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엔 응급실만 가라고?"..텃세에 사장된 약국 화상판매기

이영성 기자 2015. 9. 8. 15:4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약사회, 원격진료 빌미, 약판매 자판기화 우려 반대 복지부는 보수적으로 법해석, 위법 판정..사라진 후에도 논란 계속
(서울=뉴스1) 신웅수 기자 © News1

(서울=뉴스1) 이영성 기자 = 경기도에 사는 주부 김미연(가명, 여·36) 씨는 한밤중에 아이가 열이 나자 약국에 나섰다. 근처 대학병원으로 가자니 대기시간이 긴데다 비용도 만만찮고, 편의점에서 가정상비약을 구입하자니 의료전문가의 복약지도를 받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문 연 약국은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지체하기 어려워 결국 병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우리나라는 심야시간이나 주말 혹은 공휴일에도 영업을 하는 당번약국 제도가 있지만 원활히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보니 환자들의 심야 약국 이용에 대한 불편은 늘 끊이질 않고 있다.

지난 2012년 한 개인 약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약국 앞에 설치하는 원격화상투약기를 개발했다. 환자가 기계의 통화버튼을 누르면 약사와 복약상담이 진행되는 시스템이다. 이 과정에서 한쪽 화면에는 상담 약사의 면허증도 제시된다. 복약지도가 이뤄진 뒤 구매 가능한 약품이 화면에 나오고 환자는 카드 등으로 결제를 하면 일반의약품을 기계에서 받을 수 있다. 사실상 약국내 판매와의 차이점은 심야 시간 직접 대면이 아닌 화상으로 약사의 복약지도를 받아야 하는 것과 약국 내부가 아닌 약국 앞에서 약을 살 수 있다는 점뿐이다.

특별히 큰 차이가 없어보이지만 보건복지부의 위법 표명과 대한약사회측의 반대 속에서 약국 한 곳에서 시범적으로 이뤄졌던 화상투약기 운영은 현재 철수한 상황이다. 무슨 이유일까.

시범운영됐던 '원격화상투약기'. /뉴스1 © News1

◇심야시간 약국 이용 불편 환자들을 위해 개발된 '원격화상투약기'

밤시간 약국 이용을 위해 대한약사회는 2007년부터 당번약국 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이는 약사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진다. 현재 휴일지킴이약국 홈페이지에는 연중무휴약국과 심야공공약국, 휴일지킴이약국을 검색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2011년 4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조사한 결과 전국 2만여개 약국 가운데 심야약국 영업을 하는 곳은 극소수에 불과했고 복약지도 역시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당시 심야응급약국 56곳 중 8곳은 영업을 하지 않았고 119개 전체 당번약국 중에 12곳은 지정 시간에 문을 열지 않았다. 따라서 심야시간대 응급약국 접근율은 0.2%에 불과했다는 게 경실련의 설명이었다.

반면 심야약국에 대한 시민들의 큰 호응은 2013년 부천시청 산하 보건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도 나온다. 당시 부천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는 3개의 심야약국에 대한 찬반 설문조사에서 시민 약 74%가 찬성했다. 절반 이상이 심야시간 의약품 구입 편의성을 이유로 꼽았다.

심야약국은 당번에 대한 강제력이 없어 통제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서울의 약국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약사는 지난 2012년 정부가 의약품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가정상비약의 편의점 판매를 시행하면서 그보다 안전한 의약품 판매와 높은 접근성 유지, 약사직능 보호 등을 위해 원격화상투약기 도입을 제시했다.

◇화상투약기 도입 경기도약사회와 MOU 체결...뜻밖의 난관 봉착

그는 2012년 전국약사회원 4분의 1정도가 소속된 경기도약사회에 이를 제시해 도회장단회의와 30여 시군약사회장단회, 경기도약사회상임이사회 등에서 수차례 찬반 토론을 거치고 경기도약사회 T/F 팀을 구성, 2개월 검토를 마친 뒤 마침내 경기도약사회와 도입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2013년 인천 부평 소재 약국에서 화상투약기 시범운영이 이뤄졌다. 시민들의 반응은 좋았다. 하지만 당해 5월초 몇몇 약사들이 격렬하게 반대하며 의약품 약국외 판매를 명목으로 복지부에 고발했다.

이후 대한약사회도 공식적으로 원격화상투약기 도입 반대 입장을 표명했고, 복지부 역시 위법 해석을 내놓았다. 당시 복지부는 “기계를 이용한 의약품 판매는 현행법상 허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이 약사는 다시 2013년 11월 법제처에 복지부 유권해석의 재해석을 의뢰했으나 지난해 4월 법제처는 복지부의 손을 들어줬다. 법에 원격의료 허용 규정과 같은 조문이 없다면 약사법상 원격화상투약기 약국 설치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었고 화상투약기 판매 과정이 약국내 판매와 유사하지만 판매약사 위치가 약국외라는 것이 문제 요소였다.

또한 1명의 약사는 1개소 약국만 개설해야 한다는 약사법에 따라 화상투약기는 개설등록사항이라는 취지의 답변으로 복지부의 해석이 타당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대면판매가 아니어서 불법?..법 ‘모호’

화상투약기는 사실상 약사의 복약지도 과정이 화상이냐 직접 대면이냐 차이밖에 없다. 또 하나 논란이 되는 부분은 화상투약기 위치가 약국으로 봐야하는지 외부로 봐야하는지 부분이다.

약사법 제50조 제1항에는 약국개설자에 한해 해당 약국을 관리하면서 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또 약국개설자 및 의약품판매업자는 그 약국 또는 점포 이외의 장소에서 의약품을 판매할 수 없도록 규정하면서 예외조항으로 시장·군수·구청장의 승인을 받은 경우를 인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 해당 약사는 2014년 8월 복지부에 약사법 제50조 제1항 단서인 ‘시장·군수·구청장의 승인을 받은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를 들어 원격화상투약기 설치를 통한 ‘약국외 판매’ 승인이 날 경우 위반인지 여부를 복지부에 질의했다. 복지부는 이번에는 “현행법상 의약품 판매는 대면판매를 원칙으로 하고 있어 시장, 군수, 구청장의 승인을 받더라도 약국이 아닌 장소에서는 약사가 직접 의약품을 판매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에 다시 2014년 11월 법제처에 법령해석을 요청했으나 복지부 답변과 같이 약사법 입법취지가 직접대면 규정을 염두에 두고 제정됐다고 했다.

하지만 약사법상에는 어디에도 대면규정이 없는 상황이다. 의료법에는 의사의 직접 진찰규정이 명백하게 표시돼 있지만 약사법에는 없다는 게 해당 약사의 주장이다. 심지어 화상투약기를 통한 판매약들은 일반의약품으로 복약지도에 대한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화상투약기를 통해 무조건 복약지도를 할 수밖에 없어 의약품 구매 안전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도 그의 논리다.

또 법제처는 "시장, 군수, 구청장이 '판매장소'뿐만 아니라 '판매방법'에 대한 예외를 승인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해당 약사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과거 약사법이 만들어졌던 시대에 비해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한 현 시대가 반영이 안된 것으로밖에 해석이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 약사는 “법령 어느 조항에도 의약품 판매에 있어 직접대면이 아니면 불법이라는 조항은 없다”며 “오히려 심야나 공휴일에 의약품구입 불편을 해소할 수 있고 경질환의 응급실 이용을 줄여 건강보험 재정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상황인데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찬성 약사 “심야시간 약국 접근성 개선” VS 반대 약사 “약사직능 위기 초래”

대한약사회를 비롯한 여러 약사들이 화상투약기 도입을 반대하는 이유는 약사로서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대면상담에 대한 역행과 그에 따른 약사직능 위기 초래 등이 있다. 또 편의점 판매 품목확대 빌미 제공과 개설약사가 아닌 대자본 유입에 따른 제3자에 의해 운영될 가능성, 원격진료 전자처방 약 택배발송 추진의 단초, 동네약국 몰락 등이 있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화상투약기가 도입이 된다면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한 번 물꼬가 터졌으니 의약품이 약국이 아닌 밖으로 나가는 것은 시간문제가 될 수 있다”며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아니다”고 밝혔다.

반면 찬성하는 약사들도 많다. 심야시간대와 공휴일 약국 접근성의 개선과 당번 약국 운영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이에 따른 삶의 질 향상, 오히려 편의점 판매 품목 확대 차단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화상투약기가 원격진료와 연관된다는 일부 지적도 있지만 개발 약사는 “약국에 설치해 복약지도 및 판매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격진료와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다만 ICT를 응용한 원격화상투약기는 박근혜 정부가 강조하는 창조경제시대에 걸맞고 그 동안 복지부에도 수없이 문을 두드렸지만 실무진에서 도입 길이 막혀버린 상황”이라고 전했다.

현재 시민들의 불편 속에서 화상투약기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새로운 제도 도입이나 약사법의 다른 해석이 해결책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lys38@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