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악상 기호로 가득찬 말러의 오선지

2015. 10. 20. 17:3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수많은 음악가들이 왜 얼굴을 찡그리며 바이올린 활을 긋고, 아기를 어루만지듯이 건반을 쓰다듬고, 포효하듯이 양팔을 허공으로 쫙쫙 펼치며 지휘를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노래를 한 곡 부른다고 치자. 음악에는 문외한이지만 그래도 몇 마디 얻어들은 것이 있어서 오선지에 특정한 기호나 글자가 있으면 ‘이게 뭘까?’ 한 번은 생각해보고, 모르면 물어보고 검색도 해볼 것이다. 통칭하여 악상 기호라고 하는데, 그 종류로 줄임표, 쉼표, 꾸밈음, 셈여림표, 빠르기말, 나타냄말 등이 있다.

줄임표는 말 그대로 반복되는 구간을 표시하여 제한된 악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도돌이표나 다 카포(맨 처음으로)가 해당된다. 셈여림표는 해당 음표의 강약을 표시하는 것으로, 낮거나 높은 소리가 아니라 그 음정의 세기를 ‘강하게’(f, 포르테) 혹은 ‘약하게’(p, 피아노) 연주하라는 표시다. 이 ‘f’와 ‘p’의 사이, 그리고 그 양편으로 ‘fff’(매우 강하게)와 ‘ppp’(매우 약하게)까지 펼쳐진다. 학창 시절에 배운, 크레센도(점점 강하게)나 디미누엔도(점점 약하게), 천천히 걷는 빠르기로 연주하라는 ‘Andante’(안단테)나 그것보다는 빠르게 연주하라는 ‘Allegro’(알레그로)도 기억날 것이다.

조금 복잡한 곡의 악보를 보면 거의 모든 부분에 이런 기호들이 나열되어 있다. 그것들의 조합에 의하여 연주하거나 노래하는 사람들은 작곡가의 의도를 해석하고 재현한다. 1년 남짓 피아노를 배우다가 그만둔 입장에서 고백하자면, 해석은 고사하고 이 기호들을 일일이 소리로 재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tempo rubato’(템포 루바토), 즉 흔들리는 자유로운 속도로 연주하라거나 ‘a piacere’(아 피아체레), 즉 어느 정도 자유로운 속도로 연주하라는 둥, 또는 ‘sostenuto(소스테누토), 즉 억제하는 듯한 빠르기로와 같은 기호를 보게 되면, 그 순간 취미 삼아 다니던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게 되는 것이다. 아니, 이 정도의 기호에 접근한 것만 해도 실은 대단한 것이다.

말러 9번 교향곡의 극단적인 침묵까지도 지휘한 지휘자 아바도

시적인 문장까지도 악보에 써넣어

이상의 기호들이 대체로 해당 음악의 형식적 재현에 가까운 것이라면, ‘나타냄말’에 속하는 악상 기호들은 작곡가의 창작 의도, 그 내면세계를 ‘나타내는’ 기호다. 작곡가와 영적인 교감이라도 하기 전에는 도무지 어떻게 재현해야 할지 두렵기까지 한 기호들이다.

‘religioso’(렐리지오소), 즉 경건하게 연주하라는 말이다. 경건하게? 세게 혹은 빠르게 건반을 누를 수는 있는데, 경건하게 누른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거지? ‘sospirando’(소스피란토), 이것은 탄식하듯이 연주하라는 뜻이다. 이 기호를 보면 그냥 탄식이 나올 듯하다. ‘spiritoso’(스피리토소), 즉 정성을 다하여 연주하라는 기호다. 그렇다면 다른 음표들은 건성으로 치라는 말인가. ‘volante’(볼란테)는 날아가듯이 연주하라는 기호이고, ‘animato’(아니마토)는 활기차게 연주하라는 기호인데, 둘의 차이는 뭐지?

‘elegiaco’(엘레지아코)는 슬픔을 호소하듯이 연주하는 것이며, ‘patetico’(파테티코)는 비장미를 지닌 채 연주하는 것인데, 둘의 섬세한 차이는 취미 삼아 몇 달 다니다 때려치운 사람으로선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수많은 음악가들이 왜 얼굴을 찡그리며 바이올린 활을 긋고, 아기를 어루만지듯이 건반을 쓰다듬고, 포효하듯이 양팔을 허공으로 쫙쫙 펼치며 지휘를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이 직면한 악보에 작곡가가 ‘con fuoco(콘 푸오코)’, 즉 열렬하게 하거나 ‘con moto(콘 모토)’, 즉 감동적으로 하라고 덧붙여 놓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거나 듣는 모든 음악들은 이렇게 작곡가의 음표마다 기록해 둔 기호들에 의하여 복잡하면서도 장려한 형식적 미와 미묘하면서도 초월적인 사유가 재현된 세계다.

세상의 모든 작곡가들이 자신들의 악보에 그런 세계를 구축해 놓았지만, 아무래도 그 대표적인 사람으로 구스타프 말러를 꼽지 않을 수 없다. 19세기의 근대인이자 20세기라는 불안의 연대기에 슬쩍 발을 들여 놓았다가 공포에 질린 채 세상을 떠나간 말러는 장대한 교향곡들을 통하여 19세기에 세계를 제패한 유럽 시민계급의 뒤흔들리는 내면세계의 비참한 혼돈을 오선지에 표기하였는데, 그 장대한 주제, 즉 시민계급의 흥망성쇠라는 버거운 주제를 다루느라 그의 오선지는 수많은 악상 기호로 가득찬 세계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말러는 기존의 악상 기호에 더하여 그 자신이 임의적으로 만들어낸 시적인 문장까지도 악보에 써넣었다.

28살 때 작곡한 1번 교향곡의 1악장부터 남다르다. ‘Langsam, Schleppend’(느리고 완만하게)라는 표기가 있지만 더불어 ‘Wie ein Naturlaut-Im Anfang sehr gema..chlich’(자연의 소리처럼, 매우 여유롭게)라는 지시어가 붙어 있다. 한편 관악기 주자들에게는 ‘In sehr weiter Entfernung aufgestellt(매우 먼 거리에서)’라고 지시를 해두었기 때문에 이를 완벽하게 실천하려는 지휘자들은 1악장 연주가 시작되었음에도 트럼펫 주자들을 무대에 올리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2악장에서는 ‘schalltrichter in die hohe’(벨을 치켜들고) 혹은 ‘Schalltrichter auf’(벨을 공중에)라는 지시 때문에 실제로 연주자들이 벨을 치켜들고 연주한다. 3악장은 ‘Feierlich und gemessen, ohne zu schleppen’(엄숙하고 장중하게, 그러나 느긋하지는 않게) 시작하며 그 장중한 장례 행렬이 끝나면 휴지부도 없이 4악장이 터져나오는데, 그 악상 기호는 ‘Sturmisch bewegt’(태풍처럼 움직이며)이다. 이때 현악기는 현을 끊어버릴 듯이 연주하는데, 그들의 악보에는 ‘Sturmisch’(격렬하게)라고 쓰여 있다.

<right>
</right>
말러의 장대하고 복잡한 교향곡을 풍자한 만평
죽어가듯이 연주하라고까지 지시

4번 교향곡의 1악장은 ‘Heiter bedachtig, Nicht eilen-gema..chlich’(어느 정도 억제되어, 진심으로 즐겁게)라는 악상 기호가 붙어 있다. 이 기호에 따라 쇠방울 소리가 울려퍼지면서 기이한 음의 행렬이 펼쳐진다. 7번 교향곡 3악장은 ‘Schattenhaft’(그림자처럼)이라고 쓰여 있는데, 옌스 말테 피셔의 말러 전기에 따르면 파티에 초청받지 못한 자가 어두컴컴한 뜰에서 화려한 무도회장을 훔쳐보는 듯한 감정으로 연주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데 연주자들은 그 지시들을 완벽하게 재현했다고는 할 수 없어도 그것을 위하여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그 재현의 노력들, 그 미학적 지향이 다들 미묘하게 차이가 난다.

가령,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연주하는 말러 9번 교향곡 4악장을 보자. 나는 여기서 ‘듣자’가 아니라 ‘보자’고 했다. DVD 원본이라면 좋고 그게 아니면 유튜브로 검색해도 좋다. 꼭 2010년 8월 루체른 실황 영상으로 봐야 한다. 죽음에 이른 말러의 실질적 유작이 9번 교향곡이다. 말러는 4악장을 ‘Adagio Sehr langsam’, 즉 매우 느리게 연주하라고 쓰고는 덧붙이기를 ‘noch zuru..ckhaltend’, 즉 주춤거리며 연주하라고 당부했다. 이로써 9번 교향곡은 느리게 그리고 주춤거리며 죽음을 받아들이는 곡이 된다.

4악장의 마지막에 이르면 음량은 ‘pp’, 즉 아주 여리게 연주되다가 ‘ppp’를 거쳐 ‘pppp’까지 이르게 된다. 매우 여리고 극단적으로 여려져서 끝내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죽음에 이른 자가 마지막 숨을 쉬듯 연주하게 되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지점에다가 말러는 ‘ersterbend’, 즉 죽어가듯이 연주하라고까지 지시해 놓았다. 그리하여 아바도는 숨이 끊어질 듯한 지휘를 한다. 몸을 앞으로 숙이며 필사적으로 듣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소리들이 겨우 겨우 들려온다. 아바도는 이 여린, 극단적으로 여린, 거의 들리지도 않는 현의 숨소리를 위하여 극장의 조명까지 서서히 어두워지게 하였다.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아바도는 최후의 음표가 끝난 다음에도(실은 언제 끝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잘 들리지도 않는다) 미동도 없이 가만히 서 있는다.

이윽고 모든 연주가 끝났다. 그러나 지휘자도 연주자도 객석도, 누구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 모두가 숨죽이고 있고, 마침내 죽음이 드리워진다. 인간이란 죽음 앞에서 속수무책인 존재들, 그러므로 죽음을 승인하고 그 압도적인 힘을 경건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 그것이 말러가 들려주고 싶은 것이므로 아바도는 악보에 표기된 ‘pppp’만이 아니라 그 이후의 침묵까지도 연주한다. 지휘자와 연주자와 관객은 3분 가까이 죽음 앞에서 침묵한다. 이 순간, 그 흔한 기침 소리도 핸드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모두가 말러의 도저한 허무주의 앞에서 침묵한 것이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주간경향 공식 SNS 계정 [페이스북] [트위터]

모바일 주간경향[모바일웹][경향 뉴스진]

- ⓒ 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신문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