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르포 | 이탈리아 알프스 (하)] 유럽의 역사 품은 그림 같은 산과 계곡
발레다오스타(Valle d' Aosta)의 면적은 3,266km²로 이탈리아의 20개 주 가운데 가장 작다. 동서로 이어진 고속도로가 이 지역을 관통하고 있는데, 그 거리가 100km가 안 될 정도로 짧다. 프랑스 샤모니에서 이탈리아로 넘어올 경우 1시간 사이 스쳐 지나치는 지역이다. 하지만 이 지방은 4,000m급 연봉으로 이어진 알프스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어 지형의 기복의 매우 심하다. 그 거친 환경 덕분에 풍광이 수려하고 그만큼 볼거리가 많다.
발레다오스타는 북으로 스위스, 서쪽으로 프랑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산줄기와 높은 봉우리들이 다른 나라와 경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하나의 봉우리가 지역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유럽 알프스 최고봉으로, 프랑스에서는 ‘몽블랑’으로, 이탈리아에서는 ‘몬테비앙코’로 부른다. 스위스를 대표하는 봉우리로 알려진 ‘마터호른’ 역시 국경에 솟아 있는데, 이탈리아에서 부르는 이름은 ‘체르비노’다. 그밖에 많은 국경지대의 봉우리들이 나라마다 이름을 달리 부르고 있다.
발레다오스타에서는 알프스를 대표하는 봉우리들이 손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앞에 언급한 몬테비앙코와 체르비노 등을 구경하기 위해 프랑스와 스위스를 넘나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발레다오스타의 중심인 아오스타에서 출발하면 몬테비앙코 아래 쿠르마이어까지 30분, 체르비노 밑의 체르비니아까지 1시간 이내에 접근이 가능하다. 짧은 일정으로도 알프스의 유명 산악관광지를 두루 돌아볼 수 있는 유리한 위치가 장점이다.
체르비니아(Cervinia) 마터호른의 또 다른 이름 ‘체르비노’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차를 몰며 체르비니아로 향하다 보니 곳곳에 걸린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7월 열린 체르비노(마터호른) 초등정 150주년 기념행사를 알리는 내용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인 1865년 첨탑 같은 체르비노는 처음으로 인간의 발길을 허락했다. 그것도 3일의 차이를 두고 두 팀이 정상에 오른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극적인 일이 그곳에서 벌어졌던 것이다.
고풍스런 거리가 인상적인 상빈셍(Saint-Vincent)에서 시작된 가파른 언덕길을 따라 40분 정도 오르니 체르비노가 한눈에 드는 마을에 도착했다. 150년 전 이탈리아 산악인 카렐이 체르비노 등반을 위한 베이스캠프로 이용했던 곳, 바로 체르비니아다. 지금은 이탈리아에서 손꼽는 스키리조트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여름에도 빙하의 설원에서 스키를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후 4시면 케이블카 운행 끝나니, 서둘러서 돌아보시고 돌아오세요.”
첫 번째 정류장인 플랜 메이슨(Plan Maison)에 도착하니 체르비노가 한층 가깝게 다가왔다. 정상부는 구름에 가려 있었지만 피라미드처럼 솟구친 거친 산봉을 감상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해발 2,555m 고지에 올라오니 피부에 닿는 바람이 서늘했다. 정류장 주변의 넓은 초원에는 노란색과 보라색 야생화가 가득했다. 알프스의 전형적인 목가적 풍경이 펼쳐지는 고원을 바라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초원지대 위의 오솔길을 걸으며 주변을 잠시 돌아본 뒤 곤돌라를 타고 다음 정류장인 라기(Laghi·2,814m)로 이동했다. 서서히 고도가 높아지며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변했다. 차츰 초원은 사라지고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벌판이 나타났다. 정류장 문 밖으로 나서니 매서운 찬바람이 온몸을 휘감았다. 재킷을 꺼내 입고 모자를 눌러쓴 뒤 천천히 주변을 돌아봤다. 계단을 내려서나 바로 옆 사면에 하얗게 눈이 쌓여 있었다. 고도가 높아지며 그만큼 기온이 떨어졌다.
상빈셍마을에서 아름다운 산골 풍광을 바라보며 하룻밤을 머문 뒤, 아침 일찍 아오스타로 향했다. 20여 분 만에 도착한 그곳에서 발레다오스타 관광협회 직원과 만나 시가지를 돌아봤다. 알프스의 로마라 불리는 아오스타는 산속의 작은 도시지만 속이 꽉 찬 관광지였다. 아우구스투스를 기념하여 세운 개선문과 성벽, 2개의 성문, 원형극장 등 고대 로마제국 시대의 유적 외에도 12세기의 모자이크 장식 바닥으로 유명한 성당, 수도원, 궁전 등 볼거리가 가득했다.
몽블랑터널 입구에서 시작하는 이 케이블카는 몬테비앙코가 정면으로 보이는 해발 3,468m의 푼타 엘브로네(Punta Helbronner)전망대까지 이어진다. 신형 케이블카는 80명 정원으로 올라가는 동안 자동으로 360도 회전해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초속 9m 속도로 빠르게 이동하지만 안전성이 뛰어나 편안하게 주변 풍광을 감상할 수 있었다.
마지막 정류장에서 계단을 타고 전망대 꼭대기에 오르면 서쪽으로 눈을 뒤집어 쓴 거대한 봉우리가 솟아 있다. 바로 ‘흰 산’이라는 뜻을 가진 몬테비앙코다. 전망대 주변에 솟은 첨탑 같은 수많은 봉우리들 또한 멋진 볼거리였다. 알프스산맥에 걸린 구름이 수시로 시야를 가렸지만 오히려 그런 변화무쌍함이 더욱 신비로웠다. 40유로가 넘는 부담스러운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몬테비앙코 스카이웨이’ 케이블카는 정말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유럽 최고봉 곁에서 즐긴 이탈리아 에스프레소의 진한 향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밀라노 지하철역 람푸냐노(Lampugnano) 부근 버스터미널에서 운행하는 아오스타 경유 쿠르마이어행 고속버스(Savada)를 이용한다. 평일 하루 기준으로 4회 운행하며 아오스타까지 3시간, 쿠르마이어까지 3시간 45분이 소요된다. 체르비니아로 가려면 아오스타 직전의 샤티용(Chatillon)에서 내려 노선버스(Savada Line 433)로 갈아탄다. 샤티용에서 체르비니아까지 약 1시간이 소요된다.
밀라노에서 아오스타나 쿠르마이어, 체르비니아로 가는 가장 편리한 방법은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이다. 밀라노 말펜사 국제공항에서 체르비니아까지 169km, 아오스타까지 166km, 쿠르마이어까지 199km로 그다지 멀지 않다. 대부분 고속도로를 타고 이동하기에 큰 어려움은 없다. 다만 샤티용에서 체르비니아까지 구간은 좁은 산길이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
숙식
아오스타와 쿠르마이어, 체르비니아는 유명 관광지로 많은 숙박시설과 식당이 시내 일원에 밀집해 있다. 다양한 등급의 호텔과 B&B(Bed and Breakfast) 민박이 많아 선택의 폭이 넓다. 호텔을 검색해 주는 전문 사이트를 이용하면 쉽게 예약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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