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색칠놀이 '컬러링북' 열풍. 안티스트레스·아트테라피 효과 검증

권벼리 인턴기자·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 2015. 9. 8.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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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스트레스, 색칠놀이로 과연 해소될까?

직장인 채모(30)씨는 틈만 나면 주변에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동기가 스트레스가 해소될 것이라는 쪽지와 함께 책 한권을 내밀었다. 책에는 '휴식이 필요한 당신,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해주는 안티스트레스 북'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까만 테두리의 밑그림만 그려져 있고 빈 부분은 독자가 직접 색칠하는 '컬러링북'이었다. 채씨는 '이 나이에 색칠놀이라니… 어린 아이들이나 하는 것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안티스트레스'라는 문구에 끌렸다. '속는 셈 치고 한번 해볼까'하는 생각에 서랍 구석에서 색연필 통을 꺼냈다. 마음에 내키는 색을 골라 색칠에 몰두하다 보니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다. 그러고 보니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친구가 완성해 올린 컬러링북 도안에 '좋아요'를 눌렀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도 빨리 작품을 완성해서 SNS에 자랑해야겠다"는 강박관념이 들자 지금까지 색칠한 것이 서툴게만 보이고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받는 것만 같았다.

- 현대인들은 색을 통해 상처받은 자아를 위로하고자 한다.

컬러링북 전 세계적 유행어른들을 위한 컬러링북이 작년 10월부터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어린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색칠놀이의 역습이다. 카페에 가면 색색의 색연필을 들고 색칠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컬러링북의 인기는 프랑스를 필두로 유럽에서 먼저 시작됐다. 작년 8월 세계적 베스트셀러이자 컬러링북의 원조 격인 <비밀의 정원>이 한국에서도 출간되면서 컬러링북 열풍이 시작됐다. 인기 드라마 '프로듀사'에도 소개돼 중국에서도 큰 인기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컬러링북은 370여종에 달한다. 초기 컬러링북은 꽃, 나무, 새 등 자연을 소재로 한 책이 대다수였으나 패션일러스트, 세계 도시 풍경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도 다양해졌다.

이렇게 색칠놀이가 직장인들을 위주로 어른들에게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아트테라피(예술치료)', '안티스트레스(스트레스 해소)' 마케팅의 역할이 크다. 업무 스트레스로 복잡한 머리와 마음을 채색으로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완성된 컬러링북을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SNS에 업로드해 친구들과 공유하는 문화도 독특하다. <비밀의 정원> 작가 조해너 배스포드의 페이스북에는 매일 전 세계 사람들이 완성한 작품들이 업데이트된다.

과연 컬러링북 도안에 따라 색칠을 하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우울한 감정도 치료받을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아트테라피'와 '안티스트레스'라는 단어를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컬러테라피 전문가인 박연선 홍익대학교 조형대학 색채전공 교수는 "어떤 일에 몰입한다는 측면에서는 컬러링북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컬러 치료 효과는 크지 않다"며 "컬러테라피는 사물의 형태보다는 컬러를 먼저 인지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인 데 비해, 컬러링북은 형태가 컬러를 한정짓고 있어 순서가 뒤바뀐 셈이다"라고 지적했다. 미술치료사인 정여주 정여주미술치료연구소 소장도 스트레스에 컬러링북이 만사형통이라는 과도한 마케팅을 경계하며 "밑그림에 색을 가득 채워 그림을 완성해야만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되면 이중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격"이라고 말했다. 끝까지 다 하지 못 하면 '역시 나는 매사를 제대로 끝내지 못 하는구나'하고 자기비판을 시작하게 된다는 것이다.

- 컬러링북이 어른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은 아트테라피와 안티스트레스를 강조한 마케팅의 역할이 크다.

몰입 효과는 OK, 예술치료 효과는 '글쎄'컬러링북의 실질적인 예술치료 효과가 불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컬러링북이 선풍적 인기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컬러링북이 유럽과 아시아를 비롯한 선진국 위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이 기계화·자동화된 도시 문명 속에 살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는 기계와 같이 합리적이고 분석적인 특질을 지닐 것을 강요받는다. 직장에서는 타인이 정한 기준들로 평가받으며 불안과 강박 속에 하루하루를 보낸다. 정 소장은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는 컬러링북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며 "현대인들은 점점 자신의 본질에서 소외되고 '나는 무엇인가? 나는 일하는 기계인가?'하고 자문하게 돼 자기 본연의 모습을 만나고 싶어한다"고 설명했다. 컬러링북 열풍에는 색을 통해 상처받은 자아를 어루만져 주고 싶은 현대인들의 욕구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컬러링북으로 예술치료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컬러링북을 하나의 과제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박 교수는 이미 그려진 밑그림과 '24색 색연필 세트'라는 한정된 컬러에 구애받지 말고 원하는 대로 색을 섞어 다양한 빛깔을 표현하라고 조언했다. 정 소장 역시 "자기표현이라는 목적이 최우선시 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첫 페이지부터 순서대로, 빈 칸 없이 완벽히 색칠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지 말라"고 조언한다. 또한 컬러링북이 완성됐을 때의 전체적 조화를 예상하며 색상 선택에 고심하기보다는 즉흥적으로 끌리는 색을 선택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컬러링북 채색을 끝낼 때마다 간단한 후기(後記)를 적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같은 사람이라도 항상 컨디션이 같지 않듯 상황에 따라 필요로 하는 색이 다르기 때문이다. 소감을 기록해 두면 나중에 컬러링북을 다시 보면서 마치 일기를 되돌아보듯 자신의 심리상태를 체크해 볼 수 있다.

여러 명이서 그룹을 지어 컬러링북을 완성한 후 '왜 특정 색상을 선택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것도 예술치료 효과를 배가시킨다. 같은 색을 사용했더라도 각자의 심리 상태에 따라 완전히 상반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본인이 푸른색을 채색하고도 춥고 시린 마음에서 비롯된 선택인지, 동경이나 편안함을 표현한 것인지 분명히 인지하기 어렵다. 이럴 때 채색할 때 느꼈던 감정을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자신의 상태를 돌아볼 수 있다.

[도안 없이 할 수 있는 만다라 아트테라피]

세계 3대 심리학자이자 정신의학자 칼 융(Carl Jung)은 매일 일기를 쓰듯 만다라(원을 활용하는 아트테라피)를 그렸다. 이를 통해 자기 치유 효과를 발견한 융은 만다라를 '마법의 원'이라 부르며 정신과 심리치료의 한 기법으로 정착시켰다. 정여주 미술치료연구소 소장은 "컬러링북이나 밑그림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버리라"며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만다라 아트테라피를 제안했다.

●만다라 그리기 준비- 조용하고 정리된 밝은 공간에서 전화나 외적 방해를 받지 않도록 한다.- 시작하기 전에 눈을 감고 가사 없이 부드럽고 조용한 명상음악을 들으며 호흡과 신체 이완을 한다.- 만다라 그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리는 것이다.- 만다라를 완성하면 느낌을 글로 기록해 두어도 좋다.

●도안 없이 할 수 있는 만다라 아트테라피 종류1) 의식의 흐름을 나선형으로 써내려가기2) 손목의 스냅에 따라 원을 반복적으로 그리며 마음을 비워보기3) 색종이를 8등분으로 접어 마음대로 오린 후 펼쳐보기

※ 자료: 정여주미술치료연구소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컬러테라피]

'컬러테라피'란 색(色)을 매개로 치료효과를 보는 것을 의미한다. 색은 빛의 파장이기 때문에 가장 좋은 컬러테라피는 단연코 자연으로 나가 직접 빛을 쐬는 것이다. 박연선 홍익대학교 조형대학 색채 전공 교수는 "현대인들이 우울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실내에서만 생활하기 때문"이라며 "한국이 가진 사계절이라는 축복을 충분히 활용해 사시사철 달라지는 풍경의 빛깔을 만끽하는 것이 최상의 컬러테라피"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직장인들이 유일하게 햇볕을 쬘 수 있는 점심시간에도 식사를 마치자마자 사무실로 돌아가거나 카페로 직행하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점심식사 후 잠시나마 의식적으로 하늘도 올려다보고 나무도 바라보면서 자연 고유의 색상을 눈으로 들이마시는 것은 어떨까. 그러나 바쁜 일정 상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기 어려운 직장인들을 위해 사무실에서 할 수 있는 컬러테라피를 소개한다. 상황에 따라 자신에게 해당되는 색상을 적어도 10분간 바라보자.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 A4용지 크기의 색지를 자리로부터 약 60cm 거리에 눈높이로 붙인 후 20분가량 바라보면 더욱 효과적이다. 해당 색상의 조명을 15분 이상 켜놓고 빛의 파장을 느끼거나 컬러 소품을 가지고 다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1) 빨강 : 우울하거나 무기력할 때2) 주황 : 슬픔과 상실감에 빠져 있을 때, 소화가 잘 되지 않을 때3) 노랑 :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 우울할 때, 운동으로 통증이 생겼을 때4) 초록 : 마음의 안정이 필요할 때, 주의를 집중하고자 할 때5) 파랑 :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분하게 만들고자 할 때, 바쁘거나 힘겨운 일이 있을 때,두려운 마음이 생길 때6) 보라 : 상상력과 창의력이 필요할 때, 정신적 스트레스와 두려움이 있을 때

※ 자료: (주)한국색채디자인개발원 C&D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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