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기행 | 홍성오일장 + 용봉산] "문전성시門前成市 꽃게도, 전어도, 대하도, 사람도, 모두모두 홍성장에 모여라"
충남 홍성은 내포(內浦)의 중심 지역이었다. 내포는 삽교천이 생기기 전 서해의 바닷물이 닿던 충남 서부지역의 열 고을을 가리키는 옛 지명이다. 가야산을 둘러싸고 있는 서산, 태안, 예산, 홍성 등이 바로 그 열 마을들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충청도에서는 내포가 가장 좋은 곳’이라 했다. 이를 증명하듯 내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두 차례의 난리 때에도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산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사람이 오가는 큰 길목에서 벗어나 있는 덕분이었다.
내포지역에서도 홍성에는 홍주목(홍주는 홍성의 옛 이름)이 설치되어 있었다. 홍주목은 당시 충청도 서부의 22개 군을 관할했다. 당연히 내포지역의 물산이 홍성으로 모였다. 홍주에 근거지를 둔 상무사(商務社, 등짐장수와 봇짐장수를 거느려 다스리던 관청)는 인근 청양, 광천 등지까지 그 위세를 떨쳤다고 한다. 현재도 홍성장에는 홍주, 광천, 보령 등 6개 군에 걸쳐 활동하던 ‘원홍주육군상무사’가 명맥을 잇고 있다.
홍성에는 크고 작은 전통시장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홍성오일장이 가장 크고 유명하다. 1·6장인 홍성오일장은 16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예전엔 동문장과 서문장이 따로 열렸는데, 홍주성 서문을 중심으로 상인들이 좌전을 벌였던 곳이 서문장이었다. 광복 이후 지금의 장터 자리에 서는 동문장에 서문장이 통합되었다. 서문장터는 현재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홍성장 입구 홍성천에 차를 세우고 시장으로 들어갔다. 추석을 2주일가량 앞둔 시장에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허기부터 채우기로 한다. 홍성오일장에 왔다면 흔히 장터국밥이라 부르는 소머리국밥을 꼭 먹어봐야 한다.
소머리국밥집이 모여 있는 마늘전 앞에서 식사를 하던 임종일(44)씨는 “회사원이라 오일장에 올 일이 드물지만 가끔 이 추억의 소머리국밥 맛이 그리워 주말에 장이 서면 꼭 나와서 국밥을 먹는다”고 했다.
그 맛이 어떨까 해서 국밥을 시키니 금세 뚝배기에 토렴해 뜨끈해진 국밥이 나온다. 뽀얀 국물이 아닌 맑은 국물에 고기가 듬뿍 담겨 있다. 밥을 말아 후루룩 먹는다. 도시의 세련되고 깔끔한 맛과는 뭔가 다른 투박하면서도 깊은 맛이다. 점심시간이 되니 사람들이 제법 모여들었다.
“그래도 사람이 적은 편이에요. 요즘엔 딱 이 정도만 와요. 한창 농번기이긴 한데, 그보다는 사람들이 지갑을 열지 않아요. 어딜 가나 장사 잘된다는 곳은 없을 거예요, 요즘…….”
건어물을 파는 최미영(44)씨는 “추석 전이라곤 하지만 얼마나 사람이 더 올지는 모르겠다”며 말끝을 흐렸다. 장사 안 되기가 벌써 몇 달째니 이제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해야 그나마 속이 덜 썩는다고 했다.
“예전엔 어물전 좋았지. 이쪽 근방의 ‘물것’들은 다 들어왔으니께. 어디 바다가 지금 것 같았는가? 그땐 물고기 잡히는 양이 달랐어. 뭣이든 한 짝에 몇 천 원씩 팔았으니께. 지금은 무지하게 비싸지. 그렇게 짝으로도 안 잡히고.”
어물전 상인 김명복(55)씨는 “요즘 조금만 비싸게 팔면 죄다 마트로 가버리니 전통시장이 잘될 리가 있냐?”고 되물었다. “누가 뭐래도 그때가 살기는 더 좋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김씨는 “가을전어가 제철”이라며 생선을 보기 좋게 쌓아올렸다. 가격은 비슷할지 몰라도 생선 질에 있어서는 마트에서 파는 것에 비할 게 아니라는 것이다.
홍성시장엔 물건과 사람 말고도 구경거리가 또 있다. 바로 ‘홍성장터보물’이다. 장터 안에는 보물1호 대교리 석불입상부터 10호 대승철물 돈궤까지 모두 10개의 보물이 숨겨져 있다. 현재 실제 쓰이는 것들도 있고 이제는 실생활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을 벽에 걸어놓은 것도 있다. 이 10개의 보물을 찾으러 돌아다니다 보면 시장의 속속들이 모든 것을 더욱 더 알차게 알 수 있다.
“어, 저거 곤달걀 아냐?”
무심코 시장을 둘러보던 중 ‘장터보물 제4호 보신알’이란 안내판을 발견했다. 생김새는 그냥 달걀이지만 ‘보신’이라고 하니 곤달걀이 틀림없었다.
“젊은 사람이 어찌 곤달걀을 안데요?”
보신알 가게 주인 김금자(62)씨는 “다른 지역에선 곤계란, 곤달걀, 사롱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지만 이곳에서는 ‘보신알’로 부른다”고 했다. 보신알은 병아리가 부화하기 전의 달걀을 삶은 것이다. 일반 시중에 파는 것과 달리 흰자와 노른자의 구분이 없다. 무정란은 찐 달걀과 비슷한 모양새지만 유정란으로 만든 보신알은 부화되기 직전의 병아리 모양이 그대로 있는 것도 있다.
“여기 늘 허던 걸루~”
점심시간을 맞춰 보신알로 반주하려는 단골손님들이 들어왔다. 장날을 핑계 삼아 마실 나온 동네할아버지들이었다. 작은 가게가 순식간에 북적거리는 통에 보신알 가게를 나와 대장간으로 향했다. 김씨가 “보물 2호는 대장간에 있다”고 귀띔해 준 덕이다. 홍성대장간은 장터보물 2호이자 홍성에서 유일하게 남은 대장간이다.
“옛날엔 세 군데가 더 있었어요. 지금은 우리만 남았쥬.”
홍성대장간 주인 모무회(68)씨는 무형문화재(대장장) 보유자다. 그의 아버지가 1943년 고모부의 작업장을 물려받았고 1960년 초등학생이었던 모무회씨가 2대를 이었다.얼마 전부터는 그의 아들 모영서씨가 일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3대를 잇고 있다.이곳에 장터보물 2호가 있으니 바로 ‘모루’다.
모루란 달궈진 쇠를 두들겨 펼 때 받침대 역할을 하는 쇳덩이다. 얼핏 보기엔 그냥 받침대 같지만 옛날에는 쌀 4가마의 값어치를 하는 ‘귀중품’이었다고 한다. 모씨는 지금도 여전히 쇠를 화덕에 넣어 벌겋게 달궈 모루에 놓고 망치로 두들겨 만진다. 망치질을 하며 벌건 불똥이 뛰는 모습이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신기한지 시장을 찾은 사람들은 어김없이 대장간을 찾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구경을 하곤 한단다.
“모루는 아직도 젤로 소중한 물건이여. 힘닿을 때까지는 대장간 일을 계속할 거니께.”
장터보물 2호 모루는 대장장이 모무회 장인에게는 보물 1호였던 것이다.
홍성장에도 가을이 물들어 요즘엔 전어와 꽃게가 제철이다. 대하는 최고의 인기 상품이어서 아침 일찍부터 서두르지 않으면 금방 동이 난다. 몸값 귀한 대하지만 오일장에선 인심이 먼저다. 한 5,000원치가 더 남아 있어도 그냥 떨이로 주는 게 다반사다. 가을엔 모든 게 풍성하다지만 홍성장엔 벌써부터 인심이 풍성했다.
“보물 찾으러 다녀요? 우리 가게에도 보물 있어요. 저기요.”
대승철물 이영춘(77) 할머니가 가리킨 곳을 보니 ‘장터보물 10호 돈궤’가 벽에 걸려 있었다. 돈궤는 말 그대로 돈을 넣어놓던 궤짝이다.
“옛날엔 저 돈궤에 돈이 가득 찼었지. 지금은 어디 그러나?”
이영춘 할머니는 홍성장에서만 65년째 철물장사를 하고 있는 ‘왕언니’다. 나이 상으로는 분명 할머니라고 부르는 게 맞는데 외모는 50대 중반 즈음으로 보이니 ‘아주머니’로 부르거나 살갑게 ‘누님’이라고 불러도 이상할 것이 없을 법하다.
“옛날 철물점은 지금하고는 비교할 수 없이 바빴어. 그때는 낫하고 호미만 팔아도 하루에 300개씩 나갔으니까. 요즘은 별의 별 것을 다 팔아도 그때보다 훨씬 못하지.”
대승철물점 건물은 한눈에 봐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이층 목조건물이다. 이 사장의 아버지 때에 지은 건물이라 하는데 100년 가까이 된 홍성군의 중요한 근대유산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드라마나 영화를 촬영하기도 했단다.
철물점 앞엔 단골손님들이 자리를 잡고 커피 한 잔씩을 마시고 있다. 적어도 몇 십 년은 된 단골들이다. 5일마다 수십 년을 봐왔으니 가족보다 더 가족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굳이 물건을 사지 않아도 차 한 잔씩 대접하고 말동무가 되어 주는 것이 ‘왕언니’로서 당연한 일이 아니겠냐?”며 화사하게 웃는 이 사장이다.
시장은 누가 뭐래도 문전성시여야 한다. 사람이 모여야 물건이 모이고 물건이 모여야 활기가 넘친다. 내포지역의 중심이었던 홍성, 그리고 그 홍성에서 가장 큰 홍성오일장. 추석을 앞둔 초가을, 홍성오일장엔 사람이 모여들었고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보신알 가게 김금자(62) 사장
김씨는 내친김에 가게를 현대식을 싹 고치려고 마음먹었었지만 단골손님들이 한사코 ‘그냥 냅두라’고 해서 아직도 옛 건물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대승철물점 이영춘(77) 사장
이 사장은 “요즘은 문전성시(5일시장 활성화 프로젝트) 문화강좌를 통해 풍물과 스포츠댄스, 부채춤 등을 배우고 공연도 하면서 행복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며 웃었다.
“수많은 기암으로 가득한, 오르기 전엔 절대 모를 바위 명산”
용봉초등학교~투석봉~최고봉~노적봉~악귀봉~가루실고개 약 6km
바위와 소나무 어우러진 풍광은 작은 설악산 연상케 해
용봉산은 수암산으로 길쭉하게 늘어진 타원형의 산세가 특징이다. 곳곳에 소나무 군락이 산재해 있고 악귀봉, 장군바위, 물개바위, 병풍바위 등 기암봉의 절경이 펼쳐진다. 백제 고찰인 용봉사와 보물 제355호인 마애석불을 등 여러 문화재를 접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수암산까지 종주하고 덕산 쪽으로 하산하면 온천을 즐길 수도 있다.
소나무 군락과 기암괴석의 향연
매표소를 지나면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이나 왼쪽이나 투석봉에서 만난다. 용도사를 지나가려면 왼쪽 길로 오르면 된다. 도로와 콘크리트임도를 500m 정도 걸으면 용도사를 가장 먼저 만난다.
용도사는 역사가 깊은 사찰은 아니다. 사찰보다는 그 옆에 있는 상하리 미륵불만 잠깐 구경할 만하다. 높이가 7.7m, 어깨 폭이 4m에 달하는 이 미륵불은 넓은 어깨와 크고 각진 얼굴에서 후덕하고 소박함한 인자함이 느껴진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87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찰 오른쪽으로 본격적으로 등산로가 시작된다. 돌계단과 오솔길이 이어지는데, 길이 잘 정비된 편이다. 낮은 산이지만 조금만 오르막을 오르면 전망이 트인다. 홍성 쪽의 넓은 논과 밭, 그리고 저 멀리 오서산(789.9m)을 비롯한 산능선들이 그림 같은 전망을 이룬다.
가파른 길을 오르면 왼편에 정자가 나온다. 전망은 계속 트여 해발이 올라갈수록 파노라마도 크고 넓어진다. 정자를 지나 350m 정도를 오르면 주능선으로, 매표소 부근에서 오른쪽으로 난 등산로도 이곳에서 합쳐진다. 능선에서 60m 정도 가면 투석봉에 닿는다.
투석봉은 별다른 전망이 없는 그냥 지나가는 길 같지만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 지난번 덕숭산 산행을 함께 했던 예산산악회 조성제(57)씨가 투석봉 전설을 재미있게 전해 준다.
“용봉산 남쪽, 지금 홍성군청 서쪽에 백월산(일월산)이 있어요. 그 사이에 소향이란 처자가 있었는데 이 처자 미색이 아주 빼어난 거라. 이 처자를 놓고 용봉산 장군과 백월산 장군이 돌을 던져 싸움을 벌였대요. 그런데 용봉산 장군이 먼저 지친 거라. 백월산 장군이 던진 돌을 막지 못해 그 돌이 용봉산에 수북이 쌓였지. 그래서 용봉산에 돌이 많다고 하네요. 싸움에서 이긴 백월산 장군은? 소향이와 결혼했지 뭐. 지금도 용봉산과 백월산 사이에 소향리란 마을이 있어요.”
투석봉을 지나면 걷기 좋은 소나무 숲길이 나온다. 용봉산은 소나무가 많은 산이다. 때문에 가을철에도 단풍이 붉게 물드는 멋은 없다. 하지만 기암괴석과 노송이 어우러지는 풍광을 사계절 볼 수 있는 것이 더욱 큰 매력이다.
왼쪽 뒤쪽으로 수덕사가 있는 덕숭산과 가야산을 눈에 담으며 220여 m를 걸으면 금방 용봉산 정상인 최고봉에 닿는다. 정상에 흩뿌려놓은 듯한 바위 중 가장 높은 바위 위에 정상석을 얹어놓았다.
정상석 옆에 서면 사방으로 조망이 시원하게 트인다. 북쪽으로는 덕숭산과 가야산이 남쪽으로는 홍성읍과 오서산이 내려다보인다. 동쪽으로는 한창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는 내포신도시의 모습이 오롯이 보인다.
“야, 저기 천수만도 보이네요. 날씨 정말 좋네요. 천수만 보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용봉산에 오르기 전에 용봉산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의 뜻을 이제야 깨달았다. 밑에서 보는 용봉산과 직접 오른 용봉산은 천지 차이다.
용봉산 북쪽 능선 앞쪽에는 앞으로 가야 할 노적봉과 악귀봉, 병풍바위 등이 죽 늘어서 있다. 소나무 사이로 옹골찬 바위들이 숨은 모습이 흡사 작은 설악산을 연상케 한다.
노적봉에서 악귀봉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용봉산 절경 중에서도 으뜸이다. 바위는 더욱 크고 웅장해진다. 바위 위에 아슬아슬하게 얹어진 기암들은 각기 동물과 각종 사물의 모습을 하고 용바위, 물개바위, 삽살바위, 두꺼비 바위 등의 이름을 얻어 자태를 뽐낸다. 행운바위라 불리는 곳은 그릇처럼 생긴 바위 끝에 동전을 던져 들어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뜻이겠다. 바위 옆의 크랙에 뿌리를 박고 옆으로 자라는 소나무는 용봉산의 명물이다.
이 구간은 그냥 걸으면 리지등반을 할 정도로 험난한 곳이지만 철제 데크와 계단을 잘 설치해 놔 유유자적 안전하게 지날 수 있다. 바위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풍광은 수석·분재 전시장을 방불케 해 자연히 발걸음이 늦어진다.
악귀봉에 오르기 전 용봉산 등산로 이정표가 나오고 조금 오르면 악귀봉에 닿는다. 이 부근에서 물개바위와 두꺼비바위를 볼 수 있다. 악귀봉에서 나무계단을 내려가 작은 다리를 건너면 용바위에 이른다. 용바위를 지나 병풍바위 이정표를 지나 능선을 따라 곧장 걷는다. 병풍바위는 악귀봉이나 노적봉에서 바라봐야 제 모습을 볼 수 있다.
381m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면
• 산행가이드 •
간단하게 오르려면 구룡대 매표소~용봉사~마애석불~전망대 코스를 이용한다.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용봉초등학교에서 오를 경우 투석봉~최고봉~노적봉~악귀봉까지 가서 마애석불을 지나 용봉사로 내려오거나 수암산 안부의 가루실고개에서 하산 지점을 선택한다. 이 경우 6km 정도에 약 3시간 걸린다. 용봉초등학교에서 휴양림 들머리까지 시내버스가 다닌다. ‘내포문화숲길’을 따라 걸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와도 괜찮다. 2km로 약 30~40분 거리다. 용봉산과 수암산을 이으면 세심천 온천으로 내려와 바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수암산은 비교적 흙산이고 조망도 용봉산에 비해 덜해 조금 지루할 수 있다. 용봉산 입장료 1,000원, 주차비 2,000원.
문의 용봉산자연휴양림 041-630-1784, 1788.
• 교통 •
• 숙식(지역번호 041) •
용봉사 입구 상하리에 한오백년(634-1523), 용봉산장가든(633-4455), 돌산가든(634-8500) 등의 식당이 있다. 주로 생갈비 등을 낸다. 용봉산장가든은 민박도 한다. 홍성 읍내의 홍주성 주변에 림스장(634-4880), 만년장(632-4111) 등 모텔급 숙박업소를 비롯해 식당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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