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슬픈 귀향

2015. 9. 18.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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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필자 주변인들과 SNS 타임라인은 충격과 공분, 비통함으로 술렁거렸다. 바로 지난 12일에 방송된 인기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일본 하시마섬 방문기 때문이었다.

일제 시대 때 하시마섬으로 끌려와 희생된 조선인 강제 징용 희생자들의 이야기. 타국의 인적드문 덤불숲가 초라한 공양탑에 덩그러니 버려져 있는 것도 서러운데 최근 하시마섬 유네스코 등재 사실만 자랑하기 바쁜 일본의 역사 왜곡 때문에 또 한 번 잊혀진 그들의 이야기를 보며 지인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답답한 마음에 잠을 설쳤노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더욱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사실은, 하시마섬의 비극만이 강제 징용 노동자들의 잊혀진 이야기가 아니란 것이다. 일제 시대, 어느 날 갑자기 가족과 생이별하고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강제 노동자들의 피눈물 자국들은 일본 최북단의 땅 홋카이도에 이르기까지 진하게 흩뿌려져 있다.

아름다운 관광 명소들로 유명한 일본 홋카이도. 우리 조상들의 눈물이 잠겨있는 곳이기도 하다.(출처=일본정부관광국 '홋카이도' 홍보 영상)

부산을 거쳐 시모노세키를 시작으로 히로시마, 오사카, 도쿄 등을 거쳐 일본 극한의 땅 아사지노까지. 강제 노동 희생자들은 고향을 떠나는 순간부터 매 순간 탈출을 도모했지만 바다를 한 번씩 건너게 될 때마다 더 이상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절망감을 느꼈다. 일본 열도를 횡단하면서 2번씩 바다를 건너 마지막 홋카이도에 도착했을 땐 더 이상 살아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암흑 속에서 '이제는 죽었다'며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70년이 지난 2015년.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 지 70년을 맞이하는 올 해, 마침내 한국인 희생자 115명의 유골이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희생자와 그 유족들에게 '70년만의 귀향'인 셈이다. 강제노동 희생자들이 끌려갔던 죽음의 길을 되짚어 강제 노동 희생자의 역사를 알리는 동시에 그들의 넋을 위로하는 여정도 함께 이루어질 예정이다.

서울 도서관 1층 로비에 위치한 강제 징용자들의 여정 안내판. 한 시민이 걸음을 멈추고 유심히 지도에 적힌 이들의 가슴아픈 사연을 읽고 있다.

가장 먼저 한국에서 이들의 아픔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는 바로 '삶의 역사, 70년만의 귀향' 사진전이다. 서울 도서관(서울 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 2층 전시 공간과 계단에서 만나볼 수 있는 이 전시는 1997년부터 17년간 진행된 유골 발굴의 역사적 과정을 담고 있다.

"달아 높이나 올라 내 넋이라도 고향 마당에 뿌려라."

전시장 입구는 징용자들의 한탄과 절규가 들려오는 듯한 정태춘 작가의 '징용자 아리랑' 문구로 입장부터 무겁게 방문자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이어 징용자들이 부산부터 홋카이도까지 이동한 궤적을 표시한 대형 안내판, 그리고 지도의 지점마다 표기된 강제노동 희생자들의 사연과 일제의 만행은 보는 이들의 표정을 한층 더 무겁게 만든다.

시민들의 추모와 애도의 메시지로 가득한 전시관 2층의 추모 액자.

병들고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댐아래로 밀어 떨어뜨리고 그대로 공사를 진행했다는 처참한 역사의 매몰지, 인공호수 슈마리나이댐 이야기. 아버지와 함께 아사지노로 끌려가 생사도 모른 채 강제노동을 하다 아버지를 잃었다며 "징용으로 내 청춘도 아버지도 잃었다."고 울부짖는 아들.

'무조건 나오라'는 면서기의 요구에 아내와 생이별하고 갱도내 가스 폭발로 부상을 입은 결혼 3년차 새신랑의 비바이 지역 노역기. 밀감껍질과 채소 찌꺼기를 주워 먹으며 고된 노동을 하고, 설상가상 미국의 폭격으로 인한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는 오사카 시바다니 조선소 강제 노동자들의 이야기까지.

혹한의 땅 홋카이도, 그리고 그 주변 지역들엔 이렇듯 수많은 한국인들의 희생이 지하 깊은 곳까지 뿌리깊게 깔려있다. 그 중에서도 최북단의 땅에 자리한 아사지노 비행장은 일본과 소련과의 전쟁에 대비해 만들어진 시설이다. 이 곳에서 89명의 조선인들이 가혹한 강제노동과 굶주림, 전염병에 시달려 희생됐고, 해방이 된 뒤 6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아무도 찾지 않는 자작나무 숲 아래 묻혀있었다고 한다.

세계 2차 대전 당시의 일본군의 모습. 이들의 기지와 군사 시설을 만드는데 수많은 강제 징용자들의 삶이 희생됐다.

사진 전시 소식을 접하고 전시회를 찾은 유지영(27) 양은 "지난 주 '무한도전'에서 본 하시마섬의 초라한 희생자들 공양탑이 생각난다. 아무도 모르고, 기억하지 못하고, 찾지 못하는 곳에 희생자들의 넋과 진실이 묻혀져 있단 사실이 가슴이 아프다. 길을 지나가다 이유없이 물벼락만 맞아도 억울한데, 하물며 긴 세월동안 타지에서 영문도 모른 채 혹사당하다 눈 감은 분들의 한은 얼마나 클 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며 전시물에서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필자 역시도 전시를 보며 울분을 느끼는 한편, 스스로 이런 역사를 전혀 모르고 지냈다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홋카이도하면 여행 명소와 지역 명물만 떠올렸던 게 알고 있는 전부였다. 그리고 '엔저 시기일 때 한 번 일본 여행 갔다 와야지?'하며 유혹했던 지인의 달콤한 요청에 며칠을 심사숙고해 본 적은 있어도, 잊혀진 역사에 대해 고민해 볼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었다.

희생자들의 유물 및 함께 발견된 물건들의 실물 전시.

유골 귀환 소식을 들은 시민 류화정(35) 씨는 "위안부 문제와 독도 분쟁같이 널리 알려진 사안들도 아직 완전한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는데, 이렇게 국민들조차 잘 모르는 과거사 문제들이 많이 쌓여있어 더욱 안타깝다.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의 실질적인 반성과 책임 이행을 받아내기 위해 더 노력해야할 것은 물론이고, 역사 교육도 더 강화했으면 좋겠다. 막연히 '일본에 강제 징용에 끌려가 많은 분들이 희생됐다.'고만 배웠을 뿐, 이분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고생했고 어떻게 희생됐는지는 자세히 몰랐다. 이제야 알게 되어 자국민으로서 더 죄송할 뿐이다."고 한탄했다.

2층 전시관 중앙에 걸린 김영환 팀장(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팀)의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의 책임에 대한 규탄은 더욱 날카롭게 와 닿는다. 그는 "조선의 젊음이들을 끌고가 강제 노동을 강요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근본적인 책임은 일본 정부에게 있다. 그리고 당시 정부의 요구에 따라 군사 시설을 건설한 일본의 기업에도 그 책임이 있다. 희생자의 유골을 고향에서 기다리는 가족에게 돌려보내는 일도 일본 정부와 기업이 마땅히 했어야하는 일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 기업은 어떠한 책임있는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며 강력히 규탄했다.

'너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편히 쉬세요.' 시민들이 남긴 추모 메시지에 가장 많이 등장한 말들이다.

하지만 지난 17년 동안의 유골 발굴 과정이 세상에 알린 것은 과거의 쓰라린 흔적뿐만이 아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판도라의 상자'에서 온갖 재앙이 튀어나왔지만 마지막 남은 희망이 있었듯, 발굴 기간 동안 순수한 자원 봉사와 후원을 아끼지 않은 한·일 양국의 민간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진정한 화합과 화해의 미래를 기대하게 만드는 작은 씨앗이 되어준다.

1970년대부터 홋카이도의 강제노동 역사를 탐구해온 '소라치민중사강좌' 시민단체의 활동을 이어 1997년 한국인, 재일조선인, 젊은 일본인, 아이누(일본 홋카이도, 러시아, 쿠릴 열도 등지에 사는 소수 민족) 등이 모여 발굴 작업을 시작한 것이 17년 동안 이어져 오늘날의 유골 반환을 이뤄냈다. 실제로 수많은 전시 사진들 속에서 비오는 궂은 날씨에도 땅을 파헤쳐가며 유골 발굴에 힘쓰고, 다 같이 똘똘 뭉쳐 유골 발굴 사업 알리기에 열정을 쏟는 양국 시민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 사진전의 작가인 손승현 교수(한국 예술원 교수)는 "전시를 통해 한·일 양국의 시민들이 국가 간 갈등을 넘어 어떻게 교류하고, 유골 발굴을 통한 만남을 지속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길 바란다. 아울러 현재 교착된 동아시아의 평화에 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바람을 전했다.

유골 현장 발굴 및 한·일 양국 젊은이들의 자발적인 참여 과정들이 사진에 담겨있다.

유골 귀환은 9월 11일부터 17일까지 일본 홋카이도(아사지노-슈마리나이-비바이-삿포로-토마코마이)를 출발해 도쿄, 교토, 오사카, 히로시마를 거쳐 시모노세키항에서 추도회를 가졌다. 그리고 한국 부산에 18일날 도착해 18, 19일 양일간 서울 성공회 서울주교좌 성당에 빈소를 마련하고 19일에 서울광장에서 장례식을 갖는다. 그 뒤, 파주 서울시립추모공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과거를 마음에 새기고 현재를 몸으로 체험하며 미래를 함께 열어가자."며 1997년 유골 발굴 사업을 시작한 양국 시민들의 다짐은 어쩌면 현대에 더욱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올바른 역사 인식, 반성과 책임, 해결과 화합. 우리나라가 새로운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 건너야 할 많은 징검다리들이다. 모진 역사의 물결을 뚫고 이제껏 밟아온 발자취의 흔적을 되새기며 한 발짝 한 발짝 신중하면서도 담대하게 앞을 헤쳐나가는 대한민국이 되길 바라본다.<사진 전시회 정보>전시 장소: 서울 도서관(서울 특별시 중구 세종대로)전시 기간: 2015. 9. 9(수)~2015. 9. 20(일)

<한국에서 남은 유골 귀향 여정 및 관련 일정>부산: 진혼제(수미르 공원/연안 여객선 터미널 역 9월18일 11시)서울: 빈소 마련(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본당 9월18~19일)보고 심포지엄('강제노동 희생자 유골 발굴과 동아시아의 화해와 미래', 9월19일 오후 3시)장례식(서울광장 9월19일 오후 7시)파주: 서울시립추모공원 안장식(9월20일 11시)

<'강제노동 희생자 추모행사 및 유골 귀환' 사업(사단법인 평화디딤돌) 안내>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로 114(서교동 481-2) 우편번호 04029문의: 02-2677-8270홈페이지: steppingstone.or.kr

정책기자단

|김연수 siren715@gmail.com'좋은 리더가 되려면 먼저 좋은 팔로워(follower)가 되어라'사람들간의 이해와 공감을 소중히 여기는 서울 토박이.뮤지컬, 미술을 좋아하며 지식재산권 분야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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