감행해야 하며 유가공업계는 다양한 소비자 욕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제품 개발에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 “저렴한 수입산 분유에 의존하고 있는 제과ㆍ제빵업계가 국산분유를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보조금 등 각종 정부 지원을 늘려 국내산 분유시장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영길 강원발전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낙농가에서 직접 유가공제품을 제조ㆍ판매해 일반 유가공제품과 차별화를 시도하는 6차 산업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낙농산업 고도화를 주문했다.

무엇보다 과거 우유를 마시는 가장 큰 이유였던 ‘완전식품’ 믿음을 되살리는 노력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유가공업계 관계자는 “우유뿐 아니라 모든 식품에서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나 우유 섭취가 많은 선진국 자료만 제시한 채 우유가 건강에 오히려 해롭다는 오해가 반복 생산돼 안타깝다”며 “유가공업계는 물론 국가 차원에서 잘못된 정보를 적극적으로 바로잡고 우유의 적정 권장량을 제시하는 홍보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mailto: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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